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이변은 없었다.
미국 영화기자협회 여우조연상과 뉴욕 비평가협회 여우조연상, 영국 아카데미 배우조합상
등 셀 수 없을 정도의 상을 많이 받아 온 윤여정님은 오늘 다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
했다. 영화 '미나리' 의 줄거리나 윤여정님의 연기 인생은 모두 알고 있는 터라 여기서 말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우리가 본 영화 미나리는 약간 밋밋한 감이 있었지만 미국 영화평은 이민자들의 개척 정신과
척박한 생활을 리얼하게 그린 것에 점수를 많이 준 것으로 보인다.
윤여정님의 할머니 역은 손자에게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며 고스톱을 가르치고 교회에서 딸이
낸 헌금을 슬쩍하는 악착같고 엉큼한 할머니이기도 하다.
뇌졸증을 앓은 불편한 몸으로 드럼통에서 쓰레기를 태우다 불이 번지자 불을 끄려는 장면과
넋이 나간 얼굴로 비틀거리며 정처없이 걷는 장면은 압권이었다.
깊은 연륜을 쌓지 않고는 해낼 수 없는 연기였다.
무엇보다 영화 속 할머니는 손자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는지 보고싶었다.
10년 동안 손자 셋을 키웠던 할머니로서 가장 궁금했다.
어렸을 적 심심할 때마다 나는 작은할머니집에 놀러갔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옛날 이야기를 참 맛있게 하는 분들이어서 매일 살다시피 했다.
부용화가 만개한 마당에 멍석을 깔고 이모들과 나란히 누워 별을 보고 있노라면 할머니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대동강변 부벽루에 산보하는 이수일과 심순애의 양인이로다.
......하는 것도 오늘뿐이요, ......하는 것도 오늘뿐이다.
: : : : : :
순애야, 김중배의 다이아몬드가 그렇게도 탐이 나더냐.
: : : : : : :
만일에 저 달이 오늘같이 흐리거든 이수일이가 어디에선가 심순에 너를 원망하고
오늘같이 우는줄이나 알아라.
하도 오래된 이야기이라 다 까먹었지만 어린 마음에도 다이아몬드가 비싸고 귀한 물건이란
건 어렴풋이 느꼈다.
옛날의 변사처럼 노래부르며 들려주던 할머니 음성은 내가 그 나이가 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독립운동 할 때의 이야기이며 김복동이라는 사람 이야기도 들은 것 같은데 기억이 안 난다.
그런데 손주들과 가끔 나란히 누우면 "할머니 옛날이야기 해주세요" 졸라댄다.
이수일과 심순애 이야기는 신파극이라 요즘 애들 취향에 맞지도 않을 것 같고 머리를 굴리다
생각한 게 도채비불 이야기였다.
"옛날에는 도채비불이 막 날아다니다 사람을 홀려서 절벽이나 웅덩이에 빠트리고 날아갔다."
"정말?"
"그러엄"
"할머니도 봤어?"
"봤지이... 바닷가에서 불이 이리저리 막 날아다니는 걸 봤지."
아이들은 매우 궁금해 했다.
요즘 세상에야 없지만 우리 어렸을적에는 많이 봤다.
친구집에 놀러갔다가 무서워서 집에 못 오고 잠 자고 온 적도 있었다.
실제로 친척할머니는 도채비불에 홀려 웅덩이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걸 아들들이 찾아나서 모셔
온 적도 있었다. 그 할머니는 시름시름 않다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야기 밑천이 다하면 노래를 가르쳤다.
동요 몇 곡 부르다 심심해지면 만화영화 주제곡을 불렀다.
'기운 센 천하장사 무쇠로 만든사람
인조인간 로보트 마징가 Z
우리들을 위해서만 힘을 쓰는 착한 이
나타나면 모두모두 덜덜덜 떠네
무쇠 팔, 무쇠 다리 로케트 주먹
목숨이 아깝거든 모두모두 비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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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십년 된 노래지만 몇 번 부르자 역시 애들은 금방 따라 부른다.
그러다 조용하다싶으면 다들 잠에 빠져 있곤 했다.
지금은 다섯이나 되는 손주들 뒷바라지에서 해방됐지만 가급적이면 정서 교육 시키려 나름
노력했다. 만화영화 주제곡이 정저적이진 않았지만.....
그 손자들이 내년에는 중학교에 간다.
너무 빨리 커버려서 징그럽다.
모든 할머니들은 똑같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자들이다.
'미나리' 에서도 Pretty Boy 라며 손자를 귀여워하지 않던가.
윤여정님의 아카데미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하면서 두서없는 글 썼습니다.
* 내일은 미나리 생산 실태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댓글 미나리 영화를 보았는데 윤여정님의 할머니 역은
정말 아카데미 상을 받을만 했어요 축하합니다~
많은 노력을 한다고 합니다.
영화 대본이 성경 같다고 하니
얼마나 연기에 대한 집념이 강했을까요.
자랑스러운 할머님 이십니다.
차제에 본카페 일어방에서 매일 내주는 숙제도 하루도 빠짐없이
하고 계시다고 꼭 알려주십시요.
매일 숙제 드리는 저도 숟가락이나 하나얹게요..ㅎㅎ
아차!
그 애기는 못 했네..
어제도 마당에 잡초 뽑아주고 왔는데.
서울에 매일 숙제 내는 이상한 할아버지 계시다고 할게요.
전 한 장도 못 쓸 일본어를 매일 쓰시다니
손가락에 못 박혔을 듯 합니다.
일본어 실력은 저보다 더 할 듯 한데
저한테 해석하시라니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