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석헌, 김교신, 유달영의 스승이자
다원주의 신학의 세계적인 선구자로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다석 유영모(1890~1981)도 성령잉태설을 믿지 않았다.
외국의 경우 토인비는 육체 부활사상은 조로아스터교에서 들어온 것으로 자신은 처녀탄생설과 부활 승천의 역사성을 믿지 않는다고 회고록에 썼고, 톨스토이는 몸의 부활신앙은 아주 저급한 미신이라고 단정했다.
잉태설을 공식 교리로 발표한 것은 1854년 12월 8일, 교황 비오 9세에 의해서였다. 저들 스스로도 1854년에야 마리아 무죄 잉태설을 주장하는 것이 쑥스러웠던지 이에 대해 설명을 덧붙이기를 ‘이 교리는 1854년까지는 가톨릭 교회에서 공식 믿을 교리로 선포되지 않았었지만, 실제로는 이미 여러 세기 동안 교회 안에 전해 온 것이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성경의 어느 곳에서도 마리아가 구세주의 어머니가 될 것이기 때문에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던가, 마리아만이 하나님의 각별한 은총을 받아 무죄 잉태되었다는 것을 뒷받침해줄 만한 근거를 발견할 수 없다. 오히려 성경은 수없이 많은 곳에서 인간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타락하였다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로마 카톨릭이 주장하는 마리아 무죄 잉태설은 잘못된 것이다. 전적 타락이 미치는 범위는 전 생애이다.
죄로 인한 인간의 전적 타락, 전적 무능력은 그의 전 생애를 지배한다. 출생 시부터 타락한 죄인으로 출생한 인생은 죽을 때까지 전적 부패요, 전적 무능력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원죄론 몰라...????
2.회개가 죄 사함은 아니다.
여호와는, 이미 율법을 깨뜨리고 죄를 범한 우리 인간이 어떠한 노력을 한다 해도, 우리의 죄를 조금이라도 가볍게 하거나 씻을 수 없다고 말한다. 만일, 우리의 어떤 노력이나 통회, 수고, 기도, 자학으로 우리의 죄짐을 가볍게 할 수 있다든지 흑은 손톱만큼의 죄라도 씻을 수가 있다면, 여호와가 구태여 예수를 이 땅에 보낼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여호와가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기로 한 이유는, 인간이 범죄하고 난 뒤에는 어떤 수단과 방법을 쓴다 하더라도 인간 스스로는 그 죄를 조금도 가볍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회개하면 죄가 사해진다고 믿는다.
물론, 우리가 죄 사함을 받기 위하여 회개를 해야 한다.
그러나 회개 자체가 죄를 씻어주는 것은 아니다.
사도행전에서, "회개하고 돌이켜 너회 죄 없이함을 받으라" (행 3:19)고 하신 말씀을 보면 쉽게 알 수가 있다.
세례 요한은 요단 강에서 세례를 베풀면서 회개하라고 외쳤다.
많은 사람들이 세례 요한에게 나아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세례를 받았는데, 만일 회개가 죄를 씻을 수 있었다면, 그들의 죄는 요한의 세례를 통해 이미사해졌기 때문에 예수가 올 이유가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예수가 이 땅에 와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이유는, 세례 요한이 회개를 부르짖어 사람들이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지만 그들의 죄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일, 회개하므로 죄가 해결되고 씻어질 수 있다면,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을 필요도 없이 요한의 세례만으로도 우리가 구원받기에 충분하지 않았겠는가?
세례 요한이 요단 강에서 회개를 부르짖고 회개의 세례를 베풀어, 사람들을 예수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한 단계가 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요한의 회개의 세례로만 그쳐 버린다면 그 회개는 아무 의미가 없다. 다시 말하지만, 세례 요한이 우리를 예수 앞으로 인도하고 예수를 소개하는 증인은 되어도 그가 우리의 죄를 씻을 수는 없듯이, 회개가 우리를 예수님 앞으로 인도하는 한 과정이긴 하지만, 절대로 회개 자체가 죄를 씻지는 못한다는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무엇을 하는 데에 마음이 빠져 있기 때문에 참 믿음과 행위를 구별하지 못하고 있다.
만일, 우리가 한번 죄 사함을 받고난 이후에 다시는 범죄하지 않고 죄에 빠지지도 않는다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필요가 없는 것이다.
구약시대에는 어떤 사람이 죄를 범한 대가로 양이 피홀려 죽게 되면 그의 범한 죄가 씻어지지만, 그 이후에 다시 범죄하게 되면 이미 죽은 양의 피가 새로 지은 죄를 씻어주지 못했다.
그러니까 양이 우리의 죄를 인하여 피 흘림으로 말미암아 죄를 사해 놓지만 우리는 또 범죄하기 때문에 여전히 죄 아래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이다.
여호와는 우리가 죄를 사함 받는다 해도 다시 죄에 빠질 수밖에 없음을 알고 우리의 모든 죄를 단번에 해결하기 위한 속죄제물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냈다 한다.
히브리서 9장 11절, 12절에는,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셨다." 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회개란 아무리 스스로 노력한다 해도 얻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차피 인간은 날때부터 죽을때 까지 죄인이기에 ....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1980년 8월6일 이른 아침 서울 롯데호텔 에메랄드룸은 휘황찬란한 조명 아래 자못 엄숙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생중계에 나선 두 방송사의 카메라들은 이 곳에서 개신교 지도자들이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을 위해 출연한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위한 조찬기도회’라는 제목의 ‘집권 예고편’을 찍기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이날 조찬예배는 정진경 당시 성결교 증경총회장(현재 신촌성결교회 원로목사)이 신군부의 맹주인 전두환 상임위원장을 위해 기도를 드리자 절정을 이루었다. “이 어려운 시기에 막중한 직책을 맡아서 사회 구석구석에 존재하는 악을 제거하고 정화할 수 있게 해준 데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 … 전 위원장이 남북통일, 국가의 번영, 그리고 민주화 실현 등 민족의 열망을 이루는데 큰 일꾼이 되어 그 업적이 후세에 남도록 해 달라.”
“하나님의 이름으로 학살자 축원”
신군부는 이날 70분간 계속된 이 기도회를 한국방송공사와 문화방송을 통해 생중계하는 것도 부족해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점심과 저녁 두차례 더 녹화중계하는 ‘정성’을 들였다. 신군부와 그에 결탁한 목사들이 광주학살의 원흉 전두환 장군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정당화하고, 그 사실을 전국 방방곡곡에 전파하기 위해 치밀하게 준비한 게 바로 이 예배였던 것이다.
조찬기도회는 같은 달 16일 최규하 대통령 하야, 21일 전군지휘관회의 전두환 대통령 후보 추대, 27일 통일주체국민회의 체육관 선거, 9월 1일 전두환 대통령 취임으로 이어지는 신군부 집권 시나리오의 ‘핵’이었다.
그로부터 16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이 기도회의 주인공 전두환은 물론 그의 후계자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과 그 하수인들이 무더기로 구속되는 등 과거청산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그러나 80년 8월의 조찬기도회에서도 알 수 있듯이 5·6공의 주역을 위해 협력한 사람들 가운데 종교계 인사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는 게 분명한데도 이들은 여전히 침묵을 지킴으로써 과거청산의 대상이 되기를 거부하고 있다. 상당수의 양심적인 성직자들이 감옥행, 심지어 죽음을 무릅쓰고 군부독재에 저항하는 현실을 외면한 채 권력과의 밀월관계를 담보로 유형·무형의 특혜를 받으며 자신의 안일과 교세확장에 탐닉한 종교인들은 누구일까.
그러나 이들을 밝혀내는 일은 쉽지 않다. 권력은 종교를 필요로 하고, 종교는 권력을 필요로 한다는 말이 있듯이 종교와 권력은 ‘입술과 이’의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양자 사이의 거래는 일반적으로 베일에 싸여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종교계 일부가 정치권에 정치자금을 제공하고, 선거 때 특정 후보를 위해 각종 종교집회를 주선하는 등의 대가로 불법건축 허용, 세금 감면 등의 반대급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러나 그 진상이 밝혀지는 경우는 극히 드문 것이다. 명백히 드러난 사건을 중심으로 과거청산 대상이 돼야 마땅할 종교인들을 불교, 개신교, 천주교 등 3대 종교별로 살펴보자.
상대적으로 과거청산 문제가 심한 곳은 개신교다. 전두환 장군의 대통령 만들기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80년 8월 조찬기도회’에 참여한 교계 지도자들이 아직까지도 공개사과도 안한 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의 조찬기도회에 참석한 개신교 지도자들은 대부분 개별 교단의 총회장급으로 모두 23명. 핵심인사는 글머리에 지적한 정진경 목사를 비롯해 기도, 설교, 축도 등 식순을 맡은 6명이다.
이들은 사회 문만필 보안사 군목(현재 서울강림교회 담임), 국가와 민족을 위한 기도 조향록 기장총회장(현재 생명의 전화 이사장), 한국기독교를 위한 기도 김지길 감리교 감독회장(현재 교회협 자문위원), 군장병을 위한 기도 김인득 장로(벽산그룹 회장), 설교 한경직 예장 통합 증경총회장, 축도 장성칠 목사(사망)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목사들이다.
조찬기도회 참석자가 교단 지도자로
특히 한경직 목사는 개신교계를 대표하는 최중량급으로 4·13 호헌 조치가 발표되고 6월항쟁이 일어나기 직전인 87년 5월 열린 국가 조찬기도회에도 참여해 설교를 맡았다. 개신교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템플턴상을 받기도 한 한 목사는 지금도 한기총 등 보수교단쪽의 연합단체들이 그를 얼굴마담으로 내세울 정도로 한국 개신교의 정신적 지도자 구실을 수행하고 있다.
나머지 17명은 강신명 새문안교회 담임목사, 지원상 루터교 증경 총회장, 이봉성 성결교 총무(현재 한기총 총무), 신현균 성민교회 목사(민족복음화운동본부 총재), 김창인 충현교회 담임목사(예장 합동 증경총회장), 김준곤 한국대학생선교회장, 이경재 감리교 증경감독, 박정근 순복음 중앙교회 목사, 김용도 침례교 총무 등이다.
당시 개신교계의 보수쪽 지도자들이 망라된 이들 가운데 일부는 9년 뒤 진보적 성향의 교회협에 대항하기 위해 한기총을 결성하는데 주도적 구실을 담당해 결과적으로 노태우 정권 유지에 일조한다. 한경직 목사가 한기총의 대표회장을 맡았으며 정진경, 조향록 목사 등이 준비위원으로 참여했다.
또 김창인 목사는 91년 12월 대통령선거운동이 한창 진행될 때 여의도 63빌딩 국제회의장에서 김영삼 민자당 후보와 목사 장로 등 1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나라와 교회를 위한 기도회’에 참석해 “신앙인이 나라의 지도자가 될 수 있는 것에 감사드린다”는 내용의 기도를 드리기도 했다. 정권교체기 등 권력의 핵심에 접근할 수 있는 호기를 결코 놓치지 않고 활용해왔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김 목사를 포함해 조찬기도회 관련자들은 교계 일각에서 줄기차게 제기된 공개사과 요구를 외면한 채 개신교계의 주요 연합행사 때면 단상에 모습을 드러낼 정도로 영향력을 잃지 않고 있다. 교회협은 최근 과거청산 정국과 관련해 시국성명을 발표해 “한국교회의 한편에는 지난 시절 국보위라는 초법적 기구에 일조를 아끼지 않은 지도자들도 있었고, 전직 대통령들의 통치를 정당하게 만든 많은 교회 지도자들이 있었다”며 이들의 회개를 촉구한 바 있다.
그러나 80년 조찬기도회의 주역 23명 중 단지 2명만이 보수권의 양식있는 목사들이 주도해 올초 발표한 참회성명에 동참했을 뿐이다.
치욕의 법난 불구 끝없는 권력 짝사랑
불교계는 대표종단인 조계종이 80년 당시 종권을 놓고 양분돼 집안싸움을 벌이다 가까스로 자율정화의 계기를 마련했으나 결국 신군부에 의해 10·27법난이라는 치욕을 당했으면서도 권력에 대한 짝사랑을 버리지 못했던 경우다. 조계종은 지난 94년 개혁불사를 통해 불교의 자주성을 포기한 채 권력과 밀월관계를 유지하며 이를 방패막이로 교계에 전권을 행사하던 서의현 총무원장 체제를 무너뜨림으로써 어느 정도 자체정화 및 과거청산에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10·27 법난의 진상을 완전히 밝혀내지 못함으로써 과거청산의 짐을 벗어던지지 못하고 있다. 조계종의 기본입장은 80년 당시 집권에 성공한 신군부가 이른바 사회정화를 통해 정권의 정당성을 세우려는 목적아래 종권다툼에 골몰하던 조계종을 희생양으로 삼은 게 10·27 법난의 본질인 만큼, 10·27 부역자는 진상을 밝히고 공개사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계종 종회와 총무원이 지난해 말 정부당국에 10·27 법난의 진상규명과 피해보상을 잇따라 촉구한 것은 이같은 맥락이다. 신군부는 당시 합수단안에 불교계 정화 대책실무반을 설치하고 군 내부 관계자와 불교계 사정에 밝은 군법사 그리고 문공부 불교 담당자 등을 차출해, 이들의 협력을 얻어 10·27 법난을 자행했다.
군 내부 관계자는 지난 89년 국방부가 주최한 10·27 법난 설명회를 통해 서울대 법대 불교학생회 출신인 전창렬 군법무관(변호사 개업)과 양근하 보안사 소령(현재 국립묘지 관리소장) 등으로 밝혀졌다. 군법사는 송병욱 해군본부 법사(현재 불교방송법인 사무국장), 권오현 전 군법사(현재 대한불교진흥원 사무국장), 최명준 군수사령부 법사(현재 대한불교진흥원 부장), 권오성 27사단 군종참모(현재 00복지법인 원장), 이봉춘 3사관학교 법사(현재 동국대 교수) 등이다. 이들도 개신교계의 80년 조찬기도회 관련자들처럼 진상규명 및 공개사과를 외면하고 있으나, 불교계의 속사정은 당시 군인의 신분으로 명령에 따라야 했던 이들 모두에게 전적인 책임과 사과를 강력하게 요구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조계종이 신군부에 10·27의 명분을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10·27 때 연행돼 고초를 겪은 1백50여 명의 스님 중엔 서의현 전 총무원장과 같은 부류의 스님들이 있는가 하면, 이와 대비되는 송월주 현 총무원장 성향의 스님들도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교황·전씨 공동성명… 물밑거래설 파다
천주교는 다른 종단에 비해 청산 대상으로 특정인을 꼬집어 말하기가 더욱 쉽지 않다. 굳이 거론한다면 국보위 위원으로 참여했던 대구교구의 전달출 신부(당시 대구매일신문 사장 지금은 회장)와 이종흥 신부(현재 계산동 주임) 등 2명이다. 이들은 국보위회의에 한번도 참석하지 않아 천주교계 안에선 크게 문제삼지 않는 분위기이지만 그렇다고 천주교가 5·6공과 물밑 거래를 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는 없다는 게 종교계의 일반적인 정서다. 천주교는 81년 조선교구 설정 1백50주년, 84년 천주교 전래 2백주년, 89년 제44차 세계성체대회 등 3차례의 대규모 행사를 치르기 위해 정부와 긴밀한 협조관계를 구축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성체대회 때 여의도 행사장의 단상을 군인들이 만들어 주었는가 하면, 교황은 84년 방한 때 전두환 대통령과 만나 공동성명서를 발표하는 등의 사실들에 비춰볼 때 천주교도 정권유지에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위로는 김수환 추기경이, 아래로는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사회정의를 위해 노력했지만, 교구별 독립중앙집권체제로 운영되는 천주교의 특성상 80년 이후 교황청이 새로 임명한 주교 10명의 대부분이 보수성향인 것은 천주교의 근본적 한계였다.
4. 질투하는 야훼...
흠... 십계명 제1계로 우린 신이 하나가 여럿이라는것을 알 수 있다
유일신이라는 관념을 여호와 스스로가 깨버리는 것 으로 평가하지
무슨 죄사함이 어떻고 저떻고 를 따진단 말이던가 언제 그랬는데...??
십계명의 첫 번째 계명은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출 20:3)는 것이다. 우리가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개역성서는 히브리 원문을 따라 '너'라는 남성 2인칭 단수형을 사용하고 있다.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를 하나의 인격체로 간주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히브리어 는 우리나라 말과 문법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단어의 배열이 다르며 또한 그 강조점도 다르다. 제 4계명과 5계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로'란 부정형으로 시작된다. 이스라엘의 법과 고대 근동의 법을 연구한 어느 학자는 이스라엘의 법은 대부분 필연적인 법이고 고대 근동의 법은 결의론적 법이라는 결론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필연적 법이란 '∼하라''∼하지 말라'는 절대적인 형태이고, 결의론적 법은 '∼하면, ∼한다'(If∼, then ∼)는 식의 조건부적 형태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형태가 어느 정도의 차이를 설명해 주기는 하지 모든 이스라엘의 법과 모든 고대 근동의 법이 반드시 이같은 유형에 속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점차 밝혀지고 있다. 여하간 십계명은 필연적 법의 형태를 띠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로 이헤예 르카'로 시작되는 첫 번째 계명은 "너에게 있게 하지 말지니라" 는 강한 부정적 금지를 나타내고 있다. 그 다음 목적구는 "나 이외의 다른 신들"로 되어 있다. 여기의 '다른 신들'이 누구 또는 무엇을 가리키는지는 다음절에서 다시 살펴보기로 하고 우선 '나 이외의'란 무슨 뜻인지를 알아보기로 한다. 히브리어의 '알파나이'는 직역을 하면 '나의 얼굴 위에'란 뜻이다. 그런데 여기의 전치사 '알'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개역과 공동번역의 다른 해석이 가능한 것이다. 개역에서는 영어의 'beside'로 해석하여 '나 외(차)에'가 된 것이고, 공동번역은 영어의 'before'로 해석하여 '내 앞에'가 된 것이다. '내 앞에'라고 하는 표현은 야훼에게 제사를 드리는 제의 장소에 다른 신들의 우상이 있으면 안된다는 뜻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나 외에'는 다른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 것이라고 본다. 이것은 유일신론이라기보다는 단일신교론 또는 배일신론을 의미한다고 본다. 야훼가 이스라엘에게 '나 외에'라고 제시한 것은 이스라엘과 야훼 하나님과의 절대 관계를 지적한 것으로 본다. 이것은 일부일처제의 결혼제도에서 세상에 다른 이성이 많이 있으나 결혼 당사자들에게는 각자의 배우자만이 유일한 절대적 관계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스라엘과 야훼가 맺은 시내 계약의 조건 중에서는 계약을 어겼을 때에 따르는 저주가 포함되어 있다(히타이트 조약 문서의 마지막 항목은 축복과 저주로 되어 있다). 그러기에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질투는 곧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다. 야훼가 질투한다는 것은 두 가지 면에서 볼 수 있다. 하나는 야훼가 이스라엘을 향하여 이스라엘의 유일한 하나님이 되겠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백성이 다른 신을 섬기면 벌을 주겠다는 협박이라고 본다. 고대 세계에서는 예배자가 여러 신을 섬길 수 있었으나 이 계명은 다른 신의 예배에 관용을 베풀지 않는 것은 야훼의 질투심 때문이라고 본다. 질투심은 하나님의 열심과 관련이 된 것이다(영어의 jealous는 zealous가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엘리야는 갈멜산상의 대결에서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야훼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왕상18:21)고 외친 것이다. 야훼를 따른다는 것은 둘 중의 하나라는 결단을 요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여호수아는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시요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니 너희 허물과 죄를 사하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만일 너희가 야훼를 버리고 이방신들을 섬기면 너희에게 복을 내리신 후에라도 돌이켜 너희에게 화를 내리시고 너희를 멸하시리라" (수 24: 19-20)고 말한 것이다. 물론 여호수아는 여기서 신인동형동감론을 이용해 인간의 질투 감정을 신에게도 적용시킨 것이다. 제 1계명이 다른 신의 존재는 부정하지 않지만 야훼와 이스라엘간의 관계는 절대적이며 이스라엘이 다른 신에 대해 경애하는 것을 절대적으로 금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신이 위대하다면 무엇 때문에 다른 신에 대해 그렇게 신경을 쓰며 비록 이스라엘이 다른 신에 추파를 던지고 곁눈질을 했다고 해서 자신있게 이를 포용하여 용납할 수 없겠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해 본다. 야훼와 이스라엘과 다른 신(들)과의 관계를 전형적인 애정의 삼각관계로 볼 때 야훼는 지나칠 정도로 의처증(?)을 보이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신명기는 대표적으로 이스라엘이 다른 신에 대해 곁눈질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심한 경우는 "네 동복 형제나 네 자녀나 네 품의 아내나 너와 생명을 함께하는 친구"가 가만히 죄어 다른 신들 곧 사방에 둘러있는 민족의 신들을 가서 섬기자 할 때 "그를 좇지 말며 듣지 말며 긍휼히 보지 말며 애석히 여기지 말며 집에 숨기지 말고 용서 없이 그를 죽이되 죽일 때에 네가 먼저 그에게 손을 대고 후에 뭇 백성이 손을 대라"(신 13 :6-9)고 명하고 있다. 구약성서의 역사는 이스라엘이 어떻게 제 1계명을 깨뜨리게 되었는가를 보여주는 것과도 같다. 그 첫 번째의 경우가 브올지방에서 바알 신을 섬김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입게 된 것이다(민 25 1). 필자는 이 경우 이스라엘의 남자들이 바알 신전의 여창이 가진 성적 매력에 매혹되어 여자들이 시키는 대로 우상에게 절하므로 결국 이방신을 섬기게 되었다고 본다. "그 여자들이 그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백성을 청하여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므로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부속된지라. 야훼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니라"(민 25 :2-3).
이스라엘 남자들은 적막한 광야 40년 유랑을 마친 뒤 농경문화권의 교두보인 브올에서 울긋불긋하고 화려한 바알 신전의 여자들의 육체적인 유혹에 넘어가 술에 취한 끝에 '장난삼아' 바알에게 절했는지도 모른다. 이것은 아마도 바다를 떠돌아다니던 항해사들이 육지에 발을 붙이자마자 홍등가를 찾아 황홀경에 '도취되는 것과 마찰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바알브올 사건을 보도하는 성서 기자는 그 행위 자체가 '음행'(민25:1)이며, 이것은 '바알브올에게 부속' 되는 사건이라는 신학적 해석을 내리고 있다. 학자들은 야훼 신앙이 철저하게 다른 신의 경배에 대해 신경질적으로 배타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것은 신과 신의 대결에선 한 치의 양보도 허용치 않는 '거룩한 잔쟁'의 개념이 적용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앞서 신명기의 경우 이방신을 섬기자고 하는 자는 자식이나 아내라 해도 가차없이 죽이라는 끔찍한 규정은 공동체가 죽고 사는 문제와 관련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방신의 경배는 마치 병균을 몸 속에 들여오는 것과 마찬가지 정도로 보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야훼와 이스라엘이 계약 수립으로 인해 하나의 예배 공동체를 형성해 놓았기 때문에 타신에 대한 경배는 야훼와 이스라엘 사이의 관계 단절에 치명적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다. 우리나라 「춘향전」은 여인이 관권이나 금전 등 모든 유혹을 다 물리치고 끝까지 순결을 지킨 대표적인 이야기이다. 그러나 실제생활에서는 여인뿐 아니라 많은 사람이 조그만 유혹이나 위협에도 자신의 신념을 쉽게 포기하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제 1계명은 야훼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길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과 마찬가지로 한 분만을 향한 경배는 오늘도 계속 유혹과 도전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예수께서도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눅 16 13)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바울도 같은 맥락에서 이같이 말한다.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얍 4 :4).
어째... 여호와란 신은 발정난 여편네 같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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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기독교,,, 이들이 잘못하고 있는 부분이 무엇인가?
이제 그것을 조목조목 따지겠다.(중간중간 안티들이 쓰는 표현이 있습니다.)
1.성령잉태 부인(처녀가 어떡게 아이를 낳을수 있나,,, 개독교는 사기꾼 종교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다. 그리고 사람도 만들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숨을 쉬게 만들고 남자와 여자를 만드신 전지전능하신 신이다. 그 신이 처녀를 애가 가지게 하는것도 못할까... 하나님은 못하는게 없는 신이다.
2.예수쟁이는 지우개냐? 맨날 회개만 하게...
->회개란 말은 죄를 반성하고 다시 돌아온다는 뜻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회개라는 개념을 모르고 있다. 회개란것이 얼마나 좋은가? 자신이 저지른 조그마한 잘못한 일도 신 앞에 나와 경건하게 회개기도를 한다. 하지만 죄 짓고 회개하고 죄 짓고 회개하고 그런 소리가 아니라 회개 말그대로 반성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게 참 회개라 하겠다.
3.목사들은 강간범...
->자칫 기독교 목사님들을 전부 강간범으로 몰수도 있다. 이건 엄청난 죄이다. 그 목사 한사람의 잘못으로 기독교를 미워한다. 엄청난 착오다. 예를 들어보자... 경찰 한명이 죄를 지었다. 그러면 경찰 모두가 다 죄인인가? 승려 한 사람이 강간을 했다. 그럼 승려가 다 강간범인가? 애매한 논리로 기독교를 아무 이유없이 미워하는 안티들...
4.야훼는 질투의 신? 언제는 사랑의 신이라며...
->그렇다.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다. 결코 죄를 보지 못하신다. 죄를 질투한다는 뚯이지 뭐 잘못으로 악의적으로 질투한다는 뜻이 아니다. 안티들은 이 성경구절에 의거해서 질투하는 하나님이라고 한다.
"그것들에게 절 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는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 출 20:5"
우상숭배와 관련된 구절이다(십계명). 우상숭배는 죄다. 곧 하나님은 죄를 용서하지 않으신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