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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 갔을 때 가지가 찢어지게 주렁주렁 열린 홍시를 보니 반가웠다. 내가 농업고등학교 다닐 때 접목 기술을 배워 고염나무에 감을 접붙였다. 그것이 커서 감이 저렇게 많이 열렸다. 홍시가 먹음직하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났다. 나는 긴 장대로 그 빨간 홍시를 찾아 조심스럽게 땄다. 새파란 감 망(網)속에 담긴 연시를 빼내어 입속에 넣었다. 참으로 오래간만에 먹어보는 홍시 맛이다. 입에 들어가자마자 입안 가득히 그 부드러운 촉감에 당도가 꿀과 같다. 침으로 에워싸며 사르르 녹으면서 혀로 느끼는 풍미는 끝내주는 맛이다.
나는 감을 따서 먹고 또 먹으며 그 맛에 현혹되었다.
집 주위엔 홍시가 많이 열린 세 그루의 감나무가 우뚝 서 있고 한 그루의 곶감 만드는 감나무가 뒤편에 줄서있다.
초록색 감나무 잎 틈사이로 주황색 감이 아롱지고 코발트 색 가을하늘이 저 멀리 아득히 보였다.
감은 껍질이나 속이나 똑 같이 주황색이다. 겉과 속이 꼭 같은 과일이 이 세상에 있을까? 사과를 보라. 껍질은 빨간데 속은 희다. 즉 표리부동(表裏不同)이다. 그러나 감은 속살과 거죽이 똑 같이 주황색이다. 그래서 나는 진실성이 있는 감을 좋아한다.
나는 감이 많이 열린 감나무 밑에 서서 위를 올려다보았다. 주황색 홍시만 온통 시야에 확 들어왔다.
감나무는 옛적부터 일곱 가지 덕(德)이 있다 하여 칠덕(七德)을 예찬하였다.
칠덕이란 첫째, 수명이 길어 오래 감이 열린다.
둘째, 잎이 두꺼워 그늘이 짙다. 여름에 감나무 밑은 시원하여 피서처가 된다.
셋째, 새가 둥지를 틀지 않는다. 감나무에 까치가 집을 짓는 거 보았나?
넷째, 감나무엔 벌레가 생기지 않는다. 병충해가 없으니 감의 품질이 좋다.
다섯째, 감나무는 가을에 단풍이 곱게 물든다. 주황색 감과 빨강 노랑 단풍잎은 조화를 이루어 아름답다.
여섯째, 열매인 홍시는 달고 영양이 많다.
일곱째, 떨어진 감잎은 두꺼워 좋은 거름이 된다. 이 거름을 감나무 밑에 묻으면 해거리가 없이 해마다 많은 감이 열린다.
또 감잎은 비타민 C가 많아 감차로 애용한다. 한마디로 버릴 것 하나 없는 좋은 나무이다. 또 감나무는 잎이 넓어서 붓글씨 연습을 하기에 좋으므로 문(文)이 있고, 나무가 단단하여 화살촉 재료가 되기 때문에 무(武)가 있다.
열매의 겉과 속이 똑같이 붉어서 표리가 같음으로 충(忠)이 있고, 노인이 치아가 없어도 홍시를 먹을 수 있어서 효(孝)가 있으며, 서리가 내리는 늦가을까지 열매가 가지에 달려 있으므로 절(節)이 있는 문무충절효(文武忠節孝)의 5절을 갖춘 나무이다.
또 감나무는 욕심이 없다. 다른 과일 나무는 꽃이 피고 열매가 맺을 때 욕심껏 많이 맺혀 과일이 작게 열림으로 사람이 손으로 일일이 솎아 따 버려야 한다. 그러나 감나무는 감당할 만큼 열리고 나머지는 낙과(落果)시킴으로서 욕심 없이 절제 할 줄 아는 나무이다.
또 감나무 속(心材)은 까맣고, 잎은 푸르며, 꽃은 노랗고, 열매는 붉으며, 말린 곶감에서는 흰빛의 분(가루)이 나오므로 다섯 가지 색(色) 즉 5색을 모두 갖춘 나무라 예찬을 한다.
긴 장대로 ‘쏠쏠이’를 땄다. 곶감용 감을 충청도 사투리로 ‘쏠쏠이’라 부른다. 이 감은 작고 끝이 뾰족한 편이다. 우려먹을 수가 없으며, 홍시로 먹을 수도 없다. 오로지 곶감 만드는 데만 사용된다. 따라서 ‘쏠쏠이’는 곶감용 전용 감이다.
직접 곶감을 만들기 위해서 ‘쏠쏠이’를 땄다. 고개를 바짝 뒤로 젖혀 장대 끝을 정조준하며 하나씩 땄다. 장대의 끝은 감 망(網)이 붙어있고 핀셋처럼 갈라져있어 감 열매사이에 넣고 비틀면 가지가 꺾이며 작은 망 안으로 감이 쏙 들어갔다. 장대를 내리면 상처하나도 없는 감을 딸 수 있었다. 감나무 가지를 꺾는 것은 다음해 감이 많이 열리도록 잘라주는(剪定) 일거양득의 효과가 있다.
한 개, 두 개, 따다 보니 어느덧 한 접(100개)이 되었다. 노루 꼬리 만 한 늦가을 해는 금세 서산으로 뉘엿뉘엿 넘어갔다.
감을 방으로 운반하여 식구들과 둘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며 과일 칼로 껍질을 하나하나 정성껏 벗겼다. 벗긴 감은 엄청 떫다. 그러나 말리면서 숙성하면 당도가 높아져 달다. 플라스틱 건조기에 꾀어 빨랫줄에 매 달았다. 야외 햇볕에 보름 정도 말리거나, 방안에서 5~6일 말리면 곶감이 완성된다. 이렇게 만든 수제(手製)곶감은 홍시보다 더 달고 쫄깃한 맛이 일품이다.
곶감은 종합비타민이라고 불릴 만큼 영양이 풍부하다. 특히 비타민 C는 귤의 2배, 사과의 8배나 들어 있다니 최고의 좋은 간식거리이다.
미국에 와서 홍시를 먹어본다. 홍시 껍질이 야들야들하지 않고 거칠다. 우선 입에 닿는 촉감부터 부드럽지 않고 뻣뻣하다. 그리고 당도(糖度)가 싱겁다. 고향에서 먹어본 토종홍시는 꿀처럼 단데 영 풍미도 없다.
그리고 ‘쏠쏠이’감나무에서 딴 감으로 만든 곶감은 홍시보다 더 맛이 있다. 미국은 곶감을 애당초 만들지 않는다. 고향에서 먹던 홍시와 곶감의 그 맛이 생각난다.
미국 와싱턴주 페더럴웨이에서
연세대 졸업
교육계 30년간 봉사
은퇴 후 미국 이민(1992)
CPA 사무소 BOOKKEEPER 근무
한국 문학 수필 신인상으로 등단
한국일보 수기 우수상 수상
현 서북미문인협회 회원
뿌리문학 동호인
저서로 수필집 ‘솔바람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