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회고록8막61장(2부-2)
2014년 결혼한 "후"는 경기도 이천의 송정동 아파트단지 1층에 20여평 남짓 공간에 치과병원을 개원하였다.
"이 편○ 치과"
부모로서 병원 개원 자금을 지원치 못한 즈음 "후"는 홀로 닥터론이나 메디컬론의 창업자금으로 시작한 병원은 위치상 아파트단지의 고객유치에 유리하나 유동인구가 많치 않아 동네치과에 연연하였다.
그래도 "후"는 즐거워하였고 3명의 간호사들은 화기애애하며 병원을 운영하였다.
부모로서 가장 마음 아픈 경우이다.
자식이 치과병원을 개원한다는데 아무 도움도 못주니 가슴이 메어질듯 아팠다.
"후"가 어찌 병원을 운영해 나갈꼬.
서울 인근에 있으면 지인들이라도 손님으로 유치하건만 경기도 이천은 엄두가 안나는 곳이였다.
개업기념으로 나는 그곳에서 인프란트를 하게 되였다.
차분한 "후"는 침착하게 나의 썩은 이빨을 뽑아내고 한달여 치료끝에 인프란트를 심는데 성공하였다.
그때 나는 옛날 기억이 나기 시작하였다.
"후"가 치과대학을 졸업후 서울 강남삼성동 무역쎈터에서 치과 실습을 진행할때 담당교수가 지원자 한명씩을 데려 오라 하였다.
"후"는 아버지인 나를 지명하였고 그당시 왼쪽 어금니가 썩어 없어진 탓에 인프란트를 해야 할 때였다.
나는 "후"의 안내로 삼성동에 가게 되였고 치과용 진찰의자에 누워 친료를 받게 되였다.
마치 "마루타" 같은 느낌이랄까.
생애 최초로 메스를 들고 있을 "후"를 쳐다보니 두려움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혹시 신경이라도 건드려 불상사가 발생하지는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