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2024년 4월 28일 오후 찬양 예배 설교)
성 경 : 사도행전 1:1-5(신약 187)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복음은 예수님이 출생과 관련한 이야기로부터 시작해서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과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하심에 대해서 기록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다음에 나타나신 이야기가까지가 복음서에 기록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이후의 이야기들 예수님의 승천과 오순절날 성령이 임하신 다음에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된 교회가 사도들을 통해서 가나안 땅으로 확장되어서 전파되고, 베드로 사도와 바울 사도를 통해서 온 세상으로 복음이 전해지는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이란 말은 사도들의 행적이란 의미입니다. 사도들이 행한 일들 즉 성령이 임하신 다음에 사도들을 통해서 이루어진 일들을 기록한 것이고, 신약성경에서는 유일한 역사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도행전은 예루살렘 교회에서부터 시작해서 점차 바울 사도의 사역을 중점적으로 기록을 했고, 사도행전은 성령의 역사를 기록한 것이라는 의미로 성령행전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사도행전의 마지막 부분은 사도행전을 끝맺음 하는 표현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사도행전은 계속되고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는 사도행전을 계속 써 가는 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를 통해서 오늘도 성령님은 역사하시고 있고, 우리는 우리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 속에 성령행전을 계속 써 가는 사람들입니다. 사도행전을 다시 살펴보면서 우리 시대에 우리에게도 사도행전과 같은 역사가 나타나길 기도합니다.
1. 저자와 받는 사람(수신자)
사도행전은 사도들이 행한 일들을 기록한 책이라는 뜻입니다. 사도행전은 누가복음을 기록한 의사인 누가가 기록을 해서 데오빌로에게 보낸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누가 복음에서도 누가는 데오빌로에게 보낸 글이라는 표현을 하고 있고 사도행전에서도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이라고 말함으로써 이 글을 쓴 사람이 이전에 데오빌로라는 사람에게 글을 보낸 적이 있다는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누가복음을 기록한 사람이 사도행전으로 기록해서 데오빌로라는 사람에게 보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데오빌로는 문자적으로는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자’ 또는 ‘하나님의 친구’(’데오스’과 ‘필로스’의 합성어)라는 뜻입니다. 누가는 이미 그의 첫 번째 저서에서도 수신자가 데오빌로라는 것을 밝힌 바 있습니다(눅 1:3). 다만 차이가 있다면 누가복음에서는 ‘각하’라는 존칭이 그에게 붙여져 있다는 것입니다.
데오빌로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습니다. 그분이 누구인지 우리가 정확하게 살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엘렛 지 화잇이란 분은 누가와 데오빌로의 관계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사도행전의 기자는 누가이고 수신자인 데오빌로는 누가가 친하게 교제하던 사람이었다. 데오빌로는 누가에게서 많은 교훈과 큰 빛을 받았다. 누가는 데오빌로의 선생이었고, 여전히 그는 데오빌로를 가르치고 지도할 책임이 있고, 그가 하는 일에서 그를 붙들어 주고 보조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 시대에는 글을 쓰는 사람이 그의 원고를 누구에게 보내어서 검토를 하게 하고 비판을 받는 것이 관례였다. 누가는 그가 신임하던 데오빌로를 택하여 이 중대한 일을 하게 하였다. 누가는 맨 먼저 누가복음에 있는 바 예수님의 생애의 기록으로 데오빌로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그 누가복음 역시도 그가 데오빌로에게 보낸 글이었다.”
아마도 누가와 데오빌로의 관계는 엘렛 지 화잇이 표현한 것이 가장 타당한 것 같습니다.
2.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연결
누가는 데오빌로에게 먼저 쓴 글에 대해서 1-2절에
1:1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1:2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라고 했습니다. 누가는 데오빌로에게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의 공생애와 승천하시는 이야기 까지 기록했다고 했습니다. 누가복음에 기록한 이야기에 대해서
1)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
예수님의 공생애를 이야기 할 때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고, 가르치시고,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를 고치시고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이것을 한 마디로 이야기 하면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하신 것입니다.
눅 11:20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시대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해하고 있었던 하나님 나라는 성령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습니다. 그들이 살아가는 시대는 멸망의 직전의 상황이고 그들의 전통 속에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큰 권세로 임하여서 악한 세력들을 굴복시키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누리는 나라입니다. 바로 그런 나라를 꿈꾸는 유대인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을 말씀하시기 전에 그리고 권능을 말씀하시기 전에 먼저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신 것은 그들의 전통 속에 있는 성령과 권능에 대한 이해를 하나님 나라라는 개념을 통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와 관계해서 두 가지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가 성령을 힘입는 것(하나님의 손을 힘입어)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일입니다. 성령 충만을 받는 것은 곧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 땅에서 이루는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 곧 하나님 나라의 일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우리의 삶의 영역에서 원수 마귀가 물러가고 귀신이 물러가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는 것을 귀신이 물러가는 것입니다.
귀신을 쫓아내는 사역에는 치유와 기적의 사역까지를 포함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하신 일은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고, 하나님 나라의 은혜를 세상에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죽어서 천국가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구원을 받아 천국의 백성이 되는 것과 함께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은총을 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은 하나님 나라가 우리에게 임하게 될 때 우리가 누리게 될 은총에 대해서 친히 가르쳐 주시고 보여주신 것입니다.
누가는 예수님의 사역을 기록하면서 매우 중요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셨습니다. 이 말은 이론 따로 실천 따로가 아니라 이론과 실천을 함께 가르쳤다는 말씀이고 친히 행함을 보여주시면서 가르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이론이 아니라 행함과 나타남이 있는 신앙입니다. 얼마나 많이 배워야 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말씀을 생활에 잘 적용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신학을 공부하면서 종종 성경은 이렇게 작은 책 한 권인데 성경과 관련된 서적은 한도 끝도 없이 많은데 이런 책들이 정말 신앙생활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일까?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성경대로 살면 되는데 왜 이렇게 성경과 관련된 수많은 책들을 읽고 연구해야 하는 걸까?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신학을 잘 알고 성경과 관련된 학문을 잘 아는가를 중요하게 생각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성경대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누가가 강조한 것은 예수님은 행하시면서 가르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행하면서 가르치고 행하면서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믿음으로 인해서 역사를 행하고 신앙의 행함으로 통해서 복음을 전하고 전하는 삶이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예수님의 마지막 당부
누가복음 24:49을 보면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누가는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신 것을 눅24:49절에서 이야기하고 그 이후의 이야기 즉 예수님께서 명하신 일이 사도들에게 어떻게 실제로 이루어졌는지에 대해서 사도행전에 기록하였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행1:4-5절을 보면
1:4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1: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누가 복음 마지막 부분에서 말씀하신 내용을 다시 기록을 했습니다.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의 승천과 관련해서 간략하게 기록했고, 사도행전에서는 조금더 구체적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보내시리니 그것은 위로부터 능력이 입히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그 약속하신 위로부터 입히는 능력이 바로 오순절 날 임한 성령이고 그 성령께서 임하심으로 사도들에게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를 기록하고 있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의 부활의 증거
누가는 여기에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주장하며 입증하고 있습니다. 3절에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누가는 고난 받으신 예수님은 확실하게 부활하셨고 많은 증거로 살아계심을 나타내셨다고 말했습니다.
(1) 나타나셔서 친히 모든 것을 보여주시고 말씀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증거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으로서 그가 살아나셨다(그는 그들과 함께 걷고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그들과 함께 먹고 마셨다)는 사실과 살아나신 분이 다름 아닌 그 분 자신이시라는 사실 모두를 포함하는 것입니다. 그는 그들에게 손과 발, 허리의 상처의 흔적을 여러 번 보여 주셨습니다.
(2) 예수님은 ‘사십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셨다.’이 말은 그 동안 사도들과 함께 항상 계신 것은 아니었으나 그들에게 자주 모습을 보이셨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시자 마다 승천하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믿을 수 있도록 40일간 세상에 계시면서 제자들에게 자주 나타나 보여주시고 부활을 확실하게 믿게 하신 것입니다.
4. 성령을 주시겠다고 약속 하셨습니다.
4-5절을 다시 보면
1:4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1: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예수님은 성령을 주신다고 약속하시면서
1) 떠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기다림보다 먼저 하신 말씀이 떠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특별히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신 것은 예루살렘이 이스라엘 신앙의 중심지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머물러야 할 곳은 바로 성전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심으로 성전 중심의 신앙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하신 성령과 은혜를 받기 위해서 축복을 받기 위해서 떠나지 말아야 할 곳이 있습니다. 그곳은 바로 내게 은혜를 주시고 축복을 주시는 약속된 장소인 교회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중심은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머무는 사람들이 성령을 받고 은혜를 받고 축복을 받습니다.
2)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
요한복음 14장에 예수님은 보혜사 성령의 오심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의 오심은 이미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으로써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위해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요14:16-17절을 보면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4: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우리가 성령을 받는 것은 이미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이고 이미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입니다. 성경은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내용들로 가득 찬 책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아버지가 약속하신 성령을 받듯 성경을 통해서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말씀들을 기억하고 그 약속된 복을 받아 누리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3)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다릴 것을 명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제자들에게 말씀하심으로 제자들은 기대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기다리라고 말씀하시면서 몇 날이 못 되어 기다린 것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다릴 것을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기다리되 오랜 시간의 기다림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곧 임하실 하나님의 역사에 대해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자들의 기대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제자들은 약속된 시간까지 기다려야 했지만 그 때는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대로 기다림으로 오순절날 성령을 받았습니다.
4)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것은 예정된 축복이 임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5절)고 말씀하시는데 예수님께서는 이미 성령을 제자들에게 불어 넣으셨습니다(요 20:22). 그리고 제자들은 성령의 유익함을 알았습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므로 제자들은 측량할 수 없는 은사와 은총과 위로를 받을 것입니다. 제사장들이 성직을 맡게 될 때 물로 세례를 받고 정결하게 되듯이 그들은 사도로써의 성직을 맡게 되는 징표로 성령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성도로써의 징표로 성령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임하신 성령도 역시 약속된 축복입니다.
성령은 약속으로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하나님의 약속 즉 말씀으로 우리에게 주신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으로 부어주시는 성령님을 통해서 우리의 영혼과 삶이 성령의 인도하심 속에 살아가야 합니다.
성령으로 세례 받는 것은 세례 요한의 예언의 성취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에 의해서 그의 세례 사역이 인정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의 이야기를 하시는 것은 이미 요한이 선포하기를 나는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라고 선포했기 때문입니다. 막 1:8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
예수님은 내가 베풀 세례를 이미 요한이 증거 한 것으로 그는 자신은 물로 세례를 주는 자로 묘사하고 예수님을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으로 선포한 것을 상기하면서 요한이 물로 세례를 주었듯이 이제 성령으로 세례를 줄 것이니 너희는 요한의 세례를 받은 것처럼 성령의 세례를 받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신 일들은 곧 성령 세례를 받으므로 우리 가운데 임하게 될 하나님 나라의 일들인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고 성령 충만을 받아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루어 가고 하나님 나라의 축복을 누리는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https://online.fliphtml5.com/yuhpd/ath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