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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한상원목사
PW : 믿음 BIW : 드리라 AG : 성도
TS : 믿음이란 처음 가진 마음을 끝까지 잘 간직하며 교회를 위해서 헌신하는 것이다.
교황의 운전
교황이 운전기사가 모는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날씨도 좋고 뻥 뚫린 도로를 질주하다 보니 웬지 교황님도 운전을 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교황님은 극구 안 된다고 하는 운전기사의 만류를 뿌리치고, 운전대를 잡게 되었습니다.
누구나 화창한 날씨에 쭉 뻗어 있는 고속도로 위를 신나게 달리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교황도 모처럼의 젊은 기분으로 돌아가서 그 동안 쌓인 스트레스도 풀겸, 점점 속력이 올라갔습니다.
최고 속도로 달렸습니다.
그러자 뒤에서 경찰차가 “삐용삐용”하면서 따라붙는 것입니다.
결국 교황님은 차를 세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경찰이 다가와서는,
“과속하셨습니다. 창문 좀 내려 보시지요.”
교황이라고 어쩔 수 있나요. 차에서 내렸습니다.
그러자 교황을 본 경찰이 흠칫 놀라면서 본부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과속차량을 붙잡았는데, 딱지를 끊기가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왜? 뭐 높은 사람이라도 탔어?”
“예. 꽤 높습니다.”
“시의원이라도 되냐?”
‘아니요. 더 높습니다.“
“그럼 뭐 국회의원이라도 된다는 거야?”
“아니요. 더 높습니다.”
“아니 그럼 대통령이라도 된다는 거야. 뭐야?”
“교황님이 운전기사인걸 보니 아무래도 하나님 같습니다.”
교황이 운전을 잘못함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더렵혀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 성도님들은 안전 운행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안전 운행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안전 운행하는 운전을 지켜주십니다.
P4.
누구든지 처음으로 무언가를 해야 할 때는 무척이나 긴장하고 떨리고 두렵고 무섭기만 하다.
잘해 낼 수 있을까?
일을 하다가 잘못하게 되면 어쩌나?
아론과 아들들은 너무나 존귀하신 하나님께 제사드리다가 잘못하게 되면 하나님의 징계와 심판을 받을지도 모르는데, 과연 잘해 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 근심이 떠나질 않는다.
이제라도 못하겠다고, 이제라도 포기하고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말해야 하는 거 아닌가.
다른 사람을 제사장으로 세우면 안 되느냐고 정중하게 말씀 올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온갖 생각들, 마음들이 교차한다.
아론은 80세가 훨씬 넘은 노인이다.
그야말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꺾은 사람이다.
아론은 모세와 함께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출애굽을 단행했던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이제 막상 대제사장이라는 막중한 대업을 맡았을 때, 두렵지 않을 수 없다.
아론의 아들들도 아버지와 삼촌을 옆에서 도와드리면서 백성들을 이끌고 출애굽하는데 앞장섰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막상 제사장이라는 직임을 받았을 때 찾아오는 위압감, 중압감은 말로 다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이 오고 가는 것이다.
대제사장으로 위임받은 아론과 일반 제사장으로 세움을 입은 아론의 아들들은 이제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제사드리는 사역을 감당해야 하는데, 어떻게 감당하게 될까?
하나님은 제사장들에게 어떻게 첫 번째 사역을 감당하도록 하시는 것일까?
D4.
① 첫 제사장직임을 감당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시는 하나님.
대제사장 위임식을 1주일 동안 거행하게 된다.
1주일 동안의 위임식이 끝나고 제8일이 되는 날에 모세는 대제사장과 제사장들과 백성들의 장로들을 회막에 불러 모은다.
모세는 2절에서 아론 대제사장에게 “속죄제를 위하여 흠 없는 송아지를 가져오고 번제를 위하여 흠 없는 숫양을 여호와 앞에 가져다 드리라.”라고 말한다.
또 모세는 아론에게 이스라엘 자손에게 “너희는 속죄제를 위하여 숫염소를 가져오고 또 번제를 위하여 일 년 되고 흠 없는 송아지와 어린 양을 가져오고, 또 화목제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드릴 수소와 숫양을 가져오고 또 기름 섞은 소제물을 가져오라.”라고 말하라고 한다.
아론 대제사장은 모세를 통해서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제물들을 준비하고, 백성들도 제물을 준비하게 한다.
모세는 아론 대제사장에게 “너는 제단에 나아가 네 속죄제와 네 번제를 드려서 너를 위하여,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고 또 백성의 예물을 드려서 그들을 위하여 속죄하되 여호와의 명령대로 하라.”라고 하면서 자신과 백성들을 위하여 속죄제, 번제를 드리라고 한다.
이제는 대제사장으로서의 사역을 수행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에 아론은 자기 자신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수송아지를 잡고 속죄제를 드린다.
번제를 위하여 숫양을 잡고 번제의 규례에 따라서 번제를 드린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숫염소를 잡고 속죄제를 드린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수송아지와 숫양으로 번제를 드린다.
백성들을 위하여 수소와 숫양으로 화목제를 드린다.
제사 하나도 드리기가 쉽지 않은데, 하루 사이에 여러 차례 제사를 드린다.
두 번에 걸친 속죄제와 번제를 드린다.
그리고 화목제를 드린다.
제물들도 여러 차례에 걸쳐서 잡아야만 제사를 드릴 수 있다.
난생 처음으로 제사장의 직분을 받고 하나님께 제사를 올려드리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위하여 제사를 올려드리기도 하고, 백성들을 위하여 제사를 올려드리기도 한다.
아론이나 아론의 아들들은 처음으로 드리는 제사들이기 때문에 매우 긴장되고 두렵고 무섭고 떨리는 마음으로 제사 하나 하나에 온 신경을 집중하여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제사를 올려드리는 것이다.
처음으로 목회자로 세움을 입고 예배를 집례하고 설교를 할 때 얼마나 긴장되겠는가.
장로님으로 임직하여 강단에 올라가서 처음으로 대표기도를 해야 할 때 얼마나 긴장되고 두렵겠는가.
기도문을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종이에 써서 몇 차례 읽으면서 기도를 준비했는데, 막상 강단에 올라가서 기도문을 읽으려고 하면 글자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하얀 것은 종이요 까만 것은 글처럼 보이는데 무엇이라 썼는지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여름에는 에어컨도 키고 선풍기도 돌리는데, 에어컨 바람, 선풍기 바람에 기도문 원고가 홀라당 날아가 버리기라도 한다면 얼마나 난처하겠는가.
무엇이든지 처음 해야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긴장되고 무섭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면서 겨우겨우 해내는 것이다.
그러나 한 번 하고 두 번 하고 계속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일에 익숙해지면서 잘 해낼 수 있다.
② 백성들을 위하여 축복하게 하시는 하나님.
아론 대제사장은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속죄제와 번제와 화목제를 드린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축복한다.
22절에서 “아론이 백성을 향하여 손을 들어 축복함으로 속죄제와 번제와 화목제를 마치고 내려오니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대제사장은 머리에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관을 쓰고 있기 때문에 손을 하나님 위로 올라갈 수 없다는 의미로 가슴 앞까지 손을 올리고 축복한다.
일반 제사장은 대제사장이 쓰는 관을 쓰지 않기 때문에 두 손을 머리 위로 높이 올려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이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면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고 그 축복을 성취하게 하신다.
이들은 무엇이라고 백성들을 향하여 축복해 주었을까?
민수기 6;22-27의 말씀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대제사장인 아론과 아들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라고 축복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축복하시겠다는 말씀을 전하라고 하신다.
이 말씀에 근거하여 대제사장인 아론과 일반 제사장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축복하는 것이다.
아론과 아들들의 입으로 축복하는 것이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축복을 책임지시겠다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하란에서 머물고 있는 아브람을 75세에 불러내시면서 창세기 12;1-3에서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라고 말씀하시면서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으로 세워주신다.
하나님의 신령한 복은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을 통해서 주어진다는 말씀이다.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을 향하여 저주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도리어 그 사람을 저주할 것이고,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을 향하여 축복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축복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어디를 가든지 그 집의 평안을 빌어주라고 하신다.
제자들이 어느 집이든 평안을 빌었을 때, 그 집이 빌어준 그 평안을 받을 만한 집이면 그 집에 평안이 임할 것이고, 만약에 그 집에 평안을 받을 만한 무언가가 없다면 그 빌어준 평안은 그 평안을 빌어준 제자들에게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러기에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사람, 하나님께 예배하는 사람,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신령한 복을 빌어줄 수 있는 복의 주인공이요 복의 원천이요 복의 중심이요 복의 통로가 되는 것이다.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신앙의 사람이나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신앙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신령한 축복을 선포하는 믿음의 사람들이다.
그러기에 우리 신앙인들도 삼위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축복을 선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가족들, 주변에 있는 지인들, 성도들 뿐만 아니라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도, 선교사들이 사역하는 그 선교지에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③ 영광중에 임재 하시는 하나님.
모세는 제사장들과 백성들에게 “오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나타나실 것임이니라.”라고 거듭거듭 말씀하신다.
아론과 아론의 아들들이 제사장으로 위임을 받고 처음으로 올려드리는 제사를 받으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제사를 올려드리는 바로 그 성막 지성소에 영광으로 임재하시느냐 하지 않느냐 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일이다.
하나님께서 제사를 받으시면 임재하실 것이고, 하나님께서 제사를 못마땅하게 여기면 임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23-24절에서 “모세와 아론이 회막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백성에게 축복하매 여호와의 영광이 온 백성에게 나타나며,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제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사른지라. 온 백성이 이를 보고 소리 지르며 엎드렸더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아론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이 처음으로 올려드리는 속죄제, 번제, 화목제에 하늘 아버지께서 영광으로 임재하시고, 그 제사를 받으시고 흠양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고 제사를 받으신다는 것은 제사장들이 올려드리는 제사를 인정하신다는 의미이다.
그러기 때문에 아론이나 아들들에게 이젠 더 이상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거나 염려하지 않아도, 근심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를 올려드리는 민족으로 세우기 위하여 430년 동안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 내시고,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표하여 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드리는 제사를 받으시고 흠양 하시기 위하여 영광으로 나타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드리는 제사를 흠양 하시기 위하여 임재 하시는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이 올려드리는 예배를 받으시기 위하여 교회에, 가정에, 우리 영혼과 마음과 심장에 찾아오시고 영광으로 임재하신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들이 예배드리는 이 처소에, 우리 교회에 성령 하나님으로 임재하시고 모든 예배와 영광과 찬양과 예물을 받으신다.
임재하신 하나님은 우리들 각자의 마음과 영혼과 가정과 생업 터전에 임재하시고 감동을 주시면서 은혜와 능력을 베풀어주신다.
우리 신앙인들이 현실에서 살아가면서 가지고 있는 온갖 질병과 문제와 아픔과 슬픔과 고통을 싸 메여 주시고 치료해 주시고, 해결의 길을 열어주시고, 도움의 손길을 붙여주신다.
L4 & B4.
원희룡 전 제주도지사가 계시는데, 제주도 중문의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1982년 대학입시 학력고사에서 전국 수석을 하고, 서울대학교 수석 입학, 수석 졸업, 사법고시 수석을 했던 사람이다.
검사와 3선의 국회의원과 두 번의 제주도 도지사를 걸치면서 사법부, 입법부, 행정부를 두루 걸친 정치인이다.
원희룡는 안수집사님이시다.
아버지가 제주 중문교회에서 장로님으로 신실하게 신앙생활 하셨고, 자식들에게 세상의 모든 것들은 다 용납하고 허락할 수 있지만, 하나님을 떠나는 것만은 용납할 수 없다고 가르치셨다고 한다.
절대로 하나님만큼은 떠나지 말라고 가르치셨다고 한다.
2014년에 원희룡 집사님이 제주도 도지사가 되었을 때 있었던 일이다.
제주도는 육지와 많이 떨어졌고 바다에서 어부 생활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자연재해 때문에 죽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조선시대 때부터 해마다 제주 목사가 한라산에서 산신제를 지냈다.
조선시대에는 제주도에는 목사라는 일종의 도지사와 같은 행정관이 있었다.
대대로 제주 목사가 집례하는 산신제를 지내는 곳이기 때문에 제주도 도의회에서 조례를 만들면서 산신제를 드릴 때에는 도지사가 모든 제사를 관장하는 제관이 되도록 하는 조례를 만들었다.
그래서 원희룡 집사님은 도지사이기 때문에 산신제를 주관하는 제관이 되어야 하는 형편이 된 것이다.
이 문제를 가지고 심각하게 고민하고 기도하고 주변에 있는 분들과 논의해 보았지만,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아버지 장로님과 중문교회 담임목사님과 의논했더니 단호하게 제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원희룡 도지사는 결심을 하고 산신제를 준비하는 도의회 의원들에게 도지사 대신에 부지사가 제관이 되어 산신제를 드리게 될 것이라고 통고하게 된다.
그러자 난리가 난 것이다.
도지사가 제주도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 제주도 전통을 말아먹는다, 제관이 될 수 없으면 도지사도 하지 말라 등등 온갖 말로 도지사를 공격하는 것이다.
그때 원희룡 도지사는 단호하게 “우리 아버지가 죽을병에 걸렸을 때 예수님을 믿고 살아난 거 다 아시잖냐. 아버지가 다른 것들은 다 용서해도 신앙만큼은 지켜달라고 하는 거 아시잖냐. 십계명에서 금지시킨 것을 내가 어떻게 할 수 있겠냐. 정말로 내가 제관이 될 수 없어서 도지사가 될 수 없다면 도지사 안 하면 될 거 아니냐.”라고 했다.
이런 일이 있고 난 다음부터는 다시는 산신제를 드릴 때 원희룡 도지사는 제관을 안 한다는 것이 공식처럼 되어 자유롭게 되어서 훌륭하게 두 번에 걸쳐서 도지사직을 잘 수행했다고 한다.
무엇이든지 처음 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처음에 잘 이겨내고 나면 그다음부터는 너무나 쉽고 평안하게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사명을 맡은 자로서 우리 신앙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저가 1986년에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 입학하여 교육전도사로서 교회에서 처음으로 설교하게 되었을 때를 생각해 보면 너무나 두렵고 떨렸던 기억이 새롭다.
총신 신대원에서 3년의 신학공부를 마치고 신대원을 졸업하고 정선제일교회에 전도사로 부임하여 설교할 때도 무척이나 두려워서 떨었던 기억이 있다.
정선제일교회에서 강도사가 되고, 목사로 임직하여 처음으로 설교하던 때를 생각해 보면 무슨 정신으로 설교하고 축도까지 했던가 싶다.
어쩌면 목사가 된 지 30년이 훌쩍 지난 지금, 이젠 강단에서 설교하는 것도 이골이 날 정도인데도, 지금도 어쩌다가 다른 교회에 가서 설교할 때가 있을 때는 왠지 모르게 두렵고 무섭기만 하다.
뭐든지 처음에 하는 일에는 온갖 근심 걱정, 두려움, 무서움이라는 감정이 밀려오게 마련이다.
어떤 사람은 너무나 긴장이 되어 밤잠을 설쳐서 한잠도 못 자기도 하고, 밥을 먹지도 못하기도 하고, 온 신경이 예민해지는 사람들도 있다.
사명자가 걸어가야 하는 길은 정말로 험난하고도 힘들고 어려운 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야만 하는 십자가의 길이다.
아무리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길이 사명자의 길이다.
그러기에 우리 신앙인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예배자로, 주님의 복음을 맡은 사명자로 살아야 한다.
① 초심견인 하는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끝까지 붙들고 살아야 한다.
첫 번째 예배드리던 그 예배자의 마음을 사탄과 어둠의 세력에게 빼앗기지 말고 끝까지 믿음으로 붙들고 살아야 한다.
신학교 1학년의 마음이 다르고, 2학년의 마음이 다르고, 3학년의 때의 마음이 다르고 졸업하여 강도사가 되었을 때의 마음이 다르고, 목사로 임직하여 부목사가 되고, 담임목사가 되었을 마음이 다르고, 큰 교회의 당회장이 되고 노회장이 되었을 때의 마음이 달라서는 안 되는 것이다.
처음에 가졌던 그 순수하고 순결한 마음을 한결같이 가지고 끝까지 믿음의 경주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첫 사명자의 마음을 잃어버리지 말고 끝까지 믿음으로 붙들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2;4-5에서 하나님은 에베소교회를 향하여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라고 경고하신다.
주님을 향한 첫사랑과 믿음을 어둠의 세력에게 빼앗기지 말고, 항상 영적으로 깨어서 믿음의 경주자가 되어야 한다.
② 충성이라는 트레이드 마크를 달고 살아야 한다.
믿음의 영웅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처럼 사명자가 걸어가야 할 길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귀한 복음의 사명에 충성하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2;10에서 하나님의 사자가 서머나교회 성도들에게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라고 말씀하신다.
사명자의 삶을 살아가면서 충성하며 살아갈 때 말로 뭐라 형언할 수 없는 온갖 다양한 일들이 쉴 틈을 주지 않고 밀려온다.
겨우겨우 한고비 넘기고 이젠 됐다 싶으면 또 다른 무언가가 쉴 틈을 주지 않고 비집고 들어온다.
마치 바다에서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처럼 끊임없이 무언가가 밀려온다.
파도는 바람이 불면 불수록 더 세찬 파도가 밀려온다.
어떤 것들은 예상하는 문제들도 있지만, 전혀 예기치 않은 상상 밖의 어떤 문제들도 밀려오기도 한다.
그러면서 낙심하게 만들고, 좌절하게 만들고, 주저앉게 만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사명자의 길,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신앙인들은 끝까지 믿음 하나 붙들고 충성하며 가는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뚜벅뚜벅 걸어가는 사람이다.
세찬 파도가 밀려오면 올수록 바다는 살아 있다는 증거요 좋지 않은 바다의 환경을 바꾸면서 더 좋은 것들로 채워진다.
고난과 역경과 시련의 물결이 세차게 불어오면 올수록 하나님은 우리 신앙인들의 신앙, 믿음을 더욱더 견고하고 튼튼하게 세워가고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를 베풀어주신다.
그러기에 믿음의 사람은 칠전팔기(七顚八起)의 의지로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서서 뚜벅뚜벅 걸어가는 사명자의 길,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충성된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③ 축복의 주인공, 통로, 근원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저는 목사가 된 지 30년이 훨씬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격과 신앙이 덜 성숙한 사람이구나. 라고 생각할 때가 아주 많다.
왜냐하면 나에게 싫은 일을 한 사람을 향하여 진심으로 축복 기도해 주기보다는 저주 비슷한 것을 할 때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원수까지도 주님의 십자가 보혈로 사랑하고 섬기라고 하셨는데도 한상원이라는 인간은 덜 성숙하여 저주할 때가 종종 있다.
그렇지만 이제는 조금 더 성숙한 사람이 되어 저주하는 소리보다는 축복하는 소리, 미워하는 마음보다는 사랑하고 섬기는 마음을 좀 더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론과 아론의 아들들에게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제사장의 직임을 위임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 신앙인들에게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하고 축복하고 섬기고 도와드리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신앙인들 때문에 누군가의 입에서 하나님께 은혜받았노라고, 하나님의 넘치는 축복을 받았노라고 고백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고 좋은 일이겠는가.
그 은혜와 축복이 흐르고 흘러서 또 누군가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흘러간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하나님의 사명을 맡은 자에게서 축복의 물결이, 축복의 파도가 넘실거릴 수 있다면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의 역사는 물결치면서 온 세상으로 퍼져나갈 것이다.
하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이 땅에서도 하늘의 뜻이 이루어지는 날이 다가올 것이다.
여러 분야에서 직장이 되었든, 사역장이 되었든 어떤 곳이 되었든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고 처음에 가졌던 마음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상황의 변화에 따라서 이리저리 흔들리지 말고 끝까지 믿음의 견고한 심지로 굳게 세워서 초심견인하는 마음의 자세로 하나님 앞에서 충성하며 헌신하는 신앙인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사람 바라보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올곧은 신앙인의 길을 굿굿하게 걸어갈 수 있는 신앙인의 삶을 걸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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