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벨론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
이라크저항세력, 복구지원 병력도 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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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이라크의 저항세력들이 전후 복구지원을 위해 파견된 이탈리아 병력을 공격했다. 11.12일 이라크 남부 나시리야의 경찰관서에서 차량폭탄 테러가 발생, 이탈리아 군경등 80여명이 사상을 입었다.
현재까지 20여명이 숨지고 50여명이 중경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폭탄테러 사건은 이라크 파병을 앞두고 있는 우리로서는 심각한 사태가 아닐수 없다.
지금까지 미군은 이라크를 조기점령해놓고도 전후처리에 실패, 베트남식 망령에 시달리고 있다. 도처에서 폭탄테러와 저격수의 총격으로 하루도 사상자가 나오지 않는 날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브리머 행정관을 비롯한 실무자나 럼스펠드 국방등 정책입안자들은 손을 놓고 있는 상태다. 사실 미국은 고도의 기술집약적인 정보사회이지만 이라크식의 고전적인 게릴라전에선 무력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미국의 뼈아픈 곤경과 좌절은 선전전에서의 실패에서 기인한다. 대개의 경우 서구식 교육을 받은 국방전문가들은 선전선동술에 무지하다.
미국은 이미 베트남에서 처절한 댓가를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제국의 오만과 편견에 사로잡혀 전술과 전략에서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전투에서 이기고 전쟁에서 지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게 현실이다.
지금 미국의 전술책임자들이 가장 주목을 해야 할 부분은 적의 마음을 공격하는 공심지계(攻心之計)다. 즉 이라크인들을 심복시키고 적을 분열시키는 고도의 심리전술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이 분야에서의 전문가들은 단연 동양의 전설적인 병법가들이다. 손자(孫子)와 오자(吳子), 강태공(姜太公), 제갈공명(諸葛孔明), 그리고 최근의 탁월한 전술가인 모택동(毛澤東)을 공부하지 않으면 이 전쟁은 결코 이기지 못한다.
한국전쟁에서도 사실 미군은 이기고도 패한 전쟁이다. 바로 모택동식 심리전술에 말려들어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도 전쟁은 유야무야가 되고 말았다.
전쟁은 전투와 선전의 두가지로 이루어 진다. 50대 50인 것이다. 그러나 세계 제1의 군사대국인 미국은 바로 50%의 전투에서만 승리할줄 알았지 나머지 50%의 선전에는 무관심했다.
이미 수십년의 경험과 처절한 댓가를 치르고도 미군은 도처에 원한과 원수만을 남겨 놓았다. 반대로 전범과 파시스트 독재자들은 각기 자기의 조국에서 민족영웅으로 추앙과 숭배를 받으면서 승승장구했다. 그것이 전쟁이다.
이러한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미군은 또 이라크에서 패배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미군의 패배와 붕락이 아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국군이 이라크에 파병된다는데 있는 것이다.
사실 남의 나라 전쟁에 감놔라 배놔라 할 것은 없다. 다만 우리와 연관이 있다면 이는 심각한 것이다.
어떤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결국 우리는 이라크에 파병을 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어떻게 테러세력에 대처할 것인지의 전술전략이 필요하다. 군은 민족무력의 상징이요 영광이다. 군은 승리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패전하기 위해 존재하는게 아니다.
쉽게 말해서 어떤 전쟁에 개입하든 반드시 승리한다는 강철의 신념과 의지를 가져야 한다는 얘기다. 이미 한국군의 용병술은 베트남전에서 입증된바 있다.
전쟁은 무자비하고 처참한 것이다. 전쟁에서 인도주의란 송양지인(宋襄之仁)의 어리석은 후회와 탄식밖에 남겨주지 않는다.
그렇다면 한국군에게 한가지 충고와 조언을 줄수 있을 것 같다. 우선 미군을 절대로 배우지 마라. 그러면 전쟁에서 반은 승리한 것과 다름없다. 철저히 모택동을 배우라고 간절히 권하고 싶다.
비록 모(毛)는 우리의 적이었지만 얼마든지 그의 신출귀몰한 병법과 심리전술은 끌어다 쓸수 있는 것이다. 모택동은 전쟁에서 이기든 지든 전력의 반을 선무공작에 쏟아 부었다.
비록 지금 패했다 하더라도 결국엔 이기고 만다는 중국식의 낙관주의에서 나온 것이다. 여기에는 필히 여자가 동원되었다. 아마도 브래드 피트의 「티벳에서의 7일」이란 영화를 본 사람들은 잘 알 것이다.
중공군 점령지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앳된 여자들의 선무공작대를 보면 단순히 모(毛)가 운이 좋아 대륙을 제패한 게 아니란 사실을 알수 있다.
바로 이러한 공심지계(攻心之計)가 세상을 바꾼 것이다. 이러한 전략을 그대로 이어 받은 사람이 그 유명한 체 게바라와 호지명(胡志明)이다.
우리도 비록 미국제 무기를 쓴다고 해도 전술은 동양의 전술을 써야 승리할수 있다. 사실 서양전술의 상징인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과 동양의 전술고전인 「무경칠서(武經七書)」를 비교하면 천양지차(天壤之差)란 것을 알수 있다.
무경칠서는 육도, 삼략, 손자, 오자, 사마법, 울요자, 이위공문대의 일곱권을 이른다. 이중에서 반만 익혀도 전쟁에서 백전백승할수 있다고 자신한다.
지금이라도 국방부는 매일 똑같은 총검술이나 태권도만 시키지 말고 병법의 고전을 가르치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에 덧붙여 「이에는 이」라는 탈리오의 법칙을 새겨둘 필요가 있다. 바로 게릴라전술을 익히게 하라는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 국군의 일과표는 제대하는 날까지 유치원생들도 할수 있는 병기본교육만 반복하다 끝난다.
사실 우리는 북한군의 기본화기인 칼라시니코프 소총의 운용이나 분해결합도 못한다. 게다가 지금 이라크에서 미군에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있는 RPG 휴대용 로켓트포는 손도 대보지 못하는게 현실이다.
이 무기들은 사실 보병무기로는 세계 제1의 경쟁력을 갖고 있는 것들이다. 이러한 우수한 무기체계로 무장된 적과 싸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밖에도 게릴라전에 필요한 부비트랩설치, 진지구축전술, 포로신문, 지뢰매설법, 폭탄설치 등 다양한 전투매뉴얼을 개발해야 살아 남을수 있는 것이다.
현재의 미군식 전술로는 살아서 유프라테스강을 건너 귀국할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게릴라들이 무인지경을 가듯 마음놓고 폭탄테러를 가할수 있는 것이다.
우리 군대는 영광스러운 파병의 역사를 갖고 있다. 실제로 월남전에서 미군전력의 3분의 1만 우리에게 주었다면 60년대 말에 전쟁은 끝났을 것이다. 그만큼 한국군의 전투력은 세계 최강의 실력을 인정받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전쟁은 심리전이다. 그리고 어떤 수단과 방법을 써서라도 전쟁은 반드시 이겨야 한다. 전쟁의 승리를 위해서는 악마와도 계약할수 있어야 한다. 앞뒤를 헤아리고 좌고우면(左顧右眄)하는 나라는 패망의 사신(死神)이 영접할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파병을 둘러싸고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하루에도 열두변덕을 부리는 대통령의 우유부단으로 국론은 만신창이로 분열되어 있다.
그러나 어차피 가야할 것이라면 단호히 결정을 내리고 선언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국민에게 파병의 당위와 의지를 밝히면 그만이다. 그것이 대통령이 할 일이다.
국민을 설득하거나 선언하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대통령으로서는 자격미달이다. 한마디로 리더십결여요 카리스마부족이다.
어쩌면 이라크가 대한민국 21세기 도약의 뜀틀이 될 수도 있다는 플러스 마인드를 생각해야 한다. 부정과 불안의 마이너스 마인드로는 집안의 좀도둑조차 잡지 못한다.
언제부터 이렇게 심약하고 용렬한 대통령이 나왔는지 내심 걱정과 우려가 앞선다. 역사는 진공(進攻)하는 자의 것이다. 모험과 도전없이 이루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바빌론을 점령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고 했다. 네부카드네자르가 그러했고 함무라비가 그러했고 알렉산더가 그러했다. 두려움없는 사자처럼 역사의 광야(曠野)로 진군하자.
역사는 전진하는 자의 것이다
그동안 말도 많았던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문제가 찬성 쪽으로 무게추가 기울었다. 이번 파병결정의 분수령은 유엔 안보리 결의안의 통과였다.
사실상 한국은 안보리 결의안통과라는 명분을 등에 업고 파병이라는 고질적인 매듭을 풀어 버린 것이다.
정부는 18일 청와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열어 한국군 추가 파병을 결정하고 공식발표할 예정이다.
특히 한국정부가 서둘러 이 문제를 매듭지으려는 것은 20일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정상회의에서 한미간에 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일 한미정상회담 이후 파병결정이 날 경우 미국의 압력에 굴복해서 파병했다는 좌익친북 집단의 선전선동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러한 결정을 내리기에 앞서 좌우 양진영의 상징적 단체인 재향군인회와 이라크파병반대 국민행동 대표들과 만남의 자리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노대통령은 파병의 시기와 규모, 성격은 국제정치의 환경속에서 국가이익을 고려해 판단하겠다는 모호한 답변을 늘어놨다.
심지어 이라크파병반대 국민행동과의 회동에서는 파병에 따른 경제적 이익이 크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만약 파병하지 않을 경우 시장의 막연한 공포 때문에 파병하게 됐다고 회색적 발언을 했다.
또다시 노무현식 우유부단과 이중인격이 여실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이러한 노대통령의 수사와 어법은 좌익과 우익세력 모두에게 비난과 지탄을 받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이러한 이중어법은 평소 자신의 철학과 신념이 뚜렷하지 않은 인간에게서 발견할수 있는 말습관이다. 혹자는 변호사 직업에서 나온 우회적이고 함의적인 언어습관이라는 지적도 있다.
문제는 일국의 대통령다운 소신과 의지가 없다는 것이다. 왜 파병을 해야 하는지 아니면 왜 파병을 해선 안되는지에 대한 명쾌한 답변을 들어 본 사람이 없다.
실제로 그의 역사적 안목과 식견은 상당히 지수가 낮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러한 파병문제는 눈치와 잔머리굴리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사례와 성찰을 통해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한 내공과 능력을 가지고 반대파를 설득하고 회유할수 있는 카리스마를 가져야 한다. 그런 행동을 하기 때문에 시중에서는 함량미달의 대통령이라는 풍설이 떠도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파병은 국력의 신장과 국위의 선양에 더할나위 없는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다. 우리가 지난 월남전 파병이 없었더라면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파병하지 말라고 해도 파병의 빌미를 잡아 경제수렁에서 빠져 나오도록 하는 것이 리더의 할 일이다. 만일 한국전이 없었더라면 과연 오늘의 일본이 가능할 것인가. 답은 명료한 것이다.
이번 파병에서 전상자가 나올수도 있다. 아니 분명히 나올 것이다. 우리가 파병될 것으로 예정되고 있는 이라크 북부 모술은 치안상태가 상당히 안정된 곳이다. 하지만 게릴라의 준동이 전혀 없다고 판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 나라의 군대, 그것도 아시아 제일의 막강한 군사력을 갖고 있는 대한민국의 군대가 게릴라와의 충돌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군대는 전쟁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지난 50여년전 미국이 붉은 나치군대의 침략에 맞서 이 땅을 지켜주었다. 5만이 넘는 미군이 이 땅에서 죽었다. 세상사는 모두 상대적이다. 일방주의란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미국이 자국의 필요에 의해 우리를 부르면 당연히 응해야 한다. 만일 붉은 나치들이 또다시 이 땅을 침략한다면 우리처럼 미국조야에서 파병을 둘러싸고 싸움질이나 한다면 어찌할 것인가. 우리도 최소한의 양심과 염치는 갖고 살자.
지나가는 강아지도 알수 있는 문제를 가지고 대통령과 좌우익이 드렁칡처럼 얽혀 삿대질하는 삼류쇼는 그만두자. 아무리 세상이 막가는 판이라 하더라도 후안무치의 뻔뻔함도 이 정도로 멈추자.
이라크 지역은 과거 바빌로니아의 영광을 간직한 전략의 요충지다. 이 일대에서는 바빌론의 땅을 지배한 자가 천하의 패권을 쥔다고 믿어왔다.
수메르 문화의 발상지이며 영웅 함무라비와 네부카드네자르대왕의 땅이기도 하다. 후일 이 지역은 페르시아에 멸망했고 다시 페르시아는 마케도니아에 멸망한다.
다시 말해서 과거에도 전략의 요충지였고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솔직히 부시정부가 북한을 치지 않고 오히려 이라크를 공격한 것도 바로 이런 전략적 위상때문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중동의 화룡점정(畵龍點睛)같은 곳이 이라크인 것이다. 그러한 곳에 한국군이 진출한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와 가치를 가지고 있다.
우선 모술에 주둔하면서 과거 베트남에서 했던 것처럼 이라크주민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특히 이 지역은 쿠르드자치지역과 경계를 맞대고 있는 곳이라 더더욱 잠재가치가 높은 곳이다.
비록 쿠르드족은 현재 국가를 갖고 있지는 못하지만 언젠가 국가체제를 구축할만한 인적자원을 지니고 있는 오랜 역사의 민족이다.
이러한 곳에 한민족 특유의 정(情)의 정치를 한다면 망외(望外)의 성과를 얻을수 있다. 의료봉사라든지 대민지원이라든지 우리가 할수 있는 일은 무궁무진하다.
이를 토대로 삼아 중동과 중앙아시아, 지중해지역등 과거 우리가 접근할수 없었던 새로운 문화권과 교역과 교류를 강화하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한민족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그물망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뛰어난 기술력과 성실성으로 또다시 비바 코리아를 힘차게 불러 볼수도 있다. 아직도 이 지역은 문명의 사각지대가 많다. 역사가 코리아를 부르는 것이다.
그러나 국내의 방송과 신문을 보면 모두가 네가티브 스토리로 가득하다. 언제부터 한민족이 이렇게 자신감과 열정감을 잃어 버렸을까.
틀림없이 이것은 국내에서 붉은 나치의 잔당들이 준동하면서 생긴 현상이다. 어떻게 해서든지 대한민국의 국력과 위상을 깎아 내리려는 매국집단의 소행이다.
이들은 인권과 민중이란 양의 탈을 쓴 늑대의 후예들이다. 일성교와 정일교의 광신도들이 벌이는 죽음의 굿판인 것이다.
하여튼 이번 이라크 파병은 또한번 민족의 영광과 승리를 내외에 과시하는 절호의 찬스가 될 것이다. 주저하는 자는 역사의 키를 잡지 못한다.
전진하는 자만이 살아 남는다. 열정과 패기, 진취와 도전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전쟁을 두려워 하는 자는 영원히 노예로 살 사람이다.
예상했던 대로 이라크에서의 반미테러는 만만치 않았다. 27일 단식월인 라마단이 시작되는 날, 동시다발적인 폭탄테러가 5건이나 터졌다.
적어도 34명이 숨지고 2백24명이상이 부상했다. 지난 5월 1일 부시대통령이 이라크전 종전(終戰)을 선언한 이래 최대규모의 보복공격이었다.
미국도 당황했다. 그동안 간헐적인 테러공격에도 침착과 냉정을 잃지 않던 미국도 망연자실했다. 이렇게 까지 저항과 공격이 극심할 줄은 몰랐다.
미국에게는 베트남 콤플렉스가 뿌리깊이 자리잡고 있다. 다시말해 게릴라전에 대한 무력증이다. 아무리 초현대적 무기를 가지고 있어도 게릴라전에는 속수무책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이번 폭탄테러는 외부의 반미테러 단체가 기획하고 조종한 것으로 보인다. 국제적십자사본부와 네곳의 경찰서가 공격을 받았다.
그래도 피해가 이 정도에 그친 것은 이라크경찰의 선방 때문이다. 국제적십자사 바그다드 본부에 오전 8시 30분쯤 폭탄을 적재한 구급차가 건물20미터앞의 모래통을 들이 받고 폭발했다. 자살폭탄테러였다.
이 사고로 12명이 사망하고 23명이 부상했다. 만일 건물을 들이받았다면 더욱 피해가 컸을 것이다. 그러나 이 날이 라마단 첫날이라 출근자가 거의 없어 그래도 이만큼이나 피해를 줄일수 있었다.
이후 시내 카르크, 다우라, 하드라, 사아브 지역의 경찰서에 자폭차량이 돌진했다. 또한 서부 만수르지역에서는 미군이 두차례나 로켓공격을 받아 시내는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하여간 바그다드는 총성과 폭발음으로 아수라장이었다. 미군은 적지않이 당황한 표정이다. 콜린 파월 미국무장관은 이렇게 까지 저항세력의 공격이 거셀 줄은 몰랐다고 털어놨다.
폴 브레머 행정장관도 우리는 이라크에서 중대한 테러문제에 부닥쳐 있다고 위기론을 폈다. 부시 미대통령도 이라크인들이 자유를 누리면 누릴수록 , 이라크의 실업률이 낮으면 낮을수록 적들의 우리들에 대한 공격은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한마디로 비관의 로드맵이다.
분명한 것은 앞으로도 이라크 저항세력의 테러공격은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의 체제와 수단으로는 이 공격을 결코 막아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결국 베트남현상의 부머랭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원래 강대국일수록 국지적인 게릴라전에는 힘을 쓰지 못한다.
베트남 디엔비엔푸에서의 프랑스군의 패퇴와 항복도 바로 이런 게릴라전에서 비롯된 것이다. 구소련도 아프간에서 톡톡히 댓가를 치렀다.
그렇다면 과연 게릴라전에 대응할 묘안과 비방은 없는 것인가. 본디 전쟁이란 공식적 대응인 정공법과 비공식적 대응인 기공법이 있다. 정공(正攻)과 기공(奇攻)을 적절히 섞어써야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미군은 상당히 취약하다. 아직도 승리의 자만과 방심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게릴라전은 바로 이것을 노린다. 병법의 피실격허(避實擊虛)가 바로 그것이다. 견고한 적을 피하고 허술한 적을 공격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쟁이란 남의 손을 빌어 이기는 것이 상책이다. 이른바 차도살인(借刀殺人)이다. 남의 칼을 빌어 적을 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라크 저항세력은 우호적인 이라크세력을 무장시켜 대응하는 것이 정답이다.
그들에게 평정후의 권력이양을 약속하면 얼마든지 강력한 무장세력으로 키울수 있다. 이른바 저항세력과 우호세력을 대결시키는 디바이드 앤 룰의 분리정책이다.
이렇게 해서 이라크인 스스로 내전을 치르도록 하는 것이 병법의 요체인 것이다. 앞으로 우리도 모술지역으로 파병한다면 이러한 정략과 병법을 써야 피해를 줄일수 있다.
손자병법의 최고전술은 부전이승(不戰而勝)이다. 싸우지 않고 이겨야 한다는 것이다. 이라크 평정사업도 피를 흘리지 않고 다스려야 진정으로 파병의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할수 있다.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미국의 이라크 전후처리는 실패작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유는 미국 스스로가 이라크 문제를 해결하려 했기 때문이다. 어느 민족이나 외국인 혐오증은 본능적인 것이다.
처음부터 이라크내의 반후세인 세력을 차기 권력의 핵심으로 키웠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쉽게 전후처리에 나설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미국이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아 이라크문제를 다루려는 것은 현명한 방책이다. 이른바 병법의 세고취화(勢孤取和)다. 세력이 외로우면 우호적인 동지국가를 끌어들여 화(和)를 노리는 것이다.
앞으로 머지않아 우리도 이라크에 파병을 하게 된다. 지금 이러쿵 저러쿵 파병을 둘러싸고 말이 많지만 미국에 의해 국방을 의존하고 있는 나라로서 당연히 출병해야 한다. 만고의 진리중의 하나는 세상에 공짜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출병을 하더라도 지혜와 방략(方略)을 가지고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적어도 미군처럼 당해서야 되겠는가. 그러면 여기서 몇가지 조언을 주고 싶다.
적을 공격하려면 우선 진지를 강화하고 나의 취약점을 살펴야 한다. 공피고아(攻彼顧我)라는 것이다. 그러지 않고 무턱대고 공격하면 핀란드 전쟁꼴이 나는 것이다.
소련이 동토의 소국 핀란드에게 크게 당한 것도 바로 공피고아를 경시했기 때문이다. 반면 핀란드가 북극곰 소련과 싸워 조국을 지킨 것도 사실은 나의 취약점과 적의 취약점을 잘 살펴 싸웠기 때문이다.
적의 피로함을 나의 여유로 기다릴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전술과 병법을 자유자재로 쓸수 있는 것이다. 이른바 이일대로(以佚待勞)란 전술이다.
만일 후세인의 잔당들이 우리를 공격한다면 서둘러 공격을 하면 안된다. 그들로 하여금 에너지를 소모하게 하는게 요체다. 그래야 막상 전투가 벌어지면 우리는 축적된 에너지로 적을 격퇴할수 있는 것이다.
베트남전에서는 미군이 적을 찾아 나섰다가 오히려 반격을 당해 수없이 죽었다. 월맹은 이일대로의 병략을 사용했다. 베트남의 민족영웅 호지민은 중국 병법의 달인이다.
당태종이 고구려군을 이기지 못한 것도 바로 이일대로(以佚待勞)의 계(計)를 몰랐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서둘렀다는 것이다. 수륙만리(水陸萬里)를 달려온 당나라 군사는 지칠대로 지쳤다.
그러나 고구려군은 침착하게 전력을 비축해가면서 적의 동태를 살폈다. 그래서 안시성(安市城)의 양만춘(楊萬春)같은 민족영웅도 나온 것이다. 역발산(力拔山)만으로는 영웅이 될 수 없다.
라마단의 유혈사태는 파병의 초읽기에 들어간 우리에겐 적지아니 우울한 소식이다. 하지만 세상에 쉽사리 얻을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도전하지 않는 자에게 미래는 없는 것이다. 감나무 밑의 감도 입을 벌리고 있는 것보다는 삿갓을 받치고 있는게 지혜로운 것이다. 지혜(智慧)와 명철(明哲)이 어느때보다도 중요한 때다.
이라크 파병은 강대국으로 가는 탄탄대로다
노무현, 몸사리기에서 벗어나 강력한 리더십보여야...
드디어 미국이 원하는 한국군의 규모가 드러났다. 우선 미국은 한국 터키 파키스탄에 4만명의 지원병력을 요구했다.
이중 한국과 터키는 1만에서 1만5천명, 파키스탄은 1만2천명수준이다. 예상했던 대로 폴란드사단의 규모보다 훨씬 커졌다. 그러나 문제는 숫자의 논리가 아니다.
정책의 판단과 결정은 국가 만년대계를 내다보고 해야한다. 지금 『미국이 하라고 하니까 자존심 상한다』 차원의 소아적 정서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가의 미래와 희망은 첫째 국방력에 달려있다. 지금 북한이 최악의 경제상황하에서도 선군정치를 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국방력을 경시하거나 홀대한 나라는 모두 망했다. 우리 민족의 지난 역사가 노예와 굴종의 비참과 처절로 가득찬 것도 그런 까닭이다.
조선왕조의 최대 죄악이 있다면 민족무력의 무시와 홀대다. 그로부터 임진왜란 병자호란등 외침과 속박의 고통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른바 국가의 벼슬아치라는 것들은 당쟁과 사화로 세월을 다 보냈다.
그렇게 노예왕조 500년을 보내다가 결국 일본에 망하고도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그러한 것을 관성의 법칙이라고 한다. 노예생활에 익숙한 민족은 권리와 칼자루를 쥐어주어도 과거의 인습과 관행에 따라가게 된다.
지금 대한민국의 국가 경영과 전략을 보면 한심하기 그지없다. 일본이 아무리 잘 살아도 강대국이 못되는 것은 무엇인가. 바로 민족무력을 갖고 있지 못하면 사상누각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결국 국방력이 그 나라의 운명과 미래를 결정짓는 것이다. 부자나라 쿠웨이트나 사우디가 어디 강대국인가. 옆집 깡패가 와서 분탕질만 해도 미국에 구걸해야 하는 신세다.
지금 우리나라는 또다시 노예근성이 도지고 있다. 탁상공론과 허명무실로 세월만 죽이고 있는게 현재의 정치권이다. 어느 누구 하나 비스마르크나 이또 히로부미같은 국가 경륜의 그릇이 없다. 모두가 오합지졸의 무리들이다.
이라크 파병은 여론장난을 하거나 좌고우면할 때가 아니다. 국가 만년대계로서 당연히 받아들여야 할 천재일우의 기회인 것이다.
한국이 살 길은 막강한 군사력과 경제력의 복합경영뿐이다. 좁은 국토에 자원빈국인 우리가 갈 길은 영국이나 네덜란드, 과거의 포르투갈처럼 대외 지향적인 정책뿐이다.
그러지 않으면 솔직히 10년안에 필리핀현상으로 굴러 떨어질수 있다. 이미 그 조짐과 예단이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런 차제에 파병문제가 불거진 것은 아직도 대한의 국운이 남아있다는 증좌다.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강대국으로 부상한 나라들의 행적을 따라가보면 결론은 단 하나다. 무적함대처럼 진군하는 국가만 살아남았다. 그렇지 않고 국론이 분열되고 내홍에 휘말린 나라들은 모두 식민지가 되거나 삼류국가로 전락했다.
한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그릇이 너무 작다. 간장종지기 정도라고나 해야할까 한심할 정도다. 20세기의 여명이 밝아올 무렵 전 세계는 분쟁지역의 출병과 개입에 열을 올렸다. 이들 나라는 인권이 없고 자존이 없어서 이런 결정을 내렸을까.
바로 위험과 도전을 두려워 하지 않는 정신과 패기가 역사를 바꾸는 것이다. 대청제국이 영국의 대포몇방에 손을 들었다. 왜 이런 비극이 벌어졌을까.
당시 청제국은 해금(海禁)정책을 폈다. 한마디로 무서우니까 아무도 안만나고 빗장을 걸겠다는 얘기다. 결국 아편전쟁과 애로우전쟁으로 망신만 톡톡히 당했다. 지금도 똑같다고 생각하면 틀림없다. 빗장걸고 자존망대에 빠져 있으면 공도동망(共倒同亡)한다.
오늘날 이만큼이나마 먹고살고 수출하고 빈국을 도와 줄수 있는 바탕도 사실은 월남전 출병에 있었다. 이때가 한국의 도약을 알리는 절호의 기회였던 것이다.
지금 바로 그때가 또 오고 있다. 지난 수년간의 경제 침체와 정치적 혼란까지도 일거에 쓸어버릴수 있는 기회가 지금이다.
원래 전쟁이란 내부적 모순과 내홍을 일거에 해결하는 신비의 항생제같은 것이다.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이 프랑스혁명으로 인한 국론분열과 민심불안을 한 순간에 거머쥔 것은 전쟁이었다.
전 유럽을 석권한 보나파르트의 영광과 승리는 프랑스의 자존이요 명예였다. 황제중의 황제 나폴레옹은 민심을 잡아 돌리는데 천재였던 것이다.
전쟁을 두려워 하는 국가는 반드시 전쟁의 참화를 입는다.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싸운 펠로폰네소스전쟁도 이와 똑같은 전철을 밟는다.
얼핏 생각하면 민주주의의 상징인 아테네가 승리해야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전체주의 국가인 스파르타의 승리로 전쟁은 끝난다.
전쟁이란 명분과 정의로 하는 것이 아니다. 누가 무비(武備)를 탄탄히 갖추고 정신무장이 되어 있느냐로 결정되는 것이다.
결국 우리나라도 아무리 경제성장에 목을 매단다 해도 결코 북한을 능가하지 못한다. 스파르타형 국가인 북한이 아테네형 국가인 한국을 이길수 있는 것이다.
지금 이라크파병 문제로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신문마다 방송마다 여론조사를 하고 있다. 그런데 한가지 웃기는 사실이 있다. 언론의 성격과 여론조사가 비례한다는 것이다.
파병반대를 외치면서 한국의 군사력강화에 반대하는 좌익언론에서는 파병반대가 우위를 점한다. 반면 파병찬성의 정서를 지니고 있는 우익언론의 여론조사는 이와 반대의 현상을 보이고 있다. 혼란과 불안의 조짐이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중 가장 카리스마와 리더십이 떨어지는 대통령이다. 이런 경우 국력의 추락과 민족의 비극이 시너지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조선조에서 우매한 제왕 선조가 그러했고 구한말의 고종·순종이 또한 그러했다. 심지어 고종·순종 무렵 누군가는 차라리 국태공(國太公)이 정권을 장악했더라면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물론 대원군은 국제정세를 읽지 못한 정치가다. 하지만 국민을 불안하게 하고 사분오열되던 정치판을 일거에 갈아 엎을 만한 파워에너지는 갖고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철종이 서거한후 조대비가 대원군 이하응(李昰應)의 두 번째 아들을 고종으로 앉힌 것이다. 사실 천하대권이 이하응 본인이거나 아니면 첫째 아들 재면이나 서자 재선이가 했더라면 역사는 분명히 바뀌었을 것이다. 그들은 모두 출중지사들이다.
하지만 노회한 조대비가 그러한 사실을 모를리 없는 것이다. 자신이 다칠수 있는 탁락한 인걸을 왕재(王材)로 고를리 없는 것이다.
당시 전주이씨 가문에서 용렬하고 우매하기로 소문난 둘째아들 명복을 점찍었다. 그가 고종이고 조선왕조 멸망의 주인공이 된다.
지금 정치판이나 나라정세가 그때와 흡사한 형국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우국개세(憂國慨世)의 한탄소리로 가득하다. 이러한 차제에 파병문제가 또다시 국론분열에 불을 댕기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역사책을 읽어볼 것을 권면하고 싶다. 주위의 참모와 측극은 제쳐두고 홀로 고요히 독서를 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주제는 근세 제국주의 흥망사다. 그러면 이라크 파병문제에 주사위를 던질수 있을 것이다. 당신의 결정하나에 민족과 조국의 미래와 운명이 걸려 있는 것이다.
도전과 모험을 두려워하는 국가는 100년안에 반드시 망한다.
ps 이 인류사는 전쟁의 역사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전쟁을 싫어하고 평화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이번 이라크전에서도 볼 수 있듯이 지금 이 시간에도 세계 도처에서는 전쟁과 분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명목상의 이유야 어찌됐든지 인간이 야누스의 두 얼굴처럼 이성적으로는 평화와 인간애가 소중하다고 말하면서도 막상 자기 욕망을 충족시키지 못할 때는 폭력을 써서라도 이를 해결하고 싶어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한 집단이나 나라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혹은 잘못된 지도자의 영웅심리나 공격본능에 의해, 또 민족·사상·종교 등 수많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끊임없이 전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우리가 분명히 명심해야 할 것은 언제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대비태세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역사에서 임진왜란, 병자호란, 조선 말의 국난 등은 대비태세에 소홀하거나 상무정신이 쇠약한 상태에서 겪었던 것입니다. 최근 북한 핵문제나 일본, 중국 등 주변국의 준비증강 등을 생각할 때 더욱 그렇습니다. 전쟁에 대비하는 지혜를 모아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첫댓글 본인이 쓰신 글인가요..? 혹시라도 퍼오신 거라면 출처를 명기해주시기 바랍니다..
예 위에글은 시스템 클럽이란 사이트에서 펀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