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잠언 27:21]
김혜남 작가의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이란
책을 읽다가 이런 글귀를 보았습니다.
"훨씬 더 행복해질 수 있는 나를 가로막은 것은
바로 나였다.
잃어버린 것을 슬퍼하느라
나에게 다가오는 소중한 것들에
감사할 줄 몰랐다.
훨씬 더 행복할 수 있었는데
만족을 모르는 내 욕심이
그것을 가로막고 있었다."
사자성어로 “가화만사성”이란 말이 있습니다.
집안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되는 의미죠.
행복한 삶을 원십니까?
그 행복의 장애물이
지난 날의 우리 자신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부 사이에서,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놓치고 있진 않나요?
어느 목사님의 글에서 이걸 걸 봤습니다.
"60대 남편은 아내가 외출할 때
어디 가느냐고 물었다고 혼나고,
70대 남편은 같이 가자고 했다가 혼나고,
80대는 이유 없이 혼나고,
90대는 아침에 눈떴다고 혼난다."
두 번째 글은 이랬습니다.
"지혜로운 남편은 이사갈 때가 되면
강아지를 꼭 안고 있답니다.
남편은 놓고 가도 개는 데려가기 때문이라고.
어떤 남편은 자기를 놓고 갈까 봐 겁이 나서
장롱 안에 들어가 있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이 없고
너무 조용하더랍니다.
빠끔히 문을 열고 나와 봤더니
벌써 이사 가고 없는 거 있죠?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붙박이장이었답니다."
cf) 김창옥 교수님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남편들에게 물었습니다.
"아내의 어떤 점이 싫으신가요?
요리를 못해서 그런가요?
돈을 못벌어 와서 그런가요?“
그들의 대답은 하나였습니다.
"말을 기분 나쁘게 하는 게 싫어요."
그래서 나중에 아내들이 모인 자리에서
왜 그렇게 말을 함부로 하냐고 물었답니다.
그러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죠.
"저는,
틀린 말은 안 합니다.
저는,
성격 자체가 한번 아니면 아닌 사람입니다.
원래부터, 성격 자체가.“
그때 교수님이 깨달았데요.
'맞는 말을 하지만 기분 나쁘게 하는 걸
배웠구나.'
이런 부부가 행복하겠습니까?
행복한 가정을 꿈꾸는 우리에게
왜 이런 문제가 생기는 걸까요?
어떻게 하면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을까요?
저는 행복한 가정을 위한
세 가지 중요한 사항들을 나누고자 합니다.
1) 관찰하면 보인다.
이번 주에 광교 호수 공원에 갔습니다.
가만히 벤치에 앉아서 책을 읽으며
묵상을 했습니다.
따스한 햇살이 환하게 저를 비췄죠.
저절로 콧노래가 흘러 나왔습니다.
그러다 시선이 바닥으로 향했습니다.
작은 개미들이
부산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어요.
처음엔 보이지 않았는데
가만히 앉아서 쳐다보니까
이곳저곳에 개미와 곤충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개미도 관찰하면 보입니다.
하물며 사랑하는 가족의 장점이
보이지 않겠습니까?
아이를 처음 키울 때 생각납니다.
그땐 작은 움직임에도 예민하게 관찰했습니다.
조물거리는 입술의 움직임이 신기했고,
꼭 쥐고 있는 손을 보며 귀여웠죠.
잘 때는 또 얼마나 예쁜지
천사가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떨까요?
귀여웠던 입과 손으로
얼마나 많은 사고를 치는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아이가 사랑스럽지 않다는 건
아니에요.
예전처럼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사랑으로 관찰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왜 그럴까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졌어요.
예전보다 내가 할 일이 많고,
아이 역시 커가면서 스스로 할 일이
많아진 거죠.
사춘기가 되면 또 어떤가요?
학업, 연애, 시험 등으로
얼굴 볼 시간도 없습니다.
당연히 관찰하지 못합니다.
칭찬한 거리가 그저 ‘성적표’인 경우가
허다하죠.
이렇게 되면 할 말도 줄고
점점 거리감도 생깁니다.
사랑하는 아빠, 엄마들이여!
하루에 5분이라도 자녀를 관찰합시다.
그러면 보입니다.
고도원의 <잠깐 멈춤>에 보면
이런 글이 있습니다.
"칭찬은 숨바꼭질, 보물찾기와 같다.
되도록 눈을 크게 뜨고,
바싹 다가가야 찾을 수 있다.
진심과 사랑이 담긴 따뜻한 눈으로 봐야
비로소 보이는 것이다."
그러므로 잔소리와 설교를 멈추고
그들이 잘하는 것에 주목해
그것을 칭찬하시길 바랍니다.
2) 귀를 열라.
상대방의 말에 귀담아 줄수록
대화는 즐거워집니다.
귀를 닫아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상대방은 자신을 무시한다고 느낄 것입니다.
대체로 아버지들이 이런 경향이 많습니다.
잘 듣기보단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으니
대충 듣고 자기 이야기를 하는 거죠.
그러면 자녀는 '아빠 또 그러네.'라고 여기며
대화하고 싶지 않아집니다.
자녀와 대화가 단절되어 고민이십니까?
먼저 들어주길 바랍니다.
자녀가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며
가만히 있어 보십시오.
처음엔 말문이 안 열리는 게 당연합니다.
우리도 모르는 사람과 같이 앉아서 식사하는데
핸드폰이나 보지 대화하려 하진 않습니다.
아이들은 아빠에게 많은 상처를 받았던 겁니다.
그러니 차근차근 다가가는 게 중요하죠.
한 두 번 이런 게 반복되면
점차 자녀의 마음도 열릴 것입니다.
그러니 귀를 열고 기다려주십시오.
얼마 전 아들 학교 공개 수업에 갔습니다.
스무 명이 넘는 아이들이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을 했어요.
정말 정신없는 와중에
30년 경력의 담임 선생님은
능수능란하게 아이들을 돌보셨어요.
여기서 한가지 배운 게 있습니다.
선생님은 절대 먼저 자기 말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일단 질문을 하고 기다리셨어요.
충분히 아이의 말을 들으셨어요.
저는 종종 아이의 말을 끊고
“아니, 아니야.”를 반복할 때가 있었어요.
그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배우자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들어주는 게 너무 중요합니다.
들으면 보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성경에서도
비슷한 말씀이 있습니다.
야고보서 1장 19절입니다.
야고보서 1:19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듣지 않고 말만 하다간
성질이 날 때가 얼마나 많나요?
오해하지 말고 들으라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경우도 있죠.
들어야 합니다.
정말 들어야 합니다.
진짜 들어야 합니다.
주님도 우리 소리를 다 듣고 계십니다.
주님만큼은 아니어도 곁에 있는
가족의 소리에 귀를 여시길 축복합니다.
3) 입을 열라.
부부나 부자간에 대화가 없으면
서로 마음을 닫게 됩니다.
건강한 부부일수록 연애할 때처럼
시시콜콜 이야기를 나눕니다.
연애 때를 기억하십니까?
자주 연락하고 안부를 물었죠.
"밥 먹었어요?"
"지금 어디에요?“
지금은 어떤가요?
100만 원이 넘는 스마트폰으로
서로의 생사만 확인하고 있진 않나요?
입이 닫히면 마음도 닫힙니다.
다투고 나면 말을 안 해요.
그게 오래되면 아무리 좋았던 관계도
금이 가기 시작하죠.
이와 관련하여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에베소서 4:26-27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마귀는 우리의 입을 막습니다.
상대방이 소중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입을 여십시오.
’님‘이라는 글자에 점하나 찍으면
’남‘이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마귀는 우리의 입을 막고 점을 찍게 만듭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입을 열어야 합니다.
관심을 갖고, 들어 주는 것을 끝나면 안 됩니다.
만약 도저히 못 하겠다면
하나님께 입을 열어달라고 간구하십시오.
주님은 기회를 주시고
상황을 반전시키시는 분이십니다.
바뀔 것 같지 않던 상대방의 마음도 바꾸십니다.
제가 군대에 있을 때
저를 힘들게 하던 동기가 있었어요.
교회를 가는 것 때문에 저를 핍박했죠.
그렇게 6개월 넘게 대화가 없었어요.
너무 힘들었습니다.
입을 열고 싶어도 기회가 안 생겼어요.
그래서 저는 매일 새벽 기도를 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새벽 큐티 시간에
변화가 있을 거란 확신을 주셨어요.
그리고 그날 오후
그 친구가 먼저 미안하다고 했어요.
그렇게 지금까지도 연락을 주고 받으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엔 크리스천 여자를 만나서
결혼한다고 청첩장까지 보내왔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십니다.
사진작가인 앙리 카르티에 브래송은
이런 말을 했어요.
”나는 평생 결정적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헤맸다.
그러나 인생의 모든 순간이 결정적 순간이었다.“
기회만 보다간 정작 중요한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말이죠.
모든 순간이 결정적인 순간임을 기억하며
놓치지 말길 축복합니다.
요즘 들어 느끼는 게 있습니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빨리 자란다는 사실이에요.
이와 관련하여 이런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휴일에 모처럼 집에서 쉬고 있는데
아이가 와서 말합니다.
"아빠 나랑 놀아주세요!"
그때 저는 손에 쥔 스마트폰을
내려 놓지 못하고 이렇게 말하죠.
"그래, 조금만 이따가 놀아줄게.
잠깐만 기다려."
그렇게 몇 년이 훌쩍 지나
아이는 어느덧 자라 성인이 되겠죠.
얼마 뒤 저는 은퇴를 할 거고,
홀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겠죠.
그제야 아이들에게 다가가지만
이젠 아이가 더 바빠서 시간이 없을 겁니다.
그러니 기회가 있을 때
칭찬을 아끼지 말길 바랍니다.
말 한마디가 아이의 인생을 바꿔놓을 수 있죠.
한 선생님이 학부모와 면담을 하는데
마침 그 반에는 똑같은 이름을 가진 아이가
두 명 있었습니다.
존이라는 학생이었는데,
한 명은 아주 똑똑하고 모범생이고,
다른 한 명은 말썽꾸러기였습니다.
말썽꾸러기 존의 엄마가 왔을 때
선생님은 모범생 존의 엄마가
온 것으로 착각하고 이렇게 말했답니다.
"존이 얼마나 똑똑하고 모범생인지 몰라요.
존 같은 아이가 우리 반에 있다는 게
정말 자랑스럽고 기쁘답니다."
선생님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어요.
그 말을 들은 존의 엄마는
몹시 기분이 좋아 돌아갔죠.
다음날 말썽꾸러기 존이
선생님을 찾아왔습니다.
"어제 엄마한테
저를 그렇게 칭찬하셨다면서요?
그 이야기를 듣고 정말 기뻤어요.
지금까지 한 번도 칭찬을 들어 보지 못했는데
선생님의 칭찬을 들으니까 정말 좋아요.
이제부터는 정말 열심히 잘할게요."
그 후 말썽꾸러기 존은 숙제도 잘해 오고
사람이 바뀌어 모범생이 되었습니다.
선생님의 실수였지만 그것으로 인해
한 아이의 인생이 바뀐 것이죠.
이처럼 우리 말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네 말이 내 귀에 들린대로 내가 행하리라“고
하셨어요.
아이를 위해,
배우자를 위해,
가정을 위해
믿음의 말을 선포하시길 바랍니다.
부정적인 말은 삼가고
긍정의 언어로 씨를 뿌리십시오.
반드시 축복의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총성이 빗발치는 미국의 남북전쟁 당시
너나 할 것없이 유행했던 노래가 있습니다.
특히 에이브러햄 링컨과
그의 부인이 좋아했던 노래죠.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 뿐이리."
가정이야말로 진심으로
몸과 마음이 쉴 수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오늘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나아가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