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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列國志 제99회
노나라 중수(仲遂)와 숙손득신(叔孫得臣)은 제나라로 가서 제혜공(齊惠公)을 알현하고 즉위를 경하하는 한편, 노나라의 국상에 사신을 보내준 것에 대해 사례하였다. 예를 마친 다음, 제혜공은 연회를 열어 두 사람을 대접하면서 노나라의 신군(新君)에 대해 물었다.
“어찌하여 이름을 ‘악(惡)’으로 지었습니까? 세상에는 좋은 이름도 많은데, 하필이면 그런 좋지 않은 글자를 이름으로 썼습니까?”
중수가 대답했다.
“선군께서 아들을 낳았을 때, 태사(太史)에게 점을 치게 했더니 태사가 말하기를, ‘악사(惡死)하여 군위를 누리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선군께서 일부러 이름을 ‘惡’으로 지어 그것을 피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아들은 선군의 사랑을 받지 못했고, 선군께 사랑을 받은 아들은 장자 왜(倭)입니다. 왜는 어질고 효성스러우며 대신들을 공경할 줄 압니다. 노나라 사람들은 모두 왜를 군위에 받들려고 생각하고 있는데, 다만 적자가 아니어서 꺼려하고 있을 뿐입니다.”
[‘악사(惡死)’는 억울하게 죽는 것이다.]
제혜공이 말했다.
“예로부터 장자를 군위에 세우는 것이 옳은 일입니다. 게다가 선군께서 사랑하셨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숙손득신이 말했다.
“노나라는 예로부터 적자를 군위에 세웠고, 적자가 없을 때 장자를 군위에 세웠습니다. 선군께서도 그런 상례(常禮)를 따라 왜를 제치고 악을 세자로 세우셨는데, 나라 사람들은 모두 순종하지 않고 있습니다. 상국에서 만약 노나라의 군위를 어진 분으로 바꾸어 주신다면, 혼인을 통해 우호를 맺어 해마다 조공을 바치도록 하겠습니다.”
제혜공은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대부들께서 안에서 일을 주관하시면, 과인은 그 명을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중수와 숙손득신은 삽혈하고 맹세하며 제혜공과 혼약을 맺었다.
중수와 숙손득신은 노나라로 돌아와 계손행보(季孫行父)에게 말했다.
“지금 晉나라의 패업은 쇠퇴해 가는 반면, 제나라는 다시 강성해지고 있네. 齊侯가 정실부인의 딸을 공자 왜에게 출가시키려고 하니, 이 후원을 잃어서는 안 될 것이네.”
[중수와 숙손득신은 4촌형제이고, 두 사람은 계손행보에게는 당숙이 된다.]
계손행보가 말했다.
“사군(嗣君)은 齊侯의 생질입니다. 齊侯가 딸을 출가시키려면 사군에게 출가시켜야지, 어찌하여 공자 왜에게 출가시킨단 말입니까?”
[‘사군(嗣君)’은 선군의 대를 물려받은 군주이다. 제98회에, 세자 악의 모친은 제소공의 딸 강씨라고 하였다. 제소공(반)과 제혜공(원)은 형제이므로, 악은 제혜공의 생질이다.]
중수가 말했다.
“齊侯는 공자 왜가 어질다는 것을 듣고, 사위로 삼으려는 것이네. 사군의 모후 강씨는 제소공(齊昭公)의 따님이지만, 제환공(齊桓公)의 아들들은 서로 원수처럼 싸워 4대에 이르도록 아우가 형의 군위를 대신하였네. 저들은 형도 안중에 없는데, 생질이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제환공 이후 효공(소), 소공(반), 의공(상인), 혜공(원)은 모두 환공의 아들들이다.]
계손행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계손행보는 집으로 돌아와 탄식하며 말했다.
“동문씨(東門氏)가 다른 뜻을 갖고 있구나!”
[제98회에, 중수는 동문에 살았기 때문에 ‘동문수’라고도 불렸다고 했었다.]
계손행보가 숙중팽생(叔仲彭生)에게 그 일을 은밀히 고하자, 팽생이 말했다.
“군위가 이미 정해졌는데, 누가 감히 다른 마음을 품는단 말인가?”
팽생은 그 일을 별로 마음에 두지 않았다.
한편, 중수는 공자 왜의 모친인 경영(敬嬴)과 은밀히 계책을 정하고, 용사들을 마구간에 매복시켜 놓고서 마부를 시켜 거짓 보고를 하게 하였다.
“말이 예쁜 새끼를 낳았습니다!”
경영은 공자 왜로 하여금 악과 시(視)를 데리고 마구간으로 망아지를 구경하러 가게 하였다. 세 공자가 마구간으로 가자, 매복해 있던 용사들이 나타나 몽둥이로 악과 시를 때려죽였다. 중수가 말했다.
“태부(太傅) 팽생이 아직 살아있다. 그를 제거하지 않으면 일은 끝난 것이 아니다.”
중수는 내시를 보내 사군의 명이라고 속이고, 숙중팽생을 궁으로 불러들이게 하였다.
팽생이 궁으로 가려고 하자, 그의 가신(家臣)인 공염무인(公冉務人)이 제지하며 말했다.
“태부께서는 입궁하시면 안 됩니다. 입궁하시면 필시 죽을 것입니다.”
공염무인은 평소 중수가 궁궐 안의 사람들과 결탁하고 있는 것을 알고서 가짜 명일 것으로 의심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팽생은 말했다.
“군명인데, 비록 죽더라도 도망칠 수는 없지 않느냐?”
공염무인이 말했다.
“진짜 군명이라면 태부께서는 죽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군명이 아니라면 죽을 것입니다. 그렇게 죽는다면 무슨 명분이 서겠습니까?”
팽생이 듣지 않자, 무인은 그 소매를 잡아끌며 눈물을 흘렸다. 팽생은 소매를 끊어 버리고 수레에 올라 궁으로 들어갔다.
팽생이 내시에게 물었다.
“사군은 어디 계시냐?”
내시가 거짓으로 대답했다.
“말이 새끼를 낳아 마구간으로 구경하러 가셨습니다.”
내시가 팽생을 마구간으로 인도해 가자, 용사들이 다시 뛰쳐나와 죽인 다음 그 시신을 말똥 무더기 속에 묻어 버렸다.
경영은 사람을 보내 악과 시의 모친인 강씨에게 고하게 하였다.
“사군과 공자 시가 미쳐 날뛰는 말에게 채이고 물려서 죽었습니다.”
강씨가 통곡하면서 마구간으로 달려가 보니, 두 공자의 시신은 이미 궁문 밖으로 옮겨진 후였다.
계손행보는 악과 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중수의 소행임을 짐작했으나 감히 발설하지는 못하였다. 계손행보는 은밀히 중수를 찾아가 말했다.
“아저씨가 한 일은 너무 지독합니다. 저는 차마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중수가 말했다.
“그건 경씨 부인이 한 일이지, 나는 아무 관련이 없네.”
“만약 晉나라가 알고서 토벌하러 오면 어떡하시겠습니까?”
“제나라와 송나라에서 일어난 일을 이미 알고 있다. 저들이 군주를 시해했을 때에도 晉나라는 토벌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어린 아이 둘이 죽었다고 해서 어찌 토벌하겠는가?”
계손행보는 사군의 시신을 어루만지며 통곡하다가 정신을 잃었다. 중수가 말했다.
“대신이 대사를 의논해야지, 아녀자처럼 울기만 해서 어디 써먹겠는가!”
행보는 눈물을 거두었다.
숙손득신도 도착하여, 형 팽생이 어디 있는지 물었다. 중수가 모른다고 잡아떼자, 득신이 웃으며 말했다.
“우리 형님은 죽어도 충신이 되는 것이 그 뜻이었으니, 숨길 필요 없습니다.”
중수는 득신에게 팽생의 시신이 있는 곳을 은밀히 가르쳐 주었다.
중수는 백관들을 소집하여 말했다.
“오늘 급히 해야 할 일은 군위를 정하는 것입니다. 공자 왜는 현명하고 장자이므로, 마땅히 군위를 계승해야 합니다.”
백관은 그저 ‘예’ ‘예’ 할 뿐이었다. 중수는 공자 왜를 군위에 옹립하였으니, 그가 노선공(魯宣公)이다. 백관은 선공에게 경하 인사를 올렸다.
호증(胡曾)선생이 시를 읊었다.
外權內寵私謀合 외부 권신과 내부 총희가 몰래 모의하여
無罪嗣君一旦休 죄 없는 사군(嗣君)이 하루아침에 끝장났구나!
可笑模棱季文子 가소롭구나, 우유부단한 계문자여(季文子)!
三思不復有良謀 세 번 생각했더라면 좋은 계책이 있지도 않았을까?
[계손행보는 시호가 ‘文’이어서 계문자(季文子)라고도 불린다.]
득신은 말똥 무더기 속에서 팽생의 시신을 발굴하여 장례 지냈다.
한편, 강씨는 중수가 공자 왜를 군위에 옹립했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을 치며 통곡하였다, 그러면서 몇 번이나 기절했다가 깨어나기를 반복하였다.
중수는 선공에게 아첨하기 위해, ‘모친은 아들로 인해 귀하게 된다.’는 말을 인용하며 경영을 선군의 정실부인으로 받들었는데, 백관도 치하하였다.
강씨는 궁에서 사는 것이 불안하여 밤낮으로 울다가, 제나라로 돌아가기 위해 좌우에 명하여 수레와 행장을 수습하게 하였다.
중수는 사람을 강씨에게 보내 만류하면서 말했다.
“신군(新君)이 비록 부인의 소생은 아니지만, 부인은 적모(嫡母)이십니다. 신군이 마땅히 효도하고 봉양할 것인데, 어찌하여 친정으로 돌아가려 하십니까?”
강씨가 중수를 욕하며 말했다.
“역적 중수야! 우리 모자가 너에게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런 참혹한 짓을 저지르느냐? 이제 헛된 말로 나를 만류하지만, 귀신도 네가 한 짓을 알고 있으니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강씨는 경영을 보지도 않고, 수레를 타고 궁문을 나왔다. 수레가 도성의 큰 거리를 지나가게 되자, 강씨는 방성대곡(放聲大哭)하면서 큰소리로 외쳤다.
“하늘이시여! 하늘이시여! 두 어린 아들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이 몸은 또 무슨 죄가 있습니까? 역적 중수가 천리(天理)를 능멸하고 양심을 버린 채 적자를 죽이고 서자를 세웠습니다! 이 몸은 이제 노나라 사람들과 영원히 작별하고 다시는 노나라에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노나라 사람들은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가 없었다. 그날 노나라 사람들은 상점을 닫고 장사를 하지 않았다.
그 후로 노나라 사람들은 강씨를 애강(哀姜)이라고 불렀으며, 또 노나라를 떠나 제나라로 갔다고 해서 출강(出姜)이라고도 불렀다. 출강은 제나라로 가서 제소공의 부인인 모친을 만나 부둥켜안고 원한을 호소하였다. 제혜공은 우는 소리가 듣기 싫어, 따로 궁실을 지어 모녀를 옮겨 살게 하였다. 출강은 끝내 제나라에서 생을 마쳤다.
한편, 노선공의 동복아우인 숙힐(叔肹)은 사람됨이 충직(忠直)하여, 형이 중수의 힘을 빌려 아우를 죽이고 군위에 오른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비난하면서 조정에 나와 경하하지도 않았다. 선공이 불러들여 중용하려고 했지만, 숙힐은 한사코 사양하고 가지 않았다.
어떤 벗이 까닭을 묻자, 숙힐이 말했다.
“나도 부귀를 싫어하지는 않네. 하지만 형을 보면 아우가 생각나서 견딜 수가 없네.”
“형이 의롭지 못하다고 생각하면, 타국으로 가는 것은 어떤가?”
“형이 아직 나와 절연하지 않았는데, 내가 어찌 감히 형과 절연할 수 있겠는가?”
그때 마침 선공이 관리를 통해 안부를 물으면서 곡식과 비단을 보냈다. 숙힐은 사자에게 인사하고 사양하며 말했다.
“내가 다행히도 얼어 죽거나 굶어죽을 지경은 아니니, 감히 나라의 공물(公物)을 축낼 수는 없습니다.”
사자가 재삼 군명을 전하자, 숙힐이 말했다.
“양식이 떨어지면, 그때 내가 가서 청하겠습니다. 지금은 결코 받지 못하겠습니다.”
벗이 말했다.
“자네가 작록을 받지 않음으로써 이미 자네의 뜻을 충분히 밝혔네. 집안에 양식이 없으니, 보내준 곡식을 조금이나마 받아 아침저녁 끼니를 때운다 하더라도 자네의 청렴함이 손상되지는 않을 것이네. 그것마저도 물리치는 것은 너무 심하지 않은가?”
숙힐은 웃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 벗은 탄식하여 돌아갔다. 사자도 더 이상 권할 수가 없어 돌아가 선공에게 복명하였다.
선공이 말했다.
“나의 아우는 평소에도 빈한했는데,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선공이 사람을 시켜 숙힐이 하는 일을 살펴보게 하였다. 숙힐은 저녁에 등불을 밝혀 놓고 짚신을 삼고, 아침에 시장에 나가 팔아서 끼니를 해결하고 있었다. 선공은 탄식하며 말했다.
“아우는 백이(伯夷)·숙제(叔齊)를 본받아 수양산(首陽山)의 고사리를 캐먹고 살려는가 보다! 그 뜻을 존중해 주겠다.”
[백이와 숙제는 고죽군(孤竹君)의 두 아들이다. 그 부친이 죽을 때 숙제를 옹립하라는 유명(遺命)을 남겼다. 부친이 죽자, 숙제는 백이에게 양보하였다. 백이는 ‘부명(父命)’이라고 말하고 마침내 도피하였다. 숙제 역시 군위에 오르지 않고 도피하였다. 고국죽 사람들은 가운데 아들을 옹립하였다. 그 후 무왕(武王)이 주왕(紂王)을 정벌할 때 백이와 숙제는 말고삐를 잡고 간하였다. 무왕이 은나라를 멸하자, 백이와 숙제는 주나라의 곡식 먹는 것을 치욕으로 여겨 수양산으로 가서 숨어 살다가 마침내 굶어 죽었다.]
숙힐은 선공 말년에 죽었는데, 끝내 형으로부터 단 한 톨의 곡식도 받은 적이 없었으며, 또한 형의 잘못에 대해서도 끝내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사관(史官)이 시를 지어 숙힐을 칭찬하였다.
賢者叔肹 어질도다 숙힐이여!
感時泣血 시역(弑逆)을 알았을 때 피눈물을 흘리고
織屨自贍 짚신을 삼아 생계를 꾸렸으며
於公不屑 작록을 하찮게 여겼도다.
頑民恥周 은나라 백성으로 주나라 곡식을 치욕으로 여겨
采薇甘絕 고사리를 캐먹다가 기꺼이 굶어죽었네.
惟叔嗣音 숙힐에게는 오로지 사군(嗣君)의 음성이 들릴 뿐이니
入而不涅 입조하여 악에 물들지 않았도다.
一乳同枝 같은 젖을 먹은 형제였는데
兄頑弟潔 형은 어리석고 아우는 청렴하였다.
形彼東門 저 동문 밖 중수는
言之污舌 입에 담는 것만으로도 혀가 더러워진다.
노나라 사람들은 숙힐의 의로움을 높이 사서 칭송하여 마지않았다. 노성공(魯成公) 초년에 숙힐의 아들 공손 영제(嬰齊)를 대부로 임명하였다. 그리하여 숙손씨(叔孫氏)와 별개로 숙씨(叔氏)가 있게 되었는데, 숙로(叔老)·숙궁(叔弓)·숙첩(叔輒)·숙앙(叔鞅)·숙예(叔詣) 등이 모두 그 후손들이다. 그건 훗날의 얘기이다.
[노성공은 노선공의 아들이다.]
한편, 주광왕(周匡王) 5년, 노선공 원년 정월 초하루에 조하(朝賀)를 마치고 중수가 아뢰었다.
“주군의 내전(內殿)이 아직 비어 있습니다. 신이 지난번에 齊侯와 혼구(婚媾)를 약속했었습니다. 일을 늦추어서는 안 됩니다.”
[‘혼(婚)’은 처음 사돈이 되는 혼인이고, ‘구(媾)’는 다시 사돈 간에 맺는 혼인을 말한다. ‘혼구’는 보통의 혼인을 지칭하기도 하지만, ‘구(媾)’라는 글자에는 인척·화목·합침 등의 뜻이 있어 왕실과의 결혼이나 어떤 목적을 가진 결혼을 지칭하는 말로도 사용된다. 오늘날 정략결혼의 의미와 유사하다.]
노선왕이 말했다.
“누가 과인을 위해 제나라에 사신으로 가겠습니까?”
중수가 대답했다.
“혼약을 신이 했으니, 신이 혼자 가겠습니다.”
노선공은 중수로 하여금 제나라로 가서 청혼하고 납폐(納幣)하게 하였다.
중수는 정월에 제나라로 가서, 2월에 제혜공의 딸 강씨를 모시고 노나라로 돌아왔다. 중수가 노선공에게 은밀히 말했다.
“제나라가 우리와 장인 사위 간이 되었지만, 장차 사이가 좋아질지 나빠질지는 예측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나라에 큰 변고가 있었던 경우에는, 반드시 회맹에 참여해야만 비로소 제후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신이 지난번에 齊侯와 삽혈하고 해마다 조공을 바치기로 맹세하면서, 주군의 군위를 확정하는 것을 도와달라고 부탁했었습니다.
그러니 주군께서는 뇌물을 아끼지 마시고 齊侯와의 회견을 청하십시오. 만약 齊侯가 뇌물을 받고 회견을 허락하면, 주군께서는 공경하는 태도로 齊侯를 받드십시오. 그리하여 양국이 친하게 되어 순치(唇齒) 관계가 되면 주군의 군위가 태산처럼 편안해질 것입니다.”
노선공은 중수의 말에 따라, 계손행보를 제나라로 보내 혼인에 대한 사례를 하게 하였다.
계손행보가 제나라에 가서 제혜공에게 아뢰었다.
“과군께서는 군후의 은혜 덕분에 종묘를 지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제후의 반열에 서지 못한 것을 수치로 여기고 있습니다. 만약 군후께서 과군께 은혜를 베푸시어 회견을 허락하신다면, 변변치 않지만 진문공(晉文公)께서 선군께 주신 제서(濟西)의 땅을 상국에 바치겠습니다. 받아주십시오!”
제혜공은 크게 기뻐하면서, 魯侯과 여름 5월에 평주(平州) 땅에서 회견하기로 약속하였다.
약속한 날이 되자, 노선공이 먼저 평주 땅에 당도하고, 제혜공이 뒤이어 도착하였다. 두 군후는 먼저 장인과 사위의 예로써 인사를 나눈 다음 다시 군주의 예로써 상견하였다. 중수가 제서의 땅문서와 호적을 바치자, 제혜공은 사양하지 않고 받았다.
회견이 끝나고 노나라로 돌아오자, 중수가 말했다.
“내가 오늘에야 비로소 베개를 높이 베고 편안히 잘 수 있겠다.”
이로부터 노나라는 때마다 사신을 보내고 조공을 바치면서, 제나라의 명을 충실히 따랐다. 제혜공은 말년에 이르러 魯侯가 순종하는 것에 감격하여 제서의 땅을 돌려주었는데, 그것은 훗날의 얘기이다.
[제97회에, 주경왕(周頃王)이 붕어하고 주광왕(周匡王)이 즉위하였으며, 초목왕(楚穆王)이 훙거하고 초장왕이 즉위하였다고 했는데, 이제 초장왕의 얘기로 넘어간다.]
한편, 초장왕(楚莊王) 려(旅)는 즉위한 지 3년이 지났건만 한 번도 명령을 내린 적이 없었고, 매일같이 사냥만 일삼았다. 궁중에 있을 때는 밤낮으로 부인들과 술을 마시며 즐겼다. 그리고 조문(朝門)에는 다음과 같은 영을 내걸었다.
감히 간하는 자가 있으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대부 신무외(申無畏)가 알현하러 들어가니, 장왕은 우측에 정희(鄭姬)를, 좌측에 채녀(蔡女)를 끼고 앉아 음악을 듣고 있다가 물었다.
“대부가 온 것은 술을 마시기 위함이오, 음악을 듣기 위함이오? 아니면 뭔가 할 말이 있어 왔소?”
신무외가 말했다.
“신은 술을 마시기 위해서 온 것도 아니고, 음악을 듣기 위해서도 온 것도 아닙니다. 신이 교외에 나갔다가 어떤 사람에게서 이상한 말을 들었는데,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대왕께 여쭈어 보러 온 것입니다.”
“대체 어떤 얘기인데, 대부가 이해할 수 없단 말이오? 어디 한 번 얘기해 보시오.”
“오색의 털로 덮인 큰 새가 있는데, 초나라의 높은 언덕에 머문 지 3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그 새가 나는 것을 보지 못했고, 우는 것을 듣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 새가 무슨 새인지를 모르겠습니다.”
장왕은 자기를 풍자하는 것인 줄을 알고 웃으며 말했다.
“과인은 알 것 같소. 그 새는 보통 새가 아니오. 3년 동안 날지 않았으나 한 번 날아오르면 필시 하늘에까지 이를 것이며, 3년 동안 울지 않았으나 한 번 울면 필시 사람을 놀라게 할 것이오. 그대는 기다리시오.”
[‘삼년불비(三年不飛)’는 3년 동안 날지 않았다는 뜻으로, 후일에 웅비(雄飛)할 기회를 기다림을 이른다. ‘일명경인(一鳴驚人)’은 한 번 울면 사람을 놀라게 한다는 뜻으로, 한 번 일을 착수하기만 하면 사람을 놀라게 할 만큼 큰 사업을 함을 이른다.]
신무외는 재배하고 물러갔다. 그러나 장왕은 며칠 동안 여전히 음악을 즐겼다.
대부 소종(蘇從)이 장왕을 알현하고 크게 통곡하였다. 장왕이 말했다.
“왜 그리 애통해 하시오?”
“신의 죽음과 초나라의 멸망을 곡하고 있습니다.”
“그대가 왜 죽으며, 초나라는 또 왜 망한단 말이오?”
“신이 왕께 직간하면, 왕께서는 듣지 않으시고 필시 신을 죽일 것입니다. 신이 죽으면 초나라에는 다시 간할 사람이 없을 것이니, 왕께서는 뜻대로 행하시게 되어 초나라 정사는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되면 초나라가 망하지 않겠습니까?”
장왕은 화를 내 안색이 변하며 말했다.
“과인이 간하는 자를 죽이겠다는 영을 내렸다. 간하는 자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과인에게 간하려 하다니, 참으로 어리석은 자로다!”
“신이 비록 어리석다 하나, 왕보다는 어리석지 않습니다.”
장왕은 더욱 노하며 말했다.
“왜 과인이 더 어리석단 말이오?”
“대왕은 만승(萬乘)을 거느리는 존귀한 지위에 있으십니다. 천리에서 세금을 거두고 군마는 용맹하며 제후들이 복종하여 사시(四時)로 조공을 바치니, 이는 만세의 이익입니다. 그런데 지금 주색과 음악에 빠져 정사는 돌보지 않으시고, 어진 인재를 가까이하지 않으십니다. 장차 바깥에서는 대국이 쳐들어올 것이며, 안에서는 소국들이 반란을 일으킬 것입니다. 환락은 목전에 있으나, 환난은 후일에 있습니다. 일시의 환락을 위해서 만세의 이익을 버리니, 어찌 어리석다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신의 어리석음은 제 몸 하나 죽는 것에 불과하나, 대왕께서 신을 죽이시면 후세 사람들은 신을 충신이라 칭송하여 관룡봉(關龍逢)이나 비간(比干)에 비견될 것입니다. 그러니 신은 어리석지 않습니다. 그러나 대왕의 어리석음은 지대하여, 필부보다 못합니다. 신은 이제 할 말을 다했으니, 대왕의 패검을 빌려 주시면, 신은 이 자리에서 목을 찔러 대왕의 명령이 지켜짐을 보이겠습니다.”
[관룡봉은 하나라 걸왕(桀王)의 신하로서, 걸왕의 무도함을 간하다가 죽음을 당했다. 비간은 은나라 주왕(紂王)의 숙부인데, 비간이 계속 간하자, 주왕은 ‘성인의 심장에는 구멍이 일곱 개 있다고 들었다.’라고 하며 비간의 가슴을 쪼개고 심장을 꺼내 죽였다.]
장왕은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대부는 그만 하시오! 대부의 말은 충언이니, 과인이 어찌 듣지 않을 수 있겠소?”
장왕은 일절 음악을 금했다. 그리고 정희와 채녀를 멀리하고, 번희(樊姬)를 부인으로 삼아 내궁의 일을 주관하게 하였다.
“과인은 사냥을 좋아하였는데, 번희는 그때마다 나가지 말라고 간하였고 잡아온 짐승의 고기를 먹지 않았다. 이는 어진 아내로서의 내조(內助)이다.”
장왕은 위가(蒍賈), 반왕(潘尪), 굴탕(屈蕩) 등에게 영윤 투월초(鬥越椒)의 권한을 나누어주었다. 아침마다 열던 연회를 없애고, 명을 내리고 시행하였다.
장왕은 정나라 공자 귀생(歸生)으로 하여금 송나라를 정벌하게 하였다. 귀생은 대극(大棘)에서 송군을 무찔러 송나라 우사(右師) 화원(華元)을 사로잡아 왔다.
또 장왕은 위가에게 명하여 정나라를 구원하게 하였다. 위가는 북림(北林)에서 晉軍과 교전하여 晉나라 장수 해양(解揚)을 사로잡아 돌아왔다.
이로부터 초나라의 세력은 날로 강성해졌으며, 장왕은 마침내 중원의 패권을 차지할 뜻을 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