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수 백자 ... >
1980년대 말, 지방의 어느 성당 신부님 방에 놀러갔던 적이 있었다. 클래식부터 대중가요까지, 우리 고유의 민요부터
재즈에 이르는 현대음악까지 모든 음악을 좋아하시던 그 신부님 방에서 러시아와 프랑스, 필리핀 등 민중혁명이 일어났던
나라들의 혁명가요들을 듣고 매우 놀란 적이 있었다. 그 노래들은 결의에 차고 힘찬 행진가 풍의 노래일거라는 내 예상을
완전히 깨뜨렸다. 그 노래들은 너무나 서정적이고 잔잔하게 내 마음을 파고드는 아름다운 곡들이었기 때문이다.
포크가수의 대명사처럼 불리우는 밥 딜런이 1962년 봄 어느 카페에 앉아 쓴 곡 ‘바람만이 아는 대답’(Blowin in the wind)
의 가사를 보면 이렇게 시작한다. “사람은 얼마나 많은 길을 걸어봐야 진정한 삶을 깨닫게 될까? 백비둘기는 얼마나 많은
바다 위를 날아야 백사장에 편히 쉴 수 있을까? 전쟁의 포화가 얼마나 많이 휩쓸고 나서야 영원한 평화가 찾아오게 될까?
친구여, 그건 바람만이 알고 있어, 바람만이 그 답을 알고 있다네...” 이 노래는 후에 피터 폴 앤 메리가 내놓은 싱글앨범에
실리면서 출시 2주 만에 30만장이 팔려나가 당시로서는 엄청난 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이러한 반응에 언론과 대중음악계는
크게 놀랐다. 일부 운동권에서만 불리우던 사회의식적인 노래가 팝 차트에 진입하며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리라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 노래는 나중에 십대들의 우상이었던 ‘샘 쿡’도 불렀고, 1966년에는 유명한 팝 가수
스티비 원더도 다시 불러 R&B 차트 정상까지 올려놓았다.
김민기가 떠오른다. 그가 만든 곡들을 들어보면 대개 단순하고 부드러우며 서정적이다. 그러나 그의 노래들엔 강한 메시
지가 담겨 있다. 때로는 여린 풀잎이나 강변, 태양 등의 자연을 노래하고 때론 친구, 순이, 엄마같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
또는 시장통이나 집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품들을 노랫말로 그려놓았지만 가장 혁명적인 메시지를 던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아침이슬’의 가사를 되새겨보라!
백자의 콘서트를 보며 왜 그들이 떠올랐을까? 난 지금의 백자가 위에 열거한 그들만큼의 무게와 위상을 갖는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미안한 말이지만 백자는 아직 부족하다. 더 많은 내공을 쌓아야하고 아직도 먼 길을 가야한다.
그런데 희망이 보인다. 그리고 기대를 갖게 한다. 그의 노래가 그랬다. <조금씩>이 그랬고 <노란봉투>가 그랬고
<내버려둬>가 그랬다. 그가 부른 노래들은 결코 거칠지 않은 노랫말과 유려한 선율로 그려졌지만 폐부에 깊이 박히는
것이 있었다.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맴돌게 하는 그 무엇이 있었다. 그 노래들엔 자신과의 대화가 들어있었고 우리
사회에 던지는 항변이 들어 있었으며 때론 한 인간의 절규가 들어있었다. 그래서 깊은 여운이 있었다.
그런 노래들을 백자가 부를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그가 세상과 인간에 대한 애정이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 세상이
좀 더 밝아졌으면...세상 사람들이 더 행복하게 살았으면...우리 사회가 보다 더 인간적인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그는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건 일방적, 주관적 해석이 아니다. 지난 13년간 노래를 하는 사람으로서 걸었던 행적을 살펴
보면 알 수 있다. 13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그 긴 시간을 그는 노동현장과 선의의 고발현장, 가족을 불속에 잃은
용산철거민부터 칼바람 부는 타워에 올라간 버림받은 노동자, 삶의 끝자락에서 낙담하고 있는 농민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소외된 사람들 곁에 그는 항상 같이 있었으며 노래로 그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마음에 새 희망과 기운을 불러 일으켰다.
그들과 아픔을 같이 하며 친구로, 아들로, 오빠로, 동생이나 형 같은 마음으로 살아온 날들이 있어 지금의 노래들을 가능하게
했으리라...
백자는 이번 첫 앨범과 콘서트가 새로운 출발점임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더 치열해야한다. 보다 더 자기
관리에 힘쓰고 좋은 노래를 만들고 부르기 위해 더 뜨거운 가슴과 형형한 눈빛을 지녀야 한다. 더불어 그것을 방해하는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 노래에 관한한 대충 넘어가는 타성도 버리고 작은 객기나 겉멋이 혹 있다면 그것도 버려야 한다. 그리고
작은 것과 큰 것을 가릴 수 있는 지혜도 길러야 한다. 난 백자가 그렇게 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 믿음은 그의 일관된 삶의
행적과 품성,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실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백자 같은 가수가 있어 난 참 기분이 좋다. 백자의 노래 같은 포크가 있어 난 오늘도 포크를 즐긴다.
2011년
자목련 잎이 떨어지는 날
민재
첫댓글 민재님의포크사랑하는 맘 자목련잎이 떨어지는날에 실히 알것같습니더
김민기씨는 알겠는데 백자는 처음 들어봐요~ 민재님이 소개해주시니 기회되면 한번 들어봐야겠습니다^^
요즘 노래사냥님이 백자님 곡을 많이 소개해주셨는데..민재님도 칭찬하시니 기회가 된다면 정말 직접 들어보고 싶군요
갑자기 백자라는 분의 음악 철학을 민재님을 통해 알게 되어 너무 궁금해 인터넷에서 그 분의 노래를 검색해 '가로등을 보다'란 곡을 지금 듣고 있습니다.
정말 좋은 가수를 소개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백자님 개인에 대한 이야기에도 깊이 매료되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어제 밤늦게 글을 올리면서 뭔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시보니 하고픈 말중에 빠진것이 꽤 있네요. 이제야 1집이 나온 가수지만 뛰어난 감성과 음색을 겸비하고 부드러운 노래, 서정적인 노래도 많거든요. 싱어송라이터로서 무한한 발전의 여지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또 듣는 사람이 잠시 속상해도 뼈아픈 말도 더 했어야 했고...하지만 다 묻어둡니다. 백자 스스로 잘 알고 있으리라는 신뢰감이 있어서요. 나중에 만나 허심탄회하게 얘기나누며 술한잔에 생각을 담지요.
좋은 글 제 블로그로 모셔갑니다 허락해주세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