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욕부중(忍辱負重)
치욕을 참아가며 중대한 책임을 진다는 뜻으로, 세상의 비난을 참으면서 맡은 중대한 임무를 힘써 수행함을 일컫는 말이다.
忍 : 참을 인(心/3)
辱 : 욕될 욕(辰/3)
負 : 질 부(貝/2)
重 : 무거울 중(里/2)
출전 : 삼국지(三國志) 오서(吳書) 육손전(陸遜傳)
칼날 인(刃)을 다스리는 마음이 참을 인(忍)이란 글자다. ‘참을 인 셋이면 살인도 피한다’는 말은 그만큼 참는 것이 어렵다는 말도 되고 앞으로의 큰일을 위해 눈앞에 닥친 치욕을 잘 참았을 때 성공한다는 뜻도 갖고 있다.
원수를 갚기 위해 섶에서 자고 곰쓸개를 핥는 와신상담(臥薪嘗膽) 뿐만 아니다. 백인당(百忍堂)으로 알려진 당(唐)나라 장공예(張公藝)는 9대가 화목한 구세동당(九世同堂)을 이뤘고, 큰 뜻을 품은 한신(韓信)은 가랑이 사이를 기어나가 수과하욕(受袴下辱)도 이겨냈다. 한 때의 욕되는 것을 참아(忍辱) 무거운 책임을 진다(負重)는 이 성어도 같은 부류다.
진수(陳壽)의 정사 '삼국지(三國志)'에 유래가 있다. 촉한(蜀漢)의 유비(劉備)는 의형제인 관우(關羽)가 오(吳)나라의 협공에 빠져 참수되자 충격을 받았다. 복수를 위해 전쟁 준비를 하는 중 장비(張飛)도 암살된다. 제갈량(諸葛亮), 조운(趙雲) 등 중신들의 만류도 뿌리치고 유비는 군사를 일으켜 오(吳)를 치기로 했다.
오(吳)나라 손권(孫權)은 화친을 청했지만 거절당하자 38세의 육손(陸遜)을 대도독에 임명하고 5만의 병력을 주어 방어하게 했다. 유비가 장강(長江) 남쪽 이릉(夷陵) 지역 600여 리에 걸쳐 병영을 설치했을 때, 오의 선봉에 있던 손환(孫桓)이 포위됐다고 육손에게 구원을 청했다.
자생할 수 있다며 구원병도 보내지 않고 촉의 군대와 전투도 하지 않자 육손의 휘하에 있던 노장들은 부글부글했다. 육손이 장수들을 소집하고 검을 쥐며 말했다. "내 비록 서생이지만 주상의 명을 받았소. 나에게서 취할 부분이 있어 능히 굴욕을 참고 중요한 임무를 맡을 수 있으리라 여겼기 때문이오(以僕有尺寸可稱 能忍辱負重故也/ 이복유척촌가칭 능인욕부중고야)."
군령을 따르라고 훈시하자 진정이 됐고 7, 8개월을 기다리다 촉의 군대가 지쳤을 때 화공으로 대승했다. 이 싸움이 적벽(赤壁), 관도(官渡)와 함께 삼국지 3대 대전으로 꼽히는 이릉전투이다. 오서(吳書) 육손전에 실려 있다.
인욕부중(忍辱負重)
문장(文章)중에 굴기자 능처중(屈己者 能處衆)이라 는 문구가 있다. '자기 자신을 낮추어 굽히는 사람이 대중들과의 처신을 잘 하게 되어 장차 중책을 맡아 큰 일을 처결할 때에 일머리의 처리능력이 발휘되어 잘 해낼 수 있다'는 말이다. 큰 일을 해내기 위해서는 한 때의 굴욕(屈辱)을 참아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인욕부중(忍辱負重)이라는 사자성어(四字成語)가 있다. 어원(語源)을 역사적으로 더듬어 올라가 보면 진수(陳壽)의 정사 삼국지(三國誌)에서 유래 되었음을 알게 된다.
도원결의(桃源結義)로 유명한 의형제들인 유비(劉備)와 관우(關羽), 장비(張飛) 중에 관우가 오(吳)나라의 협공(挾攻)에 빠져 참수(斬壽)당하게 되자 이에 충격을 받고 격분한 유비가 이성을 잃은 채 관우의 복수를 위해 전쟁 준비를 했는데 이때에 장비까지 암살 당하는 일이 발생했으니 이에 중진 신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군사를 일으켜 오나라를 침공하게 되었다.
이때 오(吳)의 손권(孫權)이 화친(和親)을 청했지만 거절했다. 이에 당시 38세이던 육손(陸遜)을 대도독(大都督)으로 임명하고 5만 군사를 주어 방어하도록 하였다.
유비는 장강(長江) 남쪽 이릉(夷陵) 지역 600여리에 걸쳐 병영을 설치하였는데 오(吳)의 선봉에 섰던 손환(孫桓)이 포위되었다고 육손에게 구원을 청하자 자생(自生)이 가능하다며 구원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자 이에 육손의 휘하에 있는 노장(老長)들이 화를 크게 내게 되므로 육손이 장수들을 모아 놓고 검을 쥐며 말하기를 "내가 비록 서생(庶生)이지만 주상의 어명을 받았소, 나에게서 취할 부분이 있어 능히 굴욕을 참고 중요한 임무를 맡을 수 있으리라 여겼기 때문이요(以僕有尺寸 可稱 能忍辱負重故也/ 이복유척촌 가칭 능인욕부중고야)"라며 '군령軍令)을 따르라' 훈시하자 군내(軍內)의 분란이 진정되어 7,8개월이나 시간을 끌어서 지쳐 있는 유비의 촉군(蜀軍)을 화공(火攻)으로써 대승을 거둠으로 여기에서 인욕부중(忍辱負重)이라는 사자성어가 생겨났다.
중국의 황하강(黃河江)은 예로부터 비가 많은 여름철이 되면 강물이 범람하는 일이 잦았다. 넓은 강의 물길이 갑자기 협곡을 만나 좁아지니 강의 상류지역은 강물이 범람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 고대시절에 우(禹)의 아버지 곤(鯤)이 이 지역 수령이었을 적에 물난리가 났고 치수를 잘못하여 백성을 곤경에 빠뜨렸다는 이유의 죄값으로 형벌로 죽임을 당하자 아들인 우(禹)가 치수의 임무를 맡아 도끼로 이 협곡을 깨어 물길을 트게 하였으므로 우왕(禹王)으로 추대되었다.
즉 우(禹)가 이 물길을 텃다 하여 이 지역의 지명을 우문구(禹門口)라 이름하고 우(禹)를 대우(大禹)라 칭한다. 우(禹)가 이 물길을 튼 것은 결국 아버지의 죽임에 대한 굴욕을 감내하고 위대한 업적을 일구어 낸 결과이다.
강의 물길이 좁아지므로 이 물길은 언제나 사나워 잉어는 아래의 강물에서 상류로 오르기가 무척 힘이 들었다. 하여 등용문(登龍門)이라는 말이 이 협곡의 물길에서 생겨났고 지금도 어려운 관문(關門)을 통과하거나 출세를 하게 되면 '등용문(登龍門)에 오르다'로 인용되어 쓰이는 말이 되었다는 설이다. 즉 어변성룡(魚變成龍)이라, 고기가 용이 되었다는 뜻이다.
이 용문(龍門)의 주민들은 이곳에서 출생한 사마천(司馬遷)을 등용의 인물이라 믿고 있다. 어변성룡(魚變成龍)의 인물로 추앙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마천의 아버지 사마담은 공자(孔子)가 춘추(春秋)를 지어 천세(千世)에 이름을 남겼듯이 본인도 불후의 사서(史書)를 남기고 싶은 욕망으로 은자(隱子)로 살며 열심히 학문에 매진하였는데 그의 아들인 사마천이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고 36세 때부터 56세가 될 때까지 20년 동안에 걸쳐 사기(史記)를 역술했다.
그는 중국의 상고시대 신화로부터 시작하여 혼란스러웠던 춘추전국시대와 중국 최초의 천하 통일을 이루었다는 진시황(秦始皇) 시대의 역사, 그리고 그가 살았던 한무제(漢武帝) 시대)까지의 역사서 만권(萬卷)의 책을 읽고 역사유적을 따라서 만리(萬里)를 돌아다니며 자료를 수집하여 사기를 지었다. 그래서 독만권서 행만리로(讀萬卷書 行萬里路)라는 문장이 유명하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써 후대에 그가 사성천추(史聖千秋)로 호칭받게 되었는데 사마천의 사기 역시로 인욕부중(忍辱負重)의 결과로 이루어졌다는 역사적 사실이다.
사마천은 무제(武帝)의 명을 받아 흉노(胸盧)를 정벌하러 나갔다가 대패하고 포로가 되었던 이릉 장수를 왕이 참수하라 명하자 이에 반대를 하였다는 이유로 이에 왕의 미움을 받고 사형의 처벌이 내려졌는데 이때는 사형을 면하는 방법 두 가지가 있었으니 하나는 돈으로 50만전을 납입하는 것이고, 또 한 가지는 궁형(宮刑)에 처해지는 굴욕적인 형벌로 대신하는 것이다. 궁형(宮刑)이란 고환(睾丸)과 성기(性器)를 잘라버리는 형벌이다.
그는 사기를 마무리 지어야 하겠으므로 이 굴욕적인 궁형을 받고서 역사서를 완성했으니 인욕부중(忍辱負重)이라 한다. 유사한 말로 와신상담(臥薪嘗膽), 수고하욕(受袴下辱), 구세동당(九歲同堂) 등의 사자성어가 있다.
와신상담의 뜻은 워낙 유명해서 부언설명이 불필요 할 것이고 수고하욕(受袴下辱)이란 말도 유명한데 풀이하면 병선(兵仙)이 된 한신(韓信)이 소싯적 어려운 시기에 그를 욕먹이려는 여러 젊은들이 한신에게 다리 밑으로 기어가 보라 하였을 적에 미래를 생각하며 이 사내의 다리 밑으로 기어나갔다는 굴욕적인 사연을 이룬 사자성어이다.
역사서(歷史書)는 책도 많이 읽어야 하고 역사 유적지를 직접 발로 답사하며 자료를 모아서 정리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사마천 사기를 본떠서 김부식(金富軾)이 삼국사기(三國史記)를 지었는데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는 사대주의 유학자라는 점이 문제로써 중국역사서를 근본으로 삼아 고대의 환단고기(桓檀古記) 내용을 잘라 먹었고 우리의 긍정적인 역사를 왜곡시킨 매국학자라 해야 한다.
김부식은 소동파(蘇東坡) 선생인 소식(蘇軾)의 가문 삼부자에 대한 학문에 깊이 심취되어 그 집안을 숭상하였으니 식(軾)자 이름자로 작명할 만큼 깊이 사대주의에 빠진 가문의 자식이라는 것이 입증된다. 소식(蘇軾) 가문)은 중국의 문벌 가문이다. 당대에 내로라 하는 인재들이 많이 출현했던 시대이었는데도 유명한 인사가 된 것이 그 증거이다.
당시의 대표 인물들로 범 중암에 서예가 구 양순과 매 요신, 주역으로 깨우친 소강절(邵降節)인 소옹(邵翁), 왕안석, 사마광, 심괄 또한 육군자(六君子)로 유명한 두 정자(程子)인 정명도와 정이천 특히 주자학(朱子學) 성자인 주희(朱憙), 진덕수 같은 인물이 동시대의 인재들이다.
동파(東坡)라는 호로 유명한 소동파선생이 소식이다. 그는 작가요, 서예가이면서 선도(仙道)로 단(丹)을 수련했고 그러면서 불교도이기도 하였으며 정치인 비평가, 심지어는 술의 신선(神仙)이라는 별명까지 듣는 유학자 이인이었다.
김부식은 당대에 학식은 인정받을만 하다 하겠으나 행만리로(行萬里路)가 아닌 앉아서 학자들의 지식들을 모아 단축한 국사(國史)로 왜곡되게 지었으니 그 죄가 크다.
일정시대의 이병도는 말할 것도 없이 천하의 매국노이다. 가만히 앉아서 일본놈들 역사학자의 앞잡이로 서무(書務) 노릇으로 완전히 일제 입맛에 맞게 역사를 왜곡시켰으니 죽어서도 저승에 들지 못한 채 죄인으로 옥거(獄居)하며 우리민족 조상 앞에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죄수 귀신 신세가 되었을터 사필귀정이 진리이다.
만약 김부식이나 이병도가 사마천과 같았다면 우리 후대들이 왜곡된 역사로 조상을 욕되게 하는 무례는 범하지는 않았을 것인데 가슴아프다. 어떤 굴욕을 당하더라도 바른 역사를 지었다면 인욕부중(忍辱負重)의 인재로 칭송받았을 것은 자명하다.
다행히 근대에 이르러 충청도 출신인 신채호(申采浩) 선생이 직접 만주 땅을 답사하면서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자 노력한 흔적에 잃어 버릴 뻔한 역사를 되돌릴 기회가 되었다.
또 증산도 안경전(安耕田) 종정(宗正)이 무려 40여년 동안 세계를 직접 발로 걸어보면서 자료를 수집 환단고기(桓檀古記)를 되살려 내려 애쓴 노력은 비록 완전한 역사서라 말 할 수는 없다 해도 깊이 칭송할만 하다 여긴다.
활인공덕(活人功德)의 결실은 영원할 것이고 포악한 죄업의 결실은 망함으로 나타나니 인과율(因果律)의 법칙이다.
▶️ 忍(참을 인)은 ❶형성문자로 㣼(인)과 동자(同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마음심(心=忄, 㣺; 마음, 심장)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刃(인)으로 이루어졌다. ❷회의문자로 忍자는 '참다'나 '잔인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忍자는 刃(칼날 인)자와 心(마음 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刃자는 刀(칼 도)자의 날 부분에 점을 찍은 것으로 '(칼이)날카롭다'는 뜻을 갖고 있다. 이렇게 날카로운 칼날을 뜻하는 刃자에 心자를 결합한 忍자는 '칼날의 아픔을 견디는 마음'이라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니까 심장을 찌를 듯이 아픈 감정을 인내하고 견뎌야 한다는 것이 바로 忍자인 것이다. 그래서 忍(인)은 마음에 꾹 참는다는 뜻으로, ①참다 ②잔인(殘忍)하다 ③동정심(同情心)이 없다 ④차마 못하다 ⑤질기다 ⑥용서(容恕)하다 ⑦참음,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이길 극(克), 이길 승(勝), 견딜 감(堪), 견딜 내(耐)이다. 용례로는 참고 견딤을 인내(忍耐), 참고 힘씀을 인면(忍勉), 웃음을 참음을 인소(忍笑), 치욕을 참고 받음을 인수(忍受), 잔인한 마음 또는 참는 마음을 인심(忍心), 애정을 참고 견디어 냄을 인애(忍愛), 욕심을 참음을 인욕(忍辱), 잔인한 사람을 인인(忍人), 묵묵히 참고 좇는 일을 인종(忍從), 치욕을 견디는 일을 인치(忍恥), 괴로움을 참음을 인고(忍苦), 배고픔을 참음을 인기(忍飢), 인정이 없고 아주 모짊을 잔인(殘忍), 참고 견딤을 내인(耐忍), 억지로 참음을 강인(强忍), 굳게 참고 견딤을 견인(堅忍), 너그러운 마음으로 참음을 용인(容忍), 아무리 어렵고 거북한 일이 있더라도 늘 잘 참고 견디어 냄을 백인(百忍), 차마 하기가 어려움을 불인(不忍), 마음속에 넣어 두고 참음을 함인(含忍), 참고 견디는 마음을 기르는 일을 이르는 말을 인자공부(忍字工夫), 참는 것이 덕이 됨을 이르는 말을 인지위덕(忍之爲德), 밖으로 드러내지 아니하고 참고 감추어 몸가짐을 신중히 함을 이르는 말을 은인자중(隱忍自重), 굳게 참고 견디어 마음을 빼앗기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을 견인불발(堅忍不拔), 차마 눈으로 볼 수 없을 정도로 딱하거나 참혹한 상황을 이르는 말을 목불인견(目不忍見), 참을 인忍자와 일백 백자를 쓴다는 뜻으로 가정의 화목은 서로가 인내하는데 있다는 의미를 일컫는 말을 서인자일백(書忍字一百), 끝까지 참고 견딤을 일컫는 말을 견인지구(堅忍持久), 끝까지 굳게 참고 견딤을 일컫는 말을 견인지종(堅忍至終),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을 일컫는 말을 불인지심(不忍之心), 남의 해침을 받고도 앙갚음할 마음을 내지 않는 일을 일컫는 말을 내원해인(耐怨害忍), 너무나 참혹하여 차마 눈으로 못 봄을 이르는 말을 참불인견(慘不忍見), 아주 잔혹한 정치를 일컫는 말을 불인지정(不忍之政), 중생에게 자비하고 온갖 욕됨을 스스로 굳게 참음을 일컫는 말을 자비인욕(慈悲忍辱), 몹시 추악하여 바로 보기가 어려움을 이르는 말을 불인정시(不忍正視) 등에 쓰인다.
▶️ 辱(욕될 욕)은 ❶회의문자로 辰(진; 농경에 좋은 시절)과 寸(촌; 법도)의 합자(合字)이다. 옛날 농사의 때를 어긴 자를 죽이고 욕보인 일로부터 욕보이다, 부끄럼의 뜻이 있다. ❷회의문자로 辱자는 '욕되다'나 '더럽히다', '모욕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辱자는 辰(별 진)자와 寸(마디 촌)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辰자는 농기구의 일종을 그린 것이다. 여기에 사람의 손을 그린 寸자가 결합해 있으니 辱자는 밭일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라 할 수 있다. 辱자의 갑골문을 보면 농기구를 손에 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그런데 농기구 주위로 점이 찍혀있다. 이것은 농기구로 풀을 베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辱자의 본래 의미는 '풀을 베다'나 '일을 한다'였다. 그러나 일이 고되다는 뜻이 확대되면서 후에 '욕되다'나 '더럽히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辱(욕)은 (1)욕설(辱說) (2)꾸지람 (3)인격(人格) 상(上)으로 받는 몹시 부끄러운 일. 치욕적인 일 (4)몹시 수고롭거나 고생스러운 일 등의 뜻으로 ①욕(辱)되다, 수치(羞恥)스럽다 ②더럽히다, 욕(辱)되게 하다 ③모욕(侮辱)을 당하다 ④욕(辱)보이다 ⑤무덥다 ⑥황공(惶恐)하다 ⑦거스르다 ⑧치욕(恥辱), 수치(羞恥)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영화 영(榮)이다. 용례로는 남을 저주하거나 미워하는 말을 욕설(辱說), 장사지낼 때 무덤 속에 시체와 함께 묻은 금은 패물 따위의 부장품을 욕금(辱金), 상대편을 높이어 그가 자기에게 쓴 답장을 욕답(辱答), 대관을 욕되게 함을 욕대(辱臺), 욕되게 하여 배척함을 욕척(辱斥), 남을 높이어 그가 자기에게 찾아 옴을 욕황(辱況), 자기를 알게 된 것이 그 사람에게 욕이 된다는 욕교(辱交), 자기와 교제하게 된 것이 그 사람에게는 욕이 된다는 욕지(辱知), 자기를 알게 된 것이 그 사람에게 욕이 된다는 욕우(辱友), 깔보고 욕보임을 모욕(侮辱), 남의 이름을 더럽히고 욕되게 함을 오욕(汚辱), 부끄럽고 욕됨을 치욕(恥辱), 남에게 눌리어 업신여김을 받음을 굴욕(屈辱), 괴로움과 모욕을 당함을 곤욕(困辱), 상대를 이김으로써 지난번 패배의 부끄러움을 씻고 명예를 되찾는 것을 설욕(雪辱), 남을 업신여기어 욕보임 또는 여자를 강간하여 욕보임을 능욕(凌辱), 꾸짖고 욕함을 후욕(詬辱), 견디기 어려운 불명예스러운 일을 고욕(苦辱), 사람을 앞에 두고 욕설을 하거나 또는 치욕을 당하게 함을 면욕(面辱), 무고한 사람을 붙잡아서 욕을 보임을 집욕(執辱), 욕설과 악담을 욕악담(辱惡談), 한 번에 많이 하는 욕을 속되게 이르는 말을 욕사발(辱沙鉢), 욕이 조상에게까지 미침을 일컫는 말을 욕급선조(辱及先祖), 자제의 잘못이 부형에게까지 욕되게 함을 이르는 말을 욕급부형(辱及父兄), 오래 살면 욕됨이 많다는 뜻으로 오래 살수록 고생이나 망신이 많음을 이르는 말을 수즉다욕(壽則多辱), 모든 일에 분수를 알고 만족하게 생각하면 모욕을 받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지족불욕(知足不辱), 나라의 수치와 국민의 욕됨을 이르는 말을 국치민욕(國恥民辱), 중생에게 자비하고 온갖 욕됨을 스스로 굳게 참음을 이르는 말을 자비인욕(慈悲忍辱), 총애를 받는다고 욕된 일을 하면 머지 않아 위태함과 치욕이 옴을 일컫는 말을 태욕근치(殆辱近恥), 임금이 치욕을 당하면 신하가 죽는다는 뜻으로 임금과 신하는 생사고락을 함께 한다는 것을 이르는 말을 군욕신사(君辱臣死) 등에 쓰인다.
▶️ 負(질 부)는 ❶회의문자로 负(부)는 간자(簡字)이다. 사람 인(人=亻; 사람)部와 貝(패; 돈, 물건)의 합자(合字)이다. 사람이 금품(金品)을 메어 나르다, 등에 지다의 뜻이다. ❷회의문자로 負자는 '짐 지다'나 '빚지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負자는 貝(조개 패)자와 (병부 절)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여기서 절자는 㔾(병부 절)자가 변형된 것으로 허리를 굽히고 있는 사람을 그린 것이다. 貝자는 조개를 그린 것이지만 주로 ‘재물’과 관련된 뜻을 전달한다. 이렇게 사람과 재물이 함께 결합한 형태인 負자는 '빚'을 뜻하기 위해 만든 글자이다. 재물 위에 허리가 굽은 사람을 그려 빚의 부담에 허덕인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負(부)는 ①짐을 지다 ②떠맡다 ③빚지다 ④업다 ⑤힘입다 ⑥부상을 입다 ⑦저버리다 ⑧패하다 ⑨근심하다(속을 태우거나 우울해하다) ⑩짐 ⑪지는 일 ⑫빚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이길 승(勝), 이룰 성(成)이다. 용례로는 어떤 일이나 의무나 책임 따위를 떠맡음을 부담(負擔), 남에게 빚을 짐 또는 그 빚을 부채(負債), 몸에 상처를 입음을 부상(負傷), 종이나 피륙 등으로 만든 큰 자루를 부대(負袋), 남에게 빚을 짐을 부책(負責), 등짐 장수를 부상(負商), 약속을 어기거나 저버림을 부약(負約), 무는 세금을 부세(負稅), 뺄셈을 나타내는 기호를 부호(負號), 물품을 등에 지고 다니며 팖을 부판(負販), 전기의 음극을 부극(負極), 자기의 기력을 믿고 남에게 지기를 싫어함을 부기(負氣), 병이 듦을 부병(負病), 대기압보다 낮은 압력을 부압(負壓), 백성이 부담하는 공역을 부역(負役), 짐을 등에 지고 머리에 인다는 뜻으로 매우 힘드는 일을 함을 부대(負戴), 땔나무를 진다는 뜻으로 사죄의 뜻을 나타내는 말을 부형(負荊), 이김과 짐을 승부(勝負), 마음속에 지닌 앞날에 대한 생각이나 계획이나 희망을 포부(抱負), 스스로 자기의 가치나 능력을 믿음을 자부(自負), 물건을 어깨에 멤을 견부(肩負), 뽐내며 자부함을 과부(誇負), 등에 지고 어깨에 멤을 담부(擔負), 재능을 자랑하고 즐김을 긍부(矜負), 빚을 짐 또는 그 빚을 채부(債負), 남에게 진 신세를 소부(所負), 사람의 등에 짐을 지움 또는 그 지우는 짐을 인부(人負), 땔나무를 지고 불을 끈다는 뜻으로 재해를 방지하려다가 자기도 말려들어가 자멸하거나 도리어 크게 손해를 입음을 이르는 말을 부신구화(負薪救火), 가시 나무를 등에 지고 때려 주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하는 것을 이르는 말을 부형청죄(負荊請罪), 책 상자를 지고 스승을 좇는다는 뜻으로 먼 곳으로 유학감을 이르는 말을 부급종사(負芨從師), 무거운 물거운 지고 먼 곳까지 간다는 뜻으로 중요한 직책을 맡음을 이르는 말을 부중치원(負重致遠), 남에게 진 빚이 산더미 같음을 이르는 말을 부채여산(負債如山) 등에 쓰인다.
▶️ 重(무거울 중, 아이 동)은 ❶형성문자로 부수(部首)에 해당하는 里(리)는 단순히 자형(字形)상 이 부수(部首) 글자에 포함되었다. 음(音)을 나타내는 東(동, 중)과 사람(人)이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다는 뜻이 합(合)하여 '무겁다'를 뜻한다. 重(중)은 물건을 들어 올리거나 움직이거나 動(동)할 때의 손에 오는 느낌, 무게, 무거움, 또 일을 충분히 하다, 겹친다는 뜻에도 쓰인다. 또 童(동)이라고 써서 重(중)을 나타내는 경우도 많았다. ❷회의문자로 重자는 '무겁다'나 '소중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重자는 里(마을 리)자가 부수로 지정되어 있지만 '마을'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왜냐하면, 重자는 東(동녘 동)자와 人(사람 인)자가 결합한 것이기 때문이다. 東자는 본래 끈으로 사방을 동여맨 보따리를 그린 것이다. 금문에 나온 重자를 보면 人자 아래로 東자가 그려져 있는데, 이것은 등에 짐을 지고 있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重자는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는 의미에서 '무겁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보따리에는 곡식의 씨앗과 같은 매우 중요한 것이 담겨있다. 왜냐하면, 重자에는 '소중하다'나 '귀중하다'라는 뜻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重(중, 동)은 (1)무엇이 겹쳤거나 둘이 합쳤음을 뜻함 (2)크고 중대함을 나타냄 등의 뜻으로 ①무겁다 ②소중하다, 귀중하다 ③자주하다, 거듭하다 ④무겁게 하다, 소중히 하다 ⑤삼가다(몸가짐이나 언행을 조심하다), 조심하다 ⑥보태다, 곁들이다 ⑦붓다(살가죽이나 어떤 기관이 부풀어 오르다), 부어 오르다 ⑧더디다 ⑨겹치다 ⑩아이를 배다 ⑪많다 ⑫두 번, 또 다시 ⑬심히 ⑭늦곡식, 만생종(晩生種) ⑮젖 ⑯짐 ⑰무게, 중량(重量) ⑱위세(位勢), 권력(權力) ⑲임시 신위(神位) ⑳사형(死刑) 그리고 ⓐ아이, 어린이(동)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윗 상(上),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가벼울 경(輕)이다. 용례로는 매우 귀중하고 소중함을 중요(重要), 같은 것이 두 번 이상 겹침을 중복(重複), 매우 중요하게 여김을 중대(重大), 중요한 자리에 있어 비중이 큰 사람을 중진(重鎭), 같은 사물이 거듭 나오거나 생김을 중출(重出), 거듭 겹치거나 겹쳐지는 것을 중첩(重疊), 매우 위중한 병의 증세를 중증(重症), 큰 힘으로 지구가 지구 위에 있는 물체를 끄는 힘을 중력(重力), 태도가 점잖고 마음씨가 너그러움을 중후(重厚), 중요한 점이나 중시해야 할 점을 중점(重點), 중요한 자리에 임용하는 것을 중용(重用), 무겁게 내리 누름으로 강한 압력을 중압(重壓), 중요한 책임을 중책(重責), 부담이 많이 가게 과하는 것을 중과(重課), 건물 등의 낡고 헌 것을 다시 손대어 고침을 중수(重修), 공경하고 중하게 여김을 경중(敬重), 매우 조심스러움을 신중(愼重), 높이고 중히 여김을 존중(尊重), 다른 사물과 견주어지는 사물의 중요성을 비중(比重), 용서할 수 없을 만큼 중대함을 엄중(嚴重), 매우 귀중함을 소중(所重), 귀하고 소중함을 귀중(貴重), 가벼움과 무거움으로 중요하지 아니한 것과 중요한 것을 경중(輕重), 어떤 일에 중점을 둠을 치중(置重), 몹시 무거움을 과중(過重), 더 무겁게 함 또는 더 무거워짐을 가중(加重), 몸의 무게를 체중(體重), 매우 중요함이나 더할 수 없이 소중함을 막중(莫重), 점잖고 묵직함으로 친절하고 은근함을 정중(鄭重), 한 말을 자꾸 되풀이 함을 이르는 말을 중언부언(重言復言), 오래 동안 몹시 앓고 난 뒤를 일컫는 말을 중병지여(重病之餘), 겹겹으로 포개져 있는 모양을 일컫는 말을 중중첩첩(重重疊疊), 겹겹이 높이 솟아 삐죽삐죽함을 일컫는 말을 중중촉촉(重重矗矗), 흙먼지를 날리며 다시 온다는 뜻으로 한 번 실패에 굴하지 않고 몇 번이고 다시 일어남을 일컫는 말을 권토중래(捲土重來), 밖으로 드러내지 아니하고 참고 감추어 몸가짐을 신중히 함을 이르는 말을 은인자중(隱忍自重), 매우 사랑하고 소중히 여김을 일컫는 말을 애지중지(愛之重之), 복은 거듭 오지 않으며 한꺼번에 둘씩 오지도 않음을 일컫는 말을 복불중지(福不重至), 죄는 크고 무거운 데 비하여 형벌은 가볍다는 뜻으로 형벌이 불공정 함을 이르는 말을 죄중벌경(罪重罰輕), 무거운 물거운 지고 먼 곳까지 간다는 뜻으로 중요한 직책을 맡음을 이르는 말을 부중치원(負重致遠)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