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서도 비련의 삶을 산 여인
인상파의 대부로 불리는 에두아르 마네Éouard Manet는 당시에 오페라 가수로 이름을 떨치던 에밀리 앙브르Émilie Ambre를 모델로 카르멘을 그렸습니다. 1879년 여름, 파리 외곽의 온천에서 요양을 하다가 앙브르를 만난 마네는 그녀에게 스페인 의상을 입히고 카르멘의 포즈를 취하게 했습니다. 이 해와 그 이듬해 앙브르는 미국 오페라 투어에서 카르멘 역할을 매우 잘 소화해 찬사를 받았습니다.
그림 속의 앙브르는 왼손을 허리춤에 두고 오른손으로 부채를 쥐고는 곧 플라멩코 춤을 출 듯한 포즈를 취하고 있습니다.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에서 유래한 플라멩코 춤은 카르멘이 뭇 남자들을 유혹할 때 줬던 관능적인 춤이지요. 그림은 전반적으로 어둡지만, 그녀가 춤을 추면 공간 전체가 금세 환해질 것만 같습니다. 마네 특유의 활달하고 과감한 터치가 그런 에너지의 전개를 암시합니다.
비극의 주인공 카르멘처럼, 앙브르도 그녀의 삶에서 비련의 여인이 된 적이 있습니다. 앙브르는 1876~1877년을 네덜란드 무대에서 보냈습니다. 그 당시 네덜란드 국왕 빌럼 3세를 만나 그의 정부가 되었지요. 빌럼 3세는 그녀에게 '앙부르아즈 백작 부인comtesse d'Ambroise'이라는 칭호를 하사하고 호화로운 보석을 사주는 등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 애썼습니다.
1877년 6월, 그동안 소원하게 지내던 소피 왕비가 세상을 떠나자 빌럼 3세는 앙브르와 귀천상혼의 결혼을 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왕족과 비왕족, 그것도 오페라 가수와의 결혼 발표는 아주 파격적인 소식이었지요. 당시 네덜란드 내각과 언론은 한목소리로 격렬하게 반대했습니다. 전 국가적인 반대에 직면한 빌럼 3세는 결국 앙브르와의 관계를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앙브르는 처연한 심정으로 네덜란드를 떠나 프랑스로 돌아왔습니다. 마네는 그런 사연이 있는 앙브르를 '문제적 인물'인 카르멘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앙브르는 1898년 4월 파리에서 사망했습니다. 사망 원인은 모르핀 과다 복용으로 인한 자살이라고 전해집니다.
<카르멘>은 공연 초기 아주 실패작으로 여겨졌습니다. 비평가들은 이 극이 부도덕하고 천박하며, 음악적으로 투박하고 조화롭지 못하다고 비난했지요. 하지만 오늘날 <카르멘>은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오페라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설령 막장극의 느낌이 있다 하더라도, 현실의 굴레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운 삶을 살고자 한 영혼의 갈망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 그녀와 '사랑에 빠진' 화가들은 카르멘의 팔색조 같은 매력을 각기 다른 모습으로 화폭에 담아냈어요. 우리는 누구나 사랑을 하고, 지나간 이들의 얼굴은 우리의 기억 속에 저마다 다른 인상을 남깁니다. 그리고 그런 경험은 우리가 앞으로 더욱 성숙한 사랑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좋은 자양분이 되어주지요. 그래서 어떤 이별은 사랑보다 더욱 애틋한 기억으로 남기도 합니다. 다채로운 카르멘의 그림들을 보며, 우리 자신도 다른 누군가에게 부디 아름다운 얼굴로 기억되기를 바라봅니다.
어제는 고흐가 당신 얘기를 하더라 중에서
이주헌 지음
첫댓글 좋은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