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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9일 국짐당 김민전의원은 국회소통관에서 애국청년단 백골단이라는 청년들을 대동하고나와 기자회견을하여 큰 충격을 주었다. 그 6명의 청년들은 '87년 연대생들이 거리에서 죽음을 무릎쓰고 나와 '독재타도 호헌철폐' 를 외치며 투쟁할 때 이한열군이 쓰러지던 장면 그리고 그 시위학생들을 강제연행한 시위진압 전문부대 백골단의 흰색 철모를 쓰고 나옴으로 그것은 다분히 의도적인 과시임에 틀림없어 보였다. 반정부적인 행위를 하는 자는 누구든 폭력을 동원하여 구속할 것이라는 협박이었으니.
1952년은 피난 수도 부산에서 제2대 대통령을 선거하는 해였는데 당시의 헌법에 의하면 대통령은 국회에서 간선을 하게 되어 있었다. 그 때 국회의원들의 과반수는 절대적으로 이시영을 대통령으로 추대하기로 했으나 이승만은 그것을 절대로 두고볼 수 없었으니. 그리하여 이승만은 '5월특권정치난동'이란 것을 일으켜 헌병과 경찰을 동원하여 이시영지지의 국회의원들을 마구 잡아가두었다. 이승만은 국회의 간선으로는 대통령 재당선이 불가능할 것을 알아 선거를 직선제로 바꾸었으니 일반 백성의 이름 앞으로 해 놓으면 매수 기만 협박 무더기 투표 등을 행하기 쉬우므로.. 결국 그렇게 그는 대통령으로 재집권하였던 것이다.
재선에 성공한 이승만은 그 다음번에는 사사오입 개헌 등을 통하여 장기집권을 할수있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군이 정치적 도구로 전락하였고 결국 이승만은 4.19혁명으로 미국하와이로 망명하고 그곳에서 생을 마친다.
1953년 이승만통치하에서 우리민족의 진정한 독립국가를 세우자는 애국인들은 뜻을 모으기 위해 부산 국제구락부라는 (평소엔 경양식집을 경영) 곳에서 모임을 가지기로 했다. 이시영씨를 필두로 하여 이름있는 양심인들이 모여 뜻을 모으기로 했는데 처음부터 낯선 이들도 들어와 말없이 자리를 잡고 앉아있던 중 조금 있으니 그 사람들이 갑자기 일어나 몸속에 지니고 있던 방망이들을 꺼내 다짜고짜 테이블 의자들을 때려 부시면서 소리를 지르고 조금이라도 반항하는 젊은이들은 마구 구타하며 난동을 부리기 시작하였다. 그자리엔 나의 아버지도 이시영씨를 모시고 앉아계셨으니.. 이시영씨는 그 때 노구로 너무도 큰 충격을 받아 비틀비틀 금정산 자락 한 빈민 초가집에 세들어 시시던 단칸방으로 돌아와 시름시름 앓아 누워 계시다 그 이듬 해 홀로 눈을 감으시었다. 그것이 서울 대저택 대 부동산 소유자였던 그 6형제중 유일하게 생존해 계시던 분의 말로였던 것이다.
이시영씨 형제 가족들 모두 모든 부동산을 팔아 1910년 만주로 가서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독립군들을 양성하여 맹렬하게 독립운동을 하시던 그 분들은 모두 옥중사 하셨지만 단 한분 이시영씨만 살아 돌아오신 것인데. 나는 그 과정에서 모든 것이 감동이었지만 특별히 또 한가지 더 감동적이었던 것은 서울의 모든 토지와 집들을 팔아버린 후 하인과 종들에게 종문서를 태워버리고 퇴직금쪼로 얼마간을 나누어주며 자유롭게 갈길을 가라 했을 때 많은 수가 자진해서 이회영가족을 따라 만주로 따라가서 독립운동에 같이 참가했다는 것. 평소에 그분들이 종들을 얼마나 인간적으로 잘 대해주었던가 인격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얼마나 좋은 영향을 주었던가를 보여주는 스토리이다.
왠만하면 자유를 줄 때 얼시구나하고 떠나 버렸을 텐데.
이회영(이시영의 형님)씨의 조상을 살펴보면 그 부친에게 형님 즉 이시영의 큰 삼촌이 한 분 계셨는데 그분이 바로 나의 직계 조상이시다. 이회영집안은 서울장안 너른 노른자땅을 소유한 대 부호였음에 비해 나의 직손 할아버지는 경북 영덕의 한 벽촌에서 청빈한 선비로 사셨으니 참으로 대비가 된다. 그래도 그 민족사랑의 애국심은 대대로 공통적으로 내려와 그 후손들은 재산이나 목숨을 모두 내던져 조국을 위해 헌신하셨다. 나의 아버지는 평생 많은 스승님을 만나 뵈웠으나 그 모든 이들 가운데 가장 존경하는 분은 아버님 즉 나의 할아버지라고 늘 말씀하셨다.
생에서 어려운 고비를 만날 때마다 예를 들어 취조실에서 사실을 불라고 심한 고문을 당하여 정신이 혼미해져서 비몽사몽 의지력도 사라질 위험에 처할 때 할아버지 영혼이 나타나 '정신 차려라 이놈!'하며 소리를 치시어 이성을 되찾은 일이 많았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니까 할아버지는 평생 아버지의 정신적 지주셨던 것이다.
이회영씨의 큰삼촌 후손이 우리집안이었으니 그때 두집안 후손은 4촌이었고 그 후 이회영의 장손 이종찬과 나의 아버지 이종률은 8촌이 되신다. 이종찬의 자제분들과 나는 10촌이나 되는 셈이고. 이회영의 일가 중 조선의 10대 부자에 든다는 이유원이란 분이 외아들이 병사하자 후손이 없어 평소 지극히 존경하던 집안 이회영의 맏형 이건영을 양자로 삼았는데 이유원이 죽자 이건영이 양평의 그 많은 땅을 하사받았으니 그 땅은 모두 결국 독립운동에 들어간 것이다. 갑자기 급매를 하여 물론 제값을 못받아 거의 반의 반값이나 받았으려나. 그래도 그 액수는 요즘 돈으로 6백억원은 되었다한다. 이회영일가들은 하인들 포함 모두 47명이나 되어 만주로 떠났는데 모두 신흥무관학교 경영에 혼신을 다해서 모여든 조선의 청년들을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일은 보통일이 아닌데 그 모두 안살림을 그분들의 부인들이 도맡아 일했다한다. 매일 수백명의 장골들 밥을 해대는 것이 보통일이었겠는가. 만주의 추위속에 손등은 터졌을 테고.. 아무리 아껴 식사제공을 해도 몇년이 지나자 곡식도 떨어지고 옷감도 떨어져 모두 거지차림이 되었다 한다. 무기구입만 해도 상당한 지출이었을 텐데.
그분들이 1910년 두만강을 건넌 후 그 신흥무관학교는 1911년 첫 졸업생을 배출한 이후 일제의 탄압으로 1919년 문을 닫기까지 3,500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는데 그들은 모두 독립운동에서 현저한 두각을 드러내며 훌륭히 잘 싸웠다고 한다. 전투실력에서 정신적인 무장까지 그들은 일당 백 이상으로 훈련되어있던 까닭이다.
이회영의 장손 이종찬은 정계 은퇴 이후 그래도 정치인들 중에선 그동안 비교적 조용하고 깨끗하게 처신하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괜찮은 평가를 받고 있다. 종로구의 자택 1층에서 할아버지 이회영을 기리는 우당기념관을 운영하면서, 독립유공자 후손들의 장학사업과 대학생들의 사회활동을 후원하고 있고 임시정부 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기도 한데 최근 벌어지는 이른바 '역사전쟁'을 의식한 듯 '김구 이승만이 화해하고, 좌우가 구분되지 않는 기념관을 건립할 것'이라는 포부를 밝히기도 한 것이나 중앙정보부장을 역임하고 민자당 민정당 등 보수정당의 여당의원으로 활동해온 것을 보면 나는 그가 과연 할아버지의 떳떳한 손자 역할을 하고있었나 의문이 간다.
제20대 대통령선거때는 윤석열의 멘토 역할도 하는 등.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런 행보는 그가 이 정부에서 살아남기 위한 최소한 눈가림의 몸부림 아니었을까도 추측해 본다. 그러나 생전에 아버지는 김구 이름만 나와도 꺼이꺼이 우시며 슬퍼하셨고 반민특위를 해체하고 친일파들을 기용한 이승만에겐 치를 떠시던 것을 생각하면 이종찬은 그 조상들을 생각해서라도 그 후손으로서 화해니 뭐니하는 말을 꺼내면 안될 것이다.
지난 1월 19일 서부지법 난동자들의 행패를 보며 나는 등골이 서늘하였다. 애국쳥년단 백골단 이름이 무엇이든 그들이 바로 서북청년단 또는 땃벌대라는 자들의 후예로 그들은 조금도 기죽지않고 면면히 내려와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 아닌가! 제주4.3사건이나 여수 거창사건 등의 후예들.. 그들의 숙주 이승만 박정희 전두한.. 아니 김대중 노무현만 제외하면 윤통까지 모두 같은 족속아닌가. 이제 그 맥락을 끊고 진정한 민족을 사랑하는 대통령이 나와야할 때가 되었으니 아무리 인간이 목숨바쳐 싸워봤자 하늘이 허락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 인가. 어떤 위대한 사명과 복을 주시려고 하늘은 우리에게 그 많은 시련을 내려 단련하셨을까..
그 서북청년단들은 4.19 5.16이후 교회로 숨어들어가 목사로 변신해 활발히 활동들을 하고 있었으니 그것은 그 후 이땅의 기독교가 왜 그렇게 전광훈같은 극우로 미쳐버렸는가 하는 의구심에 대한 설명이된다. 태극기 성조기 이스라엘기를 들고 시위하는 자들의 90% 이상은 모두 기독교인들일 것이다. 김민전 전한길 등이 다 기독교인들이라는 것도 우연은 아니라 본다. 지구상 한국의 기독교처럼 반민족적이고 비양심적인 종교도 없을 것이다. 지난 2월 1일 비내리는 부산역광장에서 전한길은 무대애 오르자마나 먼저 '나는 크리스챤입니다!'라 외치자 우산을 쓰고있는 관중들은 모두 와~! 하고 함성을 지르며 환영했으니..
설전에 우리애는 여늬 주말에 처럼 이번엔 설 직전이라 단골손님 한명만을 데리고 광화문에 나아갔다. 그런데 그 단체에 합류하려면 태극기부대들의 좁은 옆길을 지나가야 했는데 그 좁은 공간엔 덩치좋은 사나워 보이는 청년들이 포진하고 서 있어 지나가기가 겁이 나더라 했다. 간단히 가방만 뺏아 검사해봐도 응원봉이 나올 텐데 그 먼곳까지 가서 되돌아올 수도 없고.. 망설이다가 꾀를 내어 둘이서 그들이 부르는 노래에 맞춰 같이 덩실덩실 춤을 추며 지나갔다. 그들은 미심쩍게 보다가 그래도 통과하게 해 주더란다. 그들도 이제 점점 진화하여 그 광장에 미리 키낮은 접이식 의자들을 좀 넓게 미리 좍 펼쳐놓아 적은 수로도 많은 인원처럼 보이게 하고 그들도 탄핵찬성집회를 본따 무대위에 '젊은'여자애들을 올려 노래를 부르게 하여 흥을 돋구고 있었다고. 알바하는 애들같은데 그애들도 창피했던지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까지 하여 누군지 못알아보게 치장을 했더라한다.
첫댓글 근현대사 중심에 三韓甲族의 家門史가 가슴을 시리게 합니다.
未局은 倭寇를 항복시키면서 왜구로부터 받은 정보로 남반도 통치구상은 이미 완성되었고, 독립투쟁 및 민족주의자 집안은 野로 활동은 가능하나 헤게모니를 쥐는 與로 받아드리는 것을 거부하고 철저히게 파괴하는 것이 미국의 식민지 통치방식이지요.
형태가 조금 바뀌었을 뿐 지금도 같은 메카니즘이 작동
중입니다.
이 대표가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것도 미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마름(허수아비)이 되기를 거부하고 민족 국가를 위하여 앞만 바라보기 때문이지요.
이시영 선생 또한 마름을 거부할 것은 불보듯 뻔하니 未局이 배후에서 작용 했다는 것을 알수 있지요.
다행히 2025년부터 서방문명이 粉碎되고 남북반도가 하나가 되는 대운이 열려 미래의 神道문명의 주체가 되어 세계를 이끌어갈 초석을 다지는 해가 될걸로 보이니 천행입니다.
이재명 대표 또한 본관이 慶州입니다.
이시영 선생께서 이루지 못한 뜻을 펼칠 걸로 보입니다.
선대의 뜻을 계승할 인물이 아닐까 싶어요.
가슴 아픈 역사 잘봤습니다.
이회영쪽이나 나의 아버지나 선조 중에 출중하셨던 오성 이항복의 직계 후손임을 항상 자랑스러워 하셨지요. 선조 때 영의정을 지내시면서도 항상 청렴결백하시고 뛰어나셨던 분이셨다 하시면서.
그런데 이재명씨가 우리 경주이씨라니 정말 영광스럽습니다. 나는 평소 내가 이완용같은이의 후손으로 태어나지 않았음을 항상 고마워하고 있었는데..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시항도 아닌데 얼마나 다행인가 싶어서요.
이항복은 나와 너무 멀어 잘 실감이 안갔는데 우리의 국운을 좌우할 동시대의 훌륭하신 이재명이 같은 본관이라니..
알게되어 다행스럽습니다.
이승만정부때 친일청산을 못해서 우리나라는 극우가 생겨 비극을 만들어 현재까지 숙주가 되어
나라를 분열시키고 있지요
미국은 우리 나라를 사대주의로 만들어 아직까지 자주독립을 못하고 있고
일본은 전범들을 청산하지 못해서 한반도를 침략하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이런 말을 자칭 애국?보수들이 매우 싫어합니다.
빨갱이 종북좌파라면서...ㅋ
이 나라는 이승만,박정희와 반공애국자들이 만들었고
빨갱이 좌파들은 데모만 했다고 ㅋㅎ
@인향만리 그래서
전두환이, 윤석열이가
비록 군대를 동원 계엄내란을 일으켜도,
남북전쟁 유발로 국민들 목숨까지 위기로 몰아도
그 박정희 지지하니까 아무 문제도 없답니다.ㅋ
그들은 빨갱이는 아니니까...ㅋㅋ
이재명은 파렴치한 인간말종 빨갱이?고요 ㅎ
저들의 뇌속이 이렇습니다 ㅎ
아마 죽을 때까지? 안바뀔? 겁니다 ㅎ
허나 또 혹시 모르죠.
어떤 상황에서든? 강력한 어떤 큰 힘? 앞에서라도
자기이익 위해서는
부역하며 살아야 하니까 ㅎ
일제시대 부역처럼...ㅋㅋ
이승만이래 윤석열까지 계속해서 미국의 속국으로만 살아온 불쌍한 우리.. 미국의 삽살개가 아닌 이들은 제명을 못살고 가셨고.
이재명은 간크게도 이제 미군은 필요없다 했으니 벌써 몇번이나 가로갔겠지만 그래도 끈질기게 살아남은 것 보면 분명 이제 하늘이 정해진 길로 가고있음이 틀림없어 보입니다.
정주야 미국은 이제 러시아도 중국도 북한에게도 꼼짝을 못하게 됐으니 그도 하늘의 뜻임에 틀림없다.
근데 모든 것은 사필귀정 죄는 벌을 받는다 했는데 왜 나라의 벌은 일이년이 아닌 수십년 수백년이나 걸려 나타나는 걸까..
너무 오래되었다. 기다리느라 너무 지쳐버린 우리에게 이제서야 서광이 비치기 시작하다니..
이런 비열한 녀석이 있나
저런 괴물이...
살아가면서 흔히 접하는 일상입니다
멀리 아닌 친족에서도 보지요
훌륭하신분 예로 올려놓으셨네요
저도 경주이가 입니다
저 또한 누군가에겐 굿은욕 풍년일수 있겠지요
언제일까요?
서울 화수회관에서 뵙는날 고대합니다
같은 집안이군요 반갑습니다
저는 항렬이 꽤 높은 雨자 돌림인데
우봉님은 필시 제 아래 相자나
그아래 旭자 시겠지요
근데 비열한 녀석이란 이종찬씨를 말하시는 건가요?
통일되는 날 화수회관아니라 어디서라도 모두 만나
춤추고 노래할 날을 기다립니다
@산비탈양 이종찬님은 훌륭하신 민족에 선각자 이십니다
저는 상
자입니다
아짐^^
늘 좋은날 건강하십시오
아름답고 의로운 명문지가 가족사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