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부, 6개월 만에 또 비판 성명, "과도한 콘텐츠 규제, 美기업에 부담 안 돼"
구글·메타·X·틱톡 등 4곳이 규제 대상, 美조야, 정통망법을 또 다른 '차별'로 인식
쿠팡 문제 이어 한미 간 마찰 불거질 우려
사라 로저스 국무부 공공외교 담당 차관이 지난 4월 워싱턴 DC에서 한일 언론과 라운드 테이블을 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국회에서 강행 처리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7일 시행된 가운데, 미 국무부는 8일 국내 유력 언론사에 “네트워크법(Network Act·정통망법) 개정안이 과도한 콘텐츠 규제를 초래하고 표현의 자유를 훼손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심각한 우려(significant concerns)를 갖고 있다”며 “한국은 미국 기업들에 과도한 부담을 부과해서는 안 되며, 법 시행을 표현의 자유에 대한 검열(censorship)을 요구하는 수단(mechanism)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 법은 사이버 공간에서의 ‘허위·조작 정보’와 ‘차별 혐오 표현’에 대한 징벌적 책임을 묻는 게 골자인데, 자의적이고 모호한 규정 때문에 정치권력이 국민·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데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국내외에서 나오고 있다.
국무부 이날 대변인 명의로 된 성명에서 “우리는 개정안 시행이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지 않도록 (이재명 정부와) 주요 이해관계자들, 특히 미국 테크 기업과의 지속적인 대화가 있기를 기대한다” “미국은 모든 사람을 위한, 자유롭고 개방된 디지털 환경(free and open digital environment)을 조성하기 위해 계속 협력해 나갈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트럼프 정부 인사들은 우방인 유럽을 향해서도 디지털 규제로 표현의 자유가 위축 받는 상황에 대해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왔다.
지난해 12월 정통망법이 국회를 통과했을 때도 국무부가 공식 입장을 내고 “개정안이 미국 기반 온라인 플랫폼 사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표현의 자유를 훼손한다” “한국은 디지털 서비스에 불필요한 장벽을 두어서는 안 되고, 미국은 검열에 반대한다”라고 했다.
특히 변호사 출신으로 수정 헌법 1조(표현의 자유) 사건을 많이 다룬 사라 로저스 국무부 공공외교 담당 차관은 개정안이 “한미 기술 협력을 위협한다”고 공개 비판했고, 4월 방한(訪韓) 당시 카운터 파트인 임상우 외교부 공공외교 대사와 만나 이런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로저스는 방한 직후 워싱턴 DC에서 언론사 등과 가진 간담회에서 “표현에 대한 과도한 검열을 제한할 수 있도록 정부와 기업 간 적절한 단계별 소통이 확실히 이뤄지길 원한다”고 했다.
국무부는 이날 “로저스 차관은 올해 초 한국 정부 관계자들과 나눈 생산적인 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면서도 “모호하게 작성된 조항이 플랫폼으로 하여금 표현을 과도하게 검열하게 만들 수 있는 위험성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이며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USTR) 대표.
◇ 쿠팡 이어 정통망법 놓고도 韓美 마찰 우려
정통망법은 허위 조작 정보의 삭제·차단 의무, 신고 접수와 처리 및 이유 통보 등 대규모 플랫폼 사업자에게 더 많은 책임을 지우고 있어 미 조야(朝野)에서는 이를 자국 테크 기업에 대한 또 다른 ‘차별’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KMCC)는 구글, 메타, 엑스(X·옛 트위터), 틱톡 등 4곳이 규제 대상인 ‘대규모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이재명 정부·민주당이 주도한 개정안을 놓고 국내에서도 야당은 물론 친민주당 단체들도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국민의힘 정점식 원내대표는 “국민의 입을 틀어막는 악법(惡法)”이라며 헌법소원 심판 청구를 예고했고, 한동훈 의원도 “헌법에 위반되는 것”이라고 했다.
특히 개인 정보 유출에서 비롯된 쿠팡 문제가 통상을 넘어 외교·안보 현안으로까지 비화해 반년 넘게 양자 관계의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는 가운데, 시행 첫날부터 고소·고발이 남발된 이번 개정안을 놓고도 한미 간에 또 다른 전선이 형성될 우려도 있다.
지난 11월 한미가 발표한 팩트시트(fact sheet·공동 설명 자료)를 보면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과 정책에서 미국 기업들이 차별을 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고 돼 있다.
로저스를 비롯해 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USTR) 대표 등 미 고위 인사들은 공정거래위원회(KFTC)·개인정보보호위원회(PIPC) 등이 자국 테크 기업을 겨냥한 규제를 추진하고, 막대한 과징금을 부과하는 것에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여 왔다.
디지털 비(非)관세 장벽을 겨냥한 무역법 301조 조사 등이 미국 측이 상황에 따라 꺼낼 수 있는 카드로 거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