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등불 하나 켜 본다

[고제홍]

 올 1월 1일 와룡산 정상에서 불끈 솟구치는 붉은 해를 마주보며 내 딴에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올해부터는 와룡산을 오르자!’

 떡국을 한 그릇 얻어먹고 내려오는데 먼저 간 군 동기 대구사범 친구가 떠올랐다. 학교는 달랐지만 말이 통하던 친구였다. 그는 시인이었다. 젊은 날 어느 해 연초였다. 구룡포에 근무하던 나를 찾아와서는 강원도에서 구룡포까지 내려오면서 ‘일출’을 보고 쓴 시라고 여러 편을 불쑥 내밀며 말했다.

 “하나 골라 주라. 넌 바닷가에 살자나….”

 그 시의 주인공인 해들은 모두 과연 힘차게 불끈 솟아오르고 있었다.

 “니 수평선에서 해가 정말 불끈 솟는 걸 봤나?"

 “그럼 보다마다. 불덩어리 든데…?”

 “뻥까지 마라! 난 여기서 2년을 살며 일출을 유심히 살폈지만 한 번도 못 봤다.”

 그랬다. 오랜 세월 배를 탄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달력에 나오듯 수평선에서 불끈 솟는 해는 본 적이 없다, 했다.

 “어머, 어머! 그러고 보이 나도 한 번도 본 적 없네…?”

 자리를 같이했던 기생들도 눈동자가 커졌다. 내가 보건데 바다에서의 일출은 연중 끼는 해무로 거의 볼 수 없었다. 해가 뜰 때쯤이면 조용하던 수평선이 붉게 물들며 바다가 일렁인다. 그렇게 바다가 요동을 치다 해는 어느새 해무를 뚫고 수평선과 뚝 떨어져 이미 동쪽 하늘에 저 만치 솟아 있었다. 그러면 일렁이던 바다는 다시 잔잔해지고.

 “해는 아들이고 바다는 엄마 인가봐.” 한 아가씨가 말했고 옆의 아가씨가 흡사 아이를 낳아본 경험이라도 있는 양 받았다.

 “바다가 요동치는 것은 산고인 거야”

그 해, 그는, 기생들의 사유까지도 믹스한 시로 등단하였다…?

 각설하고, 주먹을 불끈 쥔 탓인가 오늘까지 수요일과 일요일을 뺀 주 5일은 빠짐없이 와룡산을 올랐다. 산 위에서 근력운동까지 하다보면 3시간 걸리는 등정이 좀 무리라는 생각이 더러 들 때도 있지만 그래도 오르고 나면 뭔가 성취감에 또 오른다. 젊은 날부터 나이 들어 쓸려고 무릎을 어깨에 메고 다니면서 아낀 탓인지 관절만은 고분고분하다. 오장육부야 언제 존재감을 드러낼지 모르지만…

 반석(이영석)은 태국을 휘젓고 누비는데 나는 벼락처럼 온 봄 산을 기어오르고 있다. 반석은 악어를 갖고 놀았지만 나는 가는 곳마다 “나 제법 예쁘니 생각 있으면 찾아오라”면서 찔끔거리며 코를 처박는 반려견을 앞세워 오늘도 새로 난 둘레길을 걸었다. 폭이 1.5M 정도 되는 둘레길 주위에는 해국과 마찬가지로 크리스마스 때 까지도 꽃을 볼 수 있는 털머위를 빼곡하게 심어놓았다. 추위에 강인한 야생화다. 그 반대편에는 초가을에 붉은 꽃이 먼저 피고, 꽃이 진 뒤 잎이 나오는 꽃무릇을 심었다. 꽃과 잎이 서로 만날 수 없기에 꽃말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란다. 그래서 상사화라고 부르기도 하고 이별초라 부르기도 한다. 그리고 구간마다 다른 종을 심었다. 5~6년에 한 번씩 필 정도로 꽃을 보기가 힘든 산죽, 약재로 쓰이는 음지식물 맥문동, 그리고 두릅나무과 덩굴식물인 아이비를 심어놓았다.

 내가 보기에도 둘레길을 설계한 사람이 정수리에 서릿발을 세우고 단단히 작정을 한 모양이었다. 둘레길 주위의 돌축대와 길을 마감한 통나무와 디딤돌, 그리고 계곡에 다리까지 놓아 멋을 부린 것이 범상치 않다. 이미 벌써 등산객의 발걸음이 부쩍 잦아졌는데, 앞으로 등상객의 발길로 다져지고 윤이 나면 어디 내놓아도 둘레길로는 손색이 없을 것 같다. 둘레길 주위에 심은 식물들도 가뭄에 내 속을 태웠는데 요 며칠 전에 온 비로 모두 착근을 한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둘레길이 끝나는 곳에 꾀 넓은 공터가 있다. 누가 만들었는지 거기에 등산객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엉덩이 붙일 곳을 통나무나 바윗돌로 얼기설기 만들어 두었다. 나도 거기서 꼭 숨을 고른다. 쉬면서 주머니에 가져온 아몬드를 꺼내어 이빨로 한두 번 부셔 손바닥에 올려놓고 휘파람을 휘익! 불면 참새의 3/1정도 크기의 산새(주위에 물어 보아도 이름을 아는 사람이 없다)가 날아와 처음엔 언제나 눈치를 보며 쭈볏쭈볏 하다 맛있게 쪼아 먹는다. 그러면 손바닥이 간질간질하다. 나는 그 애들을 콩새라 부르는데 이제는 산에서 만나는 좋은 친구다.

 지난달에는 ‘이제 시간은 많은데 놀아줄 친구가 없다’고 투정을 부렸다. 사실 나에겐 같은 기억의 다락방을 공유하면서 크루아상처럼 달콤하게 핍진했던 친구들이 하나둘 낙엽 떨어지듯 내 곁을 일찍 떠나갔다. 회자정리라 했던가. 박목월의‘이별가’처럼 그들과의‘인연은 갈밭을 건너는 바람’이었던가보다. 물론 내 부덕의 탓도 있지만.

 나는 친구들이 먼저 가고 난 다음 외롭고 외로워 고독을 오도독 씹었지만 와룡산에 오르고부터 마음을 잡았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했던가.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는 누구도 혼자가 아닌가. 버지니아 울프도 외로워도 자기만의 방을 가지라고 말을 걸어왔고,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라고 정호승 시인이 ‘수선화’에서 속삭이는가하면, 산에서 만나는 고독과 악수하며 그대로 산이 된들 또 어떠리, 조용필이 ‘킬리만자로의 표범’에서 노래하기도 했다. 괴테는 ‘젊은이는 사람들 속에서 강해지고 노인은 고독 속에서 강해진다 했고,  '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자기 자신을 잘 데리고 노는 사람이 성숙한 사람이라 선언했지 않는가. “괜찮아! 나에겐 내가 있잖아?”톤 텔레헨의 동화‘고슴도치의 소원’에서 고슴도치도 속삭였다.

 이제야 철이 드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언제나 우리는 혼자일 수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연은 늘 혼자 아닌가. 나무도 혼자고 바람도 혼자고, 달도해도 혼자다. 자연과 놀며 죽는 날까지 이 걸음으로 걸어가자 다짐하니 ‘나이 드는 것은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 숨은 좀 가빠지지만 경관은 훨씬 더 좋아진다.’ 는 잉그리드 버그만(미국 배우)의 말에 마음이 그리 편할 수 없었다. 산을 오르며 그렇게 파편화된 마음을 추슬렀다.

 자연 속에 묻혀 걷다보면 때론 오만생각이 교차한다. 때론 지난날을 돌아보면 눈물 나게 아름답기도 하다.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내 인생도 쓰면 20부작 드라마는 될 거다.

 이제는 어떤 날이면 둘레길을 휘적휘적 걸으며 나태주의 시, 저녁 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이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가 있다는 것//으로 맺는‘행복’을 읊조리기도 한다. 나에겐 둘레길에 어울리는 혼자서 부를 나만의 노래도 있다. 나와 이름이 같은 박제홍의‘물방아 도는 내력’을 흥얼거린다. 산에서 부르는 노래는 건강에도 그리 좋다나.

 오늘이 개구리 소년이 사라진지 32년이 되는가보다. 내려 오다보니 산기슭에 ‘개구리소년32주년추도식’이란 현수막을 걸고 사람들이 슬픔을 나누고 있었다. 나도 지나며 진심으로 슬픔을 나누고 내려왔다. 세월호나 이태원 사고로 유족들이 해도 해도 너무한다 싶지만 나는 그래도 국가가 무한 책임을 져야한다고 생각한다.

[이영석]

외국에 나가 보면 우리나라의 자연 환경이
얼마나 아름답고 살기 좋은 지를 실감하네

도시 근교에는 산이 있어서 등산하기 좋고
둘레 길도 잘 만들어져 건강 관리에 편하다.

자연과 놀며 세상을 떠나는 날 까지 걷는 것 . .
그것이 인생 최고의 축복을 누리는 길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