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작가 죽이기, 블랙리스트 - 트롬보

[바람숲]

영화 '로마의 휴일'은 신문기자 그레고리 팩과 발랄한 공주 오드리 헵번의 사랑을 담은 작품으로
당시 신예였던 오드리 헵번을 스타로 만들어준 영화였지요.
진실의 입에 손을 넣는 장면은 명장면 중의 명장면으로 손꼽히죠.
 
 

 
 
'로마의 휴일'을 썼지만 자신의 이름으로는 발표할 수 없어 친구의 이름으로 발표해야만 했던 천재 작가 달톤 트롬보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를 보면서 분개하고 또 분개했네요.
 
할리우드 황금기에 최고의 이야기꾼으로 불리던 천재 작가 트럼보는 거액의 몸값을 받는 스타 작가였습니다.
그러나 냉전 시대 정치적 스캔들에 휘말리면서 영화계 블랙리스트인 ‘할리우드 10’에 오르며 작가 활동이 금지되었죠.
이 사건의 배경에는 공산주의자를 탄압하는 이른바 ‘매카시즘’의 광풍이 있었습니다.
당시 2차 세계대전이 연합군의 승리로 끝난 이후 냉전이 지속되었고,
미국에서는 공산당원들을 색출해내기 위한 ‘반미활동 조사위원회(HUAC)’를 조직했습니다.
정치적 성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매국노, 배반자로 몰아가는 광풍에 트럼보를 비롯한 동료 작가들은 위원회에서 증언을 거부했고, 이른바 ‘할리우드 10’으로 지목되어 작품 활동이 금지되었습니다.
감옥까지 갔다온 트롬보는 그 후 생계 유지를 위해 <로마의 휴일>을 썼지만 발표할 수 없었죠.
그래서 동료 작가인 이안 맥켈란 헌터에게 그의 이름으로 제작사에 팔아달라고 부탁합니다.
또한 B급 영화를 제작하던 킹 브라더스와 손을 잡고 가짜 이름으로 글을 쓰며,
다른 블랙리스트의 작가들에게도 일할 기회를 제공하며 블랙리스트를 무너뜨리려고 노력합니다.
 
영화 속 '헤다' 라는 여자가 나오는데 배우이면서 커다란 힘을 가진 이 여자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토롬보를 무너뜨리려고 합니다.(이 여자는 아들이 군대에서 나라를 위해 싸우고 있다는 구실을 대면서)
트롬보는 돈이 되는 일이라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하루 18시간을 각성제를 먹어가면서 글을 쓰는데
어느 날, 게리 쿠퍼가 찾아와 '스팔타커스' 대본을 써달라고 하지요.
스팔타커스는 게리 쿠퍼가 기획하고 주연이기도 한 영화.
게리 쿠퍼는 대본이 되는 대로 촬영을 하고 있었지요.
어느 날, 헤다가 게리 쿠퍼를 부르고
"스팔타커스 대본을 트롬보에게 쓰라고 했지? 당장 해고 시켜."
게리 쿠퍼가 거절하자 헤다가 말합니다.
"트롬보에게 글을 쓰라고 시키다니 너 개자식 아니야?" 하니까
게리 쿠퍼가 시원하게 한 마디 합니다.
"나 원래 개자식이었오."
 
이 장면에서 어찌나 통쾌한지...
하지만 헤다는 포기하지 않고, 사람들을 모아 '스팔타커스' 영화를 보지 말 것을 종용하고
영화가 개봉하는 날 영화관 앞에 사람을 풀어 상영 반대 데모를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나날이 인기를 얻고,
케네디 대통령이 이 영화를 보고 나오는 모습이 뉴스에 나오면서 완전 전세가 역전되지요.
 
이안 맥켈란 헌터의 이름으로 1953년 개봉한 <로마의 휴일>이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을 수상하게 되지만 가짜 이름으로 글을 썼던 트럼보는 수상자로 나설 수 없었습니다.
게리 쿠퍼뿐 아니라 트롬보를 지지하는 감독이 나타나 각본을 맡기고 영화 크레딧에 그의 이름을 올리게 되지요.
 
<로마의 휴일>뿐 아니라 다른 영화들도 오스카상을 받게 되고,
그제야 블랙리스트가 사라지게 됩니다.
그동안 그의 동료들은 일을 하지 못해 가정이 파탄나기도 하고, 죽기도 하고, 온갖 시련을 겪었지요.
 
1976년 트럼보가 사망하자 그의 아들은 아버지의 명예를 되찾아주기 위해 <로마의 휴일> 원작자가 트럼보임을 세상에 알렸고, 아카데미상을 주관하는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는 이를 인정하여 1993년 그에게 아카데미 트로피를 수여했습니다.
<로마의 휴일>이 개봉한지 40년 만에 원래 주인에게 트로피가 돌아간 것입니다.
 
트롬보는 영화에서 나오는 수익을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게도 분배해야 한다는 말을 해서
공산주의자로 몰리게 된 것입니다. 물론 실제로 그는 공산당에 가입하기도 했지만요.
어쨌든 미국에서도 반공주의자들의 횡포는 참기 어려울 정도로 편협하고 무지막지했네요.

[산초]

그 블랙리스트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잖아요.

[바람숲]

그러니까요. 보는 내내 치떨리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