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걱~ 쥑여주는 북한 동영상
▲북한 주민들은 매일 아사로 죽어가고 있는데, 쌩쑈하는 동영상
▲ 북한 주민들의 실상 동영상
90년대 중후반 굶어죽은 300만명의 북한의 실상을 보면 하루에 최소 1000명에서 2000명 가량 되는 사람들이 餓死(아사)했다는 통계이다.
문제는 지금도 「굶주림」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분명히 해둘 것이 있다. 북한의 식량난은「피할 수 없는」 災難(재난)이 아닌 「피할 수 있는」 정권의 政策(정책)실패에 기인한다. 주민들은 굶주린다. 그러나 정확한 표현은 金正日 정권에 의해 굶겨 죽여진다. 金正日은 달러가 있다. 그러나 식량 대신 무기를 만들고 사들인다. 이것이 소위 「先軍정치」이다. 2006년 10월 핵실험 탄두비용은 10년 치 북한의 주식인 옥수수를 살 수 있는 돈이었다. 10년 동안 굶주림을 막을 수 있었는데 핵실험에 나섰다. 북한에서 모자라는 식량은 1년에 100만t 정도인데, 비축된 군량미만 150만t에 달한다. <굶어죽은 게 아닌 아사살인> 북한에서 굶주리는 또 다른 이유는 핵심·동요·적대계층의 3계층 51개 부류에 기초한 「계급차별」이다. 북한은 소위 無償(무상)분배·無償(무상)의료·無償(무상)교육의 「3無」를 자랑한다. 그러나 이 3대 無償시스템은 오래 전 붕괴됐다. 특히 金正日은 90년대 중반 주민들의 절대다수인 동요계층과 적대계층에게 배급을 끊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배급중단은 곧 죽음이다. 前 일본공산당 기관지 아카하다 평양특파원은 자신의 책 「조선전쟁」에서 90년대 대량아사를 이렇게 말했다. 『핵심계층만 사는 평양주민들과 당 간부 및 군인들한테는 식량을 공급했고, 농민을 제외한 나머지 주민들한테는 식량공급을 해주지 않았다…결국 金正日 정권의 계급차별이 힘 약한 사람들을 집단적 아사로 몰고 갔다. 집안에서도 힘이 약한 어린이와 노인들이 주로 굶어죽었다…이는 체제의 구조적 생리와 金正日의 의도가 합쳐서 발생한 아사살인으로 봐야 한다.』 金正日의 일본인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의 증언에 따르면, 金正日은 입버릇처럼 이렇게 말했다. 『병들고 노동력이 없는 인민들은 빨리 없어지는 게 내게는 편하다. 철통같이 뭉친 군대와 당원 3백만 명만 있으면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 공화국은 건재하다』 북한의 굶주림의 또 다른 이유는 우상화이다. 金日成·金正日 神格化(신격화)에 천문학적 돈을 사용한다. 크리스챤사이언스모니터 2007년 1월3일자 보도에 따르면, 북한의 소위 金부자 우상화 예산은 90년대 全예산의 19%에서 2004년 38.5%로 2007년 40%로 늘어났다. 식량난 속에서도 金부자 우상화물은 계속 건립됐다. 94년 金日成 사망 후 金日成 미이라를 안장한 금수산기념궁전에 9억불을 사용했다. 9억불이면 3년 치 옥수수를 살 수 있는 돈이다. 거리에선 하루에도 수천 명이 굶어 죽어가고 있을 때, 金正日은 3년 치 식량을 팔아 金日成 미이라 궁전을 지었다. 11=4, 14=8. 한반도 비극의 숫자 사람이 죽어 가는데 아이들이 제대로 성장할 리 만무하다. 북한의 출산율은 1.94명으로 남한의 1.19명 보다 높다. 그러나 인구1000명당 영아사망률은 2006년 현재 42명으로 나타나 남한(3명)에 비해 14배 이상 높다. 유엔아동기금(UNICEF) 등 국제인권기구들이 발표한 통계도 비슷한 수치를 보여준다. 이에 따르면, 북한은 ▲5세 미만 아동의 77.9%, 전체 아동의 37%가 영양실조에 시달리며, ▲전체 아동의 45%가 비정상 발육을 하고 있는데, 예컨대 14세 북한소년 몸무게는 남한 8세 아동과 비슷하고, 11세 북한소년의 키는 남한 4세 아동과 비슷하며, ▲육아여성 3분의 1이 영양실조 상태이거나 빈혈증세가 있는 것으로 보고됐다. 이것은 평균 수명에 반영된다. 북한의 평균수명은 남한의 평균수명보다 15세가량 낮다. 2008년 현재 북한 주민의 평균 수명은 64.3세, 남한은 79세이다. 60년이 지난 현재, 金日成·金正日 체제가 2300만 북한동포의 15년을 갉아먹어버린 셈이다. 돼지처럼 팔려 다니는 탈북여성 수십 만 굶주린 백성들은 국경을 넘는다. 그러나 탈북자는 不法체류자이다.
이들은 인신매매, 폭력, 임금未지불 그리고 강제송환 등에 시달려야 한다. 북한인권 단체들의 분석에 따르면, 탈북자의 60~70%는 여성이고 그 중 70~80%가 인신매매를 당했으며, 이들은 거의 공통적으로 폭력에 시달린다. 최근에는 탈북 한 여성의 95% 정도가 팔려 다닌다는 통계도 나왔다. 인신매매된 여성은 나이, 미모, 결혼 유무 등에 따라 등급이 매겨진다. 그리고 2,000위안 ~ 5,000위안 정도에 팔려나간다. 2006년 12월7일, 美國의 북한인권위원회는 탈북자 1천346명을 인터뷰한 「新보고서」를 발표했다.
여기는 탈북여성의 「인신매매 去來價(거래가)」가 기록돼 있다. 보고서는 탈북여성이 평균적으로 중국 돈 1천900위안에 팔려가고, 1천700위안이하의 가격에 팔리는 이들도 절반에 달한다고 밝혔다. 1천900위안이면 244달러, 1천700위안이면 218달러다.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23~20만 원 정도이다. 북한인권 단체들은 중국 내 탈북자 수를 많게는 30만 정도로 추산한다. 이 수치대로라면 수십만 원에 돼지처럼 팔려 다니는 同族(동족)의 수가 지금도 20만이 넘는다는 게 된다. 돼지 한 마리 값에 팔려 다니다 보니, 실제 중국 내 인신매매범들은 탈북여성을 가리켜 「돼지」로 표현한다. 돼지 한 마리, 두 마리 하는 식이다. 인신매매는 범죄 집단에 의해 조직적으로 저질러진다. 범죄조직에 팔려 다니는 탈북여성에게 人權()인권이 있을 리 없다. 王씨에게 팔렸다 낙태당한 뒤, 李씨에게 다시 팔리는 격이다. 性폭행·강제결혼·원치 않는 임신·부인과 질병에 노출돼 있다. 강제로 결혼을 해도 남편과 시댁식구들의 무시와 구타, 경제적 어려움, 북한거주 가족에 대한 그리움, 不法체류신고 협박 및 체포, 송환의 두려움에 떨어야 한다. 강제 송환 후 비행기고문·비둘기고문·동태고문 중국 내 탈북자가 북한 당국에 강제 송환되는 순간부터 참상은 격렬해진다.
수갑·포승·새끼줄·신발 끈·철사 심지어 족쇄에 끌려가 송환되는 탈북자는 한 해 수천 명에 달한다. 미국의 민간단체 「난민·이민위원회(USCRI)」는 「2006년도 국제난민조사」 보고서에서 『중국 당국은 매주 100여 명의 탈북자를 북한으로 강제송환하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5천여 명이 강제 송환됐다』고 발표한 바 있다. 강제 송환된 탈북자들은 「국가안전보위부 산하 변방구류장」 등에서 온갖 비인간적 처우를 받게 된다. 대한변호사협회가 인터뷰한 탈북자 100인 중 송환 경험을 가진 절반가량의 탈북자들은 쇠사슬·부삽·불갈고리·각목·벨트 등 그야말로 닥치는 대로 무차별 폭행을 당했다고 증언한다. 손을 뒤로 묶고 수갑을 쇠창살에 채워 안지도 서지도 못하게 방치하여 온 몸의 근육을 굳게 하는 「비둘기고문」, 손발을 뒤로 묶은 뒤 바닥에 닿을 정도로 매달아 놓고 구타를 하면서 고문을 가하는 「비행기고문」, 겨울에 옷 벗기고 바깥에서 기마자세로 밤새 세워두는 「동태고문」등은 강제 송환된 탈북자들이 공통적으로 당했던 고문행태들이다. 여성들에 대한 유린은 극심하다. 대한변호사협회의 「북한인권백서2007」에 따르면, 송환경험을 가진 여성 탈북자 대부분 항문·음부에 숨긴 돈을 색출하기 위해 보위원들 앞에서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는 「수색(?)」을 당했다고 말했다. 이것을 「펌프질」 또는 「뽐프훈련」이라 부른다. 물론 이 역겨운 고문은 옷을 벗긴 상태에서 진행된다. 여성 탈북자들은 소위 비밀편지, 비밀문건을 찾기 위한 몸수색 과정에서 「자궁검사」나 몸의 특정부위에 「電氣刑(전기형)」을 당하기도 한다. 『아이를 비닐에 싸서 살해한 뒤 화장실에 버리게 하였다』 강제 송환된 탈북여성들이 性폭행에 시달린다는 증언은 끝없이 나오고 있다. 이선화(가명)라는 이름의 한 탈북여성은 2008년 3월7일 RFA(라디오프리아시아)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집결소 보위원들은 상급자나 하급자 할 것 없이 탈북여성들을 상대로 性폭행을 자행하고 있다...보위원들은 여성죄수들의 얼굴을 싸매고 데려나가 폭행하곤 밤늦게 돌려보낸다...수감된 여성죄수들은 모두 다 당한다』 李씨는 『「북송된 탈북자들은 逆賊(역적)이므로 머리통을 개조해야한다」는 말을 계속 들었다』며 『먼저 들어온 수감자들로부터 「이곳에서 제정신으로 살아나갈 수는 없다」는 얘기를 듣고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후에 얼굴을 싸매고 나가서 (性폭행을) 당하고 온 뒤에야 그 말뜻을 알아들었다』고 했다. 그녀는 『구류소에서 나온 후 다시 북한을 탈출해 현재 모처에 숨어 살고 있다』며 『여성으로서 이런 수치스러운 일을 증언하는 것은 아직도 북한에서 수없이 일어나는 인권폭행을 많은 사람이 모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강제 송환 여성들에 대한 치명적 인권유린은 「영아살해」와 「강제낙태」이다. 『아이를 비닐에 싸서 살해한 뒤 화장실에 버리게 하였다』『온성 OOO에서 탈북여성 수감자의 출산한 아이를 비닐에 싸서 죽이는 것을 목격했다』『청진 OOO에서 「중국 놈의 아이를 뱄다」는 이유로 아이를 낳자마자 비닐에 싸서 질식사시키는 것을 목격했다』『구둣발로 임신부의 배를 걷어차서 강제 유산시키는 것을 보았다』는 등 온갖 끔찍한 증언들이 대한변호사협회의 「북한인권백서2007」에 나와 있다.
한 탈북여성의 증언이다. 《『무산 OOO에서 함흥 출신의 8개월 된 임산부는 중국아이를 임신했다는 이유로 강제낙태가 강요됐다. 운동장을 계속되는 형벌이 가해졌다. 이 임산부가 조산을 하자 아기를 비닐로 싸서 감방 안에 방치했다. 그러나 아기가 죽지 앉자 다른 수감자를 시켜 양동이의 물에 넣어 아기를 살해했다.』 美國의 인권운동가 데이빗 호크의 「감춰진 수용소(HiddenGulag)」는 영아살해에 관한 증언들이 상세히 나온다.》 《『산모가 보는 앞에서 수건으로 질식시켜』 : 南신의주 道집결소(2000년 5월). 증언자 최영화(25) ; 구금자 중 10명의 임산부가 있었고, 이 중 3명은 임신된 지 8개월 이상 된 여성들이었다. 崔씨는 산모를 돕는 일을 맡았다. 산모들은 분만유도 주사를 맞고 아기를 출산했다. 그러나 잠시 후 담당자들은 산모와 崔씨가 지켜보는 가운데 아기를 젖은 수건으로 질식시켜 죽였다. 산모는 실신하고 崔씨는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됐다. 다른 아기들도 산모 앞에서 죽음을 당했다.》
《『박스에 아기 시체가 가득 차면 밖으로 버려져』 : 南신의주 道집결소. 증언여성 A(66) ; A는 7명의 아이를 받아냈지만 7명 모두 죽음을 당했다. 첫 번째 아기는 중국인과 행복하게 살고 있던 28세의 任이라는 여성의 아이였다. 그 아기는 산모가 중국에서 임신을 해 양양상태가 좋았기 때문에 건강하고 몸집이 컸다. A는 출산 당시 아이의 머리를 잡아 빼주었고, 탯줄을 끊어 주었다. A가 아기를 받아내고 모포로 감싸주었을 때, 경비대원은 아기의 한쪽 다리를 잡아채 커다란 플라스틱 박스에 집어 던졌다. 박스에 죽은 아기 시체들이 가득 차면 밖으로 옮겨져 묻히게 된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됐다.》
《『아기를 박스 안에 던지라고 명령했다』 : 金이라는 여성의 출산을 도왔다. 산모는 10개월을 채우고 나온 건강한 아기를 출산했다. A가 아기를 쓰다듬어 줄 때, 아기는 그녀의 손가락을 빨기도 했다. 경비대원이 와서 A에게 소리 지르며 아기를 박스 안에 던지라고 명령했다. A가 머뭇거리자 경비대원은 그녀의 뺨을 세차게 내리쳤고 이로 인해 A의 이가 부러졌다.》
《『머리를 집게로 눌러 아기들이 숨을 거두게 만들었다』 : 이틀 후 강제 분만된 2명의 아기는 숨을 거두었다. 그러나 10개월을 채우고 나온 아기들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비록 얼굴은 노래지고 입술을 파래졌지만 아기들은 여전히 눈을 깜박거리고 있었다. 잠시 후 경비대원들이 와서 아직 두 명의 아기가 살아있는 것을 보고 머리의 부드러운 부분을 집게로 눌러 아기들이 숨을 거두게 만들었다. 이 장면을 보고 A는 경비대원들에게 소리를 지르며 거세게 항의했다. 그러나 그녀는 경비대원들에게 심하게 발길질을 당해 정신을 잃고 말았다.》
《『비닐에 싸인 채 창고에 죽을 때까지 방치됐다』 ; 청진시 농포 집결소(1999). 증언여성 B(30대 중반) ; 집결소 구금자의 80%가량은 여성이었고, 그 중 12명가량이 임산부였다. 경비들이 임산부들의 경우 「배신자의 자식」을 뱃속에 가졌다는 이유로 음식이나 물을 잘 주지 않았다. 하열을 일으키기 위해 배를 걷어차기도 했다. B는 몇 명의 임산부들이 끌려 나가, 낙태를 위한 분만유도 주사를 맞고, 다시 농포 집결소로 돌아오는 것을 보았다. 그 후 출산을 위한 준비된 방에서 4명의 아기가 태어났다. 그 아기들은 바구니에 담겨 비닐에 싸인 채 근처의 창고에 죽을 때까지 방치됐다.》
《『젖은 비닐봉지에 넣어 질식시켰다』 ; 청진시 농포 집결소(2000). 증언여성 C ; C는 8개월 된 태아 3명이 낙태되고 7명의 아이들이 살해되는 것을 목격했다. 아기들이 태어났을 때 경비대원들은 아기들을 바닥에 뒤집어 눕혀놓았다. 어떤 아기는 즉시 사망했고, 어떤 아기는 계속해서 숨을 쉬었다. 이틀이 지난 후에도 생존해 있는 아기들은 경비대원들이 데려다가 젖은 비닐봉지에 넣어 질식시켰다. 다른 방의 문에 서 있던 女수감자들은 방바닥에 눕혀져 있는 아기들을 볼 수 있었다. 경비대원들은 아기들이 중국인의 피가 섞였기 때문에 산모들이 아기들이 죽어가는 것을 직접 보고 들어야 된다고 말하곤 했다.》
《『강제낙태 후 다음날 강제노동에 투입』 ; 온성 노동단련대(2001년). 증언여성 D(38) ; 10명의 임산부가 강제낙태를 당한 후 바로 다음날 강제노동에 투입되는 것을 목격했다.》
『수감생활 3년간 수감자 240명 중 절반이 굶어죽었다』 강제 송환된 탈북자들은 형법62조 「조국반역죄」 233조 「비법국경출입죄」 적용 여부를 조사받는다. 남한 행을 시도했거나, 중국에서 남한사람이나 종교인을 접했거나, 중국에서 1년 이상 체류하면 즉결처분 또는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간다. 북한은 평남 개천14호, 함남 요덕 15호, 함남 화성 16호, 함북 회령 22호, 함북 청진 25호 등 국가안전보위부에서 운영하는 5곳의 정치범수용소가 있다. 여기 수용된 인원은 20만 정도로 알려져 있다. 정치범수용소는 남한 행을 시도한 탈북자 등 북한체제 내 소위 「반동」들이 수용된다. 상당수는 「연좌제」로 끌려 온 가족들이다. 북한민주화운동본부의 「2004년 북한정치범수용소 수감자·행불자 조사보고서」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수감자 60% 가까이가 연좌제로 수용됐다. 90년대에 들어오면서 무너진 舊소련이나 동유럽에서 일했던 외교관이나 유학생들도 끌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金日成·金正日의 사진을 손상시켰다는 이유로, 혹은 남한 노래를 불렀다고 해서 잡혀 들어온 사람들도 있다고 탈북자들은 증언한다. 열아홉 살 때 호기심에 중국으로 넘어갔다가 체포돼 요덕 15호 관리소에서 약 1년 반 동안 수감생활을 했던 탈북자 안혁씨의 증언이다. 『정치범으로 잡혀 들어오는 사람들은 金日成 사진에 잉크 방울을 떨어뜨렸던 사람들, 그리고 해외에서 유학도중 서양 여자와 춤을 추다 키스를 한번 한 죄, 金日成 사진에 먼지가 깔렸는데 그걸 안 닦은 죄, 가족이 같이 TV를 보다가 金正日이 나오는 사진을 보고 저거는 진짜가 아닌 것 같은데 이렇게 얘기했는데 아들이 학교에 가서 선생님 우리아버지가 그건 진짜가 아닌 것 같다고 했다고 그러면 온 가족이 잡혀오는 경우도 있었다』 金日成은 1958년 연안파·소련파·국내파를 숙청하면서 『정치범은 3대를 멸종시키라』고 했다. 정치범은 북한정권의 『敵(적)』으로, 정치범수용소는 『敵區(적구)』로 간주된다. 소위 멸종의 대상이자 적들인 정치범들은 그야말로 지옥 같은 삶을 보내야 한다. 만성적 굶주림으로 식용풀·개구리·뱀·쥐·도룡뇽·지렁이·다람쥐 등을 잡아먹는다. 탈북자 김은철씨는 정치범수용소 수감생활 3년간 자신과 같은 구역 수감자 240명 중 절반이 굶어죽었다고 말했다. 극도의 고통 속에서 자살자를 비롯해 정신병·결핵·간염환자가 속출한다. 정신병·결핵·간염환자는 격리되지만 치료도 없고, 노동도 줄지 않는다. 결국 이런 병에 걸리면 대부분이 죽어나간다. <男女 불문, 삭발한 후 초죽음> 정치범수용소에서는 『정치범들의 씨를 말려야 한다』는 金日成 교시로 인해 임신과 출산이 금지된다. 따라서 수용소 안에서의 연애·임신·출산은 중대한 범법행위에 해당한다. 변방의 구류장과 마찬가지로 여성 정치범이 임신을 하면 강제 낙태시키고, 출산을 하면 영아는 살해된다. 연애·절도 등을 저지른 소위 중범자들은 수용소 내 구류장으로 끌려간다. 남녀를 불문하고 삭발한 후 매를 때려 초죽음을 시킨다. 새벽 5시에 기상해 밤 12시 취침 때까지 식사시간·대소변 시간을 제외하곤 무릎을 꿇고 앉아 있어야 한다. 식사라곤 100g 강냉이밥과 시래기 소금국이 전부이다. 두 무릎 사이에는 각목이 끼어진다. 움직이면 흉기를 사용한 무차별 폭행이 가해진다. 구류장 고문을 목격한 한 탈북자의 증언이다. 『굶주림과 고문으로 두 발로 걸어들어 갔다가 네발로 기어 나온다. 그러나 상당수는 죽어나온다. 말을 잘 듣지 않거나 움직이면 처벌로 밥을 주지 않는다. 수감자들은 양식을 얻기 위해 다리에 피가 통하지 않아 일주일 후부터는 살이 썩어 들어가는 데도 무릎을 꿇고 참아내야 한다. 그 결과 3개월 후에는 폐인이 된다. 들것에 실려 나와도 5개월 후에는 병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치범수용소에서는 공개처형·비밀처형·즉결처형이 자행된다. 영하20도에서 얼려 죽이는 형벌, 총으로 뇌수를 때려죽이는 형벌, 오줌으로 전신을 목욕시키는 형벌, 돌로 쳐 죽이는 형벌, 생매장하는 형벌이 저질러진다. 대한변호사협회의 「북한인권백서2007」에 수록된 처형사례들이다. 『일본으로 편지를 쓰다 발각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던 중 사해된 김OO』『햇빛쪼이기를 하면서 풀을 뜯어 먹는 정치범을 AK58식 소총의 개머리판으로 턱과 등을 내리쳐 현장에서 살해했다』『영하 30도가 넘는 추위에 귀를 막고 가다 길을 비켜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트럭으로 치어서 살해했다』『작업 중 감자를 훔쳐 먹으러 갔다가 붙잡혀 공개 처형당했다』 일곱살 아래는 굶어죽고, 그 이상은 맞아 죽었다
북한정권은 스스로 거지나 부랑자가 없다고 자랑한다. 남한의 친북세력도 이런 주장을 앵무새처럼 따라한다. 대표적 친북매체인 인터넷 통일뉴스에 나오는 북한체제 묘사를 인용해 보자. 예컨대「김양희 기자의 평양일기」라는 시리즈 기사는 『함께 일하고 똑같이 분배한다는 사회주의 국가에서 노숙자와 거지가 없다는 것이 당연한 일일 수 있으나...평양역을 비롯, 각 지하철역마다 노숙자나 거지가 없다는 것은 신기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2007년 6월11일)』고 기술한다. 북한정권과 친북세력의 주장은 물론 사실이 아니다. 굶주리는 꽃제비들을 시·군마다 설치된 2·13수용소, 9·27수용소 등에 수감된다. 꽃제비들은 북한에서 장마당이나 역전 등을 헤매 다니며 음식을 구걸하거나 떨어진 음식을 주워 먹는 어린이들을 가리킨다. 2·13, 9·27은 金正日이 꽃제비들을 잡아 가두라고 지시한 날이다.
2·13수용소, 9·27수용소 등에 죄도 없이 끌려온 아이들은 일상적 폭행에 시달린다.아파도 치료받지 못한다. 400명 정도가 수용됐던 한 수용소에서 벗어나 2003년 탈북 한 한 소년은 이렇게 증언한다. 『배가 아프고 머리가 아파 약을 달라고 하면 약 한 알이나 꽃 같은 것을 먹으라고 주는 정도였다.
한 달에 1~2명 정도씩 죽었는데 일곱 살 정도 아래는 굶어서 죽고, 그 이상은 맞아서 죽었다.
허약(영양실조)에 걸려 있으니 각목으로 머리를 한 대만 맞아도 고꾸라져 죽기도 한다.
아이들이 죽으면 안전원들은 자기들이 꾸며낸 문서에 영양실조로 사망했다고 쓰고 안전부 도장을 찍어 처리하는데 시체는 사체실로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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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굶주리는 북한동포와 김정일의 일인독제가 있다는 것 우리의 부끄러운 역사가 되고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