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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다운 보수와 진보 단체, 개혁 세력에게 호소합니다!
극우보수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말고 이제부턴 정명에 맞게 매국노라는 말을 명확히 사용해야 합니다.
한국 사회의 기본적 대치 전선은 애국과 매국입니다. 한마디로 애민, 애국의 기치를 견지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외세와 매국노의 입장을 견지하느냐 하는 대립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개혁과 반개혁의 대치 전선도 사실 따지고 보면 애국과 매국의 대립 관계입니다. 이것은 한국에서 개혁을 방해하는 세력이 외세와 매국노이고, 또 이번 윤석열의 내란 사태 발생 과정에서도 그 계선이 여야 간이나 진보와 보수의 대결로 된 것이 아니라 나라의 주인인 민을 중시하는 애민, 애국의 기치를 견지하느냐, 그렇지 않으냐에 따라 형성되었던 것에서 드러납니다. 한마디로 애민, 애국의 기치를 견지하려는 세력은 내란 범죄자들의 책동을 막아내면서 처벌하려고 하였으나, 매국노들은 자기 패거리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나라와 민족은 어떻게 되든 안중에 두지 않고 내란 범죄자들의 처벌도 가로막으면서 공범의 역할을 자임하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한국 사회의 대치 전선이 개혁과 반개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애국과 매국의 대립 관계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둘의 관계가 따로따로 떨어져 노는 게 아니라 서로 일치되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는 애민과 애국의 기치가 확산되지 못할 뿐만이 아니라 매국노에 대해서 매국노라고 정명에 맞게 말하지 못하고 극우보수라고 표현합니다. 게다가 더욱 한심한 것은 매국노들이 신성한 애국의 이름을 참칭하면서 손에 들고 나온 깃발이 성조기라는 사실입니다.
도대체 이런 기가 막힌 현상이 언제까지 한국 사회에서 통용되어야 하겠습니까? 매국노가 매국 행위를 애국이라고 강변하고, 애국하겠다고 하면서 성조기를 들고나오는 현상이 계속 용인된다면 한국 사회는 개혁은 고사하고 사회적 혼란조차 수습할 길이 없게 될 것입니다. 한 사회가 유지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정의의 원칙 근간이 부정당하고 있는데 그 무엇으로 사회적 혼란을 수습할 수 있는 법질서를 세워낼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윤석열의 내란 사태가 한시바삐 수습되지 못하고 서로 충돌하면서 혼란이 빚어지고 있는 것도 여기에 그 원인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본질적인 문제로 들어가 살펴보았을 때 매국노를 매국노라고 정명에 걸맞게 사용하지 못함으로써 지금의 모든 혼돈된 현상이 비롯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매국노를 매국노라고 정명에 맞게 사용하지 못하고 극우보수라고 표현하는 현상이 나타나는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은 먼저 애국이라는 단어에 대해 일정 부분의 불신을 넘어 혐오와 배척, 공포심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사이비들이 애국이라는 단어를 심히 오독시키고 변질시켜 놓았기 때문입니다. 단적으로 애국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던 대표적인 세력이 바로 독일의 나치즘, 일본의 군국주의 등 파시즘 세력이었습니다. 그래서 애국을 사용하게 되면 이런 파시즘 세력이 다시 대두할까 봐 불신을 넘어 혐오와 두려움을 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파시즘 세력이 애국이라는 단어를 도용해 왜곡시켜서이지 애국의 참뜻이 원래 그렇기 때문이 아닙니다.
애민과 애국의 기치는 나라의 주인이 민이라는 데서 자연스럽게 도출됩니다. 나라의 주인인 민은 누구나 개성을 가진 존재로서 집단을 구성하여 나라와 민족 단위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모든 부분에서 주인의 권리를 누리고 살아야 하는데, 그러자면 그리할 수 있는 전제조건을 구축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개인과 집단, 나라와 민족 단위의 모든 부분에서 주인의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일치점을 견지하는 것입니다. 그 일치점은 나라와 민족 단위에서 운명공동체로 존립하여 살아갈 수 있는 애민, 애국의 기치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나라와 민족 단위에서 주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면 식민지 노예가 되어 각각의 영역에서 권리를 누리고 살기는커녕 상갓집 개만도 못하는 처지에 빠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 이치로 애민, 애국의 기치는 민이 개인과 집단, 나라와 민족 단위의 모든 부분에서 주인의 권리를 누리고 살아야 한다는 목적에서 도출되었기 때문에 독재자나 패거리 집단의 패권과 압제를 원칙적으로 반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독재자나 패거리 집단의 압제와 폭정이 이루어지면 개성이 부정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집단적 권리도 억압되고 나라와 민족성 자체도 왜곡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히틀러의 나치즘과 일본 군국주의 세력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나치와 일본의 군국주의는 먼저 독일과 일본의 민족성을 왜곡하였습니다. 독일과 일본 민의 특성이 민족성으로 나타나는 것인데, 히틀러와 일왕에 충성하는 게 독일과 일본의 민족성인 것처럼 왜곡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타민족까지 침략함으로써 다른 나라의 민족성마저 유린하였습니다. 자기 나라와 민족이 소중하다면 다른 나라와 민족도 소중한데, 이를 짓밟았다는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나치와 군국주의 세력에 충성하지 않는다면 개인은 물론이고 집단의 권리까지 철저히 가로막았습니다. 사상과 양심, 언론의 자유 같은 인간의 초보적 권리는 물론이고 각종 대중단체의 활동마저 철저히 억압하였습니다. 암흑의 세상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이에 반대해 나서는 게 지극히 자연스러운 흐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나치와 일본 군국주의 세력은 자국 내의 반대 세력에 의해 자연스럽게 무너져야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독일과 일본에서 나치와 군국주의를 극복할 만큼의 반대 세력이 나오지 못했던 연유가 어디에 있었겠습니까? 그것은 애국의 단어를 도용해 변질시켰던 데에 원인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참다운 의미로 애국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적대 세력을 설정하고 그들을 반대하는 것이 애국인 양 호도하였다는 것입니다. 독일의 나치에서 유대인들을 극구 비하하며 탄압하고 학살하였던 사실과 일본에서 조선인을 조센징이라며 비하하여 탄압하였던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여기서 왜 애국의 참뜻이 변질되었는가의 본모습이 나옵니다. 독일의 나치와 일본의 군국주의 세력은 그들에게 걸림돌이 되는 대상들을 적대 세력으로 설정하고 이에 반대하는 것이 애국인 양 호도시켰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대목을 명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참다운 애국과 사이비 애국을 갈라 보는 가름선이 되기 때문입니다.
애국은 민이 나라의 주인이고, 그 민이 개인과 집단, 나라와 민족 단위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기초로 해서 나온 기치입니다. 그런데 나치와 군국주의 세력은 애국을 민에서 찾지 않고 적대 세력과의 관계에서 찾았다는 것입니다. 적대 세력과의 관계에서 찾으면 애국을 견지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참다운 애국을 부정하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왜냐하면 애국의 주체가 민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논리이기 때문입니다. 애국은 민이 주체로서 주인의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입장에서 나온 것인데, 거꾸로 민이 적대 세력과 싸우기 위해서 존재하고 살아야 한다는 식으로 전도시켜 버렸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사이비들은 적대 세력과 적대 국가를 만들어내면서 거기에 싸우는 것이 애국 행위인 양 호도하고 있습니다. 미국이 패권적 지배 질서를 세우기 위해 반소와 반공을 내걸다가 지금에 이르러서 자신들의 유일 패권적 지배 체제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상대가 중국이라고 보고 반중 적대 정책을 펴나가는 것도 이런 연장선상에 서 있습니다.
한국에서 반북, 반공을 애국인 것처럼 호도하는 것도 이런 모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민은 반북, 반공을 위해 살아가지 않습니다. 한국의 민은 한국 땅에서 주인의 권리를 누리고 살아가고자 합니다. 바로 여기에서 주인의 권리를 누리고 살아가는 데 걸림돌이 되면 반대하여 싸우는 것이지 그 누구와 싸우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삼지 않습니다. 그 누구와 싸우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면 그것 자체가 민을 주인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기에 참다운 애국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회적 관계는 사회 역사의 주체가 주인이 권리를 실현하는 데에 유리하면 이용하고 불리하면 극복하는 것이지, 주체가 사회적 관계 자체의 해결을 위해서 존재하거나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만약 주체가 사회적 관계 자체에 의존한다면 그 사회적 관계가 깨지게 되면 그 주체 또한 사라지게 된다는 논리인데, 어떻게 사회 역사의 주체인 민이 이 세상에서 사라질 수 있다는 말입니까? 바로 여기서 애국이 사회적 관계 자체에 결정되는 것으로 보게 되니, 그 사회적 관계가 사라지면 애국이 필요 없는 것으로, 다시 말해 나치와 파시즘과의 관계가 사라지니 애국도 필요 없고, 도리어 애국을 거론하면 파시즘 체제가 재등장하게 된다는 식으로 여기는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한국 사회의 기본 전선을 애국과 매국의 대치 상태로 보고 매국노를 응징하자는 것도 실상 사회적 관계 문제로 본 것 아니냐고 질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애국과 매국은 사회적 관계 문제로 설정해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민이 나라와 민족 단위로 살아가고 있으므로 이 부분에서 주인의 권리를 실현하자면 매국 행위는 용납해서는 안 된다는 본질적 이유에서 도출된 것입니다. 그래서 애민, 애국은 민이 사회 역사의 주체로 된 이상, 인류 사회가 존속하는 한, 계속 심화 발전시켜야 할 기치가 됩니다.
하지만 반북, 반공은 물론이고 반미, 반일은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한국 민이 나라와 민족 단위에서 주인의 권리를 실현하는 데에 방해가 되면 반대하는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견지할 필요가 없습니다. 반미와 반일의 입장을 견지하는 이유는 이들 나라가 한국의 참다운 주권 행사를 가로막고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한국 민이 주권을 행사하여 주인의 권리를 누리고 살아가려는 노력을 감히 훼방하지 않는다면 반미와 반일을 벌일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나치와 군국주의는 본질적으로 애국의 길을 부정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왜 애국을 도용했던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애국이 민의 정서에 맞을 뿐만이 아니라 나라와 민족 단위에서 가장 광범위한 세력들이 함께할 수 있는 기치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이비이면서도 광범위한 사람들로부터 지지를 얻어내기 위해 애국인 양 도용했던 것입니다. 그 양태가 바로 자신들의 사이비 애국을 교묘히 숨기고자 적대 세력을 설정하여 공격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에 동참하지 않으면 애국이 아닌 것처럼 호도하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사이비들도 도용할 만큼 애국은 민의 정서에 맞고 광범위한 사람들의 지지를 끌어낼 수 있는 기치가 됩니다. 그런데 왜 애국의 기치를 포기해야 한단 말입니까? 물론 나치와 군국주의 세력은 애국을 도용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가혹하게 탄압하고 학살하였습니다. 그 후과는 실로 엄청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애국의 기치를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식입니다.
게다가 민이 주인의 권리를 누리고 살려면 필연코 애민, 애국의 기치를 내걸어야 합니다. 개인과 집단, 나라와 민족 단위의 모든 부분에서 주인의 권리를 실현하는 데에 있어서 일차적으로 일치되는 지점이 애민, 애국의 기치로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애국의 기치를 통째로 내버리고서 어떻게 사회적 문제를 풀 수 있다는 것입니까? 더욱이 사이비 애국의 극복은, 애국의 기치를 회피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애국의 참다운 내용을 확보했을 때 풀어질 수 있습니다. 애국의 기치를 회피했을 때 사이비들은 계속 애국을 도용하고 나올 터인데, 그러면 그런 잘못된 현상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나치와 일본 군국주의 세력이 애국을 도용해 수많은 사람들을 탄압했기 때문에 애국의 깃발을 사용하지 못하고 이런 세력들에 대해 극우보수라고 지칭하면서 반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독일이나 일본, 미국의 패권 세력들에 대해서는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결코 어울리지 않습니다.
독일의 나치와 일본 군국주의, 미국의 세계 유일 패권주의는 자기 내부의 적대 세력을 탄압하기도 하였지만, 또 다른 한편에서 다른 나라를 침략하여 지배하는 길로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극우보수라고 지칭되는 세력들은 이와 다릅니다. 철두철미 한국의 민은 물론이고 같은 동족에 대해 탄압하고 대결하는 길로 나왔습니다. 그것도 미국의 지배를 받는 게 당연하고, 또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것도 한국의 근대화에 이바지했다는 식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을 어떻게 극우 패권의 논리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까? 극우 패권의 논리가 되려면 최소한 만주 땅을 찾아야 한다거나 대마도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런 주장을 하기는커녕 하나같이 미국과 일본의 지배를 받고 살아야 한다는 격이니 나라와 민족의 존엄을 비하하고 짓밟는 매국노의 태도가 아니라면 뭐라고 말해야 하겠습니까?
그러면 한국 사회에서 이렇게 매국노적 행위를 하는 세력들을 매국노라고 지칭해야 하건만 극우보수라고 지칭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은 한국 민에 입장에 서서 이들의 행태를 살펴보아야 하건만 서구의 입장에 근거한 논리와 이론을 그대로 차용하는 사대주의적 사고방식에 기인합니다. 극우보수는 서구의 진보적 입장에서 볼 때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지배하자면서 인간의 초보적 권리마저 허용하지 않고 탄압하고 폭정을 가했으니 애국이 도용되면 지난날의 참상을 겪게 될 것이 두려워서 애국의 단어에 대해 극도의 경계심을 보이는 건 어쩌면 일면적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사이비 애국을 극복하자면 참된 애국의 내용을 확보해야 하니만큼, 이 또한 애국의 기치를 옳게 사용하는 방향에서 풀어야 합니다. 그래야 나라와 민족성을 옳게 세워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개인과 집단 단위에서의 억압과 폭정을 막아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서구에서도 극우세력들이 나타나고 있는 조건에서 이를 극복하자면 애국의 참된 길을 찾아가는 것이 중대한 과제로 나서고 있는데, 주권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는 나라에서야 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입니다. 게다가 한국에서 극우보수라고 지칭되는 세력은 형태적으로 미국과 일본의 극우보수의 논리를 차용하고 있지만 그 주장의 결론은 결국 미국과 일본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방식으로 자국 민만 탄압하고 동족 간에 대립, 대결을 일으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나라에 대한 지배와 패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철두철미 미국과 일본의 앞잡이 역할을 하는 매국노 행위에 다름 아닙니다. 그런데도 이 차이를 바라보지 못하고 극우보수라고 사용한다는 것은 서구식의 입장과 이론에 빠져 있는 사대주의적 근성에서 발로하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한국 민의 권리를 실현하자면 한국 민의 입장에 서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서구적 입장과 이론에 빠져 극우보수라고 지칭한다면 어떻게 한국 민의 권리를 실현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점에서 서구 사회에서는 침략과 패권을 일삼은 세력들을 극우보수라고 일컬을 수 있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극우보수라고 지칭해서는 안 됩니다. 매국노를 정명에 맞게 매국노라고 사용하는 것은 한국 민의 주체성을 확립하면서 주체적 역량을 키워내기 위해 결코 양보할 수 없는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극우보수라는 지칭이 한국 민의 주체성과 주체적 역량을 키우는 데에 얼마나 심각한 후과를 가져다주느냐는 애국과 매국으로 계선이 그어지지 않는 데에서 단적으로 드러납니다. 극우보수라고 지칭하니 사회적 대립 양상이 진보와 보수 간의 대결 내지는 여야 간의 정쟁인 것처럼 여겨지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대치 전선은 진보와 보수의 대결도 아니고, 여야 간의 정쟁 대결도 아닙니다. 참다운 보수라면 나라의 주권을 찾자는 주장을 왜 거부하거나 외면한다는 말입니까? 마찬가지 이치로 여당이든 야당이든 간에 참다운 정치인이라고 한다면 왜 주권의 확보를 당리당략에 따라 판단하는 문제로 여길 수 있단 말입니까? 나라와 민족 단위에서 주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다면 보수 정책은 물론이고 참다운 정치를 펼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도 명백한 사실인데 말입니다.
여기서 참다운 보수와 진보 단체, 개혁 세력에게 정중하게 호소합니다. 이제부터라도 매국노를 정명에 맞게 매국노라고 불러야지 극우보수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매국노를 매국노로 부르지 않고 극우보수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되면 한국 사회를 개혁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근간이 주권을 회복하는 문제인데, 이 과제를 외면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한국 사회가 주권을 찾으려면 주권을 제약하는 외세와의 불평등한 조약과 협정을 파기해야 하는데, 극우보수라고 표현하게 되면 이 문제가 무슨 정책적 차이인 것처럼 왜곡되기 때문입니다. 매국노들이 외세의 앞잡이 역할을 하면서 주권 회복을 가로막고 있는데, 그 가당치 않은 행동이 무슨 정책의 차이인 것처럼 호도되어 매국노가 제대로 응징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매국노가 응징되지 않으면 주권을 찾을 길이 없습니다. 매국노들이 나라와 민족은 안중에도 없이 자기 패거리 집단의 이익을 위해 주권을 찾는 길을 끊임없이 방해하고 나오기 때문입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내란 사태가 시급히 수습되지 못하는 것도 그 핵심적 본질이 매국 행위인데도 그 무슨 극우보수의 정치적 행위인 것처럼 여겨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수와 진보 내지는 여야 간에 정쟁인 것처럼 잘못 이해되어 애민, 애국의 기치로 광범위한 세력이 결집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내란 사태의 초기에 나라의 주인인 민을 중시하는 애민, 애국의 기치가 형성되었을 때는 여야와 진보, 보수를 떠나 비상계엄의 선포를 반대하고 탄핵에 한데 동참하였습니다. 그런데 극우보수라는 명칭이 계속 사용되다 보니 내란 사태가 그 무슨 정책 차이인 양 호도되어 혼란스러운 상황을 계속 걷게 된 것도 그 내막을 따지고 보면 애국과 매국의 계선이 명확히 형성되지 못했던 데에 기인합니다. 이런 혼란을 한시바삐 수습하기 위해서도 매국노는 매국노라고 정명에 맞게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매국노를 극우보수가 아니라 정명에 맞게 매국노라고 명확하게 사용하게 되면 지금껏 잘못 호도되고 왜곡된 애국의 참뜻과 내용을 찾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매국노가 감히 애국을 참칭하지 못하게 되면서 정의로운 사회 질서를 세우는 데 가장 기초이자 기본이 되는 애국과 매국의 참 내용이 바로잡아지게 될 것입니다. 그에 따라 광범위한 사람들이 애민, 애국의 기치에 합류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형성된 압도적인 역량으로 매국노를 응징할 수 있을 것이고, 그러면 내란 사태로 혼란스러운 한국 상황도 점차 수습되어 갈 것입니다. 아울러 지금껏 한국 사회를 개혁하는 데에 커다란 걸림돌이 되었던 주권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고, 주권 문제가 해결된 조건에서는 일치와 입체, 통일의 방법론을 통해 한국 사회를 참답게 개혁할 수 있는 길도 열리게 될 것입니다.
2025. 2. 17
우리겨레연구소(준) 소장 정호일
첫댓글 매국노들은 자기 패거리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나라와 민족은 어떻게 되든 안중에 두지 않고 내란 범죄자들의 처벌도 가로막으면서 공범의 역할을 자임하고 나왔다는 것입니다.
~~~~~~~~~
네~
그동안 미친 매국노들이
애국을
참칭했습니다.
그 신비한 주술? 변신도구는
빨개이타령, 반공입니다.
세계유일 분단민족의
폐단이자 비극이며,
평생 정신반푼이로 살아온 때문 일겁니다
그래서
빨갱이타령 한 소절로
시도 때도 없이 종북몰이 해대며
공동체 구성원이들 골고루 잘 사는 나라,
선조들이 이루고 꿈꾸었던
대동사회를 위한 개혁이나
돈이 아니라 사람이 중심이 되는 사회는
아예 꿈도 꾸지 못하게 해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