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12일 묵상 본문 : 사도행전 5장 1절 – 11절 – 사람이 아닌 오직 하나님이 드러나시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시작 기도
주님 새로운 하루를 시작합니다.
불편한 허리만큼 주의 말씀에 마음이 집중되지 않는 모습을 주님이 아십니다.
불쌍히 여겨 주시고 영과 육의 회복이 이루어지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먼저 내 안에 있는 세상을 향한 탐심과 부정함의 쓴 뿌리들을 주의 보혈로 씻어 주옵소서.
주님 안에 평안함을 얻게 하시고 주님이 주시는 은혜로 내 마음을 채워 주옵소서.
오늘도 주의 도우심 속에 살게 하시고 해야 할 일들을 기쁨과 감사함으로 감당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본문
1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2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3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4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5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6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니라
7 세 시간쯤 지나 그의 아내가 그 일어난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오니
8 베드로가 이르되 그 땅 판 값이 이것뿐이냐 내게 말하라 하니 이르되 예 이것뿐이라 하더라
9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 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하니
10 곧 그가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나는지라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죽은 것을 보고 메어다가 그의 남편 곁에 장사하니
11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초대교회가 성령의 은혜 가운데 함께 물질을 나누며 건강하게 세워져가고 있을 때 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자신의 소유를 팔아 일부는 감추고 교회에 기부합니다.
아마도 주변의 사람들이 하는 모습을 따라서 드리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드리기 아까웠는지 일부를 감추고 전부인 것처럼 드리게 됩니다.
이러한 동기는 드림에 있어 거짓이 담겨져 있었으며 자신을 드러내려는 교만이 있었습니다.
이런 모습을 알게 되 베드로는 아나니야을 꾸짖고 성령을 속이려는 죄를 지적합니다.
이에 하나님은 아나니야을 그 자리에서 죽게 만드십니다.
그리고 그 시신을 간단하게 장례 치릅니다.
이 과정을 모르고 들어온 아내 삽비라를 베드로가 찾아 땅 판 값에 대해 질문합니다.
그리고 삽비라도 동일하게 거짓으로 이야기하고 이에 대한 대가로 죽음을 맞이합니다.
남편을 장례 치른 사람들이 삽비라도 장례를 치르고 이 일은 듣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이 교회를 친히 감찰하시고 세워 가시는 모습을 보여 두려운 마음으로 경외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나의 묵상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은 그 사건을 듣는 자들이나 읽는 자들에게 충격적인 사건이다.
그 이유는 거짓말 하나 때문에 죽음을 당하게 되는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거짓말을 심각한 죄로 여기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죄가 아니라 상대방을 위한 배려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의 처신이라 규정한다.
이런 가치관으로 바라볼 때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은 충격적인 사건이 된다.
물론 일반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이 사건은 하나님이 지나치게 처리하셨다고 말할 수 있다.
거짓말 하나로 죽음을 당하게 된다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죽음을 맛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초대교회 당시의 상황을 고려할 때 이 사건은 중요한 전환점을 주는 사건이었다.
무엇보다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시선이 집중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교회의 정결함과 순수함을 유지하는 것에 중심을 두고 있음을 드러낸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자기주장의지가 있다.
이는 자신을 드러냄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이다.
과거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마음으로 선악과를 먹은 것에 비유될 수 있다.
이 마음은 교만이며 하나님의 자리에 자신이 있고자 하는 모습이다.
초대교회는 거룩함과 순수함으로 세워지고 있었으며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공동체였다.
그러나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모습은 아담과 하와가 범한 죄악과 같이 교회의 질서와 순수성을 파괴하고 하나님을 드러내는 일에 걸림돌이 되는 일에 사용된 것이다.
이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죽음의 형벌을 내림으로써 사람이 아닌 오직 하나님이 드러나야 함을 보여주신다.
그래서 11절에서 제시하고 있는 것처럼 그 일을 듣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경외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로써 교회는 사람이 드러나는 곳이 아닌 오직 하나님을 드러내는 사명을 보여주고 있다.
오늘날의 많은 교회가 저지르는 실수 중에 하나가 있다면 사람이 드러나는 교회로 세우려는 시도이다.
담임목사나 장로, 아니면 재력가들이나 연예인들이 교회의 자랑거리로 등장하고 이들에 의해 교회에 사람들을 오게 하는 방법을 시도한다.
사람들의 관심에 호소하며 사람들이 즐거워할 일에 집중하여 투자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전도집회에도 유명 연예인이 들려주는 간증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치한다.
또한 사람들이 준비한 다양한 프로그램과 정성어린 선물과 봉사를 제공하며 사람들을 이끈다.
이렇게 교회에 인도되는 사람들의 특징은 대부분 자신들의 죄를 발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교회가 교회다운 모습을 세우는데 있어서 치명적인 오염을 가져온다.
복음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장사됨과 부활의 메시지이다.
이 복음은 죄인들을 위해 행하신 하나님의 행위이며 하나님께로 나아가게 만드는 길이다.
그런데 스스로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자는 하나님의 구원의 행위인 복음을 받아들일 이유를 발견할 수 없다.
죄인임을 자각하고 죄의 용서가 필요치 않는 사람들에게 복음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죽음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들이 당하게 될 모습을 예표한다.
죄의 결과는 죽음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으면 죽을까 하노라”라고 말했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오해가 가져온 결과가 죽임이었다는 사실을 본문의 사건을 통해 또 다시 보여주고 있다.
교회는 사람이 주인공으로 등장해서는 안 되는 곳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주인이심을 드러내는 공동체이다.
이 순수성을 위해 죄에 대한 분명한 이해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그래서 말씀을 바르게 알고 그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신앙의 모습을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에게 요구하시는 메시지를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나의 모습에서도 얼마나 나를 드러내고 하나님을 감추려고 하는지를 발견한다.
또한 거짓으로 나를 포장하여 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했는지를 발견한다.
나 자신이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경외함 없이 내 방식으로 섬기려 하던 모습을 깨닫는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주의 긍휼을 구하고 하나님 앞에서 정결한 자가 되기를 간구하게 된다.
주여 죄인을 긍휼히 여겨주시고 주님 앞에 진실함과 정직함으로 서는 은혜를 주옵소서.
죄가 드러나고 죄를 용서받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곳이 교회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런 교회를 세워 가시며 하나님이 주인 되심을 드러내신다.
내가 그런 교회가 되고 우리의 교회가 하나님이 드러나시는 교회가 되기를 기도한다.
묵상 기도
주님 오늘도 내 안에 담겨 있는 죄의 모습을 깨닫습니다.
교회의 주인이 하나님이라고 이야기하면서도 내가 드러나려 하고 거짓으로 나를 포장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죽음을 당할 자가 저임을 고백합니다.
주의 보혈로 정결케 하사 거룩한 백성으로 설 수 있게 도와주옵소서.
긍휼히 여겨 주시고 다시 은혜를 베푸시어 기회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죄의 길을 보게 하시고 생명의 길로 돌이킬 수 있는 은혜를 주심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사람이 드러나는 교회가 아닌 오직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드러나는 교회를 세우게 하옵소서.
나의 모습이 바른 교회가 되게 하시고 교회의 성도들이 바른 교회의 모습을 갖게 하옵소서.
오늘도 주님의 은혜 가운데 하나님을 드러내는 백성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함께 하시고 은혜로 진리의 길을 걷게 도와주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