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내 인생에서 같은 영화를 반복해서 가장 많이 본 영화로는 ‘반칙왕’이란 영화를 꼽을 수 있다.
너무 재미있어서 영화관에서만 3번 보았고, 둘째 아들놈이 그 영화를 유난히 좋아해서 아니 집착하는 바람에 둘이 함께 비데오로 40번은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보면 볼수록 영화의 숨은 어떤 것이 새롭게 눈에 보이면서 매번 흥미진진하게 영화를 감상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거기에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이 레슬링 체육관 관장인 홀아비의 외딸로 나와 아버지 대신 초짜인 송강호에게 레슬링을 가르쳐주는 선머슴아 같은 장진영의 털털한 연기이다.
송강호가 장진영에게 골탕 먹으며 눈물이 쏙 빠지게 혼이 나는 장면은 볼 때 마다 웃음이 터지는 장면이다. 천재적 감각이 돋보이는 김지운 감독의 첫 작품이기도 한 ‘반칙왕’은 영화의 온갖 재미를 한껏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쇠락한 레슬링의 세계를 아프게 보여주다가도 엉뚱한 송강호의 순진하고 정열적인 도전에 프로레슬링계가 다시 생기를 얻는 이 설정은 얼마나 흥미진진한가!
게다가 샐러리맨의 절박한 현실과 비애를 페이소스를 얹어 보여주는 이 영화는 수준 높은 코메디의 전형이다.
그런데 그 영화에서 연기의 가능성을 보여준 장진영이 그 뒤 계속 승승장구하여 여성연기자로서는 톱의 위치에 까지 올라섰다는 것은 그녀의 연기에 대한 땀과 노고와 정열이 상상을 넘어서는 가열찬 것이었음을 증명해준다.
그런 그녀가 생의 절정에서 위암선고를 받고 갑작스럽게 죽었다는 소식은 한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인간의 비극적 삶의 실체를 되돌아보게 해 준다.
연기자란 무엇인가?
여러 대의 카메라가 정면에서 총구처럼 버티고 서 있는데, 그 앞에서 수 많은 스텝들에 둘러싸여 지켜보는 가운데 감독의 요구에 맞추어 연기자의 계산된 감정을 배역과 상황에 맞게 표현해 내야하는 직업이다.
더하여 주연배우의 경우 작품성과 흥행성 등 영화 전체를 이끌어가야 하는 책임까지 떠맡아야 한다.
영화에 투자된 수십억 수백억의 투기성 자본에 대한 중압감도 엄청나다.
이 모든 것이 배우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그래서 이런 뛰어난 연기자를 만난다는 것은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축복이자 행운이다.
그런데 이런 천재성을 지닌 배우들이 자신의 예술적 가능성을 갈고 닦아야할 시간에 영화계의 구조적 모순으로 싸구려 권력자들이나 인간말종들의 술자리에 불려나가 수모를 겪다가 자살을 한다는 기사는 참으로 이 세상을 어둡게 하는 참담한 얘기다.
생각해 보라!
꿈과 이상에 부풀은 소녀들이 맞닥뜨려야할 냉정하고 험악한 현실을!
연기자가 연기에만 전념할 수 없도록 하는 발암물질에 해당하는 존재가 인간의 모습으로 활개치고 다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장진영이 위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건강타령만 할 수 없는 요소가 이 사회에 공기처럼 편만해 있다는 것도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한동안 인기절정에 있는 연예인들의 자살이 이어지다가, 이번에는 또 장진영의 암이라니 기가 막히다.
장진영에게 닥친 불행은 팬인 나에게도 가슴이 미어지는 슬픔이다.
하지만 대중에게 늘 소비되기만 했던 그녀가, 죽음에 임박해서 진정한 사랑으로 병 든 그녀를 끝까지 보살펴 준 한 남자의 청혼을 받아들여 결혼까지 했다는 기사는 인간에 대해 다시 희망을 갖게 하는 가뭄 끝의 한 줄기 소낙비 같은 소식이다.
그녀는 남편의 헌신으로 짧은 생의 마지막 문턱을 조금은 가볍게 넘을 수 있었을 것이고,
팬인 우리들의 가슴마저도 따뜻해지는 오랜만의 진짜 영화 같은 사건이다.
첫댓글 사건도 아니고요~ 누구나 우리 주변에 늘 있는 그대로, 하늘이가 내려준 고대로요,,,,.
제 큰 여동생은 위암이 재발한 상태에서 만난 남자와 결혼해서 27년 째 잘 살고 있는데. 참 안타깝네요.
반칙왕 못봤는데..
강력 추천! 보시면 유모어감각 면도칼 같아짐.
나도 반칙왕 못봤는데 보고싶어지네요. 장진영은 참 자연스런 배우라고 느껴졌었는데..
반칙왕 봐야 겠네요... 장진영 좋아하거든요
반칙왕...함 봐야하겠네요 그디 우리집앞 비디오가게 망했는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