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15-26
성결하라. / 김대인 목사
찬송가 541장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저 요단강 건너 편에 찬란하게 뵈는 집,
예루살렘 새집에서 주의 얼굴 뵈오리,
빛난 하늘 그 집에서 주의 얼굴 뵈오리,
한량없는 영광 중에 주의 얼굴 뵈오리.
몇 주 전부터 가나안에 들어가는 여호수아의 기사를 통하여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가나안을 신앙생활의 승리 혹은 영적 승리의 체험, 은혜의 체험, 충만한 축복 등으로 해석해 왔습니다. 그 이유는 광야의 미숙한 초보적인 신앙에서 한 차원 높은 신앙의 경지로 도약했을 때 누리는 신앙적이면서 영적인 체험이 바로 그런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가나안은 천국으로 상징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가나안에서 누리는 영적 축복은 하늘 나라에서 성도들이 누리는 최종적 안식과 승리를 의미합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모든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에서 누린 승리는 우리에게 큰 교훈을 담고 있었습니다. 믿음과 순종, 그리고 하나님께 드릴 것을 드릴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완전한 승리를 보장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리고 성에서 아간이 작은 탐욕을 극복하지 못하여 외투 한벌, 은 200세겔, 금 50세겔로 인해 범죄함으로 이스라엘은 아픈 대가를 지불하게 됩니다.
범죄의 시작
아간의 범죄에 대하여 좀더 자세히 생각해 보십시다.
아담은 선악과를 따 먹을 때 먼저 선악과를 보니 먹음직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죄는 사람의 눈을 통하여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 5:28)고 하였고, 다윗은 밧세바를 보고 음욕이 생겨 범죄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안목의 정욕”(요일 2:16)을 세상적인 것이라고 규정하고 이를 경계하였습니다.
아간도 역시 보는데서 범죄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눈으로 보고 탐심이 생겼다고 하였습니다.
"내가 노략한 물건 중에 시날산 아름다운 외투 한벌과 은 이백세겔과 오십세겔중의 금덩이 하나를 보고 탐내어 취하였나이다 보소서 이제 그 물건들을 내 장막 가운데 땅 속에 감추었는데 은은 그 밑에 있나이다"(수 7:21).
결국 그의 범죄는 아이성에서 패배로 나타났습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눈은 몸의 등불”이라고 하였고 “네 눈이 성하여야 온몸이 밝을 것이라”(마 6:22)고 하습니다.
그러니 밝은 눈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실수를 합니다. 혹 실수를 한 사람들이 “내가 그때는 눈이 멀었었나 봐”라는 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이 말도 역시 돈에 눈이 어두어지고, 권력에 눈이 어두워지고, 세상의 욕심 때문에 자기의 이성을 잃고 바른 판단을 할 수 있는 등불과 같은 눈이 어두워져 죄를 범한 다음에 후회하면서 사용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밝은 눈은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밝은 눈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사물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판단하여 하나님 앞에서 항상 거룩을 유지함으로 여리고의 승리만 있기를 바랍니다.
죄와 그 대가
만일 이스라엘이 아이에서 아픈 패배가 없었다면 아간의 범죄는 완전범죄가 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의 눈은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의 눈은 속일 수가 없었습니다. 인간 세상에서는 완전 범죄가 가능할런지 모르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완전 범죄란 있을 수 없습니다. 믿으십니까?
그럼에서 불구하고 사람들은 범죄를 합니다. 그리고 완전 범죄를 도모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아담처럼 무화과 나무 잎으로 자신을 가리고, 그늘에 숨어 하나님의 눈을 피하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완전 범죄가 불가능합니다.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범죄를 한 후 완전 범죄를 도모하려고 전쟁 중에 있는 우리아를 불러 그의 아내와 자리를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줍니다. 그러나 이것이 실패로 돌아가자 그는 전사를 가장하기 위해 요압에게 극렬한 전투에서 우리아를 전사토록 지시합니다. 그는 이렇게 하면 완전 범죄가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보낸 나단 선지자에게 책망을 받습니다. 나단 선지자가 그를 책망할 때 그는 겸허하게 그 책망을 수용합니다. 그리고 죄를 시인하고 회개합니다. 다윗의 위대함이 여기에 있었습니다.
요즘 우리 시대에서는 이런 일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 것 같습니다. 만일 자신의 죄를 지적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것을 시인하고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음모를 꾸며서라도 철창으로 보낼 것입니다.
해롯이 그렇지 않습니까?
자신의 죄를 지적하는 세례 요한을 옥에 가두고 결국은 그에게 사형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살아 있는 권력을 심판하기가 힘 든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선지자의 말을 듣는 순간 필부처럼 그 앞에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인간이면 좀처럼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일국의 제왕의 자리에 앉아 있는 그가 그렇게 하였다는 것은 참으로 위대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죄의 대가도 준엄합니다.
아간의 죄의 대가도 준엄했고, 다윗의 죄의 대가도 준업했습니다. 아담의 죄도 준엄했습니다. 그래서 아간의 죄 때문에 무고한 이스라엘 백성 중 36명이 죽어야 했고(수 7:5), 다윗의 범죄 때문에 갓 태어난 아이가 죽어야 했고, 아담의 범죄 때문에 죽음이 인간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죄의 대가는 준업하고 그 결과는 죽음입니다.
이 사실은 하나님은 죄에 대하여 준엄한 심판을 내리시는 분이라는 사실은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어떤 희생을 통해서라도 죄를 회개하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더욱이 그의 사랑하는 백성이면 백성일수록, 그의 사랑하는 자녀이면 자녀일수록 그의 심판은 준엄합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죽음아래 있는 죄인들의 죄의 대가를 대신 지불하기 위해 하나님의 독생자가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하였습니다. 이 사실도 하나님의 공의로운 성품과 결코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것만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죄를 회개하라는 복음을 끝까지 믿지 않고 거절하면 지옥의 형벌을 내리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2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분은 지금도 인간의 죄를 보시고 계십니다. 그 앞에는 완전 범죄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그 앞에서 거룩한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승리의 조건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다시 승리하기 위해 스스로 성결케 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너는 일어나서 백성을 성결케 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려 내일을 기다리라"(수 7:13).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보낸 성령님도 거룩하신 영이십니다. 그가 우리 속에 내재해 계시면서 역사하시려면 우리 자신이 거룩하여야 합니다. 우리 마음이 거룩한 성전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때 성령은 슬퍼하시면서 그의 충만한 사역을 중단하십니다. 이 말씀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항상 우리에게 거룩을 요구하신다는 말씀도 매우 중요합니다. 자세히 들으시기 바랍니다.
호렙 산 떨기나무에서 불꽃 가운데 나타나신 하나님은 모세에게 명하십니다.
“네 발의 신을 벗으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왜 신을 벗어야 하는지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출 3:5)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거룩한 땅에서는 더러운 것을 벗어야 합니다. 세속의 것들을 벗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해서는 벗을 것을 벗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기 위해서는 벗을 것을 과감하게 벗어야 합니다.
벗는 것이 전체가 아닙니다. 요단 강가에서 여호수아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요단 강을 가르시는 이적을 행하시기 전에 백성들에게 거룩할 것을 명하십니다.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 기사를 행하시리라"(수 3:5).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려면 우리가 거룩하여야 합니다. 그가 우리 가운데서 강한 손으로 이적과 가사를 행하시려면 우리가 성결해야 합니다. 그분은 오염되고 악이 있고 추악함이 있는 사람과는 함께 하시지 않습니다. 그의 능력을 행사하시지도 않고, 기적을 행하시지도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정으로 하나님과 함께 하시기를 바라십니까? 그의 능력을 힘입어 승리의 삶을 살기를 바라십니까? 죄를 회개하십시오. 십자가의 은총을 힘입어 용서를 받으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죄에서 멀리 떠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서 성화의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매일 매일을 말씀을 묵상하면서 진리 안에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거룩하게 살려는 성도와 함께 하십니다. 그의 능력을 베푸십니다. 믿으십시오.
회개란?
그러면 회개란 무엇입니까? 어떻게 하는 것이 회개입니까? 아간의 사건을 통하여 성경이 요구하는 회개에 대하여 추리해 보겠습니다.
첫째, 인간적인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판단을 기준으로 하여 죄와 불의를 가려야 합니다.
곧 하나님께서 의라고 한 것은 의이고, 불의라고 규정한 것은 불의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시인하는데서 회개는 시작하는 것입니다.
둘째,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비를 뽑은 것처럼 철저하고도 구체적으로 내 삶에서, 내 사상 속에서 죄를
찾아내야 합니다.
셋째, 그리고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자신이 죄인인 것을 자복하여야 합니다.
입으로 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 하면 입으로 자복하여야 자신이 책임을 지기 때문입니다. 속 마음으로 생각만하는 것은 잊어버리기 쉽고 책임을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넷째, 목적이 있는 자백이어야 하고 회개여야 합니다.
회개는 인간적인 생각으로 반성하고 자성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의를 세우기 위해 행하는 것도 아닙니다. 회개의 목적은 철저하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현존을 의식하면서 그에게 고백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아간에게 죄를 자백할 것을 요청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말씀을 통하여 이상의 조건들과 견주어 보시기 바랍니다.
"여호수아가 아간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청하노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돌려 그 앞에 자복하고 네 행한 일을 내게 고하라 그 일을 숨기지 말라"(수 7:19).
다섯째, 아긴의 범죄로 인해 그의 가족과 짐승 그리고 재산까지 모두 아골 골짜기로 끌고가 그곳에서 돌로 처서 철저하고도 완전하게 도말하고 말았는데 죄는 완전히 뽑아버려야 하고 내 속에서 내 삶에서 도말하여야 합니다.
이 사실을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 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마 5:29-30)
회개는 모양만 내는 것이 아닙니다. 정당히 넘기는 것도 안됩니다. 회개는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을 상대하는 것이기 때문에 적덩이 통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씀을 소개합니다.
"지존무상하며 영원히 거하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사 57:15).
맺는 말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함께하시를 원하십니까? 그분이 여러분과 함께하시면서 이적을 행하시고 구원의 능력과 승리의 삶을 주시기를 원하십니까? 죄를 숨기려 하지 말고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거룩한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열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