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나무도서관에서 줍는 소리들
정규범
책이 좋아 흙 속에서 푸른 나무 도서관으로 나왔어요.
가는 발가락을 가늘게 더듬어 책장을 넘겨 가요.
책을 읽고 소리를 얻으면 숲에는 소리가 가득해져요.
고막을 찌르는 고성은 난독으로 잘못 얻은 소리여요.
음을 추려 정음으로 묶으면 묵음도 잘 해석돼요.
하고 싶은 말이 간절해질 때 소리는 침묵해요.
허물을 벗고 남긴 허상은 나무의 영역입니다.
울음을 폐관한 자리에서는 공기가 소리를 켜고 있어요.
풍경의 사진은 소리를 담는 음반이 될 수 없어요.
땅속 칠 년의 길이라서 소리의 음역은 길 수밖에 없거든요.
당신은 저 소리를 이생의 철필로 잘 녹음하고 있나요?
당신이 편집하는 소리를 짐작해 봅니다.
소음 가득한 서고에서 걸러진 맑은소리가 당신처럼 내게 오고
절실함으로 건너는 내 소리는 당신의 음역으로 스며들고 싶어집니다.
내 소리도 당신의 한 소절로 담길 수 있을까요?
웹진 『시인광장』 2024년 4월호 발표
정규범 시인
고려대 법대 졸업. 2017년 《문학광장》 신춘문예 등단. 저서로는 시집 『길이 흐르면 산을 만나 경전이 된다』(2021. 달아실), 한국문학 대표시선집 6, 7, 8, 9,10과 삶 3, 4(동인지), 전문서적 및 논문 多數 있음. 제6회 문학대전상(경북일보사). 제6회 황금찬문학상 문학대상(황금찬 시맥회), 제27회 윤동주별문학상(문학신문사) 외 다수 수상. 현재 고려사이버대학교 초빙교수, 격월간 『문학광장』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