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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예배의 본질
시편 50편
1.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명령(1-6)
① 심판하시기 위해 출현하시는 하나님의 모습(1-3)
하나님의 심판은 동서의 모든 백성에게 포함된다.
② 소송에 참여한 자들의 모습(4-6)
하나님의 판단은 성도
하나님이 심판장
2. 형식적인 예배참석자에 대한 책망(7-15)
하나님의 하나님 됨을 깨달으라
종교적인 형식에 충실
외적인 형식에 너무 치중하며, 열심을 내었다.
그러나 그 고기가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이 그것을 먹겠느냐?고 반문하고 있다.
하나님은 마음을 보심(14-15)
감사의 제사
서원 - 하나님과의 약속이행
환난날에 부를 피난처라는 믿음
3. 윤리적 죄에 대한 고발(16-21)
율례를 전하며, 언약을 내 입에 두고 = 종교적인 형식과 믿음을 가졌다고 말을 하지만
내 말을 미워하고
도적과 연합하며, 간음하고, 입에는 악과 궤사,
친구와 형제들을 미워함
하나님이 잠잠하신 것이 너를 용납하신 것이 아님을 기억하라
4. 진정한 예배생활(22-23) 외식을 버리고
회개를 촉구(22)
자발적인 감사의 제사(23)
옳은 행실(23)
감사로 제사드리라
성경본문 : 시편 50: 22-23
22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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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 교회 이중표(李重表)목사는 담관암 수술을 14시간에 걸쳐 받고 난 후 깨달은 사실을 간증하였습니다. 병들면 먼저 떠남의 신비를 배운다는 것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누구나 사람, 물질, 명예, 소유를 떠납니다. 애인도 떠나고 심지어 가족도 떠납니다. 다 떠나게 됩니다. 저들이 떠나는 것을 내 눈으로 보면 병든 인간의 비참함을 슬퍼하고 절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자기가 먼저 떠나면 떠남의 신비를 체험케 됩니다."
그들이 나를 떠나기 전에 내가 먼저 세상의 모든 것을 떠나면 오히려 기쁨과 평안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이중표 목사는 전라도 시골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예수를 영접한 후 인생이 달라졌다고 회고합니다. 기독교장로회에서 가장 큰 교회를 이룩했고 유명한 설교가요, 목회자로 인정받았습니다.
또한 '별세의 목회' 라는 목회철학으로 많은 목회자들에게 영향력을 주었습니다. 그는 젊어서 성자가 되고 싶어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목사가 되고 보니 성자가 될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목사에게도 하고 싶은 일, 이루고 싶은 욕망이 너무 많아 억제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죽음을 앞에 놓고 나니 성자가 되는 길이 보였답니다. 죽음을 맞는 사람은 성자가 될 수 있습니다. 왜냐면 모든 것을 떠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강조합니다. "흔히 죽음은 하나님의 저주요, 심판의 결과라고 합니다.
죽음을 가져오는 것이 사탄의 사자요, 죽음을 지배하는 것은 악의 세력이라고 여깁니다. 사람들은 죽음을 인생의 끝이요 종말로 생각하며 두려워합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나를 동정했습니다. 65세의 나이에 죽는 것은 너무 이르다고 아쉬워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미 살아온 날들이 행복했고 앞으로 더 사는 것에 자신이 없습니다. 도리어 죽음의 행복을 꿈꾸었습니다. 생각하면 죽음도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나를 데려가시는 그 순간이 가장 적당한 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축복보다 더 좋은 것이 죽복(죽음의 행복)입니다. 죽음도 행복이며 죽음 앞에서 감사를 고백해야 합니다." 이 목사는 2005년 7월 67세의 나이로 소천하면서 각막을 기증해 두 명의 시각장애인에게 빛을 전했습니다.
왜 불안합니까?
왜 두려워합니까? 세상에 대한 집착이 너무 강하기 때문입니다.
왜 불평합니까? 왜 불행하다고 생각합니까?
세상에 대한 욕심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내가 먼저 떠나면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마음에 평안을 느끼게 됩니다. 그때서야 모든 것이 감사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것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본문 23절입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여기의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 는 감사의 제물을 드린다는 의미보다 찬양으로 제사를 드린다는 뜻이 더 강합니다.
즉 억지가 아닌 기쁨, 찬양의 감격이 있는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입니다. 예배 가운데 감사가 빠져 있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음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감사의 제사를 드리면,
첫째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자동차 왕이라 불리는 헨리 포드(Henry Ford)가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을 방문하여 고아원을 찾은 적이 있었습니다. 원장은 원아들을 위해 강당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고아들을 측은히 여긴 포드는 강당을 짓는데 필요한 2천 파운드를 기부하기로 약정하였습니다.
다음날 신문에 헨리 포드의 기증소식이 머릿기사로 실렸습니다. '헨리 포드 회장이 고아원을 위해 2만 파운드를 기부하기로 약속하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기부한 2천파운드가 2만 파운드로 잘못 기재된 것입니다. 고아원 측에서 포드 회장을 찾아가 사과하며 정정 기사를 내겠다고 하자 포드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그냥 두십시오. 하나님의 뜻이 아니겠습니까? 기사에 실린 대로 2만 파운드를 내겠습니다. 대신 고아원 강당 입구에 이런 글을 써주시기 바랍니다. '헨리 포드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의해 지어진 강당' 이라고요."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며 감사로 살았던 포드였기에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본문 23절입니다.“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감사와 하나님의 영광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사람을 통해 영광 받으시기 원하십니다. 예수께서 행하신 기적에는 이러한 감사의 특성이 있습니다.
복음서에 보니 예수께서 일어날 일에 대하여 미리 감사 하신 장면들이 나옵니다. 그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기적으로 영화롭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미리 감사하는 모습에서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인생의 본분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며 삶의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각자가 살아가는 방법이 다르고, 하는 일이 다를지라도 목적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감사만이 이를 가능케 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구원이 보입니다
아킵바(Akiba)라는 유대의 랍비가 있었습니다. 로마의 박해를 피해 고향을 떠나게 되었는데 가지고 나온 것은 성경책과 읽을 때 필요한 등불, 새벽을 깨우는 수탉 한 마리와 타고 갈 당나귀가 전부였습니다. 날이 저물어 묵을 곳을 찾았지만 유대인을 재워줄 가정이 없었습니다.
그는 뒷산으로 올라가 나무 밑에 자리를 펴고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잠이 오지 않아 등불을 켜고 성경을 읽으려는데 바람에 등불이 자꾸 꺼집니다. 일찍 잠에 들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보니 수탉은 이리가 잡아먹었습니다. 나귀도 사자가 물어갔습니다.
졸지에 가진 것을 다 잃어버렸지만 모든 것을 좋게 하시는 하나님이 유익이 되게 하실 거라 믿으며 감사했습니다. 아침에 마을로 내려가 보니 쑥대밭이 되었습니다. 밤사이 산적이 쳐들어와 마을 주민들을 모두 죽이고 약탈해 간 것입니다.
아킵바는 하나님께 감사 드렸습니다. 만약 마을에서 잠을 잤다면 자신도 죽은 목숨이었습니다. 산에서 등불이 켜졌다거나, 수탉이 새벽에 울고 당나귀가 소리를 내었다면 발각되어 죽었을 것이라 생각하며 하나님의 구원하심에 감사했습니다. 모든 것을 합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감사하면 구원의 역사를 보게 하십니다.
본문 23절입니다.“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여기 '그 행위' 란 감사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드리는 감사입니다. 마지못해 드리는 형식적 감사가 아닙니다.
구원은 영혼구원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의 행위가 구원의 조건이 될 수 없으며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여기의 구원은 세상을 살아가며 겪게 되는 온갖 어려움에서 건져주시는 구원을 의미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면 감사할 때도 있지만 원망과 불평을 할 때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만족스럽지 못한 일이 있다 할지라도 불평대신 감사하는 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우리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할 때 반드시 구원의 날이 이르게 하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원망과 불평을 일삼는 사람은 발전이 없습니다. 혼란이 옵니다. 실패합니다. 원망하고 불평하다 40년 동안 광야에서 맴돌다 죽어간 이스라엘 백성의 삶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려운 일이 닥쳐와도 오히려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적극적으로 감사하면 구원의 역사를 체험하게 하실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평강이 임합니다
로큰롤의 황제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는 인기와 부, 명성을 다 누렸지만 마음에 평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입버릇처럼 일주일 동안만 평안을 준다면 백 만불을 기꺼이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한번은 네바다의 주유소에서 당시 유명한 가수였던 팻 분(Pat Boone)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어이, 팻, 어디로 가나?”팻 분은 그리스도인이 되어 복음성가를 부르면서 주님을 증거 하는 일에 열심이었습니다.
"반갑네, 나는 동부에 교회 연합집회가 있어 가고 있다네. 자네는 어디로 가나?" "아니, 동부에 뭐가 있다고 가나? 나는 라스베가스로 간다네. 내가 보기에 자네는 언제나 영양가 없는 잘못된 방향으로만 가는구먼." 얼마 안 있어 엘비스 프레슬리는 마약 남용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세상 어디에서 참된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까?
성 어거스틴(St. Augustine)은 “주님, 우리가 당신 안에서 쉬기까지 영혼에는 참 평안이 없습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우리가 감사하며 하나님 안에 거할 때 평안을 얻게 됩니다. 감사의 이유를 발견함으로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빌립보서 4장 6절과 7절입니다.“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바울은 기도할 때 간구보다 감사를 먼저 하라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감사를 먼저 하되 많이 할 수록 좋다는 것입니다. 기도 초반에 간구부터 하면 온통 문제만 기도하게 되고 결국 문제에 짓눌려 기도까지 막히게 됩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시작을 감사로 시작하는 것이 기도자의 지혜입니다.
감사를 먼저 하면 감사 검색기능이 작동되어 감사로 충만하게 됩니다. 감사로 힘이 생기고 문제를 풀어갈 길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어려움이 닥치면 '왜(Why)' 가 아니라 '어떻게(How)' 라고 물어야 합니다.
'왜 내게 이런 일이' 의 자세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해결될까' 라며 하나님께 물어야 합니다. 원망과 불평이 아닌 감사의 태도로 물을 때 하나님의 평강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농군학교를 설립하신 김용기(金容基)장로에게 물었습니다. "장로님, 행복하십니까?" 논두렁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김 장로는 대답했습니다.“아니오, 감사합니다. 행복을 추구하는 순간 우리는 불행에 사로잡히기 쉽습니다. 하지만 인생이 은총이며 선물임을 자각하는 사람은 감사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흐린 날도 있고 맑은 날도 있습니다. 행복한 날도 있고 슬픈 날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은 이것입니다. 오직 감사할 따름입니다."
'연작안지홍곡지지(燕雀安知鴻鵠之志)' 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제비나 참새 따위가 어찌 봉황의 뜻을 알겠느냐' 는 뜻입니다. 하물며 미물 같은 인간이 어찌 하나님의 섭리를 다 알겠습니까?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감사한 만큼 행복해집니다. 감사한 만큼 강건합니다. 감사한 만큼 축복이 있습니다. 감사한 만큼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감사하되 범사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감사로 예배하시기 바랍니다. 감사만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감사를 통해 험한 세파에서 구원해 주십니다. 감사하는 사람에게 평강을 허락하십니다. 부디 하나님의 은혜를 헤아리며 감사로 제사 드리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감사와 찬양의 유익
성경본문 : 시편 50: 23
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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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감사와 찬양의 유익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감사와 찬양하는 사람들이 되어서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놀라운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인간생활에 있어서 감사와 찬양은 윤활유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아무리 좋은 기계를 가지고 제품을 생산한다고 할지라도 그 기계에 기름을 치지 않은 그대로 사용하면 그 기계는 원활하게 돌아가지 못할 뿐 아니라 결국 못쓰게 되고 말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인간생활에서도 끊임없이 기름을 쳐야 지치지 아니하고 피곤하지 아니하고 참 행복과 승리와 축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고 인간 상호간에 서로 감사하고 서로 칭찬해 주는 것은 인간 생활에 있어서 기름을 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생활에 이러한 기름 부음이 끊임없이 계속 될 때 우리의 삶은 즐겁고 영광스럽고 승리를 가져올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감사와 찬양이 우리 인생에 미치는 영향력과 하나님께 미치는 영향력과 우리의 원수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어떠한가. 살펴보고자 합니다.
1. 감사와 찬양이 자아(自我)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요?
이 세상에서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인간의 삶을 성장시키고 발전시키고 인간의 삶에 행복을 가져오는 길은 마음속에 긍정적인 삶의 자세와 태도를 취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에 긍정적인 자세를 취하지 않고는 성장과 발전과 행복을 절대로 이루지 못합니다. 부정적인 태도를 취해서 늘 원망하고 불평하고 탄식하고 “나는 안 된다, 나는 못산다. 나는 할 수 없다, 나는 패배했다”라고 말하며 우울증으로 꽉 들어찬 사람은 절대로 삶의 성장과 발전과 행복을 소유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마음속에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살아갑니다. 그래서는 초조해하고 불안해하며 끊임없이 분노를 폭발하며 침울해 하고 우울해 합니다. 그리고 대인관계에 있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고 환경을 대할 때도 늘 원망과 불평과 탄식의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오늘날 우리의 삶이 더 많이 성장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성장하지 못하고 발전하지 못하고 누렸어야 할 그 많은 행복을 원수 마귀에게 빼앗겨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이 부정적인 삶의 태도를 밝고 맑고 환하게 그리고 발전적이고 진취적이며 행복을 가져오는 삶의 태도로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이것이 바로 감사와 찬양이라는 신기한 능력을 사용하면 이룰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활 가운데 감사드리고 찬양드릴 때 우리의 삶은 부정적인 태도에서 긍정적인 태도로 변화됩니다.
역사적인 성경 인물로서 가룟 유다를 보십시오.
가룟 유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열두 제자 중의 한 사람으로 선택을 받았을 때는 가룟 유다의 마음속에 예수님을 대하는 태도가 긍정적인 자세로 꽉 들어차 있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께서는 얼마 있지 아니하여 이스라엘의 대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왕좌에 앉으실 것이고 사도들은 열두 보좌에 함께 앉아서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다스리게 될 것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가룟 유다는 예수님께 대해서 언제나 밝고 맑고 환한 긍정적인 태도를 위해서,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열심히 듣고, 또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얼마나 잘 도왔더니 열두 제자 중에 가장 신뢰 받는 사람이 되어 헌금 들어오는 것과 헌금을 지출하는 것 등 모든 재무를 총 담당했습니다.
오늘날도 한 단체에 있어서 재정을 담당하는 사람은 그 단체에서 가장 신뢰 받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기 때문에 재정을 담당하는 것입니다.
또한 가룟 유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나가서 증거 하기도 했으며 병든 자도 고치고, 귀신도 내쫓는 쟁쟁한 제자의 한 일원이었습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가룟 유다의 마음이 부정적으로 돌변하고 말았을까요?
가룟 유다는 예수님께서 임금이 되어 다윗의 보좌에 앉으시고 로마 군대를 기적으로 물리치시며, 이스라엘을 독립시키시고 이스라엘을 부강하게 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당신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사흘 만에 부활해서 승천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가룟 유다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말씀이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지상에서 당장 메시야의 왕국이 이루어질 줄 알았는데 메시야의 왕국은커녕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장사 지낸 후 부활 승천한다고 하시니 그만 마음속에 예수님께 대하여 크게 실망을 느끼고 만 것입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께 대해서 크게 실망하고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자마자 그만 예수님에 대한 미움과 반항 의식이 꽉 들어찼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에게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자마자 가룟 유다의 생활 전체가 성장을 그치고 불행해지고 우울해지고 침울해졌고 마침내 가룟 유다는 예수 그리스도를 은 30냥에 팔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히게 했습니다.
그러나 양심에 가책이 되면서 은 30냥을 연보궤 위에 던져버리고 자신은 결국 목매어 죽고 만 것입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긍정적인 자세를 취했었을 때는 그 생활이 성장하고 발전하고 행복했지만, 예수님에 대한 태도가 부정적이 되자마자 가룟 유다는 비참하게 되고 불안해하고 초조해 하고 공포가 꽉 들어차고 분노하며 우울증에 빠져서 예수님을 팔아버리고 자신도 목을 매어 죽어버리는 비극을 초래하게 된 것입니다.
무엇이 달라졌었습니까?
예수님께서 달라지신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에 대한 가룟 유다의 태도가 달라졌던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성장과 발전과 행복은 삶에 대한 우리 마음의 자세와 태도에 달린 것입니다. 우리가 긍정적인 태도를 취하면 우리는 성장하고 행복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이 부정적이고 파괴적이 되면 불안하고 초조하고 분노를 터뜨리고 우울증에 빠져 우리의 발전은 그쳐버리고 우리는 불행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계속적으로 긍정적인 태도를 가질 수 있을까요?
먼저 우리는 부정적인 모든 것을 기도로 청소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기도할 수 있다는 특권이 있습니다. 그 때문에 우리 마음속에 부정적인 모든 것을 기도로써 청소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방을 깨끗하게 청소해 놓아도 금방 어질러지고 또 청소를 해도 금방 또 어질러집니다. 그래서 방을 청소하면서 “밤낮 청소해 봤자 밤낮 어질러지는 것을 무엇 때문에 청소하는지 모르겠어”라고 불평을 합니다.
그러니까 아버님께서 보시고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인생이란 것은 밤낮 더러워지고 밤낮 청소하고 또 더러워지면 또 청소하는 것이란다. 그러므로 불평을 하지 말아라”고 타이르셨습니다. 이제 와서야 그 말씀이 옳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낍니다.
그래서 요즘도 어떤 일을 하다가 어려운 일이 생기고 고통스러운 일이 생겨 ‘이거 왜 이렇게 고통스러운 일이 생기나?’ 하고 탄식하다가도 문득 어릴 때 아버님께서 “인생이란 밤낮 더러워지고 밤낮 청소하고 또 더러워지면 또 청소하는 것이란다”라고 하시던 말씀이 생각나서 힘을 얻습니다.
우리가 언제나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인생을 살 수 있는 길도 바로 이것입니다.
이 세상에 살다 보면 부정적인 생각이 우리에게 안 들어올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먼지와 티끌처럼 부정적인 생각이 우리에게 안 들어올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먼지와 티끌처럼 부정적인 생각이 들어와 불안해하고 초조해 하고 분노를 터뜨리며 우울해 합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기도로 우리의 마음을 청소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마음에 불안하고 초조한 것을 다 고해 바치고 분노가 생기는 것, 미운 생각을 다 고해 바치며 예수님의 보혈로 씻어달라고 기도할 때 부정적인 생각이 청소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계속적으로 긍정적인 태도를 갖기 위해서는 언제나 과거의 잘못을 용서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필름 같아서 과거에 우리가 경험한 것은 하나도 남김없이 다 기억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현재 의식이 떠오르지 않은 것도 잠재의식 속에는 다 기억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미워하던 것도 기억 속에 남아 있고 두려워했던 것도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깊이 좌절감을 가진 것도 기억 속에 남아 있고 죄책도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다 기억의 필름 속에 담겨서 현재 기억이 나든지 혹은 잠재의식 속에 쌓여서 끊임없이 부정적인 ‘나’를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유 없이 마음속에 불안, 초조, 절망, 공포, 분노가 생겨나고 침울해지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기억을 더듬어 잘못된 것들을 용서해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거리낌을 준 모든 환경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용서해 주십시오.
부모를 용서해 주고 처자를 용서해 주십시오.
자기를 용서해 주고 여러분 에게 상처를 입혀준 사람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이렇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용서해 주고, 보혈로 씻음 받을 때 우리의 마음속에서 솟아나는 부정적인 모든 것을 청소해 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과거에 감사할 것을 찾아내어 감사 찬양해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과거를 더듬어 보면 감사할 것이 참 많습니다.
예수 믿고 보면 과거에 고생한 것조차 모두 다 감사할 것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나면 과거에 여러 가지 어렵고 괴로웠던 것이 모두 다 감사로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그런 고통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여러분이 예수님을 더욱 잘 믿고 은혜 가운데 거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므로 과거의 감사할 것을 찾아내어서 감사하고 하나님께 찬양할 때 우리의 마음은 밝고 맑고 환해집니다.
마지막으로 현재의 우리의 환경 가운데 감사할 것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남편에게, 아내에게, 부모에게, 자녀에게 감사할 것을 찾아내고 또한 현재 환경에서도 감사할 것을 찾아내어 감사하면 계속적으로 긍정적인 태도를 가질 수 있습니다.
이러므로 감사와 찬양이 자아에 미치는 영향은 큽니다. 감사와 찬양만이 여러분 자아의 태도를 긍정적으로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2. 감사와 찬양이 하나님께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요?
성경은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편 50:23)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원과 감사와 찬양은 연결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감사와 찬양의 사다리를 하늘로 향하게 하면 하나님께서 그 사다리를 통해 구원을 내려 보내주시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감사와 찬양을 많이 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구원의 위대한 능력을 많이 체험합니다.
원망과 불평과 탄식 가운데 사는 사람은 하나님과의 연결이 끊어지기 때문에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기도를 해도 기도의 응답을 얻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와 찬송을 많이 하면 기도의 응답이 다가옵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쫓겨난 이유가 어디에 있는 지 압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선민이고 사랑받는 사람인 데도 불구하고 쫓겨난 이유는 두 자기 죄 때문이었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을 밀쳐 내고 그 대신 우상을 섬긴 죄이고,
두 번째는 사사건건 원망하고 불평하고 탄식한 죄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기적적으로 탈출했지만 이 두 가지 죄로 인 해 광야에서 멸망 받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마태복음 13:12)고 말씀하셨습니다.
영국의 유명한 부흥사였던 스펄전 목사님은 “하나님께서는 촛불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 전등불을 주시고, 전등불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 태양을 주시고, 태양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 촛불, 전등불도 달도 태양도 필요 없는 천국의 밝은 빛을 주신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러므로 있는 자에게는 더 주고 없는 자에게는 있는 것조차 빼 앗아 버리는 것이 주님의 법칙입니다. 그래서 “나는 가정에 행복이 없습니다. 나는 슬픕니다. 괴롭습니다”라고 하면 조금 있는 행복조차도 하나님께서는 빼앗아 버립니다.
그러나 조그만 촛불만한 행복이라도 있으면 “아버지 감사합니다”라고 하시면서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로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감사로 제사를 드리면 하나님께서는 있는 것 위에 더 축복을 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역경에서 절망을 느낄수록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사도행전 16장에는 바울과 실라가 복음을 증거 하다가 로마 군인들에게 붙잡혀서 빌립보 감옥에 들어간 기록이 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서 매를 맞아 등이 터져 상처 투성이가 된 채 쇠고랑에 묶여 있었습니다. 이렇게 감사할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자정이 되었을 때 바울과 실라는 소리를 합쳐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바울과 실라가 얼마나 성령으로 충만해서 감사했던지 그 감옥에 있던 다른 죄수들이 그 소리에 더 귀를 기울였습니다. 이렇게 감사로 제사를 드리니까 그만 하나님의 마음이 뜨거워져서 하나님께서 구원의 손을 뻗치셔서 빌립보 옥터 전체가 지진으로 뒤흔들리고 모든 감옥 문이다 열려버리고 모든 죄인들에게 채웠던 착고가 다 풀려버리고 말았습니다. 바울과 실라의 감사 찬양으로 말미암아 빌립보의 감옥 터가 뒤흔들려서 자유와 해방을 얻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염려와 근심, 불안과 초조, 절망의 쇠사슬에 묶이고 마귀의 감옥에 갇혔으며 우리가 거기에서 자유와 해방을 얻는 가장 좋은 길은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것입니다.
감사와 찬양을 드리면 하나님의 성령이 와서 영적인 지진을 일으켜서 마귀의 모든 감옥 문을 다 열어버리고 마귀의 쇠사슬을 다 깨뜨려 버리고 여러분과 나에게 자유와 영광을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주 어려운 고비에 처하거나 절망의 벽에 처했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감사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저는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왜 이런 환경에 처하고 이런 고난이 다가왔는지 알 수 없지만 그러나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이라고 했으므로 주님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할 때 우리 마음도 긍정적이 되고 이를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3. 감사와 찬양이 원수에게 미치는 영향이 무엇일까요?
원수 마귀는 여러분과 내가 못되기를 원합니다. 도적질당하고 죽임을 당하고 멸망당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마귀는 원망과 불평을 통해 우리를 죽음으로 몰고 갑니다.
오늘날에 있어서 가정과 사회가 파괴되는 것은 원망과 불평으로 시작됩니다.
커다란 문제 때문에 가정이 파괴되거나 사회가 혼돈 가운데 빠지거나 하지 않습니다. 흔히 있을 수 있는 원망과 불평에서부터 파괴되기 시작합니다. 원망과 불평에서부터 파괴되기 시작합니다. 원망과 불평을 자꾸 하면 이것은 마치 큰 둑이 개미구멍에 의해서 파괴되듯이 우리의 삶이 파괴되고 맙니다. 우리 생활의 포도원을 큰 여우가 찾아들어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여우 가 와서 포도나무 뿌리를 갉아먹어 포도원을 망칩니다.
이작은 여우가 바로 원망과 불평과 탄식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원망과 불평과 탄식을 하면 마귀는 뒤에서 춤을 추며 좋아하는 것입니다.
바로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것도 원망과 불평 때문입니다. 처음 마귀가 “정말로 동산의 실과를 다 먹지 못하게 하더냐?”라고 유혹 했을 때 아담과 하와는 “아니라, 선악을 아는 실과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먹는 날에는 죽을까 하노라 하더라”고 대답했습니다.
마귀가 다시 “아니라, 네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네 눈이 밝아져서 너도 하나님처럼 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못 먹게 했다” 라고 말하면서 불평을 심어 주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마귀의 말을 듣고 불평하고 원망하다가 하나님을 반역하고 에덴에서 쫓겨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성경 역대하 20장에 보면 여호사밧 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스라엘에 갑자기 적군이 쳐들어와 예루살렘 백오십 리 밖에 왔었을 때의 일입니다. 이 때 이스라엘 국민들은 당황하였고 이스라엘은 멸망 받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러자 여호사밧 왕은 신하들을 거느리고 성전에 가서 하나님을 감사하고 찬양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호사밧이 성전에서 이처럼 예배드리자 하나님께서 야하시엘을 통하여 ‘전쟁은 여호와의 것이니 내가 너희를 위해 싸워 주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여호사밧은 이 약속을 받고 난 다음 적군이 오는 앞에 성가대를 세워 놓고 적군을 보면서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 자비하심이 영원하도다”(역대하20:21)라며 찬송을 부르게 했습니다.
그들이 불평과 원망하지 않고 찬송을 시작하자마 자 적군들에게 큰 혼돈이 일어나 서로 찌르고 물고 찢고 싸우는 자중지난(自中之亂)으로 멸망하여 이스라엘은 큰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는 기사입니다.
이처럼 여러분의 감사와 찬양을 드릴 때 원수들은 자중지난이 일어나서 파멸해 버리고 여러분은 큰 승리를 하게 될 것입니다.
감사와 찬양은 우리가 가진 가장 고귀한 자산입니다. 그 때문에 우리가 이 감사와 찬양을 잘 사용하면 우리의 생활에 풍성한 축복의 열매를 맺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강영래 목사(인천 주님의영광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