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 강혁은 생각이 변했다.
"내가 직접 행차해서 널 끌고 오겠어."
집착을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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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간 연희는 모든 학생용 말로 해서 놀토라는 게 그러하듯 쉴려고 마음먹었다. 그가 오지만 않았어도.
'딩동, 딩동'
"누구세요?"
민회장 내외는 이미 회사에 가 있었다. 연희는 그가 직접 집에 올 것이라는 것은 꿈도 못 꾸고 있었다. 자기가 이미 일정한 선에서 그를 딱 잘라냈기 때문에.
연희가 누군가 하고 살짝의 두려움으로 문을 열어주자마자 강혁은 바로 그녀를 끌고 나갔다.
"뭐하는 짓이야?!"
"가자."
"제정신이야? 신고할 거야!"
"신고해라. 신고하던지, 말던지. 그래도 넌 가게 될 테니까 말이야."
"이거 안 놔?! 왜 왔어? 미친 거야?!"
"안 미쳤으니깐, 널 그냥 이 상태로 끌고 가려는 생각을 하지."
강혁은 연희를 강제로 자신의 차에 태우며 말했다. 그리고선 자신도 그 차에 타서 연희가 나가지 못하도록 잠금장치를 해두었다.
연희는 모든 차문이 잠기는 소리가 나자마자 불안해졌다.
"열어줘. 나 정말 신고할 거야. 납치죄로!"
"신고하려면 신고하라고 했어. 상관 안 해."
그러면서도 용케 핸드폰은 붙잡지 않는 연희였다. 그러자 옆에 있던 상자가 문득 눈에 들어왔다. 눈치 챈 강혁이 말했다.
"입고 가. 일부러 너한테 가장 잘 어울릴만한 걸로 준비했어."
"필요없어, 내려 줘."
"싫어. 너 지금 착각하고 있어. 넌 내가 너에 대한 집착으로 파티장까지 끌고 가려나 생각하나 본데, 너 지금 사업상 인질로 잡혀가는 거야, 한마디로. 너희 부모님 요번에 너랑 내가 잘 안 되면 이 사업 다 끝나. 니가 안 살리면 살릴 사람이 없어. 그게 지금 나랑 이 파티를 가야 되고, 장차 나랑 약혼하고 결혼해야 될 이유야."
연희가 지지 않고 말했다.
"내 인생 사업에 정략결혼으로 팔아먹을 일 있니? 내려 줘! 당장!"
"주도권은 우리가 잡고 있다고. 우리가 계약 성사 일부러 안 시켜서 니네 집 밖으로 나앉는 꼴 보고 싶으면 마음대로 해."
"이제 협박까지 해? 나한테 무슨 원한 있어? 난 정말 싫어. 그냥 좀 내버려 두면 안 돼?"
"다 와 간다. 가서 입고 와. 옷 보면 마음이 달라질 거야."
"아니, 하나도. 이 옷 나중에 오빠가 진짜 결혼하고 싶은 여자 생기면 그 때 입히던지 그냥 구워 삶아먹던지 마음대로 해. 내려줘 이젠."
그렇게 말하면서도 연희는 불안했다. 정말 어릴 때를 생각하면 그의 파티를 가기란 두렵고 싫었다. 그것도 강혁네 집안에서 주최하는 것에다가, 자신을 위해서 일부로 한 거라니. 설사 자신이 그 파티의 주인공이 되더라도 그가 하는 거라면 따라주기 싫었다.
연희는 우선 순순히 내려주었다. 그녀는 생각을 해 봤다. 화장실에서, 그 좁은 공간에서 어떻게 하면 자신이 집으로 빠져나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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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은호는 쉬는 날인데도 불구하고 빨리 일어날 수 밖에 없었다. 아빠가 일이 있는 날이다. 그래서 간소하게 밥을 차려주고 다시 자다가 일어났다.
"하암..."
하품을 하고 TV를 켰다. 많은 채널이 나왔지만 그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은호는 괜히 켰다 생각하고 다시 자려했다.
그러다가 문득 핸드폰이 눈에 띄었다.
'부재중 전화 2통'
핸드폰에 있는 말이 눈에 들어와서 최근 기록을 조회해 보자, 수현의 이름이 두 번 떴다.
이 맘 때 쯤이면 한참을 자고 있을 그가 그것도 아침 시간에 전화를 하다니 뭔가 엄청난 일이다 싶어 은호는 수현에게 전화를 걸어봤다.
"rrrrrrrrrr"
[Yo 김은호!]
"뭐야, 무슨 일이냐? 니가 이 시간에 전화를 다하고."
[드디어, 이 작업의 달인 고수현님께서 성공을 한 것 아니냐!]
놀고 있군, 제대로.
"뭐? 무슨 작업?"
[내가 말했던 172cm 성공했다. 오늘 날 불러냈어.]
"니가 진심으로 싫어서 너 싫다고 말하려고 불러낸 거겠지."
[그럴 일은 없다. 내가 누군데. 엄청난 수의 여자들이 내 손을 거쳐가면서 그녀들이 나를 불러냈던 이유엔 공통점이 하나, 딱 하나 있었다. 수현아, 난 니가 맘에 들어. 솔직히. 이거 한 마디 들으려고 캬~ 내가 간 거 아니냐. 오늘은 또 내가 생애 최초로 만한 이민희 양이 나를 직접 그것도 아침시간대에 불러내 주셔서, 일어나서 세수하고, 목 닦고 물만 먹고 집을 출발했다.]
착각의 신이 되었나보다.
"걔가 정말 너를 좋아해서 불러냈다고 생각해?"
[당연하지! 내 경력이 얼만데.]
"그 경력도 썩어버릴 때가 있을지도."
[어이구야! 불안한 소리 하지마, 죽는다 진짜.]
"열심히 해 봐라. 무슨 소리 들을지 모르지만. 혹시 몰라. 그래, 그 친구가 정말 너에게 빠질 준비가 됐거나 제정신이 아니면 니가 좋다고 하긴 하겠다."
[이 자식 말하는 거 봐라.]
"끊어라. 잘 해 봐라."
은호는 웃기다는 생각으로 그저 기분이 좋아서 TV를 다시 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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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현은 그 시각 날아갈 것만 같은 기분으로 집을 나오고 있었다. 여자가 먼저 불러내면 '100퍼 나에게 반했다.'라는 생활신조를 갖고 계신 작업 고수현 선생이다.
그러나 민희는 생각이 달랐다. 아무리 봐도 수현은 자신의 스타일도 아니고 저렇게 구애해오지만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에 대해선 그냥 무념무상이었다. 지나가는 정말 잘생긴 남자애 중 한 명? 그것도 성격은 더럽게 안 좋은.
'미안하다, 너... 별로다. 그냥 나 같은 거 똥 밟았다 생각하고 나보다 더 이쁜 년 만나 봐라.'
라는 말을 수현에게 전하는 것이 오늘 그녀의 목표다.
"민희야! 오래 기다렸지?! 오빠가 요즘 바쁘다, 많이!"
저럴수록 수현이 더 불쌍해 보이는 민희였다. 넌 정말 나 같은 거 만나서 개고생이야.
"별로."
"그래? 어디 갈까? 에버랜드 갈까? 롯데월드? 영화관? 아님... 비디오방?"
마지막 말은 은근 '흐흐흐' 소리를 내며 말한 수현이다.
"야."
"응?"
"넌... 너 그래. 영화 한 편 보자. 그것도 아주 슬픈 걸로. 연인이 진하게 헤어지는, 그런 영화."
민희는 자신의 생각과 말이 다르게 나오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첫댓글 슬픈거라면 로맨스 영화밖에 없을거에요
그렇겠죠? 하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