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제승당을 찾아
오월 끝자락 금요일이다. 40여 년째 교류를 가져오는 대학 동기들 모임으로 통영에서 하룻밤 묵은 이튿날이다. 매년 여름과 겨울이면 방학을 틈탄 주말 1박 2일로 만났는데 올해부터 봄가을 주중 평일에 회동하기로 했다. 이렇게 해도 되는 것은 지난 2월 말을 계기로 현직이던 회원과 아내가 퇴직하게 되어 자유롭게 되어서다. 여덟 명이 부부로 만나는데 한 친구는 사정이 생겼다.
우리는 지난겨울 북면 온천장에서 만나고 넉 달 만인데 금실 좋던 한 친구가 연전에 아내를 다시 만날 수 없는 먼 곳으로 떠나보내 상심이 깊다. 그는 미국에 체류하는 아들을 보려 그곳에 머문다는데 아내 생시 반갑게 만나오던 얼굴을 대하면 그리움이 더 밀려올까 봐 그런 걸로 받아들여졌다. 회계와 진행은 이태 동안 돌아가며 맡는데 이번부터 내 차례가 되어 신경이 더 쓰인다.
어제 오후 근무지 대산 창원에서 통영 미륵도 ES 리조트로 와 여장을 풀었다. 간밤 대구와 울산을 비롯해 도내 각처 흩어져 정년 이후 자유로운 영혼으로 사는 친구 내외들과 함께 보냈다. 우럭매운탕으로 저녁을 먹고 늦은 시간까지 영덕에서 택배로 온 홍게와 현지 생선회로 식도락을 누리고 날짜변경선을 넘겨 정담을 나눴다. 나는 친구들보다 일찍 잠들어 새벽에 잠 깨 일출을 봤다.
숙소는 수산과학관과 인접한 곳으로 점점이 뜬 섬이 바라보였다. 한려해상 국립공원에 리조트가 들어서기는 허가가 쉽지 않을 듯한 곳이었다. 여명에 비진도와 연화대를 바라보는 바다에는 물길을 가르는 고깃배가 달렸다. 수영장이 딸린 언덕에 서니 아침 해는 수평선이 아닌 동녘이 가려진 산마루로 솟았고 이후 숙소로 돌아와 간단한 조식을 끝내고 요트 승선 일정이 기다렸다.
통영에서 모이기는 여러 차례였는데 섬으로 들어가 펜션에 머물거나 낚시 콘도에서 밤샌 적도 있다. 케이블카로 미륵산으로 오르거나 남망산공원이나 동피랑 골목길도 거닐었다. 이번에는 마침 통영에 터 잡고 가는 친구 지인이 조종간을 잡은 요트로 한산도로 들어가는 일정이다. 통영 친구와 안면을 트고 지내는 한산도 출신으로 요트 사업을 하는 분이 우리 일행을 손님으로 모셨다.
나는 근년에 와 아내가 잠자리가 바뀐 바깥에서 지내기를 힘들어해 모임에 동행 못해 친구들에게 면목이 없다. 의령 가례로 귀촌한 친구 아내는 오전에 일정이 바빠 먼저 복귀하고 다섯 쌍 부부에 두 사내가 남았는데, 한 분은 몸이 뻐근해 계류장에서 쉬도록 하고 열한 명이 요트에 올랐다. 나는 퇴직 직전 거제 근무지 동료들과 통영 기행을 왔을 때 요트를 한 번 타 본 적 있다.
제승당으로 향하면서 선장이 그곳 한산도 출신이라 통영 풍광에 박식해 자세히 소개해주어 유익했다. 선장 제복 윗도리와 모자를 소품으로 삼아 뱃머리에서 사진을 남기기도 하고 선상에서 포도주는 아닐지라도 투명한 잔을 채워 비우기도 했다. 요트 가까이 여객선과 어선이 지날 때는 너울이 크게 일어 한 친구가 뱃전에서 넘어지는 아찔한 순간을 맞아도 구명조끼에 마음이 놓였다.
한산도로 건너가 산책길 따라 대첩문을 지나 제승당 경내로 들어 이순신 장군 얼을 다시금 되새겼다. 전망이 탁 트인 수루에 올라 ‘한산야음’ 한시와 시조를 읊조렸다. 궁터에서 건너편 과녁까지 먼 거리를 가늠해 보고 충무사 사당에서 향불을 피우고 참배를 마치고 경내를 나와 요트에 올라 통영 앞바다를 헤쳐왔다. 선상에 경쾌한 선율이 흘러 흥겨운 시간을 동영상으로도 남겼다.
일행은 요트에서 하선해 인접한 식당을 찾아 선도가 좋은 갈치 조림으로 점심상을 받았다. 곁들인 병어회 무침과 굴로 부친 전은 안주로도 훌륭해 여건이 되는 두 친구는 맑은 술을 잔에 채워 비웠다. 못다 나눈 정담이 오가는 사이 오붓한 식사 자리를 마치고 각자 떠나왔던 집으로 되돌아갔다. 나는 대구에 친구 차편에 동승 고성을 거쳐 내서 중리를 지날 때 잠시 멈추게 해 내렸다. 25.05.30
첫댓글
1박 2일
함께 한 시간들이었지만
글로 읽으니 같은 듯
조금 색다른 느낌이 나는구나.
늘 깨어있는
친우의 맑은 정신에
감탄하고 있다네.
귀한 몸
늘 잘 챙기시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