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영화 <When harry met Sally>(1989)는 <스탠 바이 미> <어 퓨 굿 맨> 등의 영화로 친숙한 로브 라이너 감독의 상큼한 멜로드라마. 빌리 크리스탈과 맥 라이언이 주연했는데, 맥 라이언의 가상 오르가즘 연기는 불후의 명장면(?)이었다.
음악을 담당한 해리 코닉 주니어는 이 영화의 OST가 그의 출세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이후 펑키 음악을 하지만 이때만 해도 피아노 연주에 빅밴드를 지휘하며 보컬도 했다. ‘It had to be you’는 클럽 연주에서도 자주 들리는 명곡이다.
사랑의 행로
영화 <The fabulous baker boys>(1989)는 형제 피아니스트와 여성 보컬리스트의 이야기를 다룬 멜로드라마. 15년째 변함없는 레퍼토리로 클럽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두 형제, 그리고 변화를 위해 새롭게 합류하게 된 여가수 수지와의 갈등과 사랑을 그렸다. 보 브리지스와 제프 브리지스 형제, 미셀 파이퍼 주연. 주인공들이 연주인들이니 연주 장면이 꽤 많이 나온다.
제프 브리지스는 그가 출연한 영화 중 가장 근사한 모습이 아니었나 싶다. 미셀 파이퍼의 매력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OST는 데이브 그루신이 담당했다. 미셀 파이퍼가 직접 노래한 ‘My funny valentine’ ‘Makin′ whoopee’ 두 곡이 이 앨범의 백미다. 영화 중 미셀 파이퍼가 오디션을 받을 때 부른 ‘More than you know’가 수록되지 않은 것이 몹시 아쉽다.
모 베터 블루스
영화 <Mo′ better blues>(1990)는 본격적인 ‘재즈 영화’라 할 수 있다. 영화 내용도 그렇고 OST도 그렇고 꼭 감상해 봐야 하는 작품이다. <말콤 X> <브루크린의 아이들> 등의 메가폰을 잡았던 스파이크 리가 감독했는데, 그 특유의 원색 대비와 내러티브를 만끽할 수 있다. 물론 인종문제로 접근할 수도 있겠으나, 음악을 생의 전부로 알던 젊은 트럼펫 연주자의 인간적 성숙을 영화의 골간으로 보는 게 타당하겠다. 덴젤 워싱턴이 트럼펫 연주자로 나오고, 웨슬리 스나입스가 색소폰 연주자로서 덴젤 워싱턴의 경쟁자로 공연한다.
OST는 스파이크 리의 부친인 재즈 베이스 연주자 빌 리와 마샬리스 형제 중 막내인 델피요 마샬리스가 프로듀싱을 맡았다. 주제곡 ‘Mo′ better blues’는 빌 리의 작품이다. 상쾌한 펑키 리듬의 블루스가 듣는 이의 귀에 쫙 달라붙는다. 연주는 브랜포드 마샬리스 쿼텟과 트럼펫 연주자인 테렌스 브랜차드가 함께 했다.
이 앨범에서 브랜포드 마샬리스는 블루스, 프리, 밥, 그리고 발라드, 보컬에 애시드 재즈까지 다양한 재즈 음악을 선보인다. OST 자체가 하나의 완성된 음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Harlem blues’라는 보컬 곡은 주연 여배우인 신다 윌리엄스가 직접 불렀다. 프로가 아니어서 다소 구성진 맛은 덜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호소력이 더 크다. 테렌스 블랜차드는 윈튼 마샬리스가 1981년 아트 블래키의 밴드에서 독립해 나올 때 그 대타로 활약한 트럼펫 연주자다. 트럼펫을 전혀 불지 못하는 덴젤 워싱턴의 연주 연기를 지도해 주었다고 전해진다. 립싱크 장면이 살짝 보이긴 한다.
버드
영화 <Bird>(1988)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특유의 냉정한 영상 감각으로 찰리 파커의 일대기를 그려낸 전기 영화다. ‘버드’는 재즈 색소폰 명인 찰리 파커의 별칭으로, 모든 한계를 뛰어넘은 자유로운 영혼을 상징한다. 짧은 생애를 비극적으로 마감했기 때문에 그 상징성은 더욱 증폭된다. 찰리 파커 역에는 <크라잉 게임>에 나왔던 포레스트 휘태커가 나오는데, 학생 때 클라리넷을 연주한 경험을 살려 거의 완벽에 가까운 연주 연기를 선보인다. 이 영화 역시 필히 감상해야 할 작품이다.
15세 때 찰리 파커의 연주를 목도한 적 있는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알아주는 재즈광이다. 이 영화의 OST를 만들 때 연주가 비슷한 정도로는 안 된다고 판단해 찰리 파커의 연주 녹음을 그대로 살렸다고 한다. 그리고 다른 세션은 새롭게 더빙해 붙인 것이다. 물론 그래서 찰리 파커의 음반을 들었을 때와는 묘한 차이가 있다. 그러나 찰리 파커의 대표곡들을 망라해서 감상할 수 있으니 이만한 기쁨도 없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영화 <The bridges of Madison County>(1995)에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또 나온다. 원래 스티븐 스필버그가 나섰다가 포기하고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주연과 감독을 다 맡았다. 최고의 여배우를 꼽을 때 빠지지 않는 메릴 스트립이 여주인공이다.
영화 <사선에서>를 통해 피아노로 ‘Blue in green’을 연주하는 등 피아노에 일가견이 있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이 영화의 주제곡까지 작곡했다. 영화의 OST 앨범은 두 사람의 보컬리스트에게 대부분이 할애되고 있는데, 다이나 워싱턴과 자니 하트만이 바로 그들이다. 바바라 루이스와 아이린 크롤이란 여가수의 곡들도 한 곡씩 들어있다. 좀 차분한 재즈를 선호하는 사람이라면 자니 하트만이 좋을 것이다. 보컬 컬렉션으로 생각하고 접근하면 좋을 음반이다.
그밖에도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적지 않은 재즈 영화가 있었다. 재즈는 내용상 재즈와 상관없는 영화에도 많이 쓰였다. 루이 말 감독의 <사형대의 엘리베이터Ascenseur pour l'échafaud>(1958)는 마일스 데이비스가 음악을 담당한 것으로 유명하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커튼 클럽The Cotton Club>(1984)은 그야말로 빅밴드 시대의 풍경화 같은 영화다. 우리 앨런의 <브로드웨이를 쏴라Bullets Over Broadway>(1993)에도 빅밴드 스윙 재즈가 배경에 깔린다. 모던 재즈의 피아노 형식을 완성한 인물 버드 파웰을 다룬 전기 영화 <라운드 미드나잇Round Midnight>(1986)에는 덱스터 고든과 수많은 실제 연주자들이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