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1일 목
성모성월의 마지막 날이다. 그래서 빈센트 수녀원에서는 "성모의 밤" 신심행사가 있었다.
조용환 아저씨는 퇴원하시고 이종하 아저씨는 SCU 로 가셨다. 그래서 새로 두분이 바로 입원하셨다. 이종하씨 아주머니는 걱정을 많이 한다.
저녁이 형이 오기로 했는데 오지 않아서 "토룡 엑기스"를 가져가지 못했다.
6월 1일 금
예수 성심 성월이다.
내일이면 퇴원하게 된다. 내 침대에 먼저 있던 이세창 아저씨가 갑자기 생각난다. 위암으로 고생하셨던 아저씨가 지금은 어떻게 되었는가 모르겠다.
5병동 219호에서 이제 퇴원한다. 병실은 벌써 새로운 사람들로 차게 되고 이종하 아저씨는 SCU에서있는데 매우 괴로와 하신단다. 남은 생이 그리 많지 않다고 한다. 그도 그럴 수밖에. 아직 맏이도 시집보내지 못한 나이에 홀로 된다는 것 그리고 남편의 죽음이 너무도 갑자기 닥쳐왔기에 받아들이기가 어렵다는 것 때문이리라.
나의 어머니는 벌써 4년전에 그 고통을 치르셨지만.......
오늘 또 매교동의 "상훈" 엄마라는 자매님이오셨다. 그동안 나를 위해서 많은 기도와 방문을 해 주셨다. 오늘은 바지와 셔츠를 사다 주셨는데 매번 먹을 것도 가져다 주셔서 너무나 감사스럽다. 그리부유하지도 않은 처지에 아니 가난한 처지인데도 신학생이라는 것 때문에 나에게 잘 해 주셨다. 내일 퇴원 때 오신다는데.... 내가 그 자매님께 해 드린 것은 없지만 그 가정을 위해서 기억날 때마다 기도를 바칠 것을 다짐한다.
내일 고백성사를 보고서 퇴원했으면 좋으련만 어찌 될런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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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다시 SCU 생활을 하다.
출혈로 인해 다시 SCU로 올라와 지혈을 하고 SAND BAG(모래 주머니)을 하면서 며칠을 보냈다. 차츰 안정되면서 회복하는 듯 싶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2월 5일 부대로부터 "전역증"을 받은 저녁에, 미음을 한 숟가락 뜨다가 그만 오바이트를 했다. 속에서 미식미식한 냄새가 나더니 신물이 넘어왔다. 식사를 그만두고서 한숨을 잔 것 같다. 그런데 그날 밤에 갑자기 선지 같은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 간호사들이 달려와 퍼스팬을 대었는데 두번 "우억"하면 하나 가득 되었다. 그러기를 한 두시간, 의사가 올라와 호스를 코에 꼽고서는 위로 찬 셀라인과 암포젤을 주사기로집어 넣었다. 빼내면서 출혈을 멈추게 하고자 애썼다. 엘튜브를 꼽는데도 무척 힘이 들었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다. 잠시 멈추는 듯 했지만 자정을 넘어서는 더욱 심했다. 여의사가 내가 토해내는 피를 받느라고 고생했다. 깊은 밤 늦은 시각이었지만 학교로 최신부님께 전화를 했다. 30여분 지나서 병원에 나타나셨다. 무척 빨리 오신 것이다. 그 때가 새벽 2시경이라고 기억된다. 신부님은 나를 안정시키면서 성서의 시편을 계속 봉독해 주셨다. 어머니는 나의 모습을 보고서 울음을 멈추지 못하셨다. 호성이 집에 전화하여 형도 새벽에 왔다. 모두들 심한 걱정을 했다. 계속되는 출혈로 나의다리가 저려 오기 시작하고 온 몸은 비에 흠뻑 젖은 듯 땀에 젖었다. 결국 아침 7시까지 (8시까지인지도 모른다) 출혈을 하다 나는 정신을 잃었다. (지금부터 쓰는 것은 나중에 다른 사람 - 엄마, 신부님 등- 에게 들은 것이다.)
그 후에 급히 외과 선생님들이 모여서 위내시경을 찍어보았나 보다(이것은 악간 기억이 난다.) 그런데도 출혈 원인을 찾지 못했다.그래서 방사선과로 가서 특수 촬영을 해본 결과 복부의 대동맥이 터진 것임을 알아내었나 보다. (터진 부위를 찾은 것도 천행일 정도로 빨리 찾았다 한다. 더 늦었으면 나는 죽었으리라.) 하지만 엄청나게 쏟은 피를 보충하기 전에 그 동맥을 막아야 했다. 그것을 막는 기술은 힘든 모양이었나 보다. 방사선 과장님(천기성 선생님)이 의술을 발휘하여 터진 동맥을 약을 주입하여 떼웠다 한다. 그래서 나는 일단 큰 고비를 넘기고 남은 일은 많은 양의 피를 공급받는 일이었다.
운이 좋아서인지, 하느님의 도우심인지 2월 6일은 교구 사제 총회가 있어 많은 신부님들이 교구청에 모여 계셨다 한다. 그래서 즉시 교구청에 연락하여 학장 신부님과 몇분 신부님이 오셔서 학교와 신학생들에게 연락하여 B형 피를 가진 사람을 불러 보았단다. 그러기에 앞서서 빈센트 수녀원과 병원내에 방송하여 B형 피를 구했다 한다.
완전히 의식을 잃었던 나는 수녀님과 병원 직원들, 신부님과 부제님 신학생들의 뜨거운 피를 수혈 받아 차츰 의식을 회복하게 되었다.
눈을 떠보니 SCU 침대였다. 다리에도 Cut down을 해 수혈을 하고 있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이날 내가 받은 피는 모두 33팩이었다 한다. 약 10,000 cc에 가까운 양이다.
최신부님의 말로는, 내가 마지막으로 외친 소리는 "예수님! 난 몰라요"라 했다. 물론 나는 기억 못한다.
2얼 6일 이후로는 큰 일없이 회복하여 나갔다. 물론 여러가지 어려움은 여전했다. 2월 27일에는 다시 SCU에서 7병동 325호로 내려갔다. 중환자실이 모자라서였다. 병동에 가니 치료가 SCU만 못해서 과장님께 다시 SCU로 보내 달라고 해 3월 2일에 다시 SCU로 갔다.그리고는 더 회복되어서 3월 13일에는 SCU -> 5병동 219호로 내려와 6월 2일 퇴원하는 날까지 두달 보름 정도를 지내게 되었다.
첫댓글 숙연해집니다. 요즘같은 날씨에는 통증이 심하실텐데...주님! 우리 신부님을 특별히 더 사랑해주셔요.
정말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으셨군요~신부님!!건강관리 잘 하셔야겠네요^^요즘 구역판공때문에 힘드실텐데..... 주님!주님의 마음닮은 우리 신부님 건강 늘 지켜주세요.아멘!!
저 잘 지내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기도 감사드립니다. 시련과 고통의 이면에는 은총이 숨겨있음을 저는 깨달았답니다.
우리 신부님 홧팅~~~~~~~~~~
그 때의 기억은 정말 생생합니다. 10,000cc는 1,000cc 맥주잔으로 열 잔입니다.....많이 마셨죠?
예수님 난 몰라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많은 협조자를 신부님을 위해서 보내주셨네요... 신부님 홧팅
갑자기 팔다리가 저리는 느낌이에요..어떻게 견디셨을까...
빈마음 08.12.10 02:14
저 잘 지내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기도 감사드립니다. 시련과 고통의 이면에는 은총이 숨겨있음을 저는 깨달았답니다
빈마음 08.12.11 03:30
그 때의 기억은 정말 생생합니다. 10,000cc는 1,000cc 맥주잔으로 열 잔입니다.....많이 마셨죠?
이렇게, 이렇게 말씀하셨던 우리 바르나바 신부님은, 지금... 지금은 어디에 ㅠㅠ
잘 지내고 있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30년전 교통사고 후 투병생활의 기억 정말 생생하다며 말씀하셨던 우리 신부님.
왜 지금은 우리랑 우리곁에 안 계시고, 소복히 내린 하얀 눈을 이불삼아 누워계시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