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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민, 애국의 담론을 확보해야만 사회 대개혁이 가능하다
애민, 애국의 기치는 필승의 보검이다. 그래서 그 참뜻을 바로 세우면 민은 주인의 권리를 누리고 살 수 있지만, 반면에 매국노가 애국을 참칭하는 것을 허용하면 사회 대개혁은 불가능하다.
1. 애민, 애국은 사회 통합 원리
2. 사회 통합 원리의 담론을 장악한 세력이 국가 권력을 장악한다
3. 자본주의 시기에 와서 벌어지는 애국에 대한 담론 투쟁
4. 현대제국주의와 세계제국주의 시기에서의 애국에 대한 담론 변화
5. 세계제국주의가 위기에 처한 상태에서 애국의 담론
6. 참다운 애국의 담론을 확보해야 시대적 과제를 해결할 수 있다
7. 한국 사회에서는 매국노가 애국을 참칭하는 것을 극복해야만 개혁이 가능하다
1. 애민, 애국은 사회 통합 원리
애국의 참뜻을 찾아야만 민이 실질적으로 주인의 권리를 누리고 살 수 있다는 것은 무엇보다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개척하는 데에서 애민, 애국이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를 살펴보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좌우하는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라와 민족이 사회적으로 구성되어서 운영되어 가는 이상 거기에서의 핵심적 요인은 애민, 애국의 기치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사람이 사회적 존재로 살아갈 때 그 삶의 단위가 나라와 민족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나라와 민족 단위일 수밖에 없는 것은 인류사에서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단위가 나라와 민족 단위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나라와 민족 단위의 삶을 유지하자면 여기서 꼭 불가피하게 제기되는 요소는 삶의 단위를 통합할 수 있는 핵심적 운영 원리와 원칙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라와 민족이 유지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그 통합 원리는 뭐가 되겠습니까? 그것은 나라와 민족 단위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하나의 운명공동체로 소속시킬 수 있는 통합 원리가 있어야 할 것인데, 그것은 결국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애민, 애국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인류사의 발전 과정에서 각 단계마다 차이가 있더라도 나라와 민족을 통합하는 원리는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노예제나 신분제, 자본제 사회가 운영되는 기본 원리는 사회 구성원을 통합시키는 것이 아니라 갈등과 대립을 해결할 수 없는 상황으로 만들어 갑니다. 하지만 애민, 애국의 기치는 사회적 대립과 갈등을 잠재우고 통합해 갈 수 있는 기치로 됩니다.
노예제 사회에서 노예와 노예주로 나뉘어 사람을 인간으로 취급하지도 않고 동물이나 도구로 여기며 학대하고 부리는데, 거기서 그 무슨 통합 원리가 나올 수 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신분제 사회는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와 자본가로 서로 대립하여 싸우는데 거기서 어떻게 서로 통합할 수 있는 원리가 나오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애민, 애국의 기치는 다릅니다. 애민, 애국이라는 것 자체가 나라와 민족 단위에서의 운명공동체라는 소속감을 요구하는 것이기에 그 자체가 벌써 사회적 통합 원리가 되는 것입니다.
애민, 애국이 나라와 민족 단위에서의 통합 원리로 작용한다는 것은 외부 세력의 침략을 받았을 때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납니다. 노예제 사회이든, 신분제 사회이든, 자본주의 사회이든 관계없이 운명공동체 소속원이라면 외부 침략 세력에 대항하여 싸웁니다. 노예로서, 상놈으로서, 노동자로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와 민족 단위에서 살아가는 운명공동체 성원으로서 외부 세력에 대항해 싸우는 것입니다. 단지 노예이고, 상놈이고, 노동자라고 생각한다면 외부의 세력이 침략해 온들 어차피 노예이고, 상놈이고, 노동자일 것인데, 외세에 대항해 싸워야 할 이유가 어디에 있냐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노예제 사회나 신분제 사회, 자본주의 사회의 운영 원리로서는 외부의 침략 세력에 대항해 싸울 수 있는 합당한 이유가 나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껏 인류사는 외부 세력이 침략해 오면 싸웠습니다. 그것은 다른 데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나라와 민족 성원들을 통합하는 원리인 애민, 애국의 기치가 있었던 것이고, 그 기치에 의해서 서로 간의 계급적, 계층적 차이가 설사 있었다고 해도 서로 힘을 합쳐 싸웠던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인류사의 발전 과정에서 드러나듯 나라와 민족을 통합하는 원리의 핵심적 기치가 애민, 애국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회가 운영되는 데 여러 원리가 있지만 나라와 민족이 유지되게 하는 근간이 애민, 애국이라고 한다면 결국 사회를 이끌어가는 주된 세력은 이 애민, 애국의 기치를 움켜쥐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사회 운영은 고사하고 사회 자체를 유지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인류사에는 수많은 나라와 민족이 있었고, 한때 번영과 영화를 누렸던 족속도 있었지만, 지금에 이르러서는 있는지조차 모르게 사멸했던 것은 자신들의 독자성을 견지하면서 통합할 수 있는 능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2. 사회 통합 원리의 담론을 장악한 세력이 국가 권력을 장악한다
그렇다면 결국 어떤 사회이든 간에 그 사회의 지배층 행세를 하려면 애민, 애국을 움켜쥐어야만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노예제든, 신분제든, 자본주의 사회든 관계없이 그 사회의 기득권과 지배층을 형성했던 세력은 나라와 민족 단위에서의 애민, 애국적 기치를 장악하고 움켜쥐었다는 것입니다. 노예제 사회에서는 노예주들이, 신분제 사회에서는 양반들이 애민, 애국을 움켜쥐었고,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심지어 파시즘이나 군국주의, 내지는 군사파쇼 세력들도 애국을 움켜쥐었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인류사의 과정을 보면 애민, 애국의 기치를 움켜쥔 세력이 권력을 장악했다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애민, 애국의 기치가 나라와 민족 단위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가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애국의 기치를 장악하는 그 세력이 사회의 향방을 결정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세력이든지 애민, 애국의 기치만 움켜 취면 권력을 장악할 수 있다는 것인가요? 장악할 수만 있다면 그렇다고 보는 게 맞겠지만, 중요한 것은 그럴 만한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노예제, 신분제, 자본주의 사회에서 왜 노예나 상놈, 노동자들이 사회 통합 원리인 애국을 장악하지 못했을까요? 그만한 능력을 갖추지 못했고, 그 당시에는 주되게 지배층들이 그런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자신들의 사회적 체제에 맞게 군림하면서도 애국심을 요구하면서 사회를 통합하며 지배하였던 것입니다.
3. 자본주의 시기에 와서 벌어지는 애국에 대한 담론 투쟁
인간이 사회적 통합 원리를 생각하자면 인간으로 대접받을 뿐만이 아니라 그것도 차별받지 않고 누구나 평등하게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단계에 이르러야 합니다. 인간이 아니라 동물 내지는 도구로 취급당하는 노예제 사회에서 그 무슨 사회 통합 원리를 논할 수 있는 능력이 되겠습니까? 그러니 노예주들이 말하는 애민, 애국의 주장을 따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이런 이치의 연장선상에서 신분적으로 차별받는 속에서도 사회적 통합 원리를 논할 수 없었고, 양반이나 귀족, 영주들이 애민, 애국을 논하는 것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 당연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간이 누구나 평등하게 자유를 누리는 시대에 와서는 다르게 됩니다. 이제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으니 사회 운영 원리도 따져보고, 통합 원리도 따져보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지금까지 사회와는 달리, 무엇이 애국인지를 놓고 본격적인 논쟁이 전개될 수 있는 전환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 초기 사회에 이르러서도 애국은 그 참뜻에 맞게 사용되지 못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게 자유를 누리고 산다고 했으나 그것은 단지 형식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고, 그마저도 부정되기 십상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제국주의와 파시즘, 군국주의 세력은 자신들의 이익을 실현하기 위해 나라와 민족 단위에서의 사회 통합 원리인 애국을 도용하여 다른 나라를 지배하고 침략하는 대로 이용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제국주의와 파시즘, 군국주의 세력이 애국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애국의 참뜻을 변질시킨 것은 자신들이 기반하고 있는 사회적 운영 원리가 자본의 법칙에 기반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게 자유를 누리고 사는 존재라고 하였으나 실상 자본의 법칙에 따라 운영되었기에 자본의 소유 여부, 즉 인간 외적 조건에 따라 좌우되는 존재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본이 없는 사람은 노동력을 팔아 자신의 생계를 유지해야 했는데, 자본가는 자본을 소유하고 있는 것을 기화로 노동자를 고용해 맘대로 부려먹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게 자유를 누리고 살 수 있다고 하였으나 이것은 형식적인 것이었을 뿐 실질적으로 누리고 살 수는 없었습니다.
인간이 자유와 평등을 실질적으로 누리고 있지 못하는 조건에서 지배와 억압이 이뤄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습니다. 바로 여기서 자신들의 지배와 억압을 위해 사회 구성원을 통합시키기 위해 애국을 도용하고 변질시켰습니다. 이것은 노예제나 신분제에서 노예주나 국왕이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지배하려고 할 때 자신들의 명령에 따르는 게 애국이라고 도용했듯이, 자본가들 또한 자본의 지배와 억압을 위해 다른 나라와 민족을 침략해 지배하는 행위에 동참하는 게 애국이라고 도용했던 점은 그 맥락이 똑같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자본주의 사회는 노예제와 신분제와는 또 다른 특이한 측면이 존재합니다. 노예제와 신분제는 왕이나 지배자가 패권적 욕망 자체를 갖고 있느냐, 갖고 있지 않느냐에 따라 다른 민족에 대한 침략성이 주되게 결정되었으나 자본주의 사회는 자본의 특성 자체가 다른 나라와 민족에 대한 침략성과 약탈성을 갖게 된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자본의 속성 자체가 이윤 추구이니만큼 이를 위해서 국경을 넘는 것을 너무도 당연시한다는 것입니다. 끝없는 이윤 추구를 하자면 물건을 만들어서 팔아야 하고, 그 과정은 치열한 경쟁을 유발합니다. 바로 여기서 상품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원료, 자원이 필요했고, 또 그 상품을 팔아야 했습니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식이 식민지의 경영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산업자본을 지나 독점자본을 형성하게 되면 그에 따라 식민지를 경영하는 길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식민지 쟁탈전을 놓고 벌이는 제국주의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제국주의 국가들은 식민 지배를 통해 약탈하는 것은 물론이고 타 제국주의를 제압하는 것이 애국인 양 호도하였습니다. 타 제국주의에 제압당하면 그들의 욕망은 물거품이 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자기 나라와 민족 단위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마저 지배와 간섭을 받고 살아야 되기에 이를 막는 것이 급선무로 되고 여기에 합류하는 것이 애국이라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노예제나 신분제 사회 같았으면 이에 대항하는 세력이 없이 당연하게 서로 간에 싸우는 것이 애국이라고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자본주의 사회라는 것이 형식적이기는 하지만 누구나 평등하게 자유를 누리고 사는 존재라는 것이 선언된 이상 그 주장에 대해 대항하는 반론을 제기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인간이 누구나 평등하게 자유를 누리고 사는 것이 인정되는 조건에서 착취와 억압이 없는 인류의 이상향을 떠올려 보는 것도 허망한 꿈으로만 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억압과 착취가 없는 세상을 만들려면 결국 계급적 지배와 억압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이들이 바로 사회주의, 공산주의자들이었습니다.
이렇듯 인류의 염원한 꿈을 실현하기 위해 계급적 지배와 억압을 없애야 한다고 바라보는 조건에서는 다른 나라를 지배하고 억압하기 위해 애국의 이름이 도용된다는 것은 인정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어차피 제국주의 전쟁이 벌어졌을 때 누가 이기든, 지든 상관없이 이긴 세력에 의해 계급적 지배와 억압이 계속 진행될 것이기에 인류의 꿈을 풀어가자면 이를 막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레닌은 제국주의 전쟁 시기에 노동계급을 포함한 민은 전쟁에 동참할 것이 아니라 내전으로 전개하라는 입장을 표명하였고, 그리고 이를 러시아에 적용하여 사실상 차르를 붕괴시키고 사회주의 국가를 수립하였습니다.
바로 여기서 참다운 애국이 무엇인지에 대해 놓고 세계사적인 논쟁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의 역사적 과정에서는 나라와 민족 단위에서 지배층과 권력자들이 다른 나라를 지배하고 침략하는 것을 당연한 애국적 행위라고 주장하는 것이었지만, 전쟁도 없고 지배와 억압도 없는 사회를 지향하자면 어떤 것이 애국적 행위인가에 대한 새로운 주장이 탄생했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지배와 억압이 없고 누구나 자신이 꿈꾸는 세상을 실현하고 누리는 인류의 이상향을 실현하자면 다른 나라에 대한 침략과 약탈이 이뤄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자국 내부의 사회적 관계부터 억압과 지배가 형성되는 사회가 되지 않게 만드는 것이 참다운 애국적인 행위이자 내용으로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레닌의 주장은 대부분의 서구 사회에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당장 전쟁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패전은 곧 승전국의 간섭과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현실로 되는 조건이 되다 보니 제국주의 각 진영의 사람들은 타국의 군사와 싸우게 되었습니다. 억압과 지배가 없어져야 한다면 타국에 대한 침략 자체를 반대해야 하건만, 현실적으로 자기 나라만 그런 길로 갈 경우, 패전으로 인해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한마디로 세계 각국의 노동자와 농민을 포함한 민은 서로를 믿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서로를 믿을 수가 없었던 사실을 그저 단순한 우려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당시의 현실 상황이었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게 자유를 누리고 살아야 한다고 했지만, 현실에선 형식적인 빈말에 그쳤고, 실질적으로는 그렇게 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이치에서는 맞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현실에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회적 환경이 작용했다는 것이 첫 번째라고 한다면, 또 다른 측면은 나라와 민족 단위에서 애민, 애국의 기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다른 나라의 침략을 받지 않을 만큼의 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만약 침략을 받았을 때 그에 반격하고 격퇴하는 것이 기본 원칙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어떤 정책을 실시할 때 그저 소망에만 기초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물리적으로 뒷받침되어야만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 자명한 이치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런 측면에서 1차 제국주의 전쟁은 제국주의 간의 식민지 쟁탈전을 벌이는 과정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국주의 전쟁에서 승리한 승전국은 패전국을 사실상 간섭하고 지배했을 뿐만 아니라, 승전국이 지배하고 있던 식민지는 민족 자결권이 인정되지 않았고, 단지 패전국의 식민지국만 인정되었을 뿐이었습니다. 이것은 패전국의 식민지를 사실상 승전국이 빼앗아 지배하기 위한 노림수였습니다. 한마디로 1차 세계대전인 제국주의 전쟁에서는 식민지 해방이 이뤄진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제국주의 간의 전쟁 양상으로 전개되었고, 여기에서 제국주의 전쟁에 적극 뛰어드는 것이 애국인 양 호도되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었습니다. 이 또한 제국주의 전쟁이었지만 단지 제국주의 간의 전쟁으로만 되지 않았고, 사회주의 국가인 소련은 물론이고 식민지 나라에서의 민족해방 세력도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었던 것은 독일의 나치와 이탈리아의 파시즘, 일본의 군국주의 세력이 다른 모든 나라와 민족을 지배하겠다는 극악한 파시즘적 정책을 내걸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자기 나라와 민족의 우월성으로 내세웠고, 그런 우월성에 기초해 타국을 침략하고 지배하는 것이 애국인 양 호도하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1차 세계대전과는 다른 양상을 띠게 만들었습니다. 한마디로 파시즘 세력에 의해 세계 모든 나라가 이들의 식민 지배를 받을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래서 우선적으로 이들 파시즘 세력에 대해 대항해 싸워야만 했습니다. 그래야 세계의 모든 나라가 극악한 지배와 억압을 막아낼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사회주의 진영인 소련은 물론이고 세계 모든 나라가 동참하여 반파시즘 연합전선을 형성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한마디로 파시즘 세력이 애국을 도용하여 세계적 차원에서 침략과 전쟁을 감행하는 데에 반파시즘 연합전선을 형성하는 것이 세계 인류가 지향해야 하는 참다운 애국이라는 주장이었습니다.
반파시즘 연합전선이 애국이라고 주장하는 조건에서 식민지 나라에서도 이에 함께하는 것이 요구되었고, 바로 여기서 제국주의 국가나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반파시즘 연합전선을 형성하였지만 식민 지배를 받는 나라에서는 이와 동격으로 민족해방전선이 형성되었습니다. 당연히 민족해방전선에서는 이들 파시즘 세력에 대항하여 조국을 해방하고 독립을 쟁취하는 것이 애국으로 주장되었습니다.
이렇게 반파시즘 연합전선과 민족해방전선의 공동전선으로 파시즘 세력에 승리를 이룩하였고, 이런 승리를 기반으로 소련은 동구권을 포함한 세계 곳곳에 사회주의권을 형성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식민지의 나라들은 민족해방을 이룩한 성과를 기반으로 하여 독립의 길로 나아가고자 하였습니다.
하지만 반파시즘 전쟁과 민족해방전쟁은 파시즘에 대한 대항이 주된 것이었지 제국주의 자체에 대한 싸움은 아니었습니다. 바로 여기서 2차 세계대전을 통해 절대적, 상대적 우위에 선 나라인 미국은 제국주의 국가로서의 속셈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한마디로 사회주의권의 형성은 물론이고 민족해방 세력이 등장하여 주권을 제대로 행사하기 시작하면 제국주의적 수탈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을 것이기에 이에 대해 방어하면서 자신들의 지배권을 행사하기 위한 방향으로 나아갔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미국이 현대제국주의 국가로 등장하는 길이었습니다.
4. 현대제국주의와 세계제국주의 시기에서의 애국에 대한 담론 변화
현대제국주의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주의권과 민족해방 세력이 강화되고, 제국주의 국가는 서로 간의 전쟁을 치르면서 약화되었던 상황에서 오로지 미국만이 절대적, 상대적 측면에서 강력한 제국주의 국가로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조건에서 미국은 세계를 자신들의 지배를 실현하기 위한 방향으로 진행해 나갔습니다. 먼저 제국주의 세력의 힘을 확보하는 데로 힘을 돌렸습니다. 제국주의 국가의 힘이 약화되면 사회주의권과 민족해방 세력에 밀려날 수밖에 없기에 제국주의 세력의 단합을 이룩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제국주의 국가를 하나로 모아내고자 했고, 그 일환으로 승리한 제국주의 국가뿐 아니라 패전한 나라도 다시 끌어들여 모든 제국주의 국가의 우두머리로서 권한을 행사하려고 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현대제국주의는 미국이 제국주의 우두머리 국가가 되어 사회주의권과 민족해방 세력을 제압하고 제국주의적 지배와 억압을 실현하려는 정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현대제국주의 국가로 등장한 미국은 자신들의 통합 원리로 반공과 반소를 기본 정책으로 제시했습니다. 한마디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것이 자국 민에게 애국이라고 강요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지난날의 식민지국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마디로 반공, 반소의 냉전체제의 성립이었습니다. 이런 반공 냉전체제를 기초로 구식민지를 신식민지라는 새로운 지배 방식의 형태로 변경하였습니다. 식민지국에서의 독립 열망을 부정할 수 없었기에 형식적으로는 주권을 인정하는 척하나 실질적으로는 불평등한 조약과 협정을 통해 지배하는 방식으로 탈바꿈한 것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사회의 통합 원리로 반공과 반소를 내세웠고, 그것이 사실상 애국인 것처럼 도용하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미국이 사회 통합 원리로 애국을 직접적으로 거론하지 않고 반공과 반소를 내건 것은 미국이 현대제국주의 국가의 우두머리로서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원리를 내세워야 했기 때문입니다. 직접적으로 자국 나라만의 애국만을 거론하게 되면 세계적 차원에서 통합 원리가 나오지 못하고 현대제국주의 사상적 기반이 무너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현대제국주의 세력인 미국은 물론이고, 미국을 우두머리로 해서 결탁한 제국주의 세력은 반공과 반소를 결탁하여 다른 나라를 지배하고 침탈하려는 것이 애국적인 행위로 보일 수는 있었지만, 미국이나 다른 제국주의 국가와의 불평등한 협정과 조약을 통해 신식민지적 지배를 받는 나라에게는 반소와 반공이 애국인 것처럼 호도하는 주장이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애국이라고 했을 때 무엇보다 주권을 행사하는 것이 기본일 터인데, 주권도 행사하지 못하면서 반소와 반공을 주장하면 애국으로 된다는 것이 가당치 않게 보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제국주의 국가에서 반소와 반공 정책은 신식민지를 지배하기 위한 방식이니 애국적인 행위로 보일 수 있으나 신식민지 국가에서는 그것을 미끼로 주권도 행사하지 못하고 신식민지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것으로 되니 매국적인 행위로 보일 수밖에 없게 되어 서로 처지가 달라 보였던 것입니다. 그 때문에 신식민지 국가에서 반발이 나올 수밖에 없었고, 이런 과정에서 비동맹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었다면 사회주의권이 승리하고 비동맹 및 민족해방 세력이 승리해야 하건만, 역사는 도리어 1990년대에 이르러 사회주의권이 붕괴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결과 현대제국주의의 우두머리 국가였던 미국은 이를 계기로 세계제국주의 국가로 변모하여 세계 유일의 패권적 지배 체제를 형성하고자 하였습니다. 한마디로 세계적 차원에서 무차별적이고 직접적, 전면적인 방식으로 지배하려는 방향으로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계적 차원에서 직접적이고 전면적인 유일적 지배 체제를 형성하려면 자본이 국경에 영향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유통될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자본이 자유롭게 유통될 수 있는 상황이 되려면 세계적 차원에서 자유와 평등이 형식적으로 인정되어야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지난날 현대제국주의와 다른 측면이었습니다. 현대제국주의에서는 형식적인 자유와 평등이 말로는 거론되었지만, 세계적 차원에서는 그 형식적인 것조차 부정되는 상황이 비일비재했던 것입니다.
미국은 세계제국주의 길로 나아가면서 세계적 차원에서 형식적인 자유와 평등이 이뤄지는 차원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러고는 이를 실현하기 위한 사회 통합 원리로 인권과 자유, 민주 내지는 독재 반대를 전면적으로 내걸었습니다. 세계적 차원에서 지배와 억압을 시행하려고 하니 보편적인 원리를 제시해야 했고, 그 보편적인 원리를 핑계 삼아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나라를 침략하여 제압해야 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미국이 인권과 자유, 민주의 기치를 내건 것은 미국이 세계적 차원에서 지배 체제를 완성하기 위해 형식적인 차원에서 자유와 평등을 보장해야 했던 데에 기인합니다. 지난 현대제국주의 시기에는 어떤 국가이든 간에 형식적인 차원에서의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는가, 보장되지 않는가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반공과 반소 정책을 추진하느냐가 중대한 기준점이었습니다.
하지만 세계제국주의에 이르러서는 형식적인 자유와 평등을 이뤄지도록 해야만 자본의 유통이 자유롭게 보장되기에 이를 견지해야 했고, 그러자면 이를 보장하기 위한 세계적 사회 통합 원리의 명분으로 인권과 자유 보장, 민주를 내걸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본의 유통을 원활하기 위한 명분으로 인권과 자유 보장, 민주가 적합한 명분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단지 자본의 자유로운 유통을 보장하며 지배하려는 방편에 불과했다는 것은 미국이 세계 유일의 패권적 지배 체제 국가인 세계제국주의국가로 등장하여 인권과 자유 유린, 독재정치라는 미명하에 수많은 나라들을 침략했던 사실에서 드러납니다. 수많은 나라들을 침략한 것 자체가 벌써 인권 유린이자 자유 억압이고 반민주적 행위였던 것입니다.
그 때문에 세계 유일의 패권적 지배 체제를 형성했던 세계거대독점자본은 인권과 자유 유린, 독재국가에 반대하기 위한 명분을 더 확고히 할 생각으로 애국적인 주장을 패권주의 내지는 국수주의나 폐쇄주의적 사상으로 매도하며 시대에 뒤떨어지는 이념이라는 식으로 깎아내리기까지 하고 나왔습니다. 패권주의는 나치즘과 군국주의, 파시즘이 애국을 도용했던 것에 대한 비판이었고, 국수주의나 폐쇄주의는 세계가 자본에 연결되어 지배받고 살아야 하는데, 그 지배를 받기 싫어 끊어버리는 것을 국수주의 내지는 폐쇄주의적이라고 비판한 것이었습니다. 허나 패권주의나 국수주의, 폐쇄주의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지 한 나라와 민족 단위에서 운명공동체 집단으로 살아가려는 진짜 애국이 나쁜 것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결국 한 사람이 자기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그 자신이 판단하고 결정하듯, 나라와 민족 단위의 지향도 결국 주권의 행사에 의해 결정된다는 당연한 이치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 때문에 아무리 애국에 대해서 비난하고 매도한다고 해서 사라질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일정 정도 인권과 자유 유린, 독재정치에 반대한다는 명분이 통용될 수 있었던 것은 어차피 인류가 세계적 차원에서 서로 교류하고 협력하며 평화롭게 사는 것이 당연한 요구로 될 수밖에 없었던 측면이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말로만 인권이요, 자유요, 독재정치에 반대한다면서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지배하려는 것이 통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현대제국주의의 시기에는 제국주의 우두머리 국가의 위상 속에서 반공과 반소를 제시했고, 세계제국주의에 이르러서는 유일적 패권 체제를 형성하고자 보편적 사회 통합 원리로 인권과 자유를 지향하고, 독재에 반대한다는 주장을 제시하면서 그것이 인류의 지향이라고 하였지만, 그것 자체가 미국과 함께하는 세력에게는 통했을 줄 몰라도 이들의 지배를 받는 나라에게는 통할 수 없었고, 여전히 애국은 한 나라와 민족 단위에서는 주요한 가치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인류가 서로 교류하고 협력하면서 평화롭게 살자면 한 나라와 민족의 주권이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지 그렇지 않고 주권이 제약받게 되면 그런 평화적 관계 자체가 깨질 수밖에 없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이치였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신식민지 국가에서는 주권을 찾기 위한 움직임이 계속 전개될 수밖에 없었고, 이는 필히 애국의 담론에 기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 때문에 미국은 세계 유일적 패권 국가가 된 시기에 이르러서는 하루도 쉴 날이 없이 다른 나라를 침략하기 위한 전쟁에 매달렸습니다. 여기에 국고의 낭비는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자본의 투기적 침탈로 돈을 쉽게 벌게 되는데 구태여 제조업으로 이윤을 추구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로 미국의 제조업은 공동화되었고, 지난날 미국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였던 절대적, 상대적 우위는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전쟁이 전개되어 국고는 낭비되고 제조업은 공동화되었는데, 나라와 민족 단위에서 운명공동체로 살아가려고 하는 세계 각국은 더욱 미국의 침략 행위에 대항해 나오고, 여기에다가 지난날과는 다르게 중국이 급성장하여 미국에 버금가는 나라로 등장하자 미국의 유일 패권적 지배 체제는 위기로 치닫게 되었습니다.
5. 세계제국주의가 위기에 처한 상태에서 애국의 담론
미국은 세계 유일적 지배 체제가 위기에 봉착하자 이를 타개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자신을 대체할 수 있는 나라를 붕괴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반중 전선이었습니다. 처음엔 중국을 자기의 입맛에 맞게 길들이려고 하였으나 중국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을 뿐만이 아니라 대체할 정도의 국력을 지니게 되자 어쩔 수 없이 제압하기 위해 싸움의 길로 나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계 유일적 지배 체제가 붕괴될 수밖에 없다는 위협을 느꼈던 것입니다.
그런데 유일적 지배 체제를 형성했을 때도 중국을 제압하지 못했는데, 위기에 처한 상태에서 지난날의 방식이 통할 수는 없었습니다. 바로 여기서 극단적인 방식을 취하게 되는데, 중국과의 대결을 불사하는 것이었고, 그러자면 미국 자신의 힘을 우선적으로 키우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결국 미국의 애국심에 호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실상 미국은 현대제국주의 시기에선 반소와 반공 정책을 기본으로 행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 길이 애국이라고 주장하는 방식을 취하기도 했습니다만 세계제국주의에 이른 상태에서는 아예 애국이라는 것 자체를 거론할 수가 없었습니다. 세계를 무차별적이고 직접적, 전면적으로 지배하려는 상황에서 이를 실현하기 위한 명분을 미국만의 애국으로 제시할 수는 없었고, 애국을 부정해야만 하는 상황으로 치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운명공동체적 소속감을 형성할 수 있는 사회 통합 원리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런 관계로 백인과 흑인 간의 갈등, 빈부격차에서 오는 갈등, 이민자를 수용하는 데서 오는 갈등 등 사회 전반적으로 대립과 대결의 양상이 가중되었습니다.
이렇게 자국 사회가 분열하는 가운데 유일적 지배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서는 해결할 수 없다는 사고가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트럼프의 국익 우선주의 정책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미국식의 애국심을 감성적으로 불러일으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지금까지 미국이 세계 유일적 지배 체제를 형성하기 위해 인권이니 자유이니 독재에 반대한다는 것을 보편적 원리로 주장해 온 것과는 완전히 배치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국익 우선주의 내지는 자국의 애국적 감성에 기대어 미국의 힘을 키워서 유일적 지배 체제의 위기를 극복하겠다고 나온 것을 보면 그만큼 한 나라와 민족 단위에서의 애국은 사회 통합의 원리로 강력한 기반이 된다는 것을 증명해 준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한 나라와 민족 단위에서 운명공동체로 살아가는 사회 통합 원리로서 애국은 그 어떤 것도 대체할 수 없음이 드러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트럼프가 1기 정책에서 국익 우선주의 정책을 들고나온 것은 이런 사회 통합의 원리에서 나온 것이지 단순히 미국의 주류 세력이 아닌 특이한 존재여서 들고나온 정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로지 미국의 힘을 키워 중국을 제압하겠다는 트럼프의 발상은 지금까지 미국과 행보를 같이해왔던 동맹국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모든 동맹국들과 힘을 합쳐도 세계 유일적 지배 체제를 유지하기 힘든 상황에서 동맹국들의 희생을 강요하니 여기에서 이탈하게 된다면 더더욱 세계 유일적 지배 체제는 위기에 처하다 붕괴될 것이 뻔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여기서 트럼프 1기 정부가 정권 연장을 하지 못하고, 바이든 정부가 들어서 트럼프 정책을 수정하고 다시 동맹국들과의 동맹을 강조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이든 정부에게 중요하게 요구된 것은 동맹국들이 미국을 이탈하여 발을 뺄 수 없도록 반중과 반러 전선에 가담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문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에 전쟁이 발발하게 되었고, 여기서 EU는 확고히 반러 전선에 서서 싸울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EU가 반러 전선에 선 결과 그 타격은 EU에게 돌아갔습니다. EU는 러시아의 가스와 석유를 들여왔는데, 이것을 차단한 결과 미국에 더욱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바이든 정부에서 트럼프 1기와 다르게 반중, 반러 전선을 형성하며 세계적 차원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3차 세계대전을 걱정할 정도로 대결과 대립이 격화된 것은 미국이 국익 우선주의 정책을 펴더라도 이탈하지 못하게 대립전선을 형성하고자 했던 내막이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동맹국들이 미국을 이탈하지 못하게 만들어 놓고선 다시 트럼프 2기 정부가 들어서서 국익 우선주의 정책이 추진되기에 이르렀습니다. 미국이 자체의 힘을 키워 유일적 지배 체제를 형성하려는 것이 트럼프의 정책인데, 1기에서는 중국을 포함해서 세계 여러 나라에 무차별적으로 적용하여 국익을 우선하다가 역풍을 맞았던 상황에서 트럼프는 1기와 똑같은 방식으로 나아갈 수는 없었습니다. 이제는 미묘하게 다른 방식으로 나아갔습니다.
그것은 중국과 러시아 등의 적대 국가를 비롯해 동맹국들 모두에게 무차별적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국익을 추구할 수 있는 방식으로 진행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현재 미국의 힘을 타산한 국익 우선주의 정책의 추구입니다. 그것은 먼저 미국과 적대 관계에 놓여 있는 국가들에겐 중국을 제외한 나라들과는 서로 타협하고 협력하는 방식을 취해 반중 전선을 형성하도록 하면서 어떻게든 중국을 고립 약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만큼 자신들을 대체할 수 있는 중국을 위협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동맹국들에게는 자신의 호구로 생각하고 철저히 빼앗아 미국의 힘을 키우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적대 세력과은 싸워야 하니 자신의 힘으로 뺏을 수 없고, 그것은 더욱 미국의 힘을 약화시키는 방식으로 귀결될 것입니다. 하지만 동맹국들은 달랐습니다. EU는 벌써 반러 전선에 붙잡혀 유럽의 경제적 기반은 약화되었고, 미국에 더욱 의존하는 상태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압력을 가해 미국의 힘을 키우는 데에 이용하려 한 것입니다. 트럼프 1기 때에 그렇게 했다면 EU는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러시아와 이렇게 대립하며 전쟁하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며, 러시아와 중국과 협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 독자적인 길을 걸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실상 트럼프 1기 때에 EU는 그런 방향을 걸으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바이든 정부 때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에 빠져들면서 당장 그런 방향으로 나올 수 없는 상황에 빠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이용해 트럼프는 동맹국들의 희생을 볼모 삼아 미국의 힘을 키워 다시금 세계 유일의 패권적 지배 체제를 유지하고자 획책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계 유일의 패권적 지배 체제의 유지를 위해 이렇게 미국이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먼저 국익 우선주의와 애국을 들고나오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결국 세계 각국은 좌충우돌의 충돌 상황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 이유는 미국의 국익 우선주의라는 게 참다운 애국이 아니라 세계거대독점자본의 이익을 보장하는 방식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미국 민의 이익과는 큰 상관관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 세계 각국은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나오게 될 것이지만, 한편으로 그 방향이 미국의 압력에 대항해서 싸우는 것이 이익이라고 보는 입장이 나올 수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미국의 요구 방향에 합류하는 것이 국익이라고 주장하는 쪽도 나오게 될 것입니다.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 다른 입장이 나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된 흐름은 자국의 이익을 강조하는 입장일 것이고, 그것도 미국이 국익 우선주의라고 하면서 패권을 추진하려는 것이니만큼 조금 힘 있는 나라에서는 침략과 패권주의적인 방식의 국익 추구를 위해 애국을 도용하는 주장이 나타나는 조건이 무르익게 될 것입니다. 유럽에서 극우세력의 약진은 이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미국의 세계제국주의가 위기에 처하면서 애국은 또다시 침략과 패권의 행사로 도용되는 상태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6. 참다운 애국의 담론을 확보해야 시대적 과제가 해결될 수 있다
지금까지의 시대적 흐름은 애국이 어떻게 변질되어 도용되었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애국은 사회 역사 발전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해악을 주는 것일까요? 그래서 애국을 내걸면 안 되고 폐기해야만 하는 것일까요?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나라와 민족 성원을 하나로 통합시키는 사회 원리는 애민, 애국의 담론이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민이 나라와 민족 단위로 살아가고 있는 조건에서 나라와 민족 단위로 주권이 행사되고 있다는 현실에 있습니다. 이것은 한 인간의 삶을 자기 자신이 결정하듯 나라와 민족 단위가 지향하는 방향도 결국 나라와 민족을 하나로 통합시킬 수 있는 원리인 애민, 애국의 내용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어떤 나라와 민족이든 간에 애민, 애국의 담론을 결정할 수 있는 세력이 국가 권력을 장악하고 사회의 향방을 결정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나라와 민족 단위로 살아가는 데에서 애국이 그 어떤 것에 앞서 일치되는 지점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잘못된 애국의 내용을 바로잡아야지 애국 자체를 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애국 자체를 버리게 되면 애국을 도용하여 변질시키는 세력이 권력을 장악한 관계로 민이 주인의 권리를 실현하는 세상이 실현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애민, 애국의 참내용을 확립하는 길은 열릴 수 있을까요? 과연 애국이 오용되는 현상을 극복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답은 그렇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제 지배층들이 애국을 도용하는 시대가 떠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인류사가 발전하여 지금의 시대사적 발전 단계가 어디에 처했는가를 생각하면 판단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시대사적 요구는 자유와 평등을 형식으로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누리고 사는 것입니다. 여기서 자유와 평등을 실질적으로 누리자면 주인의 권리를 행사하고 누리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민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것이 명백해졌고, 여기서 민은 개성을 가진 존재로서 집단을 구성하여 나라와 민족 단위로 살아가고 있기에, 이 모든 부분에서 주인의 권리를 누리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 시대의 흐름으로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기만적인 형태로 애국을 도용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고, 이제 나라의 주인인 민이 참답게 애국의 내용을 정립할 시기가 도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시대적 요청에 맞게 애국의 내용을 바로잡는 것이 시대사적 요구로 제기되고 있는바, 민이 개인과 집단, 나라와 민족 단위로 살고 있는 조건이라면 이 모든 삶의 영역에서 주인의 권리를 누리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 당연할 것이고, 그래서 이 과제를 해결하는 것이 결국 현시기에서 요청되는 애민, 애국의 담론이라고 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이런 시대사적 과제를 해결하자면 일치와 입체, 통일의 방법론을 견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일치된 지점은 서로 전제 조건으로서 지키는 것이고, 이를 지킨다는 전제하에 서로를 존중하여 입체적으로 해결하면서 주인의 권리를 누릴 수 있는 통일적인 전망을 세워 풀어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먼저 일치된 지점을 찾아야 합니다. 그것은 먼저 나라와 민족 단위로 주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점에서 주권이 철저히 보장되어야 합니다. 한마디로 나라와 민족 단위에서 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내면서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권을 제약하기 위한 패권과 침략, 간섭 등은 철저히 배격되어야 합니다. 자기 나라와 민족이 소중하면 다른 나라와 민족 또한 소중한 것은 당연한 이치로 됩니다. 바로 여기서 참다운 애민, 애국의 담론은 첫째로 다른 나라와 민족의 주권을 제약하는 패권과 침략 행위를 철저히 반대하는 것으로 되어야 합니다.
나라와 민족 단위에서 주권의 행사가 첫째의 일치점으로 되었다면, 그다음은 모두가 자신의 이해와 요구를 제기하고 풀어갈 수 있는 방식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전제 조건은 당연히 다른 사람이나 집단의 권리를 억압할 자유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권리가 소중하면 다른 사람의 권리도 당연히 소중합니다. 그 때문에 어떤 개인과 집단의 권리를 억압하는 제반 사항은 다 폐지하고 철저히 보장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전제 조건으로 되는 일치되는 지점, 즉 주권의 행사를 제약하는 패권과 침략 행위 반대와 다른 사람이나 집단의 권리를 가로막은 온갖 악법들의 폐지를 우선적으로 견지해야 합니다. 하지만 사람이 개인과 집단, 나라와 민족 단위로 살아가고 있는 조건에서 이 모든 부분에서 주인의 권리를 실현하자면 이를 전제 조건으로 지키면서 입체적으로 적용하여 통일적인 전망성을 가지고 풀어가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지금의 시대사적 요구를 풀어가는 애민, 애국의 참다운 담론이라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패권을 행사하기 위해 다른 나라의 주권을 제약하는 행위는 결코 애국적 행위가 될 수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나 집단의 권리를 제약하면서 독재를 행하거나 패거리 집단만의 이익을 꾀하면서 폭압적 행위를 일삼는 행위는 결코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금 세계적 상황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보면 비록 애국의 탈을 쓰고 있지만 그것을 자기 나라의 패권을 위해 다른 나라의 침략을 부추기고 행하는 행위는 물론이고, 자기 패거리들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다른 집단의 권리를 짓밟고 유린하는 행위는 사실상 애국의 참내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애국이 이런 내용을 담게 된 것은 앞에서 말했듯 사회 역사의 주체인 민이 개인과 집단, 나라와 민족 단위의 모든 부분에서 주인의 권리를 누리고 살아야 한다는 시대사적 요청에서 기인합니다. 그 때문에 이제야말로 애민, 애국의 담론을 제대로 담아냄으로 지금껏 변질되고 오염된 상태로부터 바로잡아야 합니다. 이를 바로잡지 않고서는 한 나라의 문제도 해결되지 않을 뿐만이 아니라 세계 인류도 평화롭게 살아갈 수가 없게 됩니다.
한 나라와 민족을 하나로 통합시킬 수 있는 기본 원리가 애국인데, 이 애국을 침략과 패권의 행사로 도용하고 다른 사람이나 집단을 억압하는 것으로 여기면서 이를 관철하려는 자들이 있는데, 어떻게 한 나라가 진실로 통합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며, 각 국가 간에 분쟁이 없이 모든 인류가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길이 열리겠습니까? 그 때문에 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근본 대책이 애민, 애국의 담론을 바로 세우는 데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7. 한국 사회에서는 매국노가 애국을 참칭하는 것을 극복해야만 개혁이 가능하다
특히나 한국 사회에서 애국의 변질은 매우 심각합니다. 다른 나라에서 애국을 사용할 때는 자국의 나라를 생각해 패권적 형태를 보이기라도 하는데, 한국에서 사용되는 애국은 이런 것 자체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도리어 타국의 식민 지배를 받는 것이 애국이라고 말하고, 같은 민족 간에 대립 일변도를 넘어 심지어 전쟁을 못 해 안달 나는 정도입니다. 게다가 애국의 이름으로 자국 민만 억압하고 탄압하는 데에 이용합니다. 세상에 이런 애국이 어디 있다는 말입니까?
미국에서야 반공과 반소를 내세웠던 것은 이들을 고립 붕괴시키려는 목적일 뿐만 아니라 세계 약소국가들을 신식민지로 지배하려고 하는 목적에서 비롯된 것인데, 이에 추종하여 같은 민족끼리 싸운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애국이 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미국과 입장이 같더라도 군사적 주권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면 군사적 주권부터 우선적으로 찾는 것이 당연한 애국이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군사적 주권도 없으면서 그것을 동맹이라고 주장한다면 도대체 이것을 뭐라고 해야 하겠습니까?
더욱이 애국의 이름으로 행하는 것이 4.3항쟁과 광주민주항쟁에서 보여주었듯이 자국의 민을 학살하고 탄압하는 것이라면 이것이 무슨 애국이라는 것입니까? 이렇게 애국이 잘못 변질되어 사용되고 있는 것이라면, 사회 통합 원리 자체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다는 것인데, 이를 인정한 조건에서 어떻게 한국 사회를 고칠 수 있겠습니까?
애민, 애국의 담론은 사람이 나라와 민족 단위로 살아가기 때문에 그것이 어떻게 설정되느냐에 따라 사회의 기본 방향이 설정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애국이 변질되어 잘못 사용된 조건에서 그 무엇을 바로잡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껏 한국 사회를 개혁하겠다고 수많은 목소리가 나왔지만 하나같이 개혁이 제대로 되지 못했던 것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이렇게 애국의 변질되고 잘못 사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으로부터 주권도 행사하지 못하고 있는데도 동맹이라고 주장하는데 거기서 어떻게 주권을 회복하려는 움직임이 나오겠습니까? 같은 민족끼리 화해하고 단합해서 통일해야 하는데, 서로 대립, 대결해야 하고 전쟁을 못 해서 안달 나는 지경이니 거기서 어떻게 통일을 위한 길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조국을 통일하고 주권을 되찾아야 한다고 요구하면 북을 이롭게 하는 것으로 몰아붙여 탄압하고, 자신들의 권력과 욕망을 위해서 자국 민에게 총칼을 들이대고, 내란 범죄를 일으키는 것이 애국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민을 위한 정치가 나오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제 한국 사회를 참답게 개혁하려면 이렇게 애국을 잘못 사용하고 있는 것부터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미국으로부터 주권을 찾으려고 하지 않고 동맹만 강조하면서 미국의 식민 지배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어떻게 보든지 간에 매국노이기에 단호하게 매국노라고 지칭해야 합니다. 또한 민족 간에 화해와 단합을 통해 통일을 이룩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대립, 대결을 불러일으키면서 전쟁을 기도하는 자들 또한 민족 반역자로서 매국노로 불러야 합니다. 아울러 미국과 불평등한 조약과 협정을 파기하여 주권을 찾자는 주장을 북을 이롭게 하는 것으로 몰아 자국 민을 학살하거나 탄압하는 자들도 매국노라고 불러야 합니다. 그리하여 매국노들이 애국을 참칭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미국의 트럼프 정권은 지난 1기 때와는 달리 국익 우선주의 정책을 실시하면서도 우선적으로 동맹국들을 호구로 보고 빼앗는 방식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을 추종하는 것만이 애국인 양 변질된 상태가 극복되지 않는다면 한국은 더욱 어려운 환경으로 빠져들 것이 분명합니다. 이것은 벌써 주한미군 주둔비로 연간 100억 달러를 말하는 데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탄핵이 이루어져 대선이 치러지게 되는 상황에서 한국 민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대선이 끝날 때까지는 거론하지 않겠지만 대선 이후에 이를 다그치고 나올 것은 분명합니다. 이런 트럼프의 강도적 침탈을 막아내기 위해서라도 매국노들이 애국을 참칭하기 못하게 만들 필요성이 매우 절실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여튼 시대사적 요청을 받아들여 애민, 애국의 담론을 올곧게 세우자면 주권을 제약하는 패권과 침략 행위에 반대하는 것과, 다른 사람이나 집단의 권리를 억압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계선을 지키는 가운데, 입체와 통일의 방법론으로 풀어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를 실현하자면 우선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매국노가 애국을 참칭하는 것부터 막아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매국노가 애국을 참칭하는 조건에서 애민, 애국의 참다운 담론이 나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애민, 애국의 담론이 올바르게 확립되지 않는 조건에서는 민이 개인과 집단, 나라와 민족 단위의 권리를 실현하는 것은 고사하고 조그마한 개혁 자체도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한국 사회를 참답게 개혁하자면 무엇보다 선행해서 매국노들이 애국을 참칭하는 것을 허용하지 말고, 단호하게 매국노라고 지칭해야만 합니다. 그리하여 이런 매국노들을 제대로 응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길이 한국 사회를 대개혁할 수 있는 참다운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이 응징되어야 모두가 단합할 수 있는 통합 원리인 애민, 애국의 기치가 바로 정립되는 길이라고 강조해서 주장하는 것입니다.
2025. 2. 26
우리겨레연구소(준) 소장 정호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