미국 원주민(Native American) 인디언(Indian)
7. 워체스터(Samuel Worcester) 목사 사건
1828년, 조지아주의 워드(Ward) 계곡에 살던 체로키(Cherokee) 인디언 소년이 백인 장사꾼에게 갖고 놀던 금이 박힌 돌덩어리를 파는 것이 비극의 시발점이 되는데, 계곡에 금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백인들은 금광 일대의 땅을 보유하고 있던 체로키 부족의 추방을 서둘렀다.
조지아(Georgia)주 의회는 체로키 땅을 몰수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연방정부의 앤드류 잭슨(Andrew Jackson/제7대) 대통령은 인디언 강제이주 법안에 동의하여 통과시켰다. 체로키 부족을 돕고 있던 백인 선교사 새뮤얼 워체스터 목사(Samuel Worcester)는 이에 항의하다 조지아 주법을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구속되었는데 1832년 미 대법원의 존 마샬(John Marchal) 대법원장은 당연히 ‘체로키 부동산 몰수법’은 위헌(違憲)이라 판결했다.
그러나 잭슨 대통령은 대법원의 판결을 깡그리 무시했고, 1년이 지난 뒤에도 워체스터 선교사는 풀려나지 못했다. 인디언들은 절망에 차서 외쳤다.
‘법이 있었지만, 우리에게 해로운 법뿐이었고 우리는 미국의 법정신에서는 보이지 않은 투명 인간들이었다.’
1838년 5월, 윈필드 스콧(Winfield Scott) 장군은 7,000명의 병사들을 풀어 조지아주 뉴 에코타(New Echota)에 모여 살던 체로키 부족을 포위하고 1만 6천여 명을 임시수용소에 강제로 수용했다.
그 뒤 체로키인들은 병사들의 감시하에 인디언 영토(Indian Territory)라고 불리던 오클라호마주 탈레쿠아(Tahlequah)까지 1,600여km(4천 리) 거리를 마차를 타거나 걸어서 강제이주를 당한다.
가는 도중에 겨울을 만나서 모진 추위와 영양부족으로 1만 6천 명 중 4천여 명이 숨졌으니 총만 안 쏘았을 뿐이지 사실상 대량학살이나 다름없었다.
당시 인디언들을 호송하던 미군 사병 존 버넷(John Burnett)은 훗날 80세에 당시를 회고하는 글을 남겼다.
‘차가운 비가 내리던 1838년 10월의 어느 날, 그들은 무슨 짐승처럼 645대의 마차에 강제로 태워졌다.
그 날 아침의 비애와 엄숙함을 잊을 수 없다. 추장 존 로스(John Ross)가 인도한 기도가 끝나자 곧 나팔이 울려 퍼졌고 마차가 구르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일제히 일어서서 작은 손들을 흔들며 정든 산과 집을 향하여 작별인사를 했다. 그들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버넷은 그 여정(旅程)이 ‘눈물의 길’이 아니라 ‘죽음의 길’이라고 썼다.
1839년 3월 26일, 탈레쿠아에 도착할 때까지 이 눈물의 길을 따라서 무덤이 행렬을 이뤘다.
꼬박 10개월이 걸린 죽음의 대행진(大行進)이었다. 희생자 중에는 추장 존 로스의 부인도 있었는데 기독교 신자였던 그녀는 하나밖에 없던 이불을 아픈 아이한테 주고 결핵에 걸려 숨졌다고 한다.
박물관에 전시된 체로키의 기록을 보면 담담하게 당시의 고통이 기술되어 있다.
‘3주가 지나자 남매 5명이 매일 한 명씩 차례로 숨졌다. 우리는 그들을 길옆에 묻고 계속 갔다.’
‘마차에서는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매일 노인과 아이들이 죽어 나갔다. 온통 눈물과 슬픔의 범벅이었다.
나는 살아있는 동안 결코, 웃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아틀란타(Atlanta)에서 북쪽으로 2시간 30분, 노스캐롤라이나(North Carolina)주의 스모키 국립공원(Great Smoky Mountains National Park) 산록에 체로키 보호구역(Cherokee Indian Reservation)이 있는데, 나는 2005년 집사람과 미국 전역을 여행하면서 골고루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여행 중 이상하고도 신기했던 경험은 저녁에 자려고 잠자리에 누웠는데 갑자기 등골이 오싹하는 느낌이 들어 눈을 떠 보니 창문 앞 어둠 속에 깃털로 장식된 커다란 모자를 쓴 인디언 추장이 무서운 얼굴로 내려다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는 그냥 눈을 감고 잤는데, 아침에 집사람도 같은 느낌으로 무척 무서웠다고 한다.
이곳 스모키 공원은 서부 개척 당시 인디언과 백인들의 전투로 엄청난 수의 인디언들이 죽었다고 하는데 그때 희생된 인디언 영혼들이 아직도 이곳을 배회하는 것은 아닌지 오싹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본 체로키인디언들의 삶의 흔적과 침체된 그들의 생활이 뇌리에 깊이 남아 있다.
우리는 스모키 산기슭 체로키 보호구역(Cherokee Indian Reservation)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선입견 때문인지 인디언들은 활기가 없어 보였으며, 같이 사진을 찍었던 중년의 인디언 녀석은 나를 ‘성난 말(Crazy Horse)’이라며 몇 가지 장신구를 입히고 사진을 찍자며 1달러를 요구한다. 옆에 서니 술 냄새가 코를 찌르고, 함께 갔던 미국 사는 유치원 다니는 손녀에게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하였더니 겁에 질려 울면서 도망을 간다.
체로키 옛 주거지 / 스모키 국립공원 입구 / 내가 ‘성난 말 추장’ 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