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소구 31과 묵상
(성경소구)
■ 루카 5,33-39 단식 논쟁 - 새것과 헌것
33 그러자 그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요한의 제자들은 자주 단식하며 기도를 하고 바리사이의 제자들도 그렇게 하는데,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기만 하는군요.”
3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단식을 할 수야 없지 않으냐?
35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36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또 비유를 말씀하셨다. “아무도 새 옷에서 조각을 찢어 내어 헌 옷에 대고 꿰매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만 아니라, 새 옷에서 찢어 낸 조각이 헌 옷에 어울리지도 않을 것이다.
37 또한 아무도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는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된다.
38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39 묵은 포도주를 마시던 사람은 새 포도주를 원하지 않는다. 사실 그런 사람은 ‘묵은 것이 좋다.’고 말한다.”
(묵상)
주제 : 판단하지 않고 단죄하지 않는 자유
우리는 세상에 살면서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일이 많습니다. 이렇게 말할 때 판단(判斷)이라는 말의 뜻은 상대방을 '좋지 않게 본다'는 뜻이기가 쉽습니다. 우리가 좋게 본다고 할 때는 판단이라는 표현보다는 칭찬이라고 쓸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심판하면, 나에게 남는 결과는 무엇이겠습니까? 여러 가지로 그 내용을 말할 수는 있지만, 사실 실제로 행동하기 전까지는 결과를 알기는 어렵습니다.
바오로사도는 자신은 판단하지 않는다고 썼습니다. 또한, 다른 사람의 판단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 말은 자신감이 있게 살았다는 표현이겠지만, 바오로사도가 그렇게 드러낼 수 있던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이겠습니까?
이렇게 질문하면 듣는 사람마다 대답이 다를 수 있지만, 세상의 부귀영화를 목표로 삼지 않았던 바오로사도에게서 배울 삶의 자세는 만사(萬事)의 시작을 하느님에게 둔 자세라고 해석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하느님을 삶의 중심에 둔다고 해서 세상의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없어지는 일도 아닙니다. 다르게 말할 수 있다면, 하느님의 힘으로 세상의 요소들이 나에게 영향을 끼치는 정도를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얼마나 달라지겠습니까? 무엇을 얼마나 다르게 보겠습니까? 다른 사람이 대답해 줄 내용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아는 내용도 아닙니다. 하느님의 힘이 그에게 영향을 주고, 그가 다른 삶의 자세로 자기에게 다가온 일을 해석하는 차이뿐입니다. 그렇게 삶의 자세를 다르게 가진 바오로사도는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대하면서 ‘그는 죽어야 할 사람’이라거나, ‘내가 상종하지 못할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향하여 그렇게 말할 수 있다면, 그 사람도 나를 향해서 그렇게 말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런 정도까지 생각한다면, 우리는 좀 더 마음의 여유와 삶의 여유를 드러낼 수 있을 것이며 다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나의 미래의 삶에 어떤 일이 생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어떤 일이 생기든지, 내가 감당하는 준비는 필요합니다. 그것이 사람이 지녀야 하는 기본적인 습성이고 자세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