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0.
올 겨울엔 대부도에 두 번씩 가보는 행운을 얻었다.
오늘은 대부도 가는 길에 사강시장에서 간장게장에 굴밥을 지어주는 맛있는 집을 찿아서 출발했다.
가는 길에 찿아가 본 홍난파 생가
난파 홍영후 선생은 1898년 4월 10일 경기도 화성군 남양면에서 출생
대표작으로 봉선화, 봄처녀, 성불사의 밤, 옛동산에 올라, 금강에 살으리렸다.가 있다.
22세인 3.1운동 무렵 '삼광' 창간호를 출간 하며 창간사에 '우리 조선은 깨는 때 올시다. 무엇이든 하려고 하는 때.라고 함
'음악은 반드시 아름다운 것만 표현하는 것이 아닌 민족혼이 깃들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휴학하고
귀국하여 3.1운동에 참여함. 애지중지하던 바이올린을 팔아 독립운동에 바침.
이듬해 다시 일본으로 가서 복교하려 하였으나 3.1운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거절당함
귀국하여 단편집 '處女魂'(처녀혼)을 출간 여기에 애수(哀愁)라는 곡명으로 멜로디를 기재하였는데
이를 본 김형준이 가사를 붙인 것이 바로 유명한 '봉선화'이다.
'봉선화'는 나라를 잃은 겨레의 설음과 한을 애절하게 표현한 곡으로 겨레의 소생을 간절히 바라는 염원을 담고
있었기에 빠른 시간에 전국으로 퍼져 나갔고, 일제는 '봉선화'를 금지곡으로 정하고 부르지 못하게
탄압을 가했다.
1925년 우리나라 사람으론 처음으로 바이올린 독주회를 열었다.
1937년 경성방송국에 근무하던중 '흥사단'단가를 작곡하였다는 이유로 도산 안창호와 함께
종로경찰서에 수감되어 심한 고문을 당함. 그 후 사상전향서를 쓰게 되었으며 '희망의 아침'<군가>을
강요에 의하여 작곡한 것이 친일 시비에 관련되고 있다.
이 때 받은 고문으로 해방의 서광을 보지 못한 채 1941년 8월30일 44세의 일기로 별세함
우리나라 최초의 바이올니스트, 최초의 음악평론가,최초의 교향악단 지휘자이며 문필가이기도 하다.
짧은 생애에 비해 한국음악사에 위대한 서양음악의 선각자로서의 공이 더 지대하다고 본다.
대전-당진고속도로(공주,북공주)-남풍세-평택-송산 마도-사강시장에 도착한다.
경기도 송탄면 사강로 180번지 '중앙회센타'
무우를 채 썰어 넣고 겨울의 별미 굴을 듬뿍 넣어 가마솥에서 푹 뜸들인 굴밥
간장게장과 함께 겨울 보양식을 먹어 본다.
궁평항 도착
갈매기가 반겨주네요.
새우깡을 얻어 먹으러 사람 가까이 날아 온다.
겨울 쌀쌀한 바닷 바람을 맞으며..
눈부신 겨울 바다 궁평항
끼륵끼륵
궁평항 추운 바람을 피해서 항구 내 카페를 찿았더니..
인파가 북실거리고, 군고구마와 커피를 마시는 것도 맛이 좋다.
라이브 통기타 음악에 온몸이 금새 훈훈하고 음악과
분위기에 기분이 쑥쑥 UP된다.
궁평항-서평택 JC - 행담도휴게소에 도착
서해대교 아래로 내려와 접근하는 휴게소.
무척 크네요. 한쪽에는 무슨 아울렛도 들어서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