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재가에 머물면서
비구 스님으로부터 법을 듣고서
티 없는 법, 열반
떨어지지 않는 경지를 보았습니다.*
그런 나는** 아들과 딸과
재물과 곡식을 버리고
머리를 깎게 하여
집 없이 출가하였습니다.
식카마니였던 나는
올곧은 도를 닦았습니다.***
탐욕과 성냄과 그것과 함께 작용하는
번뇌를 버렸습니다. §
비구니 구족계를 받고
전생의 태어남을 기억해 내었습니다.
신성한 눈[天眼]이 청정하게 되어
때가 없고 잘 닦아졌습니다.
원인에서 생겼고 부서지기 마련인 §§
형성된 것들을 남이라고 보고 §§§
모든 번뇌들을 버렸으며
나는 [모든 번뇌가] 껴졌고 적멸을 이루었습니다.”
agārasmiṃ vasantīhaṃ, dhammaṃ sutvāna bhikkhuno.
addasaṃ virajaṃ dhammaṃ, nibbānaṃ padamaccutaṃ.
sāhaṃ puttaṃ dhītarañca, dhanadhaññañca chaḍḍiya.
kese chedāpayitvāna, pabbajiṃ anagāriyaṃ.
sikkhamānā ahaṃ santī, bhāventī maggamañjasaṃ.
pahāsiṃ rāgadosañca, tadekaṭṭhe ca āsave.
bhikkhunī upasampajja, pubbajātimanussariṃ.
dibbacakkhu visodhitaṃ, vimalaṃ sādhubhāvitaṃ.
saṅkhāre parato disvā, hetujāte palokite.
pahāsiṃ āsave sabbe, sītibhūtāmhi nibbutā.
[행장] “사꿀라 장로니(Sakulā theri)는 사왓티에서 바라문 가문에 태어났다. 그녀는 사리를 분별하는 나이가 되어 스승님께서 제따와나를 수용하실 때 믿음을 얻어서 청신녀가 되었다. 나중에 어떤 번뇌 다한 장로의 곁에서 법을 듣고 절박함이 생겨서(sañjāta-saṁvegā) 출가하였고 위빳사나를 확립한 뒤 노력하고 정진하여(ghaṭentī vāyamantī) 오래지 않아 아라한됨을 얻었다. 장로니의 일화는 『아빠다나』 에도 나타나고 있다. …
아라한이 된 뒤 [전생에] 닦았기 때문에 신성한 눈의 지혜(天眼通, dibbacakkhuñāṇa)에 자유자재함(ciṇṇavasī)을 얻었다. 그래서 스승님께서는 [『앙굿따라니까야』「으뜸품」(A1:14)에서] 그녀를 천안을 가진 비구니들(dibbacakkhukā bhikkhunī) 가운데서 으뜸가는 위치에 놓으셨다.(A1:14:5-8) 장로니는 자신의 도닦음을 반조한 뒤 희열과 기쁨이 생겨서(pīti-somanassa-jātā) 감흥어를 통해서 이 게송들을 읊었다.” (ThigA.94)
* “’티 없는 법, 열반 / 떨어지지 않는 경지를 보았습니다(addasaṁ virajaṁ dhammaṁ, nibbānaṁ padamaccutaṁ).’라고 하였다. 탐욕의 먼지 등(raga-rajādi)이 존재하지 않음(abhāva)을 통해서 ‘티 없고(virajaṁ)’, [갈애라는] 밀림으로부터(vānato) 벗어났기 때문에 ‘열반(nibbānaṁ)’이다. 떨어짐이 없기 때문에(cavanābhāvato) 그리고 증득한 것들이 떨어지지 않는 원인을 가졌기 때문에(accutihetutāya) 열반은 ‘떨어지지 않는 것(accutaṁ)’이다. 그리고 나는 1000가지 방법으로 장엄되었고(sahassa-nayapaṭimaṇḍita) 봄[見]이라 불리는(dassana-saṅkhāta) 법의 눈[法眼, dhamma-cakkhu]으로 ‘경지(padaṁ)’라는 이름을 얻은 무위법(asaṅkhata-dhamma)을 ‘보았다(addasaṁ)’라고 읊고 있다.” (ThigA.94)
** “’그런 나는(sāhaṁ)’이라고 하였다. 그런 나는 앞에서 설명한 방법으로 예류자(sotāpannā)가 되었다는 말이다.” (ThigA.94)
*** “’올곧은 도를 닦았습니다(bhāventī maggamañjasaṁ).’라고 하였다. 중도(中道)가 됨(majjhima-paṭipatti-bhāva)을 통해서 올곧은(añjasa) 더 높은 도(uparimagga)를 일으키면서(uppādentī)라는 말이다.” (ThigA.94)
§ “’탐욕과 성냄과 그것과 함께 작용하는 / 번뇌를 버렸습니다 (pahāsiṁ rāga-dosañca, tadekṭṭhe ca āsave).’라고 하였다. 탐욕과 성냄과 더불어(rāga-dosehi) 함께 생겨 작용하고(sahaj-ekaṭṭhā) 버려질 때 함께 작용하며(pahān-ekaṭṭhā ca) 세 번째 도(불환도)로써 없애야 하는 번뇌들(tatiya-magga-vajjihā āsavā)을 ‘버렸다(pahāsiṁ)’, ‘근절하였다(samucchindiṁ)’는 말이다.” (ThigA.94)
§§ ‘부서지기 마련인’은 palokita를 옮긴 것이다. 여기서 palokita는 palujjati(pra+√ruj/luj, rujati, Sk:rujati, +te, 부수다, break)에서 파생된 단어로 부서짐을 뜻한다. 『테리가타주석서』는 “부서지는 고유성질을 가진 것들을(palujjana-sabhāve), 부서지기 쉬운 것들(pabhaṅgune) 통찰지의 눈(paññā-cakkhu)으로 본 뒤” (ThigA.94-95)라고 이 문맥을 설명하고 있다.
§§§ “’형성된 것들을 남이라고 보고(saṅkhāre parato disvā)’라고 하였다. ‘형성된 것들(saṅkhāre)’이란 삼계에 속하는 형성된 것들(tebhūmaka-saṅkhārā)이다. ‘남이라고(parato)’는무아라고(anattato)라는뜻이다. ‘원인에서생겼고(hetujāte)’란조건에의해서일어난것들(paccayuppannā)을말한다.” (ThigA.94)
- 초기불전연구원 번역, 주해
첫댓글 사~두 사~두 사~두 _()_
사~두 사 ~두 사 ~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