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못할 모정(慕情) '가깝고도 먼 일본'에 6박 일정으로 다녀왔다. 빽빽한 스케줄에 따른 나들이였지만 많은 걸 확인하려고 애를 썼다. 교토(京都)의 고즈넉한 풍미와 '청수사'에서 올려다 본 황혼녘 하늘, 그 가운데를 원을 그리며 날고 있는 까마귀 떼. 촘촘히 심어진 나무마다 매달린 먹물 글씨의 작은 명패, 그 하나로써 죽은 이를 일깨우는 수목장(樹木葬)의 간명성, '긴자'의 휘황찬란한 밤거리와 비에 젖어 흐느끼는 뒷골목의 초롱등불 빛, 틈 없이 꽉 맞물려 놓은 인도불륵 , 호텔 영접실이나 연회장, 휴게실, 공동 목욕실, 승강기 내, 식당 등에서의 깍듯한 태도와 뒤로 물러서는 배려심은 물론이고, 한끼의 도시락에까지 일본인의 정갈함과 알뜰함이 선명히 보여서 참으로 맘에 들었다. 동대사(東大寺), 법륭사(法隆寺), 청수사(淸水寺), 금각사(金閣寺)를 비롯한 여러 사원과 각 곳의 웅대한 성(城), 활화산에서 토해내는 검은 연기와 거친 토사를 무릅쓰고 끝내 관광지로 일궈놓는 집착과 끈기성, 마지막 밤을 이별가로 마무리 지어 긴 여운 남게 하는 그들로부터 받은 느낌들은 이후 더 발표하기로 하고, 내가 일본에 대해 끊이지 않는 모정(慕情)을 갖게 된 시초 하나를 소개하는 것으로 이 글을 쓴다.
국민(초등)학생 때 긴 책상을 함께 쓴 내 짝꿍의 이름은 정자(貞子)였다. 일본에서 살다가 온 아이였다. 그를 두고 그의 식구들은 '마사꼬'라고 불렀다. 덩달아 나도 그 아이에게 '마사꼬'라고 불러주었다.
연필 끝에 붙어있는 바퀴를 돌돌 굴리기만 하면 어떠한 연필 글씨도 말끔하게 지워지는 솔 달린 지우개, 일제日製였다. 정말 신기했다. 이것은 그가 나에게 주고 간 연민어린 선물이었다. 붓대롱에 꽂은 몽당연필, 그 연필심에 침 묻혀가며 꽉꽉 눌러쓰다가 다시 침 칠한 손가락으로 쓱쓱 문질러 지우느라 용을 쓰는 내가 무척 안스러워 보였던 모양이다.
'일본'이란 나라가 온통 칼 찬 사람만이 사는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대로 된 지우개, 연필 하나 만들 여유가 없는 나라, 숨 가쁜 전쟁 통에 휘말려 이리 시달리고 저리 시달리느라 밤낮이 따로 없는 우리나라, 그에 비하여 이렇게 용한 지우개를 장난감 삼아 만들어 내는 일본, 나도 '마사꼬'처럼 일본에서 태어났었더라면 하는 생각까지 하였다.
그러던 어느 저문 가을날, '마사코'는 학교에 오지 않았다. 그 다음날에도 오지 않았다. 그의 오빠, 언니가 있던 교실에 가 보았다. 그들도 보이지 않았다. 들리는 얘기로는 온 식구가 그네 아버지가 있는 일본으로 되돌아 갔다는 것이다. 그것도 깜깜한 밤 중에 밀선을 타고 갔다고 했다. 유난히 말 수가 적었고, 짙은 눈썹의 정자(마사코)의 얼굴이 그의 빈자리에 가득 메워지기도 하였다.
'반일, 방첩'이라는 굵직한 글씨의 표어, 눈앞에선 악수를 청하면서 뒤로는 미국의 원조품을 슬쩍 가로채는 칼찬 일본 사람을 나타낸 포스터, 그러한 내용들로써 글 쓰기를 하고, 그림을 그리면서도 나는 줄곧 ‘일본’이란 나라를 동경하고 있었다. 표어, 포스터 제작 시간이면 틈나는 대로 선생님의 눈을 피해 막연하게나마 일본 지도 위에, 짙은 속 눈썹의 정자(貞子), 즉 ‘마사꼬’를 그려놓기도 하였다.
그를 잊은 채 흘려보낸 몇몇 해 만에 나는 때때로 꿈속 정사(情事)에 놀라 화들짝 일어나 앉는 풋내기 청춘, '인생이란 무엇인가?' 하며 허공에 대고 토로하는 얼치기 사색가가 되어 있었다. 고유한 우리말 한 마디, 필수 외국어인 영어로도 짧은 문장 한 줄 구사하지 못하는 처지에 '일본어 첫걸음'이란 책을 구해 독습하며 밀수품에 묻혀 들어 온 일본 잡지에 관심을 보이기도 하였다.
내 고장 절반 가까이를 잠식 시킨 태풍 '사라호'에 내 자취 살림 전부는 진흙탕에 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나마 손에 잡히는 것은 수십 번씩 물에 씻어 볕에 말리며 단 한 점이라도 구해 내기 위해 맘을 다 쏟았다. 그 결과 가장 볼썽없이 되는 것은 책이었다. 조금 과장하면 손 사전 한 권의 부피가 한 아름씩이나 되었다. 임시 휴교령이 내려진 가운데 매매일 이에 매달리고 있을 때, 뜬금없이 정자(마사코)의 안부를 전하려고 온 이가 있었다.
동네 입새에서 이발소 일을 하는 그의 집안 오빠가 찾아 온 것이다. '마사코'가 전한 것이라며 꽁꽁 묶은 보따리 하나를 내밀어 놓고 갔다. 동여진 매듭을 풀자 우르르 쏟아져 내리는 알사탕 서너 봉지와 몇 권의 책이었다. 몇 권은 '일본 문학전집'이었다.
일본 문학전집의 어느 한 권의 가운데가 도톰히 접혀 있었다. 펼치니 얇고 얇은 습자지에 연필로 쓴 수십 장의 편지였다. 장마다 쓴 연도와 날짜가 달랐다. 거의 5년여에 걸쳐 일기문처럼 쓰여있었다. 처음엔 수용소에서의 심정을 밝힌 내용이었고, 다음엔 세끼 밥에 대한 내용, 그 다음엔 작은 뜰에 가꾸는 갖가지 꽃, 읽고 있는 만화, 소설, 그리고 레스링 이야기, 고국을 향한 마음, 즉 나에 대한 기억을 그리움으로 나타내고 있었다.
또 몇 해가 지나간 뒤의 어느 여름 날 오후, 나는 정자(마사코)가 부친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학기 말 시험을 막 끝내고 나서는 길이었다. 며칠 전 귀국하여 고향에서 머물고 있다 하였다. 그러고는 언제쯤 하향 할 것인가를 물은 다음 어서 만나고 싶다는 내용으로 맺고 있었다. (계속) 2006, 9, 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