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이름 한 번 거창한 대한예술남자고등학교로 향하
는 버스를 기다리기 위해 서 있는 정류장 앞.
후아, 이제 조금씩 떨리기 시작한다.
뭐, 동생이란 놈은 학교를 나가는 둥 마는 둥 해서 학교에 아는 사람도 별로 없다고
했고...
아는 사람이래봤자, 한 때 동생이 몸 담그고 있던 축구부 사람들 뿐이라니까,
축구부 사람들만 피해다니면 된다.
어차피, 배구부로 전향했으니까,
내가 마주칠 사람들은 배구부 사람들 뿐이다.
그래! 할 수 있다!!
“그래서, 어떻게 된건데? 어? 한준호가 다 꼰지른거야?”
옆에서 자꾸 들려오는 같은 질문에,
난 눈살을 찌푸리며 옆을 돌아보았다.
내 바로 옆에 있던 남자는, 쪼그리고 앉아 나뭇가지로
블록사이에 튀어나온 흙만 벅벅, 긁어대고 있다.
약간은 화가난 듯,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선.
그리고 그런 남자 옆에 서 있던 키 큰 남자는,
발로 쪼그려 앉아 있던 남자의 발을 툭툭 차며 계속
같은 질문을 한다.
그러나, 쪼그려 앉은 남자는 계속해서
무표정한 얼굴만 하고 있을 뿐 대답이 없다.
둘 다 대한예술고 교복을 입고 있다.
둘 다, 눈이 휘둥그레질만큼 잘생겼지만,
대조적으로 생겼다.
키 큰 남자는, 살짝 그을린 피부에, 선이 날카롭게 생겨서
조금은 차가워 보이는 인상을 가졌다.
그에 비해, 흙 파던 남자는 흰 피부에 빨간 입술로
모성애 꽤나 자극하게 생겼다.
그나저나, 뭔가에 단단히 화난 듯, 입을 앙 다물고 나뭇가지가 부러질 정도로
흙만 파내던 그는 기어코 내 신발에 흙을 끼얹어놓는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못 봤는지 못 본 척 한건지, 미동도 없이
계속 애꿎은 흙만 벅벅 퍼낸다.
그래, 얼굴 반반하게 생겨서 참아주는거야.
난 슬쩍 그 자리에서 내 신발 위에 착지한 흙을 조심스레 흔들어 떨어뜨리고선
그들과 좀 더 멀리한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 뭐야~ 어떻게 된 건데? 응? 뭔데에~ 뭔데에~?”
자리를 좀 더 멀리 했건만,
계속해서 들려오는 키 큰 남자의 목소리.
생긴 거는 무척이나 남자답게 생겨서는, 가당치 않게
콧소리를 내며, 쪼그려 앉아있는 남자 옆에 똑같은 포즈로 쪼그려 앉는다.
그러더니, 양 손을 양 볼에 대고 온갖 귀여운 척을 해댄다.
이런 애교가 익숙하지 않은 듯,
또는 내가 왜 이런 짓을 해야 하나 싶은 듯,
뭐 씹은 얼굴로.
그닥, 좋은 결과가 있진 않을 거란 생각이 듦과 동시에,
인상을 팍 쓰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흙파던 남자.
그러더니, 아직 자신의 옆에서 쪼그려 앉아있던 키 큰 남자를 향해,
버럭 소리를 내지른다.
“나 선배들한테 맞고 있을 때 김지혜랑 재미 좋았냐?!!”
순간 정적이 흐르고, 그 정류장에 서 있던 그들을 제외한,
3명의 대한예술고 학생(나까지 포함해서)들은 애써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던 냥
그들을 무시하고 우리 앞에 정차한 파란 버스에 몸을 실었다.
대한예술고 옆에 공학 고등학교 하나 더 있다더니,
그 학교 학생들까지 들어선 버스는 이미 만원을 이뤘다.
이미 버스 앞 좌석을 모두 점령한 우리 학교 학생들을, 그들에 비해 조그마한 내 체구로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그들에 비해 조그마한’이다)
요리조리 피해 지나쳐, 가까스로 버스 뒷문 가까이에 서서 손잡이를 냉큼 잡았다.
“어? 은석오빠다! 승현오빠랑 또 같이 타나봐~”
“어디, 어디?!”
뒷좌석에 앉은 옆 학교 여고생들이 서로 속닥속닥 말을 주고받으며
뒤늦게 버스에 들어선 키 큰 남자와 땅 파던 남자를 응시한다.
아아, 반반하게 생겼다 싶었더니...
흔히들 말하는 학교 ‘킹’같은 존재인가 보다, 저 두 사람이.
그렇게 키 큰 남자는 기어코 그 수많은 사람들을 뚫고
내가 잡은 바로 옆 손잡이를 잡는다.
뭔가, 그닥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진 않은 기분이다.
곧이어 키 큰 남자는 자신의 손에 손목이 붙들려 질질 끌려온 땅 파던 남자에게,
자신이 잡고 있던 손잡이를 내주고는 그 손잡이가 달린 봉을 잡는다.
더 웃긴 건, 땅만 파던 그 남자가 아직도 뭔가 화가 났는지 그 정색한 표정으로
그가 내 준 손잡이를 항상 있었던 일인마냥 아무렇지 않게 잡았다는 거다.
뭐여, 시방.
누가 보면 둘이 사귀는 줄 알겠네.
그렇게 바로 내 옆에 선 키 큰 남자를 바라봤다.
와아, 키가 대략 190은 되어보인다.
눈은 아이라인이라도 한 것 마냥 매섭다.
그렇게 키가 큰 남자를 생각없이 바라보다,
그와 눈이 마주친다.
시선을 돌려야 할까, 멋쩍은 듯 웃어보여야 할까
그 두가지의 생각이 서로 수백번 교차하다, 결국 시선을 돌릴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그리고, 그런 나를 노골적으로 째려보더니 고개를 돌려버리는 키가 큰 남자.
내가 자신의 얼굴을 훔쳐보기라도 한 것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는 키 큰 남자덕분에,
난 찜찜한 기분으로 그에게서 시선을 뗐다.
“한준호 그새끼, 오늘 안으로 니 앞에 무릎꿇게 해줄게, 기다려”
“미친, 그래도 선배야”
“어이구우~ 우리 은석이 사람 됐네~”
“꺼져, 역겨워”
또 다시 키 큰 남자가 콧소리를 내며 자신의 머리를 흐뜨려놓자,
역겹다며 고개를 휙 돌려버리는 땅파던 남자.
뭐야?
진짜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혹시 자길 놔두고 딴 여자랑 놀아났다고 시샘하는 건가?
하악, 진짜 그런것이야?!
그들을 애써 무시하며 빨리 내가 탄 이 버스가 학교에 다다르기만 바라고 있는데...
끼익!
급정거하는 버스 덕분에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 몸이 혼자 휘청거렸고,
그와 동시에...
내 발이 의도하지 않게 키 큰 남자의 발등 위로 착지해 버린다.
심지어, 내 온 무게를 다 싣고서.
그렇게 내 뇌가 얼른 오른발을 제자리에 갖다놓으라고 명령하면,
내 몸뚱아리는 또 다시 의지와는 달리 덜컹거리는 버스에 맞춰 휘청거리고 만다.
그리고, 자신과 또 다시 부딪힐까 내 어깨를 붙잡고
날 물건 던지듯 밀쳐버리는 키 큰 남자.
아악, 아프다.
눈물이 찔끔 나올라 그런다.
“아.....씨발.... 뭐야, 이거”
뒤에 사람이 없었으면 그대로 나자빠질 뻔 했던 나는 안중에도 없는지,
살짝 더러워진 자신의 오른쪽 신발을 쳐다보는 키 큰 남자.
어쨌든, 내 잘못이었기도 하고, 명찰색깔로 보아 2학년선배이기도 하니,
난 다시 내 몸을 추스르고 그에게 사과인사를 해 보였다.
“죄송합니다”
내 사과인사에,
키 큰 남자 뒤로, 빼꼼히 고개를 빼고 나를 피식 웃으며 날 쳐다보는 땅파던 남자.
그리고, 고개를 꾸벅 해보이는데도, 키 큰 남자는 인상을 쓰며 고개를 든다.
그러더니, 화를 참으려는 듯 아랫입술을 깨물고
억지미소를 지어보이며 날 내려다보는 키 큰 남자.
“아가, 이 신발 꽤 비싼거다?”
실룩실룩, 억지로 미소를 지으려니 근육이 뒤틀리는지
이상한 얼굴로 나에게 ‘아가’라는 말을 마치고선 다시 정색하고는 고개를 돌리는 그.
“키킥. 야, 왜 그래, 1학년이잖아.”
“씨바, 웃기냐?”
이 상황이 진정으로 웃기는 듯 킥킥대는 땅파던 남자와,
이 상황이 진정으로 빡치는 듯 까칠스럽게 물음해보이는 키 큰 남자.
나를 주제로 하며 서로 욕짓꺼리를 주고받는 그 두 남자를 옆에두고,
난 얼른 이 버스가 정차하기만을 바랐다.
첫댓글 재밋어요~~ㅎㅎㅎ
감사해요~
재미있네요. 다음편도 빨리 보러가야겠어요.
감사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왜이렇게 웃기죠 발등에 발이 올라갓다 는부분에서빵터졋어요
ㅋㅋㅋㅋ 아가래..어머...음....이거 대박 잼잇음 ㅋㅋㅋㅋ 근대 남자들 묘하냄
완전잼서요.ㅎㅎ
잘봤습니다
잘봣슴ㄴㅣ다
기대되용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