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약 1년전 오징어게임이 한창 유명했을 때.
할머니 댁에 내려와있던 나와 엄마, 오빠는 넷플릭스로 오징어게임을 봤다.
그렇게 잘 보는가 했는데 갑자기 나와 엄마는 오빠에게 화를 냈고 결국 우리 둘이서만 계속 보게되었다.
오빠에게 화를 낸 이유는 바로! 오빠가 배속을 한 상태에다가 15초 앞으로가기를 계속 눌렀기 때문이다.
재밌게 보고있는걸 배속까진 이해하겠다만 계속 앞으로 스킵하니 결국 터져버린것이다.
지금까지도 오빠의 이런 배속 사랑과 앞으로감기는 여전하다.
난 가끔 궁금했다. 저렇게 하는게 보는건가? 안보는거랑 마찬가지 이지 않나?
하지만 거기에 오빠는 항상 반박을 해왔다. ‘내가 그렇게 봐도 줄거리랑 사건들은 다 안다니깐? 물어봐봐 내가 다 맞춰볼게'
근데 또 신기하게 내용은 잘 알고있긴 하다.
그렇게 신기해 하던 찰나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 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오빠만 그런게 아니였구나..’라는 생각과 오빠와 같은 이유에서 그러는건지 궁금해 책을 읽기 시작했다.
(빨리감기해서 보는 사람들은) “작품을 감상한다"보다 “콘텐츠를 소비한다"라고 말하는 편이 더 익숙하다.
작품을 접하고,음미하고 몰두하는 것만으로 독립적인 기쁨과 희열을 느낀다면 ‘감상’이라고 할수 있다. ‘소비'에는 다른 실리적인 목적이 수반된다. ‘다른사람과 소통하기 위해' 작품을 보는 행위가 이에 속한다.
시청자는 영상 작품을 소비할수도 있고 감상할수도 있다.
나는 오빠와 달리 빨리감기를 해서 보지 않는다.오히려 놓친 대사나 좋았던 연출들을 다시 10초 뒤로가기 해서 돌려보는 스타일이다. 근데 저 말을 보니 오빠와 나에게 딱 들어맞았다.
오빠는 주로 줄거리 또는 왜 유명한지 궁금하다는 목적을 가지고 콘텐츠를 소비하는 식이였다.
물론 나도 왜 유명한지 궁금해서 보기도 하지만 각 인물들의 서사나 오마주되는 장면들을 보는게 내 목적이라 나는 작품을 감상하는 식이었다.
그래서 콘테츠 소비하는건 나쁘냐?? 아니다.
책에서도 작가는 이를 식사에 비유하며 설명한다.
‘감상'은 식사 자체를 즐기는것이고, ‘소비'는 영양을 계획적으로 섭취하기 위해 골라먹는것
우리가 영양를 계획적으로 골라 섭취하는걸 나쁘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도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을 영상들을 짧은 시간안에 보는게 현명하다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또 배속을 하는데엔 각자만의 이유들이 있겠지만 나는 무서운 장면이 나올것 같으면 놀라지 않기 위해 앞으로가기 버튼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 외에도 그렇게 좋아하는 작품이 아니라면 밥먹을 때나 다른 일,청소 할때 오디오 식으로 같이 틀어놓고 한다. 이처럼 나 또한 영상을 콘텐츠로 소비 하기도 하고 나쁘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좋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최근에 dp 시즌2가 넷플릭스에서 나왔다.
그냥 유튜브 요약본으로 봤던 시즌1과 다르게 이번엔 제대로 보고싶다는 생각이 들어 전 회차를 배속없이 다 보았다. 매 에피소드마다 애잔한 탈영병들의 에피소드와 시즌1 등장인물들이 다시 등장하는것까지.. ‘진짜 잘만들었다!’ 가 다보고 했던 생각이었다. 특히 손석구가 재판장에서 말하는 장면이 좋은 대사와 전달력있는 손석구의 목소리가 잘 어울러져 가장 기억에 남았다.
그런데 그 감동적이었던! 연설장면을! 오빠는 배속으로 봤다는것이다… 과연 내가 느꼈던 그 뭉클함과 감동을 오빠는 얼마큼 느꼈을지.. 배우가 하는 말을 제대로 들었을지도 의문이였다. 이처럼 빨리감기를 하면 영양소를 골라 섭취하듯 메인줄거리들만 쏙쏙 아는게 좋을것 같지만, 영양소를 골라 섭취하는건 보통 다이어트때만 하듯이 평소에는 진지한 장면이라도 원래 속도로 음미하며 보는것이 오히려 그 작품이 나에게 더 도움될 때가 있다.
"영화는 만들어진대로 받아들이며 감상하기 때문에 수동적이죠.. 하지만 빨리감기나 건너뛰기를 하면서 능동적으로 혹은 주체적으로 감상하려는 의사 표현 인지도 몰라요.
하지만 본래 2시간짜리 영화는 2시간을 들여서 볼거라는 생각으로 시나리오를 쓰죠.."
책 속 각본가 고바야시 유지 씨에게 ‘만약 본인의 작품을 관객이 빨리 감기로 보면 어떨 것 같으냐'라고 작가가 한 질문에 답한 것이다.
이처럼 콘텐츠를 나에게 필요한 것만 딱딱 소비하는 것도 좋지만
한번쯤은 제작자의 의도대로 영화 전체를 감미하듯 찬찬히 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 책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 이나다 도요시
이 책을 읽으면서 빨리감기를 하는 사람들의 의견들과 그에 대한 영화제작사들의 생각들까지
전에는 잘 생각하지 못했던 여러관점들에서 볼수 있었던게 좋았던것 같다.
지금까지의 다룬 내용은 겨우 책 중간부분일 뿐 다음엔 급속도로 성장한 ott의 영향과 그로 인한 영상 제작 변화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래서 다음 글에서는 이에 대해 또 글을 써보려고 한다!
(dp시즌2를 보면서 느낀게 많아서 쓰고 싶었지만 스포가 많이 될것같아서 시간이 지나고 볼사람은 다 봤으면 쓸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