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예매를 하시려면 무료회원 또는 유료회원으로 가입을 하셔야 합니다.
- 우대회원 : 20%할인 - 일반·청소년회원 : 10%할인
- 공연전날까지 10%, 공연당일 공연시작전 50%, 공연시작후 환불안됨
마에스트로 로린 마젤이 이끄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초청공연
20세기 거장 로린 마젤이 이끄는 뉴욕 필과의 그 두 번째 만남!!!
대전출신 신예 피아니스트 조이스 양과
20세기 최고의 지휘자 로린 마젤이 보여줄 환상적인 음악적 교감!!!
대전문화예술의전당 2년 만에 뉴욕 필과 재회하다!!
2004년 10월 18일 사상 처음으로 대전을 찾았던 뉴욕 필의 지휘자 로린 마젤이 뉴욕 필하모닉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오는 11월 17일(금) 대전문화예술의전당 아트홀 무대에 다시 선다.
오케스트라의 ‘영웅’ 뉴욕 필, 베토벤의 ‘영웅’을 노래하다!!
2년 전 객석을 가득 채운 관객들에게 뉴욕 필하모닉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겨주었던 로린 마젤과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이번 연주에서 베토벤의 교향곡 3번 ‘영웅’을 연주함으로써 그들의 웅대하면서도 종횡무진 펼쳐지는 테크닉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또 한번의 진한 감동을 남기게 될 것이다.
대전 출신 피아니스트 조이스 양, 뉴욕 필과 금의환향 ~
이번 뉴욕 필의 협연자로 선정된 피아니스트 조이스 양은 대전 출신의 연주자로 2005년 제12회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2등상과 베스트 실내악 연주상, 베스트 뉴욕 연주자상 등을 수상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미국 최대의 콩쿠르인 반 클라이번 콩쿠르 결선에 진출한 한국인은 조이스 양이 처음으로 당시 최연소 참가자이기도 하였다.
이번 협연 곡인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를 통해 조이스양의 화려한 피아노 연주 솜씨와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기교 넘치는 관현악 연주를 감상해 보자.
Maestro Lorin Maazel
마에스트로 로린마젤 | 음악감독
1930년 파리에서 태어난 로린 마젤은 5세에 처음으로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하여 7세에 지휘를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블라디미르 바칼라이니코프(Vladimir Bakaleinikoff)를 사사하였고, 8세 때 처음으로 대학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며 대중 앞에서 공연하였다. 9세에는 인터라켄 오케스트라(Interlochen Orchestra)를 지휘하여 뉴욕 세계 박람회에서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천재로 주목 받았었고, 헐리우드 보울에서는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Leopold Stokowski)와 프로그램을 나누어 로스엔젤레스 필하모닉(Los Angeles Philharmonic)을 지휘하였다.
그는 11세가 되던 해인 1941년에는 아르투로 토스카니니(Arturo Toscanini)의 초청으로 NBC 심포니(NBC Symphony)를 지휘하기도 하였다. 로린 마젤은 1942년 8월 5일 르비손 스테디움(Lewisohn Stadium)에서 뉴욕 필하모닉을 처음으로 지휘하였다.
이후 1951년 로린 마젤은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이탈리아에 건너가 2년후 이탈리아 칸타니아 무대를 통해 유럽에 데뷔하였다. 그는 1960년에 미국인 최초로 독일 바이로이트에서 공연하며, 1961년에는 보스턴 심포니와 함께 공연하였다. 또한 1963년에는 보스턴 심포니와 함께 잘츠부르크에서 공연하였다. 이후 유럽, 호주, 북남미, 일본, 구소련 등을 비롯한 세계 각지를 무대로 지휘자로서 활동하였다.
지휘자로서 뿐만 아니라 바이올린 솔로이스트로서도 수많은 오케스트라와 협연하였다. 또한 뛰어난 작곡가로서 현재 조지 오웰의 <1984년>에 바탕을 둔 오페라를 작곡 중에 있다.
1980 년대부터는 세계 곳곳에 방송되어온 빈 필하모닉관현악단의 신년음악회 지휘를 맡아왔으며, 전통양식에 구애되지 않고 전체적으로 자유롭고 밝은 현대인다운 지휘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21세기 最高의 Maestro 이다.
Pianist Joyce Yang
조이스 양 | 피아니스트
조이스 양 (한국명: 양희원)은 대전출신의 피아니스트로 네 살 때 피아노를 배우기 위하여 일찍이 미국으로 건너가 줄리아드 예비학교를 다녔다.
13세 때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그린필드 컴피티션에서 우승해 이 오케스트라와 협연했으며 이어 볼티모어 심포니, 녹스빌 심포니, 롱 아일랜드 필하모닉, 라비니아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등 미국 내 여러 교향악단과 협연 무대를 가지면서 기량을 쌓았다.
2004년에는 대전시립교향악단과의 협연으로 한국 데뷔 무대를 가졌으며 지난 2005년 6월에는 세계 5대 콩쿠르 중 하나인 제 12회 반 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또한 대회 역사상 최연소로 은메달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그녀는 또한 은메달과 함께 베스트 실내악 연주상, 베스트 뉴욕 연주상도 함께 수상하였다.
반 클라이번 피아노 콩쿠르는 1958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1회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미국인 피아니스트 반 클라이번이 우승한 것을 축하하기 위해 1962년 창설된 이후 4년에 한 번씩 열리는 권위 있는 피아노 경연대회다.
현재, 조이스 양은 줄리어드 음악학교에서 총장상을 수상하여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수학하고 있다.
A History of New York Philharmonic
뉴욕 필하모닉 교향악단의 역사
뉴욕 필하모닉은 미국 태생의 Ureli Corelli Hill이 이끈 지역 음악인들에 의해 1842년에 설립되어 지금까지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교향악단으로서 빈 ,베를린 필과 함께 세계 3대 교향악단으로 불려지고 있다. 뉴욕 필하모닉은 미국 역사의 70 Copland의 Connotations, 베토벤 교향곡 No. 8과 9의 미국 초연과 브람스 교향곡 No.4의 미국 초연 등이 있다.
이러한 개척적인 전통은 현재까지 이어져 뉴욕 필하모닉은 현대의 주요 작곡가들의 곡을 정기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2002-2003 시즌을 사전 홍보하는 기간에 뉴욕 필하모닉은 2001년 9월 11일을 추모하는 존 아담스(John Adams)의 Transmigration of Souls로 그 시작을 알렸다.
뉴욕 필하모닉을 이끈 작곡가와 지휘자들로는 Theodore Thomas, Tchikovsky, Dvorak, Mahler (지휘자, 1909-11), Klemperer, Richard Strauss, Megelberg (지휘자, 1922-30), Furwangler, Toscanini(지휘자, 1928-36), Stravinsky, Koussevitzky, Copland, Walter (음악 고문, 1947-49), Mitropoulos (지휘자, 1949-58), Szell (지휘자, 1969-70), Tennestedt, 그리고 Leinsdorf와 같은 역사적 인물들이 있다. 이 무수한 세대를 거친 뉴욕 필하모닉의 협연자 리스트에는 역시 훌륭한 기악 연주자, 성악가들이 대거 망라되어 있다.
현재 음악 감독인 로린 마젤은 2002년 9월 뉴욕 필하모닉의 지휘자로 임명되었다. 로린 마젤은 1991년부터 2002년 여름까지 지휘자로 있으며 2002년 6월 1일 명예 지휘자라는 존칭을 부여 받았던 쿠르트 마주어의 뒤를 이어 2002년 9월부터 뉴욕 필하모닉의 음악 감독 겸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이전의 지휘자로는 주빈 메타(Zubin Mehta, 1978-91)와 피에르 불레즈(Pierre Boulez,1971-77)가 있으며, 1958년부터 지휘자로 있었던 (고) 레오나르드 번스타인에게는 1969년 뉴욕 필하모닉의 종신 지휘자라는 평생의 타이틀이 주어졌다.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Leopold Damrosch 지휘 아래 1882년 첫 미국 내 투어를 시작하였다. 1928년 뉴욕의 심포니 소사이어티에 합류한 후로 뉴욕 필하모닉은 Arturo Toscanini 지휘 아래 첫 유럽 투어를 가졌다. 오늘날까지 뉴욕 필은 5개 대륙, 57개 국가의 412개의 도시에서 공연을 가졌다. 1980년부터 Citibank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16회에 이르는 해외 투어를 스폰서 하였으며, 85개 도시와 40개 국가의 공연을 지원하였다. 이것은 유럽(1980, 1985, 1988, 1993, 1995, 1996, 2000), 남아메리카 (1982, 1987, 1992, 1997, 2001), 그리고 아시아 (1984, 1989, 1994, 1998)를 포함하고 있다. 뉴욕 필하모닉은 1980년 이후 미국 투어를 7회에 걸쳐 진행하였으며, 이는 Citibank가 후원한 1999년 북미 투어를 포함하고 있다.
뉴욕 필하모닉은 라디오, 텔레비전, 그리고 다른 방송 매체를 통해서도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으며 동시에 미국 통신 역사의 틀을 잡는데 도움을 주었다. 보다 넓은 관객층에게 다가가겠다는 오케스트라 전통의 공약을 지키기 위하여 필하모닉은 1922년 콘서트를 생방송으로 방송한 첫 오케스트라 가 되었다. 미국 전역을 통해 방송된 1930년의 라디오 방송은 그 중 하나이다. 1966년까지 생방송 을 진행한 뉴욕 필하모닉은 테이프의 형태로 라디오 방송이 바뀌게 되면서 생방송을 멈추게 되었다.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1977년 다시 텔레비전 생방송의 전파를 타고 국가적인 규모의 방송을 정기적으로 선보이는 미국 최초의 교향악단이 되었다.
1917년 첫 음반을 녹음한 후로 뉴욕 필하모닉은 대략 2000여 장의 앨범을 내놓게 되었다. 현재 500장 이상의 음반이 입수 가능하며, 뉴욕 필하모닉(New York Philharmonic)의 음반은 주요 음반 라벨사인 Deutsche Grammophon, London, New World, RCA, Sony Classical, 그리고 Teldec에서 공급하고 있다. Teldec, 쿠르트 마주어(Kurt Masur)와 오케스트라의 대규모 협조로 제작된 두 개의 디스크는 "올해의 음반" 상을 스테레오 리뷰(Stereo Review)로부터 수여 받았다.
라벨인 New York Philharmonic Special Editions를 만들었고 오케스트라의 기록 중 역사적인 라디오 방송(1923-87)을 모은 10장의 음반을 발매하였다. 이후로는 The Mahler Broadcasts 1948-1982가 뒤를 이었으며 이것은 12장의 CD 모음집으로써 라디오 생방송을 통해 이루어진 말러(Mahler)의 9개 교향곡 전곡집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미국 음악과 오케스트라의 관계를 탐험할 수 있는 10장의 음반도 있다. 2000년에는 레너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이 이끄는 필하모닉이 연주한 Bernstein LIVE와 스테판 손하임(Stephen Sondheim)의 Sweeny Todd를 10장의 CD인 Live at New York Philharmonic을 선보였다. 가장 최근 발매된 특별 판은 2001년 10월에 출시된 쿠르트 마주어 지휘의 10장의 CD 모음집이다.
텔레비전과 인터넷의 탄생은 뉴욕 필하모닉의 관객층을 더욱 넓혀 주었다. 오케스트라는 20년이 넘도록 젊은 연주자들의 콘서트를 정기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1976년부터 PBS에서는 생방송으로 뉴욕 필하모닉의 링컨 센터(Lincoln Center)에서의 연주가 자주 방영되었다.
1996년 11월 14일에 는 번스타인의 1943년 지휘 데뷔 공연이 인터넷 배포를 위하여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통해 CD로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로써 뉴욕 필하모닉은 교향악단으로서 새로운 기술적 시도의 제작과 발매를 처음으로 시행한 오케스트라가 되었다.
1965년 뉴욕 필하모닉은 시리즈로 공원에서의 무료 콘서트를 개최하였다. 이러한 취지의 공연이 개최된 이후로 1,300만 명이 넘는 인구가 공연을 관람하게 되었다.1986년 7월 5일 뉴욕 필하모닉 자유 주말 콘서트는 클래식 음악 콘서트 사상 최대 관객인 약 80만의 청중을 끌어들이는 기록을 낳았다. 2002년 2월 7일 뉴욕 필하모닉은 어느 세계적 오케스트라도 따를 수 없는 획기적인 13,500번째의 콘서트를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2003년 2월, 뉴욕 필하모닉은 교향악단의 음악 산 업과 미국 문화에 대한 높은 기여도를 인정받아 레코딩 아카데미(The Recording Academy)로부터 Trustees상을 수상하였다. 뉴욕 필하모닉은 45회 그래미 어워드(Grammy Awards)에서 교향악단으로서는 처음으로 공연을 하였는데, 이것은 뉴욕 메디슨 스퀘어(Madison Square) 정원의 텔레비전을 통해 전 세계로 방영되기도 하였다.
뉴욕 필하모닉은 70년 이상 머무른 카네기 홀(Carnegie Hall)에서 링컨 센터(Lincoln Center)로 그 상주 건물을 옮기게 되었다. 건물은 훗날 1976년 공연장의 재건축을 위해 가장 중요한 기여를 한 사람에 대한 보답과 감사의 표시로 애버리 피셔 홀(Avery Fisher Hall)이라고 개명하였다. 뉴욕 필하모닉은 현재 음악 감독인 마에스트로 로린 마젤의 지휘 아래 있다.
S. Rachmaninoff
라흐마니노프
Rhapsody on a Theme of Paganini
파가니니 주제에 의한 랩소디 (협연/조이스 양)
이 곡은 파가니니의 24개의 카프릿치오 테마를 가지고 변주곡으로 쓰여진 곡으로서, 파가니니의 카프릿치오는 리스트, 브람스 등 다른 작곡가에 의해서도 변주곡으로 다뤄진 곡이다.
라흐마니노프는 이 테마로 오케스트라를 동반한 피아노 음악이라는 이채로운 작품을 창조해냈다.
모두 24개의 변주곡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에 앞서 짧은 서주와 마지막 부분에 코다를 가지고 있다.
라흐마니노프는 다른 작곡가들에 비해서 작품의 수효가 그리 많은 편은 아니지만, 피아노 부문에서만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그 어떤 작곡가에게도 뒤지지 않는 인물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이 작품은 화려함의 극치를 들려주는 오케스트라 사운드와 피아노의 눈부신 기교와 라프소딕한 터치는 가히 일품이다. 그 자신이 뛰어난 피아니스트였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확인되는 대목이다. 파가니니의 '무반주 카프리스'는 모두 24곡으로 구성된 매우 테크니컬한 작품인데 그 가운데 제24번 a단조를 주제로 삼고 여기에 모두 24곡의 변주곡을 붙인 작품이 라흐마니노프의 이 라프소디이다.
1934년 7월 3일에 착수되어 8월 24일에 완성되었고, 같은 해 11월 7일, 미국 발티모어에서 작곡자 자신이 피아노 독주를 하고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가 지휘하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가 협연하는 가운데 초연 되었다.
이 작품이 특별한 주목을 받는 이유는, 비록 변주곡이라는 형식을 취하긴 했지만 그 틀에 얽메이지 않고 자유롭게 작곡자의 감성과 악기의 기교적 측면을 적절하게 조화시켜서 결과적으로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매우 환상적인 것으로 이끌어 갔다는데 있다.
주제는 일반적인 관례를 깨트리고 제1변주 뒤에 선을 보이고 있는 것도 특이한 아이디어로 간주되고 있는데, 24개의 변주 가운데서도 유독 제18변주는 그 짙은 로맨티시즘 때문에 만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 intermission -
L.v. Beethoven
베토벤
Symphony No.3 in E-flat Major, op.55, Sinfonia Eroica
교향곡 3번 “영웅”
I. Allegro con brio
II. Marcia funebre - Adagio assai
III. Scherzo - Allegro vivace
IV. Finale - Allegro molto
Symphony No. 3 in E-flat Major, op.55, Sinfonia Eroica
- L.V.Beethoven (1770.12.16~1827.3.26)
베토벤의 교향곡 3번 ‘영웅’은 1802년 여름(혹은 가을)즈음 첫 스케치가 이루어졌고 나머지 대부분은 1803년에 작곡되었으며, 1804년에 최종 완성되었다. 이 작품은 음악애호가인 귀족 Franz Joseph von Lobkovwiz공에게 헌정되었다.
사적인 자리에서의 초연은 1804년 비엔나 Lobkovwiz공의 저택에서 이루어졌으며, 공식석상에서의 초연은 1805년 4월 7일 베토벤의 지휘에 의해 Theatre an der Wein에서 이루어 졌다.
인본주의의 열렬한 지지자였던 베토벤은 당시 프랑스 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끈 시대적 영웅인 나폴레옹에게 헌정하는 곡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신틀러의 <베토벤 전>에 의하면 초대 집정관이던 나폴레옹에게 바친 이 곡의 사본을 프랑스 대사관을 통하여 파리로 부치려 했을 때, 나폴레옹이 황제가 되었다는 보도를 듣고는 그 악보의 표지를 찢어 땅에 팽개쳤다고 기록되어 있다. 후에 베토벤은 ‘Sinfonia Eroica’라고 이태리어로 쓰고, 그 밑에 ‘한 위인의 추상을 위해’ 라 덧붙여 로브코비츠 공에 바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