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그리웁고 가슴 아픈 것 13
11월 초순 축제 2일째에 B여고 강당에서는
연극제가 한창이다
B여고 강당은 지은 지 40년 되어 낡아
보이지만 숫한 세월의 오욕을 함께 보낸
한국에서 몇 안되는 오래된 건물이다
과거 서울에서는 크고 넓은 건물이 별로 없어
이 강당에서 기념식도 가끔 열었고
다녀간 국가 원수 및 장관들도 많이 있다
강당은 고딕 양식으로 지어져 및및한게
볼 품은 없었지만 내부로 들어오면
새로 설치된 조명 및 방송 기자재와
내부를 리모델링하여 현대식으로 만들었다
500명의 관중을 수용할 정도로 큰 강당은
발 디딜틈도 없이 내외 귀빈, 재학생들,
외부 학생들로 꽉 차 있다
오늘이 미리 선정된 4팀이 출전하는 연극제가
열리는 날이다
백합 동아리란 이름으로 참가한 5공주팀은 아침부터
무대뒤에 마련한 준비실에서 연극 대본을 다시
점검 외우고, 연기 지도를 하는 선배형과
세밀한 연기를 지도 받으며 가다듬고 있다
마음이 조마조마하고 입이 바짝바짝 탔지만
흩어지려는 마음과 정신을 굳게 다잡고 용기를
불태우고 있었다
객석 앞줄에는 학교의 배려로 초청한 5공주
부모님과 다른 팀의 부모님들이 앉아 있다
백합 동아리팀은 전 날 제비뽑기 결과 3번째
출연하기로 정해졌고, 모두들 서로의 의상과
분장을 보아주며 의미심장한 각오를 한다
방송제가 9시에 시작되어 11시에 끝나고
12시에 연극제가 시작된다
교장 선생님의 훈시와 내외빈의 축사가
이어지고 요란한 박수소리와 함께 첫 번째
출연팀의 연기가 조용한 가운데 시작되었다
5공주는 누가 뭐라하기도 전에 모두 같이
손을 모으고 진솔한 마음으로 기도한다
행복과 행운을 달라고 하느님에게 기원을
드리고 있다
곁에서 이 모습을 보는 연기지도 선배형의
얼굴도 서서히 굳어가고 출연 시간이 점점
다가오자 짙은 고동색으로 변하며 딱딱해진다
드디어 사회자의 마이크에서 백합 동아리라는
이름이 호명되며 연극이 시작된다
연극 제목과 주연배우역을 쓴 큰 4절 흰 백지가
무대옆 간이 게시판에 붙여지고 연극이 시작된다
평강 공주와 호동 왕자
주연
평강 공주 : 해순
호동 왕자 : 명애
온달 장군 : 정란
호동 모 : 섭섭
온달 모 : 태숙
평원왕 : 희정 (찬조 출연)
그 외 엑스트라 다수
1막 : 무예 수련기
넓은 무대뒤에는 광활한 요동 벌판이 나타나고
우람하고 철통같은 요새인 고구려의 수도
국내성이 나타난다
그리고 작게 클로즈업 되면서 호동의
초가집이 나타난다
때는 10월 중순이라 밤이면 쌀쌀해져 울던
풀벌레들도 그냥 콱 죽어버리는 냉난방기도
지금은 흔한 히터도 없던 서기 570년 고구려
25대 제왕인 평원왕 시대이다
국내성 서쪽 다 쓸어져가는 오두막
허름하고 낡은 초가집안에 건장한 아들,
노모가 마주 앉아 있다
수천마리 반딧불을 모아 광목으로 만든 헝겊
안에 넣고 벽에 걸어둔 실내등에는 쉴새없이
빛이 새어 나오지만 형광등보다는 어둡고
희미하기만 하다
아들 호동이와 떡장수 호동모가 마주
보고 앉아 무언가 대결을 펼치고 있다
“ 호동아! 그동안 산에서 배운 검술을 시험해
보자구나 준비하거라
아직 멀었느냐
그렇게 늦장 부리다간 새벽이 밝아온다
빨랑 준비하거라“
호동모는 마음에 영 안차는듯 혀끝을 차며
호동을 째려보다 천정만 본다
“어머님! 걱정 마십시오 곧 준비될
것입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어제 스승님과 헤어져 하산하는 길에
가을 소나기가 내려 칼이 약간 녹쓸었나
봅니다
연습할 때처럼 잘 뽑혀지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호동이는 칼집에 든 칼을 두 손으로
잡고 이리저리 움직여가며 열심 낑낑거리며
칼을 뽑을려고 노력과 노력을 한다
“ 그렇느냐 이 어미도 그런 날이 있었다
밤새 떡을 쓸고난 뒤, 놔 둔 칼을 쥐새끼가
물고가 시궁창에 빠뜨려 다음날 소란 끝에
찾았고, 대충 앞치마에 문질러 시장에서
떡을 팔수 있었단다
그 말사이 호동이는 어렵게 칼집에서 칼을
뽑아 반딧불에 비쳐본다
겉면에 약간 녹이 있으나 칼끝의 예리함이
예사치 않아 보인다
곧이어 반딧불에 검은 헝겊을 두르고 어둠속
에서 호동모는 떡을 쓸고, 호동이는 장검
‘날린 검’으로 떡을 썬다
한 식경이 지났을까
호동모는 주어진 한 대야의 떡을 다 쓸어
놓고 반딧불을 가린 검은 천을 벗긴다
그러나 호동이는 한 대야 중 반밖에는 못썰고
그 모양도 뒤죽박죽이다
“호동아! 이게 어찌된 일이냐
입산한지 10년이 다 되어 가건만 으이하여
이 못난 어미보다도 칼질이 서툴드냐“
호동모는 한심하여 어린 아들을 야단치고
돌아서 눈물을 흘린다
호동 부는 고구려 대장군으로 중국 북주란
나라와 싸우다 전사한 장군중 장군이었다
“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다시 입산하여
5년후 나라에서 실시하는 국궁대회에서
보자꾸나
얼른 보따리를 사서 입산하거라
내 지금부턴 너를 아들이라 부르지 않겠다
알았느냐“
노한 호동모는 아들 호동이의 변명을 듣지
않고 노잣돈만 몇 푼 쥐어 주고 머리를 세게
쥐어박으며 산으로 개쫓듯 보내버린다
호동이는 억울함을 호소도 못하고 마냥
울면서 어둠을 헤치며 산으로 가고 있다
평소 실력이었으면 충분히 어미의 요구를
충족할 수 있었지만 보고픈 마음에 급히
산을 내려오다 너무 배가 고파 산아래 국밥집에서
먹은 고린내나는 김치땜에 설사가 났으며
지금은 탈수현상과 정신 착란현상까지
있어 어미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돌아가는 호동이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스승님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산천이
찌렁찌렁 울릴텐데
그다음에는 뻔한 뻔자
분명 밭에 두엄주는 일과 온 산을 뒤져
산머루를 따 죽여주는 술을 담그라 할텐데
매년마다 그 일이 너무 하기 싫었다
술 한주전자에 검법 한 구절씩 가르쳐 주고
술 떨어지면 매일 장작이나 패고
산짐승이나 잡으러 다녔다
수련을 시작한지는 두 해전쯤
기분파인 스승이 폭포옆에서 머루주를 마시던
중 달빛이 너무 좋아 히히덕거리다
마음이 동했는지 호동이를 불러 검법을
전수해주기 시작했다
한편 호동집과 정 반대편에 있는 온달의 집
달빛 아래 마당에는 온달 홀로 서서
짧은 단검을 쥐고 온갖 포즈를 다 잡고
있다
호권인가 하면 학익권이고 간혹 원숭이권까지
그러다 휙 돌아서면서 휘두른 단검에
달빛이 베어진다
예사롭지 않은 솜씨이다
방에는 온달모가 저녁을 배터지게 먹고
헤롱헤롱 두다리를 쭉 뻗고 코풍선을 불며
긴 잠에 빠져 있다
온달이는 호동이와 달라 집이 몹시 가난하다
호동이는 대장군인 아버지가 남겨둔 재산이
있어 스승을 구해 검법을 연마할 수 있지만
온달은 그날 그날 산에서 나무해와 시장에
판 돈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오늘날로 말하면 일당 날품팔이인 셈이다
오후에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있어 온달은
엄마에게 마당에 펼쳐 놓은 고추를 비가
오면 빨랑 걷으라는 말을 수없이 하고 산으로
나무하러 갔다
건망증이 있는 온달모는 10번 들어야 기억
하지 한 두번은 아이스크림 먹듯이 날름
생켜버리는 습성이 있다
근처 가까운 산의 쓸만한 나무는 온달이 모두
베었으므로 멀리 있는 큰 산까지 가야만
했다
서둘러 산에 도착하여 나무를 베던 중
근처 숲에서 서로를 희롱하며 사랑을 나누는
산비둘기를 보다 잘못 휘둘러 낡은 도끼가
나무를 빗겨가며 멀리 날아 호수같은 깊은
내에 빠져 버렸다
도끼 살 돈도 없어 물앞에 앉아 넋을 잃고
저녁까지 울었다
그 모습을 불쌍하게 여긴 산신령이 나타나
“금도끼를 들고나와 네것이냐”
“아닙니다”
“은도끼를 들고나와 네것이냐”
“아닙니다”
“쇠도끼를 들고나와 네것이냐”
“그렇습니다”
그런데 산신령의 말이 예전에 들어본 말이어
답은 일사천리로 막히지 않고 나온다
착한 마음씨에 어미를 지극정성으로 모시는
온달이 가상스러워 산신령은 도끼 3개를
모두 선물로 주었다
온달은 쇠도끼는 그냥 쓰고 금도끼는 팔아
집을 다시 짓고 논밭을 사고
은도끼는 판 돈으로 우시장에 송아지 한 마리
사러가던 중 시장 한끝에서 오래된 물건을
파는 난전을 지나갔다 그런데 뺑덕어미같이
생긴 상인의 권유로 검법비급을 시가보다 두배로
비싼 값에 사게 되었지만 원래 멍청해서
온달이는 알 수가 없다
세칭 말하면 바가지를 쓴 것이다
집에 와서 장롱 깊숙이 감춰 두었던 단검을
꺼내 검법을 연마할려고 책장을 넘기니
도통 알아볼 수 없는 글자가 수두룩하다
그림은 알아보겠는데 한문은 금시초문이다
그림만 보고 아무리 열심 연습해도
실력은 늘지 않고 고민하던 차
야간에 몰래 궁궐을 빠져 놀러 나왔던
평강공주가 온달집앞을 지나가고 있었다
달빛 아래 검법집을 거꾸로 들고 보면서
연습하는 온달이 안쓰럽고 웃음이 나와
평강공주는 대동한 시녀를 싸리문밖에
머물게 하고 온달에게 번역문을 써 주고
친절하게 글자 한자 한자 해석까지 해주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 온달은 어여쁘고 마음씨
고운 평강공주를 사모하게 되었고
매일밤 그리워하다가 어느 날 달빛 고운
밤에 마을 중앙에 있는 우물안에 자기의
마음을 토로하였다
“평강공주님을 사모합니다
평강공주님을 사랑합니다
평강공주님을 연모합니다“
그날이후 국내성에는 달빛 뜨는 교교한 밤
바람만 불면 바람 타고 온달이의 말이
들리곤 하였다
온달이는 낮에는 나무를 해다 팔아 돈을
저축하고(이젠 나무 안 해도 되는데)
밤에는 넓은 마당에서 혼자서 검술을 연습
하였다
찌르고 베고 돌아서서 휘두르고 뒤로
물러서면서 우아하게 교선을 그리며
횡으로 베고 그러다 한바퀴 물구나무로
돌면서 학처럼 우아하게 멀리 날아가 선다
예전보다는 엄청 진일보된 솜씨이다
나무를 해서 쌓은 엄청난 힘
장대한 기골
전도양양한 대장군감이다
호동이와 온달이는 너무도 다른 환경에서
좌절하지 않고 수련과 수련에 매진한다
호동이는 폭포 아래에서 폭포를 가르는
‘날랜검’을 연마하고
온달은 집앞 마당에서 달빛을 가르는
‘은한검’을 연마하고 있다
둘 다 다가오는 국궁 시합에서 고구려
대장군이 될 꿈을 꾸면서 지친 몸을 가일층
숙련의 경지로 몰아가고 있다
더군다나 올해에는 평원왕의 무남독녀
평강공주가 혼기를 맞는 해이라
우승한 장수에게는 상으로 평강공주와
혼인도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왕의 사위 부마가 되는 것이다
고구려에서 매년 가을 추수가 끝나면 하늘에게
제사를 지내며 고마움을 전하는 ‘동맹’이라는
풍습이 있는데 올해에는 근래에 보기 드문
풍년이라 융성하게 지낸다고 했다
동맹을 맞아 열리는 고구려의 장수 등용문인
국궁대회에서 우승한다면 앞길은 탄탄대로일 것이다
국궁대회는 한족의 침입을 막기위한 유능한
장수를 뽑는 대회이다
모든 대가집 명망있는 자제들은 누구나
다가올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부단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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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ㅎㅎㅎ연극 잘 보고 갑니다~
주말이네요 안녕을 빌어봅니다~
사랑의 힘은 대단한 것
라고 하십시오
거운 주말 되셔요 모네타님...*^^*
사랑하는 님을 위해서 이른 아침부터
이리도 긴 장문을 매일 쓰시는 모네타님을
떠 올려보며 연극 잘 보고 갑니다
사랑하는 님더러 보약 해
육체적 피곤이 올 듯도 한데...
제가 다 걱정 됩니다
감기 조심하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