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아이들에게 친구는 세상의 전부와도 같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의지하는 그 친구 관계가 때로는 아이를 극단적인 자살 충동으로 이끄는 위험한 전염의 매개체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Q.선생님, 답답한 마음에 글을 올립니다.
중학교 2학년인 저희 아이가 몇 달 전부터 친구들이 자기를 쳐다보며 비웃는다, 뒤에서 자기 험담을 하고 다닌다며 학교 가기를 극도로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친구들과 사소한 오해가 있었나 싶어 달래도 보고 선생님과 상담도 해봤지만, 실제로는 아이가 걱정하는 그런 따돌림이나 괴롭힘은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이는 길을 가다가 모르는 사람과 눈만 마주쳐도 자기를 해치려 한다며 극도의 공포에 질려하고, 이제는 아예 방 밖으로 나오는 것조차 거부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제가 타이르는 것조차 자기를 미워해서 공격하는 거라며 저까지 의심하고 적대시합니다.
그냥 사춘기 예민함이나 우울증인 줄 알았는데, 있지도 않은 일을 사실처럼 믿고 피해망상에 빠져서 일상생활을 아예 포기해버린 아이를 보니 눈앞이 캄캄합니다. 이대로 놔두면 아이가 영영 사회와 단절될 것만 같은데, 억지로라도 밖으로 끌어내야 하는 건지 아니면 병원에 입원을 시켜야 하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부모로서 제가 어떻게 도와줘야 할까요?
A. 안녕하세요, 아이가 극심한 두려움 속에 갇혀 일상을 포기하는 모습을 지켜보시며 얼마나 억장이 무너지실지, 부모님의 그 답답하고 고통스러운 심정에 먼저 깊은 위로를 전합니다. 있지도 않은 위협을 실제처럼 느끼고 부모님의 도움마저 의심하는 아이를 대할 때면 덜컥 겁도 나고 막막해지실 수밖에 없습니다.
청소년기에는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민감해지면서 누군가 나를 해칠지도 모른다는 '피해망상적 사고'를 겪는 경우가 생각보다 흔합니다. 하지만 아이처럼 그 정도가 일상생활을 마비시킬 만큼 심각하다면, 이는 단순한 예민함을 넘어선 매우 중요한 임상적 신호일 수 있습니다.
연구에 따르면, 청소년의 피해망상은 학교 및 가정에서의 역할 기능과 대인관계 등 사회적 기능을 매우 심각하게 저하시키는 강력한 요인입니다.
특히 우울증이나 과거의 괴롭힘 피해, 부정적인 생활 사건 등의 영향을 통제하고서라도, 피해망상 자체는 우울증과는 구별되는 고유한 방식으로 대인관계와 같은 사회적 기능을 현저히 훼손합니다.
아이가 겪는 고통은 단순한 착각이 아니라 뇌와 마음이 만들어낸 진짜 공포입니다. 따라서 억지로 학교에 끌고 가거나 밖으로 내모는 강압적인 방법은 오히려 아이의 불신과 망상을 증폭시키고, 가족과의 관계마저 끊어지게 만들 수 있어 매우 위험합니다.
현재 아이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아이의 두려움을 부인하지 않고 안전감을 느끼게 해주는 것입니다. 아이의 망상 내용을 사실이라고 인정할 필요는 없지만, "네가 지금 그렇게 느끼고 있어서 정말 무섭고 힘들겠다"며 아이가 느끼는 감정 자체를 수용해 주셔야 합니다.
이와 동시에 지체 없이 소아청소년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하셔서 정확한 평가와 치료를 시작해야 합니다. 피해망상은 조기 정신증의 신호일 수도 있으므로, 약물 치료와 인지행동치료가 조기에 병행되어야 기능의 추가적인 훼손을 막을 수 있습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청소년의 심리적 웰빙(well-being, 행복감이나 회복탄력성 등)이 높아지면 피해망상이 사회적 기능을 떨어뜨리는 악영향을 유의미하게 완충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따라서 치료 과정에서 망상 자체에만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아이가 작은 성취감이나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웰빙을 증진시키는 치료적 접근이 병행될 필요가 있습니다.
부모님 역시 아이의 증상으로 인해 큰 상처와 소진을 겪고 계실 것입니다. 부모님께서 먼저 든든한 치료의 조력자가 되실 수 있도록 가족 교육과 지지 상담을 함께 받으시기를 간곡히 권해드립니다.
"친구의 아픔을 혼자 짊어지려다 함께 무너지는 아이들. 이 위험한 전염의 고리를 끊고 아이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부모님은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까요?"
1. "생명이 걸린 비밀은 어른에게 알리는 것이 진짜 우정이다"라고 가르치기
아이들은 친구의 자해나 자살 충동을 비밀로 지켜주는 것이 의리라고 생각하여 혼자서만 끙끙 앓으며 심한 무력감과 불안에 시달립니다. 부모님은 평소 아이에게 "친구가 스스로를 해치려 하거나 위험한 생각을 할 때는 혼자서 해결할 수 없단다. 그럴 땐 반드시 부모님이나 선생님, 전문가 등 어른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친구를 살리는 진짜 우정이야"라고 명확히 교육해 주셔야 합니다.
2. 주변 또래 집단에 자해/자살 이슈가 있을 때 아이의 심리 상태 밀착 점검하기
친구의 자해나 자살 시도에 노출되는 것은 아이 본인의 자살 충동과 PTSD, 우울증 발병 위험을 극도로 높이는 치명적인 사건입니다. 아이의 학교나 가까운 또래 집단 내에서 이러한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다면, 내 아이가 겉으로는 괜찮아 보이더라도 그 충격에 전염되지 않도록 각별히 살피고 선제적으로 심리 전문가의 상담을 받게 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3. 낙인이나 비난 없이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안전한 대화 환경' 조성하기
아이들이 어른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고 친구들끼리만 해결하려 하거나 온라인 등에서 잘못된 지지를 구하는 이유는, 어른들에게 말했을 때 혼나거나 낙인찍힐 것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은 평소 아이가 친구 문제나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이야기할 때, 섣불리 평가하거나 훈계하기보다는 깊이 공감하고 수용해 주어 아이가 언제든 기대어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안전 기지'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본 센터는 아동과 청소년을 비롯한 모든 연령의 상담을 진행하는 센터로 사회성 발달을 위한 집단상담, 치료놀이 및 각종 상담방식이 다양한 치료센터입니다. 또한 전문 치료사가 배치되어 고민하고 어려워하는 부분을 정확하고 친절하게 상담을 해드리고 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를 방문하시어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언제까지 아이에게 친구들과 사이좋게 잘 지내라는 뜬구름 잡기식의 잔소리만 할 것인가? 초등학생인 우리 아이의 사회성을 길러줄 수 있는 답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사회성에 대해 20여 년간 상담하고 관련 프로그램을 개발해 아이의 사회성에 대한 고민을 해결해온 이향숙 박사의 오랜경험과 노하우가 이 책 한 권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책 소개 中)
*참고문헌
Bilello, D., Townsend, E., Broome, M. R., Armstrong, G., & Burnett Heyes, S. (2024). Friendships and peer relationships and self-harm ideation and behaviour among young people: a systematic review and narrative synthesis. The Lancet Psychiatry, 11, 633-6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