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보탑 앞에서...>
<불국사 대웅전 앞에서...>
* 불국사 창건 *
5천년 장구한 세월동안 발전해온 우리 민족문화의 정수로 천년세월 너머 현대의 무지한 중생들에게 불국토의 장엄함과 사모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불국사.
불국사의 창건에 관한 기록으로 가장 오래된 <불국사고금창기(佛國寺古今創記)>에는 서기 528년(신라 법흥왕 15) 법흥왕의 어머니 영제부인(迎帝夫人)의 발원(發願)으로 불국사를 창건하여 574년 진흥왕의 어머니인 지소부인(只召夫人)이 절을 크게 중건하면서 비로자나부처님(毘盧자那佛)과 아미타부처님(阿彌陀佛)을 주조해 봉안했고, 670년(문무왕 10)에는 무설전(無說展)을 새로 지어 <화엄경(華嚴經)>을 강설(講說)하였으며, 그 후 751년(경덕왕 10)에 김대성(金大城)에 의하여 크게 개수되면서 탐과 석교 등도 만들었다고 하였다.
최치원의 <불국사고금창기>에 의하면 불국사 창건 당시의 이름이 "화엄불국사" 또는 "화엄법류사(華嚴法流寺)"였다. 이 이름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불국사는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 제불이 상주하는 불국정토를 이 땅에 구현하려 했던 신라인의 정신세계가 이룩한 절이다.
불국정토의 한 영역인 대웅전 앞마당에 동서로 다보탑과 석가탑이 단아하면서도 근엄한 모습으로 우뚝 서 있는데, 석가탑은 흔히 보는 석탑처럼 생겼으나 단순한 사리 봉안처가 아니며, 다보탑은 완벽한 아름다움을 갖추었으나 석조 공예미를 과시하기 위해 만든 탑이 아니다.
이 두 탑은 영산화상에서의 "석가여래상주설법(釋迦如來常住說法)"과 "다보여래상주증명(多寶如來常住證明)"의 장면을 환상적 수법으로 상징화 한 탑인 것이다.
일연 스님이 저술한 <신라국동토함산화엄종불국사사적(新羅國東吐含山華嚴宗佛國寺事蹟)>네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술되어 있다.
"경덕왕 즉위 10년 신묘, 현지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를 창건했다. 차례로 다보와 무영의 두 탑을 만들었으니, 무영탑은 석가여래께서 상주설법하시는 보배로운 장소임을 보이기 위함이며, 다보탑은 다보여래께서 상주 증명하시는 찰당(刹幢)임을 보이기 위함이었다. (중략) 이것은 완연히 옛적 말회(末會)시 영산(靈山) 종담(終談)의 묘법의궤와 같으며, 또한 서방 무량수국(無量壽國)의 분서(分序)인 구품도량과 유사하다."
이로써 불국사 무영탑과 다보탑이 석가여래와 다보여래를 상징하는 탑이라는 것이 더욱 분명해진다.
무영탑, 즉 석가탑은 놀랍게도 바위 위에 세워져 있다. 대웅전 앞마당은 축대를 높이 쌓아 올려 평탄하게 만든 곳이므로 원래부터 그 자리에 바위가 있었던 것으로 보기 어렵다.
어디에서부턴가 옮겨왔을 것으로 생각되는 바위의 표면을 '그랭이질(바위의 표면 형태에 따라 다듬어 접한 부위를 빈틈없이 맞춤)'하여 평면으로 지대석을 앉힌 위에 기단부와 탑신을 세웠다.
이런 수고를 아끼지 않은 것은 석가여래가 영산에서 설법할 때 주로 바위 위에 앉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 결과가 아닌가 추측된다.
석가탑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정사각형의 탑 둘레에 여덟 개의 연꽃문양이 배치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연화좌는 석가여래가 영축산에서 설법할 때 한량없는 부처들이 부8방에서 찾아와 석존 주위에 둘러 앉았다는 법화경 내용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상륜부의 양화 네 모서리에 있는 주악비천상과 네 변의 공양비천상도 석가탑의 상징성과 관련해서 눈여겨 볼 필요가 있는 것들이다.
다보탑은 계단 아래쪽에 현재 돌기둥만 남아 있지만 원래 난간이 있었다. 계단 위쪽 상대(上臺) 갑석(甲石) 위의 네 귀와 중앙에 각각 하나씩, 다섯 개의 기둥 사이에 얼마간의 공간이 조성되어 있으며, 그 바깥쪽에 돌사자가 한 마리가 앉아 있다. 일층 옥개석에 해당하는 얇은 석판 위에 두 줄로 된 난간이 설치되어 있고, 또 그 위에도 8각형의 난간이 둘러쳐져 있다. 그리고 버선 모양을 한 여덟 개의 기둥 8각의 석판이 올려져 있다.
지금부터 두 탑과 관련된 경전 내용을 살펴 보자. <묘법연화경> 견보탑품(見寶塔品)에,
"착하고 착하시도다 석가모니 세존이시여. 평등한 큰 지혜로 보살을 가르치는 법이며 부처를 옹호하시는 묘법연화경을 많은 중생들을 위해 설하심이 이러하시도다. 석가세존께서 하시는 말씀은 다 진실이로다."
그 때 사부의 대중은 큰 보배 탑이 머물러 있는 곳을 보았고, 탑 가운데서 나오는 음성을 듣고 모두 법의 기쁨을 얻었다. 청중들은 일찍이 없었던 터라 이상하게 생각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공경하며 합장하고 한쪽에 물러나 머물렀다. 그 때 보살마하살이 있었으니 이름은 대요설이었다. 일체 세간의 하늘 인간 아수라들이 마음에 의심하는 것을 알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인연으로 이 보탑(寶塔)이 땅에서 솟아 나와 있으며, 또 그 가운데서 음성이 나오나이까?"
이 때 석가여래는 대요살 보살에게 말했다.
"이 보탑 가운데는 여래의 전신이 계시니 저 먼 과거 동방으로 한량없는 천만 억의 아승지 세계를 지나서 나라가 있었으니라. 나라 이름은 보정(寶淨)이요, 그 곳에 부처님이 계시었으니 이름이 다보이니라. 그 부처님께서 보살도를 행할 때 큰 서원을 세우기를 '만일 내가 부처를 이루어 멸도한 후에 시방국토에서 법화경을 말하는 곳이 있으면 이 경을 듣기 위하여 나의 탑묘가 그 앞에 솟아나서 그것을 증명하고 거룩하다고 찬탄하리라'고 하였느니라."
다보여래는 동방보정세계(東方寶淨世界)의 교주이다. 다보여래는 석가모니 이전의 과거불로서, 영원히 살아 있는 본체로서의 부처인 법신불이다. 보살로 있을 때에 내가 성불하여 멸도한 뒤에 시방 세계에서 법화경을 설하는 곳에는 나의 보탑이 솟아 나와 그 설법을 증명하리라 하고 서원 했던 것이다.
과연 석가여래가 靈山에서 법화경을 설할 때 땅속에서 다보여래의 탑이 솟아났고, 그 탑 가운데서 소리가 나와 석가여래의 설법이 참이라고 증명하였던 것이다.
다보탑의 모양에 대해서 <묘법연화경>은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이때 부처님 앞에는 칠보의 탑이 있었는데, 그 높이가 5백유순이며 사방 길이가 2백5십유순이었다.
땅에서 솟아나서 공중에 머물고 있으며 가지가지의 보물로 장엄하였으니 5천의 난간과 천만이나 되는 방과 수없는 당번(幢幡)으로 장하게 꾸미었으며, 보배 영락을 드리우고 탑 위에는 만억의 보배 방울을 달았으며, 사면에서는 다마라발전단의 향기가 세계에 두루 차고 그 여러 번개(幡盖)는 금, 은, 유리, 자거, 마뇌, 진주, 매괴 등의 일곱 가지 보배로 이루어져 그 높이는 사천왕의 궁궐까지 이르렀다."
<석가탑 앞에서...>
<석가탑과 대웅전>
<석가탑과 다보탑 앞에서...>
<무설전으로 들어가는 곳>
<무설전>
<관음전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불국사 좌경루를 내려다 보면서...>
<관음전에서...>
continued....
첫댓글 불국사와 토함산 그리고 토함산에 있는 석굴암은 우리가 죽기전에 꼭 보아야 할 세계문화유산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