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한 세도가가 거드름을 피우며 정수동에게 물었다. "수동아, 세상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것이 무엇이냐?" 보통 사람이라면 권력이나 재물이라 답했겠지만, 정수동은 지체 없이 대답했다. "그건 남의 허물입니다. 제 눈의 들보는 못 봐도 남의 눈에 든 가랑잎은 귀신같이 찾아내니까요." 그의 말 한마디는 단순한 농담이 아니었다.
우리는 늘 타인의 '그름'을 찾아내어 단죄함으로써 나의 '옳음'을 증명하려 애쓴다. 정수동은 그 끝없는 시시비비의 굴레 속에서 한 발짝 물러나, 스스로를 풍자의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오히려 세상의 긴장을 녹여냈다.
■ 방하착(放下着) - 내려놓음의 지혜 정수동과 관련된 야담 중에 이런 이야기가 전해진다. 한 선비가 소중한 도자기를 보물처럼 아끼며 늘 품에 안고 다녔다. 누군가 건드리기만 해도 불같이 화를 내고, 밤잠을 설치며 도자기를 닦았다. 이를 본 정수동이 슬쩍 다가가 도자기를 구경하는 척하다가 땅바닥에 떨어뜨려 박살을 내버렸다. 선비가 까무러치며 분노하자 정수동이 허허 웃으며 말했다. "이제야 당신의 손과 마음이 자유로워졌구려. 깨진 조각은 쓰레기일 뿐이니, 이제 그만 내려놓고 저 산천의 꽃 구경이나 갑시다."
불교에서 말하는 '방하착(放下착)'의 가르침이다. * 첫째, 움켜쥔 손에는 새것을 담을 수 없다. 과거의 영광이나 상처를 꽉 쥐고 있으면, 오늘 불어오는 신선한 바람을 느낄 수 없다. * 둘째, 집착은 나를 가두는 창살이다. '반드시 이래야 한다'는 고집이 강할수록, 그 고집에 부딪히는 타인과의 관계는 깨진 도자기처럼 날카로워진다. * 셋째, 진정한 고수는 이기고도 지는 척할 줄 안다. 내 옳음을 증명하기 위해 상대를 파괴하는 것은 하수다.
정수동은 가난하고 비루한 삶 속에서도 늘 여유를 잃지 않았다.
그것은 그가 세상의 가치 기준을 자신의 손에서 '내려놓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인간사의 고통은 대개 더 많이 채우려는 욕심과 더 옳아 보이려는 오기, 탐(貪)·진(瞋)·치(痴)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삶의 길목에서 수많은 '옳고 그름'의 잣대를 마주한다. 그 얽힌 현상 속에서도 정수동은 세상의 경직된 엄숙함을 웃음으로 무너뜨리며 자유를 얻었다. '인간이 만든 기준이 얼마나 덧없는가'를 온몸으로 증명한다.
중용(中庸)은 뜨거운 물과 차가운 물을 섞어 미지근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온도'를 조절하는 능력이다. 불의를 보고 분노해야 할 때는 뜨겁게 타오르되, 타인의 작은 실수를 마주할 때는 서리 맞은 가슴을 녹여줄 만큼 따뜻해지는 것.
내가 맞다는 확신이 들 때 한 번 더 나를 돌아보는 겸손, 그리고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나 분노가 찾아올 때 슬며시 손을 펴서 흘려보낼 줄 아는 '방하착'의 용기. 그 유연함이야말로 삭막한 세상을 건너가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지팡이가 아닐까 싶다.-펌글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