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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12월 10일 발간과 동시에 아마존 베스트 1위에 진입해 전 세계 독서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도서가 있었습니다. 그 도서는, 일본의 “이케다 가요코”의 저서 “세계가 만일 100명의 마을이라면”입니다. 이 도서를 보면, “세계에는 63억의 사람이 살고 있는데, 이것을 100명이 사는 마을로 축소시킨다면 마음과 같은 수치로 환산이 됩니다. 100명 중 52명은 여자고 48명은 남자입니다. 30명은 아이들이고 70명은 어른입니다. 그 중 7명은 노인입니다. 70명은 유색인종이고 30명은 백인종입니다. 33명은 기독교, 19명은 이슬람교, 13명은 힌두교, 6명은 불교, 24명은 무교입니다. 100명 중 20명은 영양실조이고, 그 중 1명은 굶어 죽기 직전입니다. 15명은 비만입니다. 75명은 먹을 양식과 집이 있지만 25명은 그러지 못합니다. 은행에 예금이 있고 지갑에 돈이 들어 있고 집안 어딘가에 잔돈이 굴러다니는 사람은 가장 부유한 8명 안에 드는 한 사람입니다. 자동차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제일 부자인 7명 중 한 사람입니다. 100명 중 1명은 대학교육을 받았고, 2명은 컴퓨터가 있습니다. 그러나 14명은 글도 못 읽습니다.”라고 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얼마나 풍족한 상황에서 살고 있는지를 생각했습니다. 때로는 내 자신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기도 하지만, 이 책을 읽고나면, 세계인들과 비교했을 때, 내가 얼마나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생활하며, 좋은 교육을 받고 자랐다는 것을 생각하며, 내가 정말 복된 사람임을 알게 됩니다. 여러분, 성도된 우리는 분명 복된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서,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영원토록 살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축복을 느끼지 못하고 산다면,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 고통이고, 고난이며, 불행입니다. 본문에서 하나님께선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넌다는 것은, 이스라엘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새로운 역사는 생각 없이, 철학 없이 시작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성도된 우리는 요단강 도하 사건이,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기적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출애굽 당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홍해를 가르신 것처럼, 이번에는 요단의 물을 멈추게 하셨습니다. 요단강은 그 유속이 매우 빨라, 배로 강을 건널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인간적인 방법으로 요단강을 건넌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요단을 건넌 것은, “하나님이 행하심”으로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성도된 우리역시, 이러한 믿음을 가질 때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신앙생활을 하며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될 것입니다. 요단강을 건너는 기적의 핵심은, 요단강 한가운데 하나님의 언약계가 굳게 서 있었다는 겁니다. 이로 인해, 요단강을 건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기적을 통해,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었고,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회복하였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본문의 이스라엘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넘치는 은혜의 축복을 기억하며, 그 축복이 이번 주간에도 성도된 우리에게 함께 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8절을 보시면, “너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요단 물 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 하라”라고 합니다. 큰 은혜를 받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은혜의 깊은 물로 들어가야 합니다.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통해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너희가 요단 물 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고 합니다. 하지만, 제사장들이 들어가라고 명령받은, 요단강은 “잔잔한 쉴 만한 물가”가 아닙니다. 요단강은 우기 때는 강물이 둑까지 가득차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범람하는 요단강으로 들어가라고,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겁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논리적인 이해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불가능한 말씀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순종했습니다. 그러자, 본문 이하의 15 - 16절을 보시면, 그들의 발이 요단 강물에 잠기자 흘러내리던 물이 멈췄다고 합니다. 즉, 물이 그치고 사람들이 건널 수 있도록 강 바닥이 “마른 땅”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참으로 놀랍지 않습니까? 어떻게, 사람이 강물을 밟자 흐르는 물이 끊기고 강바닥이 마른 땅처럼 될 수 있습니까? 이것이 바로, 성도된 우리의 믿음과 순종의 비밀입니다. 이를 볼 때, 우리의 믿음과 순종의 깊이가 깊으면 깊을수록 하나님의 더 큰 은혜와 축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더 큰 은혜를 체험하려면, “얄은 물”에서 머물 것이 아니라, “은혜의 깊은 물”로 나가야 합니다. 게네사렛 호숫가에서 고기 잡던 베드로가 어떠했습니까? 밤새 수고하여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했지만 눅 5: 4을 보시면,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았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의 더 큰 은혜를 받으려면, 믿음과 순종의 깊이를 더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불만불평을 앞세우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오직, 순종으로 나가며, 도전으로 나가는 자만,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히 11: 1절을 보시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합니다. 여러분, 성도된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서는 겁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합리적인 생각에 기초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믿음을 자꾸,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만 이해하려 하기에, 큰 낭패와 시험에 부딪히게 됩니다. 창세기에서 전하는,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를 지으셨다는 것은, 우리의 논리와 사변적으로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또한 동정녀 탄생이나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역시, 이성적으로 과학적으로 설명을 하려해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된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 위에 서는 겁니다.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과 물질을 초월한 창조주이시기에,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매사에 부정적인 것은, 참된 믿음의 자세가 아닙니다. 내 힘과 내 생각에만 의존하여 할 수 없을 것 같으면 포기하고, 낙심하는 것 역시, 믿음이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 앞에 시련과 역경이 놓여 있습니까? 모든 두려움을 떨쳐 버리고 “은혜의 깊은 물”로 나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10절을 보시면, “또 말하되 살아 계신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에 계시사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히위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너희 앞에서 반드시 쫓아내실 줄을 이것으로서 너희가 알리라”고 합니다.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본문에서 여호수아는 “살아 계신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에 계시사”라고 합니다. 여호수아가 본문에서, 하나님을 “살아 계신 하나님”이라고 언급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처한 상황에 함께하심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심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광야 교회”라 불리는 광야의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임재하신 것으로, 오늘날에는 주의 성전된 성도인 우리와 우리가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교회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으로서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교회에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역사가 계속되고 있으며,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를 성도된 우리가 경험할 때, 우리는 본문의 여호수아 고백과 같이, 우리의 마음과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세상에 선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은 결코, 사변의 신도 아니며, 철학에서의 신이 아닙니다. 또, 형상만 있는 죽은 신도 아닙니다.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시는 “살아계시며 전능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러기에, 히브리서 기록자는 히 13: 8에서 고백하기를,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기에,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우리를 세상에 그대로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서나 항상 우리와 동행하시며, 하나님의 눈은 항상 우리를 향해 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민 6: 24 - 26에서,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사도바울은 롬 8: 31에서,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라고 하며, 이어 35절에서는,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라며, 강한 어조로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고백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성도로서 살아감에 있어서, 언제나 기쁘고, 형통한 길을 가지만은 않습니다. 때로는, 가시밭길도 가고, 본문의 이스라엘처럼, 우리의 능력으로는 건널 수 없는 홍해도 만나고, 요단강도 만나게 됩니다. 그 속에서, 우리가 해 왔던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고, 모래 탑이 무너지는 일들을 무수히 경험하게 됩니다. 이때, 여러분은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행하시겠습니까? 다윗은 하나님께 이스라엘의 제 2대 왕으로 선택받은 후, 그의 평생에 있어서, 대부분은 벼랑 끝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를 따르는 600명과 함께, 사울 왕에게 쫓기며, 사울 왕의 포위망에 쌓여 사면초가의 상황을 여러 번 맞이하였습니다. 이럴 때, 다윗의 고백과 그 중심에 무엇이 있었습니까? 시 23: 4을 보시면,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살아계신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러기에, 본문 16절을 보시면,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사르단에 가까운 매우 멀리 있는 아담 성읍 변두리에 일어나 한 곳에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새”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된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든 조금도 희망을 잃지 말고, 살아계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심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하심과 축복 가운데 거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17절을 보시면,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그 모든 백성이 요단을 건너기를 마칠 때까지 모든 이스라엘은 그 마른 땅으로 건너갔더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심지가 견고한 성도를 평강으로 인도하십니다.
본문은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자, 위에서 힘차게 흘러오던 요단 강물의 흐름이 끊겼다고 합니다. 더욱이 요단 강물에 젖어있던 강바닥이 단단하게 마른 땅이 됨으로, 이스라엘과 목축과 수레가 요단강을 건넜다고 합니다. 이것은, 이들의 조상인, 광야 1세대들이 홍해를 건넜던 것과 아주 똑같습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본문의 사건을 “홍해도하 사건의 복사본”이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을 우리의 사변 속에 가두는 신성 모독입니다. 이스라엘은 힘차게 흐르던 요단 강물이 위에서 수벽을 이루어 멈춘 놀라운 기적을 목격하며,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요단강을 건너는 이스라엘의 행렬은, 사람 뿐만 아니라, 목축과 수레까지였기에, 그 끝을 헤아릴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행렬이 얼마이든 또, 몇 시간이 걸리든, 그들 모두는 안전하게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그들이 다 건너고, 요단강 중앙에서 언약궤를 메고 있던 제사장들이 육지로 올라오자, 수벽을 이루었던 요단 강물이 다시 힘차게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언약궤를 메고 요단강 중앙에 있던 제사장들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자세가 어떠했습니까? 본문을 다시 보시면,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라고 합니다. 그들은, 현실적인 요단강물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원망이나 불평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직, 여호수아를 통해 전해 받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자세로, 굳굳하게 서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이들 제사장들과 같이, 하나님 앞에 우리의 심지를 견고하게 해야 합니다. 사 26: 3 - 4을 보시면,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신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라고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 앞에 굳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려움을 겪는다 해도, 우리가 환난 속에 있다 해도, 믿음으로 우리의 팔을 하나님께 들어야 합니다. 그럴 때, 살아계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능력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두려움과 걱정과 근심을 주는 현실에 흔들리지 말고, 심지가 견고한 믿음 안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경험하심으로,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 가운데 거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