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의 엔진은 두 가지의 상반된 속성을 가지고 있다. 한 가지는 차가움이고, 나머지 하나는 뜨거움이다. 이렇게 두 가지의 상반된 속성을 갖는 이유는 금속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증기기관으로부터 시작된 엔진의 역사이래, 인류는 항상 금속으로 엔진을 만들어 왔다. 최근에는 재료역학의 발달로 인해, 금속 외의 다른 합성 재료를 사용하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지만, 여전히 지구상의 모든 엔진의 주류는 금속이다. 강철과 알루미늄 등의 금속은 엔진이 잠에서 깨어난 시점부터 가동 시간 내내 발생하는 고열과 마찰 등의 모든 부담을 감당할 수 있으며, 대량생산에도 적합하기 때문이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차가우면서도 뜨거운 자동차의 심장, 엔진의 세계로 독자 여러분을 초대한다. 본 기사에서 다룰 수많은 자동차의 엔진들 중 그 열 아홉 번째 이야기는 90년대를 풍미한 현대자동차의 직렬 4기통 엔진, ‘베타’ 엔진에 대한 이야기다.
현대자동차의 두 번째 독자개발 엔진
1976년에 최초의 독자개발 자동차 모델 ‘포니’를 상용화한 현대자동차는 그로부터 15년 뒤인 1991년에 최초의 독자개발 엔진인 ‘알파 엔진’을 내놓는다. 하지만 알파 엔진은 본래 영국 리카르도 plc(Ricardo plc)에 설계 용역을 주어 기본 설계를 만들어 낸 엔진이다. 당시 현대차 마북리 연구소는 리카르도의 기본 설계를 바탕으로 개량을 가하는 선에서 엔진 개발을 완료하였다. 따라서 순도 100% 현대차 독자개발 엔진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현대차는 독자적인 엔진 개발을 위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경험은 알파 엔진 이래 두 번째 독자개발 엔진인 ‘베타’ 엔진을 개발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현대 베타 엔진은 현대자동차의 준중형 차종 및 중형 차종을 위해 개발된 배기량 1.8~2.0리터급의 직렬 4기통 엔진이다. 1995년 엘란트라의 후속 준중형 세단 ‘아반떼’를 통해 상용화가 시작되었다. 베타 엔진은 현대자동차가 기본 설계부터 완성까지 진행한 100% 독자개발 엔진이다. 현대자동차는 이 엔진을 개발하여 장영실상까지 수상했다.
현대자동차가 두 번째 독자개발 엔진의 체급을 중배기량으로 잡은 것은 미쓰비시에게서 라이센스를 받아 사용하고 있었던 중배기량 엔진들을 대체함으로써 기술적 독립을 시도함과 동시에 비용의 절감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현대자동차는 알파 엔진을 도입하면서 미쓰비시의 오리온 엔진을 대체하며 비용의 절감을 이룬 바 있다.
현대자동차 베타 엔진은 배기량 1.8리터 사양을 기초로 한다. 총배기량 1,795cc의 1.8리터 베타 엔진은 82.0mm의 보어(실린더 내경)와 85.0mm의 스트로크(행정 길이)를 가졌다. 밸브트레인은 실린더 당 4밸브의 DOHC 구조이며, 연료의 공급은 다점 연료분사(Multi Point Injection, MPI) 방식을 채용했다. 압축비는 10.1:1이었다. 실린더 헤드는 알루미늄 합금, 블록은 주철로 만들어졌다. 최고출력은 133마력/6,000rpm, 최대토크는 17.1kg.m/4,200rpm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베타 엔진 중 가장 널리 쓰이고 널리 알려진 사양은 뭐니뭐니해도 배기량 2.0리터 사양이라 할 수 있다. 총배기량 1,975cc의 2.0리터 베타 엔진은 1.8리터 사양의 스트로크를 늘리는 방식으로 배기량을 확대했다. 따라서 보어는 1.8리터 사양의 82.0mm로 같지만 스트로크는 93.5mm로, 1.8리터 사양에 비해 스트로크가 매우 긴 엔진이 되었다. 2.0리터 베타 엔진은 150~156마력/6,000rpm의 최고출력과 19.0kg.m/4,500rpm의 최대토크를 낼 수 있었다.
베타 엔진의 가장 큰 특징으로는 동급의 엔진에 비해 무거운 중량을 들 수 있다. 이는 당시 현대자동차의 자체 기술로는 실린더 헤드와 블록에서 일어나는 열에 의한 변형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워서 설계 상의 마진을 고의적으로 넉넉하게 만든 데 있었다. 이 때문에 베타 엔진은 1.8리터 사양이 135.6kg, 2.0리터 사양은 144kg에 달했다. 2.0리터 사양의 중량은 그 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세타 2.0 엔진에 비해 10kg이나 무거웠다. 이 넉넉한 설계를 통해 베타 엔진은 실린더 헤드와 블록의 내구성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양산차의 엔진으로서 기본적인 설계 상에 낭비 요소가 있었다는 이야기도 된다.
현대 베타 엔진은 현대자동차의 초대 아반떼의 1.8리터 모델을 통해 시장에 투입되었다. 1.8리터 베타 엔진을 탑재한 아반떼 1.8 모델은 수동변속기 모델을 기준으로 197km/h의 최고속도를 낼 수 있어, 엘란트라 1.6리터 모델을 이은 고성능으로 어필했다. 그리고 1996년 등장한 스쿠프의 후신, 티뷰론을 통해 2.0리터 사양을 도입하면서 베타 엔진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이후 베타 엔진은 티뷰론과 투스카니 등에 꾸준히 탑재되었다.
현대 베타 엔진은 2000년대에 들어, 알파 엔진과 함께 개수에 들어갔다. 베타-II로 명명된 업그레이드판 베타 엔진은 가변밸브타이밍 기구(Variable Valve Timing, VVT)를 채용하면서 출력과 효율을 향상시켰고, 그에 따라 143마력/6,000rpm의 최고출력과 19.5kg.m/4,800rpm의 최대토크를 낼 수 있었다. 수치 상의 성능이 떨어진 이유는 90년대를 전후하여 출력 측정 방식이 기존 GROSS 방식에서 NET 방식으로 변화함에 따라 양산차 출력 표기가 전체적으로 낮아진 데 따른 것이었다. 당시 티뷰론에 얹힌 2.0 베타 엔진들은 NET 기준으로 140마력 미만의 출력을 낸다고 보면 되므로, 확실히 성능 향상이 이루어진 것이 맞다.
베타 엔진은 현대자동차의 엔진 중 델타 엔진과 더불어 튜닝 시장에서 유독 각광 받은 엔진이기도 하다. 그 이유로는 상술한 설계 마진에서 비롯된 내구성, 그리고 티뷰론 이후 투스카니까지 이어지는 현대자동차 스페셜티카 라인 및 아반떼의 고성능 버전에 꾸준히 탑재되면서 수요가 증가한 점 등을 꼽을 수 있다. 특히 설계 마진에서 비롯된 내구성은 슈퍼차저나 터보차저 등의 과급기를 장착하는 데 있어서 다른 엔진에 비해 유리하게 작용했다.
현대자동차 베타 엔진은 아반떼와 티뷰론, 투스카니 외에도 다양한 모델에 걸쳐 두루 사용되었다. 1.8리터 사양은 중형세단 EF 쏘나타의 1.8리터 모델과 기아자동차 옵티마의 1.8리터 모델에 채용되었으며, MPV 모델 라비타에도 채용되었다. 또한 옵티마의 후속 모델로 등장한 기아 로체의 1.8리터 모델에도 탑재되었다.
2.0리터 사양의 베타 엔진은 상술한 3차종 외에도 미니밴 모델인 트라제 XG에도 채용되었다. 아반떼XD의 플랫폼을 기반으로 개발된 준중형 SUV 투싼의 가솔린 모델에 채용되었으며, 같은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는 기아 쎄라토와 스포티지(2세대) 모델에도 탑재되었다. 내수시장용의 현대-기아 차종 중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탑재된 차종은 2008년까지 생산된 투스카니의 2차 페이스리프트 모델이다. 이 차종을 끝으로, 현대 베타 엔진은 주역의 자리에서 내려오게 된다. 그리고 이후 현대자동차의 2.0리터급 중배기량 엔진은 새롭게 개발한 세타 엔진과 누우 엔진이 대신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