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에 생각나는 함양의 친일파
일본인들은 신의 나라인 신국(神國)이라 절대로 패할 수 없다는 것으로 조작하기 위하여 조선에서 일본군들이 패했다는 흔적은 모두 지워버렸다. 그래서 가도오기요마사가 패했다는 기록인 함경도 길주에 있었던 정문부의 북관대첩비도 일본인들이 가져갔던 것을 2005년도에 돌려받아 북한의 김책시 원래의 자리에 복원되었다.
7년 임진전쟁을 종료시키는 결정적인 전투인 황석산성의 전투도 북관대첩비를 가져갔던 것처럼 일본인들은 그들이 완벽하게 궤멸된 황석산성 전투의 흔적을 지우고 임진전란사를 조작한지 100여년이 넘었건만 아직도 식민사관에 빠진 함양의 친일파와 머리 통속에 맹한 먹물만 가득한 사람들 때문에 황석산성 전투에 대한 원상회복의 길은 참으로 멀어 보인다. 역사를 바로세우자고 한 목소리로 고함을 질러도 어려울 상황에서 당사자인 함양군에서 그것도 함양의 문화원에서 이렇게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고 함양인의 진정한 광복이나 정신적인 독립이나 해방의 길을 찾는 다는 것이 어불성설인지도 모르겠다.
함양문화원은 다른 나라 사람들은 별나라 달나라를 간다는 21세기에 함양군사(咸陽郡史)를 쓰면서 함양군민이나 대한민국 국민의 긍지와 자부심을 고취하기 위하여 조선인의 입장에서 올바른 역사를 기록하려 하지 않고 1910년 일본인들이 조선의 역사서를 검열하고 조작하고 조작할 수 없었던 20만 여권을 불태우며 식민사관을 심으려고 했던 그 내용을 일본총독부를 대신하여 그대로 옮겨서 적었다.
이것은 마치 마지막총독 아베 노부유끼가 「나는 패하여 돌아가지만 언젠가는 다시 돌아온다.」라고 했던 것처럼 죽었던 그가 다시 돌아 온 것과도 같은 역할을 함양의 문화원이 하고 있다. 이것은 친일적인 함양문화원과 그들을 추종하는 사람들에게 혀를 날름거리는 뱀처럼 도사린 식민사관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말해주는 단적인 예가 될 수가 있을 것이다.
1910년의 일본인들은 1597년 8월의 황석산성 전투에 참전했던 병력 75,300명을 삭제하고 전주성에서 북진한 병력 27,000명으로 수정한 것은 황석산성 전투에서 일본인들이 한명도 죽지를 않았다는 것으로 조작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황석산성 전투의 조작은 일본인들이 일방적으로 승리한 전투로 조선인들만이 죽은 것으로 만들기 위한 엄청난 역사적인 음모다.
일본전사에서 일본인들이 기록한대로 정유전쟁 참전인원 14만1천5백여명 중 4만8천명은 남원으로, 7만5천3백명은 황석산성으로 왔다. 군무장 유명개의 년보에서 1597년 8월14일부터 8월18일까지 5일간의 긴 전투에서 완벽하게 궤멸된 일본군들은 그들이 인정한 대로 전주성에서 북진한 우군 27,000명만이 살아서 황석산성에서 도망을 갔다.
모리데루모도 3만명과 조오소가베 모도지가군 1만3천3백명, 구로다나가마사군 5천명 등 48,300명은 죽었거나 부상을 당하여 북진에 참여를 할 수가 없었다. 이것은 조선의 기록이 아니라 시마쓰요시히로(島津義弘)의 종군승인 멘고렌조보(面高連長防)의 고려일기(高麗日記)에서 모리데루모도와 조오소가베 모도지가 두 개 부대는 완벽하게 궤멸되어 우군대장의 직함과 히로시마 성주요 일본의 최고 중신인 오대노(五大老)라는 명예도 다 벗어던지고 전주성과 전남장성군 진원현과 나주현으로 쫓겨 다닌다는 것이 멘고렌조보((面高連長防)의 기록이다. 병력 1만3천3백명의 조오소가베모도지가(長曾我部元親)는 임진전란사 본문의 황석산성 전투편성에는 포함을 하지 않고 「문헌연구」 란에 등장을 하고 있고 우기다 히데이에(宇喜多秀家)의 재편성에서 전북 고부현과 전남의 나주현에 배치되어 궤멸된 부대를 정비하였다.
병력3만의 우군대장(右軍大將) 모리데루모도(毛利輝元)는 황석산성 전투편성에도 없고 그 어느 곳에도 등장하지 않았는데 우기다 히데이에의 1차와 2차 두 번의 재편성에서 전라도 영광과 장성의 진원현에서 궤멸된 부대를 정비를 하고 있음을 남원성을 공격했던 시마쓰 요시히로(島津義弘)의 종군승인 멘고렌 조보는 고려일기(高麗日記)에서 밝히고 있다.
모리데루모도(毛利輝元)는 당시의 일본에서 가장 큰 120만5천석의 히로시마(廣島城) 영주이고 풍신수길이 가장 신뢰하는 다섯 명의 최고 중신인 오대노(五大老)에 소속된 유명한 사람인데 그러한 일본의 최고 중신이 조선에서도 심심산골인 황석산성에서 조종도, 곽준, 백사림, 유명개 등 조선의 작은 현의 현감들에게 완벽하게 궤멸되었다는 사실을 기록으로 남긴다는 것은 일본인들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황석산성 서문을 공격하여 함양사람들과 싸웠던 나베시마 나오시게(鍋島直茂)가문의 과도가문서(鍋島家文書)에 7만 명의 일본군이 황석산성을 완벽하게 포위를 하고 공격을 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구로다 나가마사는 1만 명이 황석산성에 참전을 했다가 7천명이 죽었고 3천명만이 살아서 전주성에 입성을 하였고 모리데루모도 3만의 부대원 중 모리히데모도(毛利秀元)를 비롯하여 기동력이 있는 2천명을 지원을 받아서 5천명이 되어 북진을 하고 직산에서 양동작전을 실시했다.
황석산성 전투에서 왜놈들이 한명도 죽지 않았다고 2만7천명으로 조작하기 위하여 1만명의 구로다 나가마사의 병력은 황석산성 전투편성표에서 5천명으로 축소가 되었고 황석산성에서 가장 많은 병력을 잃고 궤멸되어 더 이상 전투를 할 수 없었던 모리데루모도 3만명과 조오소가베모도지가 1만3천3백 명은 임진전란사의 기록에서 사라졌다.
함양의 문화원에 적을 두고 일본은 절대로 패할 수 없다는 신념을 고취시켜 가미가제 특공대를 양산했던 시대적인 이데올로기인 신국(神國), 일본을 위하여 일본의 역사를 미화하고 일본인의 긍지와 자부심을 고양하기 위하여 평생을 노력한 노골적인 친일파들이 함양에 존재한다.
이들은 일본인들이 자라나는 조선의 청소년들을 긍정적인 조선의 역사를 혼동시키고 조선인의 긍지와 자부심을 말살하고 열등의식을 조장하려고 조선의 역사를 조작한 식민사관을 그대로 옮겨서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그들의 행적을 지적하고 자라나는 청소년들의 역사의식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잘못된 함양군의 역사를 바로잡기 위하여 함양군사(咸陽郡史)의 회수와 서부경남의 역동적인 전투를 일본인들의 원하는 대로 조작하여 비겁한 황석산성 전투가 되어버린 사실에 대한 공개토론을 하자는 제안에 어떠한 답변이나 반응도 없다.
친일파로서 집필위원장이며 문화원장을 지낸 김성진
친일파 집필위원 김윤수, 김찬수, 김흥식, 박영일, 소재우, 양정렬, 유성기, 임채갑, 정문상, 정상기, 정수상, 홍동초 등 이상 13명이다.
위에 기록된 친일파 집필진 여러분들이 100여 년 전에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에게 민족적 패배주의와 열등감을 이식하려는 식민사관의 내용을 함양군사에 그대로 옮겨서 적어놓고 근거도 없는 자료는 만들어서 조작하여 놓았다. 조선사람 3,500명이 하룻밤전투에서 7만5천3백 명을 대적하여 전투를 했다는 말인지? 아니면 일본인은 황석산성전투에서 단 1명의 병사도 죽지 않았다는 것을 주장하려는 27,000명을 대상으로 5일 동안 전투를 했다는 것인지? 친일파 집필위원 당신들은 답변을 해야 할 것이다. 당신들의 주장대로 황석산성 전투에 참여하지도 않은 우군대장 모리데루모도가 왜 재편성을 당하는지? 조오소가베 모도지가군이 고부와 나주로 왜 쫓겨 다니는지? 멘고렌조보가 거짓말을 하는지? 일본사가 거짓인지? 나베시마 가문이 거짓말을 하는지? 거창좌수 유명개가 거짓말을 하는지를 당당하게 밝혀야 할 것이다.
친일파 집필위원 당신들의 주장은 거창에서 궐기한 김면 경상의병도대장이나 합천에서 궐기한 정인홍 의병대장 등 경상우도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투쟁한 모든 사람들을 완벽하게 무시를 하고 있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1만2천여 명의 의병들의 활동이 그대로 황석산성으로 이어진 경상우도 서부경남의 토양을 완벽하게 무시를 하였다. 경상의병도대장 김면의 휘하에서 활동했고 진주성전투에서 전사한 김시민이나 논개의 남편 최경회나 함양현감 조종도나 안음현감 곽준이나 거창현의 변흔이나 안음현 황곡리의 정유문이나 정유무, 정유영이나 김면을 지원했던 위천 사람 거창좌수 유명개 등등 그들이 목숨을 아끼지 않고 민족을 위한 투쟁에 온몸을 바쳤던 그들의 영혼을 완전히 무시를 하고 있다. 친일파 유령 같은 당신들이 제도권에서 고대광실에서 호의호식하면서 얼마나 많은 함양의 청소년들을 열등의식에 병들게 하고 긍정적인 역사관을 형성치 못하게 만들었는지 그것이 두렵다.
자신의 친일행적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근거도 뚜렷하게 행한 집필위원님 중 어떤 사람은 철저하게 일본인들의 교육을 받고 일본인이 되어 일본을 위해서 열정을 가지고 함양군사의 작성에 임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어떤 분은 식민사관에 빠져서 일본인들이 조작한 잘못된 역사적 사실을 옮기는 그자체가 식민사관적인 행동인지 민족사관적인 행동인지 구분이 안 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어떤 분은 식민사관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맹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와서 나는 아니라는 변명을 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함양군사에 당신들의 이름은 함양의 친일파로서 명확하게 기록이 되어 전국에 배포가 되어 있으니, 솔직하게 잘못을 인정하고 함양군민에게 용서를 구하고 함양군사를 회수를 하고 황석산성 전투를 조선인의 입장에서 완벽하게 밝히는 일에 앞장을 서는 길만이 속죄를 하는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다시 함양군이나 기타 신문기사에 27,000명의 왜군이 황석산성에 왔었다, 라고 기록을 한다거나 황석선성 입성인원 3,500명이라고 축소, 조작하는 기사를 내는 어리석음은 없어져야 할 것이다.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어리석은 답변이나 질문의 요지를 무시하고 동문서답하는 행위는 사라져야 함양이 함양다운 발전을 할 수 있을 것이다.
8월 15일 광복을 맞이하여
함양군민이 진정으로 광복을 하는 날은 거창과 함양, 안음현의 역동적인 황석산성의 전투 역사가 대한민국의 역사로 올바르게 정립되는 그날이 함양군민에게는 진정한 광복이요 해방의 날이 될 것이다.
함양군민의 진정한 광복과 해방을 위한 함양군사의 회수와 황석산성의 미래와 전망에 대한 답변은 함양군수님의 높은 식견과 함양을 진정으로 생각하는 수준 있는 창조적인 답변을 직접적으로 듣고 싶다.
황석역사연구소장 박선호
첫댓글 한번 왜곡된 것을 바로 잡기란 무척 힘든 이유가.
인지부조화 현상은 자기합리화에 중점을 두게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