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전례
세례자 요한은 사제였던 즈카르야와 성모님의 친척인 엘리사벳 사이에서 태어났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마태 11,11). 예수님의 이 말씀처럼 세례자 요한은 주님에 앞서서 그분의 길을 닦은, 구약과 신약을 이어 주는 위대한 예언자다. 그는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 3,30)라고 고백하는 겸손한 사람이었다. 세례자 요한은 헤로데 임금의 비윤리적 생활을 책망하다가 헤로데 아내의 간계로 순교하였다. 그는 ‘말씀’이신 주님의 길을 준비한 ‘광야의 소리’였다.
본기도
하느님,
복된 세례자 요한을 보내시어
하느님 백성이 주님이신 그리스도를 맞이하도록 준비하게 하셨으니
저희에게 영신의 기쁨을 주시고
모든 신자의 마음을 구원과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소서.
제1독서
<나는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49,1-6
1 섬들아, 내 말을 들어라.
먼 곳에 사는 민족들아, 귀를 기울여라.
주님께서 나를 모태에서부터 부르시고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내 이름을 지어 주셨다.
2 그분께서 내 입을 날카로운 칼처럼 만드시고
당신의 손 그늘에 나를 숨겨 주셨다.
나를 날카로운 화살처럼 만드시어
당신의 화살 통 속에 감추셨다.
3 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의 종이다.
이스라엘아, 너에게서 내 영광이 드러나리라.”
4 그러나 나는 말하였다. “나는 쓸데없이 고생만 하였다.
허무하고 허망한 것에 내 힘을 다 써 버렸다.
그러나 내 권리는 나의 주님께 있고
내 보상은 나의 하느님께 있다.”
5 이제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분께서는 야곱을 당신께 돌아오게 하시고
이스라엘이 당신께 모여들게 하시려고
나를 모태에서부터 당신 종으로 빚어 만드셨다.
나는 주님의 눈에 소중하게 여겨졌고
나의 하느님께서 나의 힘이 되어 주셨다.
6 그분께서 말씀하신다.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다시 일으키고
이스라엘의 생존자들을 돌아오게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나의 구원이 땅끝까지 다다르도록
나는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
복음
<그의 이름은 요한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57-66.80
57 엘리사벳은 해산달이 차서 아들을 낳았다.
58 이웃과 친척들은 주님께서 엘리사벳에게 큰 자비를 베푸셨다는 것을 듣고,
그와 함께 기뻐하였다.
59 여드레째 되는 날, 그들은 아기의 할례식에 갔다가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기를 즈카르야라고 부르려 하였다.
60 그러나 아기 어머니는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61 그들은 “당신의 친척 가운데에는 그런 이름을 가진 이가 없습니다.” 하며,
62 그 아버지에게 아기의 이름을 무엇이라 하겠느냐고 손짓으로 물었다.
63 즈카르야는 글 쓰는 판을 달라고 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
그러자 모두 놀라워하였다.
64 그때에 즈카르야는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65 그리하여 이웃이 모두 두려움에 휩싸였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유다의 온 산악 지방에서 화제가 되었다.
66 소문을 들은 이들은 모두 그것을 마음에 새기며,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하고 말하였다.
정녕 주님의 손길이 그를 보살피고 계셨던 것이다.
80 아기는 자라면서 정신도 굳세어졌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날 때까지 광야에서 살았다.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이 아이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오늘은 성 요한 세례자 탄생 축일입니다. 성인 중에 어쩌면 유일하게 탄생일을 축일로 지내는 분입니다. 이분의 탄생은 그 자체부터 기적이었습니다. 천사가 일러준 대로 ‘요한’이란 이름을 짓게 하자 묶여있던 즈카르야의 혀가 풀렸기 때문입니다. 이 놀라운 일에 사람들은 모두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라며 신기해 하였습니다. 아버지는 분명 주님을 찬미 하며 주님의 길을 닦는 예언자가 될 것임을 노래하였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주님을 드러내게 될 것인지는 신비에 싸여 있었습니다.
우리는 자녀를 키울 때 가끔 부모의 뜻대로 자녀가 따라주지 않는다고 실망할 때가 있습니다. 영화 ‘블랙스완’(2010)은 어머니의 기대가 딸의 인생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잘 보여줍니다. 어머니는 발레의 여왕이 될 수 있었음에도 아기를 갖게 되어 꿈을 접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딸을 통해 자신의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려고 합니다. 이 과정에서 니나는 어머니의 인생을 망친 딸로서 죄책감에 시달리며 어머니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최고의 자리에 오릅니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 자신의 자리를 빼앗으려는 환상에 시달리며 결국 그 대상을 죽이게 되는데 그것이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엄마의 꿈은 이뤄주었지만, 자신은 자기를 죽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일이 신앙이 없는 사람들 안에서 자주 일어납니다. 자녀를 사랑한다고는 하지만 결국 자녀를 통해 자신의 꿈을 이루려는 마음 때문에 한 인생이 망가집니다. 인생을 빼앗는 것만큼 큰 도둑질이 있을 수 있을까요?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고 오늘 세례자 요한의 탄생은 우리에게 커다란 울림을 줍니다.
세례자 요한이 탄생했을 때 부모는 세례자 요한의 권리를 포기하였습니다. 이것이 이름을 주님 뜻대로 정해주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세례 때 경험합니다. 세례 때 세례명은 사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지어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세례 받은 이는 부모의 것이 아닌 하느님의 것입니다. 부모는 그저 “이 아이가 장차 무엇이 될 것인가?”를 지켜보기만 하면 됩니다.
저도 책을 몇 권 써 보았지만, 책을 쓰는 것도 아이를 키우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겠습니다. 책은 나의 피를 쏟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그 책을 내가 쓰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 책이 자라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것이라 생각하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저는 책 네 권을 교구 출판사에서 출판하였습니다. 사실 제가 쓴 내용을 출판사들이 이해하고 받아들여 주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출판한 책들은 또한 내가 마음대로 절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저 자신이 쓴 책을 몇 년 지나서 보고 창피한 것이 너무 많아서 다 절판 시켰습니다.
지금도 책을 쓰고 있습니다. 기도에 관한 책인데 벌써 다 써 놓고도 몇 년째 수정만 하고 있습니다. 여기저기 출판사에 투고해보고는 있지만, 출판을 해 주겠다는 곳은 아직 없습니다. 하지만 실망하지 않습니다. 저의 것이라는 생각을 어느 정도는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때마다 조금씩 수정할 뿐입니다. 그리고 저 자신에게 묻습니다.
“도대체 어떤 책이 되려고 이렇게 뜸을 들이는 것일까?”
분명 지금 쓰는 책이 어느 곳에서 출판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 책은 주님을 알리는데, 이전까지 제가 쓴 책들보다 훨씬 큰 영향력을 미칠 것입니다. 김승호 회장은 어렸을 때 자신이 수천 명 가운데서 마이크를 들고 연설하는 꿈을 꾸었다고 합니다. 일곱 번의 지독한 실패에도 ‘이번은 아니구나!’라는 마음으로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5천억이 넘는 재산을 가진 부자가 되었습니다. 더군다나 단순히 어렸을 때 그렸던 자기 모습이 실현된 것을 보고는 놀랍니다.
우리 자녀들도 이렇게 대해야 합니다.
“너는 분명히 어떤 식으로든 그리스도를 전하고 세상을 이롭게 하는 사람이 될 거야. 어떤 식으로 될지는 나는 모르겠다. 나는 그저 너를 응원하며 지켜볼거란다.”
오늘 복음에서 “아기는 자라면서 정신도 굳세어졌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날 때까지 광야에서 살았다”라고 나오고 있습니다. 이는 즈카르야나 엘리사벳이 상상하지 못했던 삶입니다. 그저 그들은 하느님께서 자기 아들을 어떻게 이끄시는지 지켜볼 뿐이었습니다. 그러니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라는 생각은 하느님께 자녀를 봉헌한 부모가 자녀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https://youtu.be/nWwuU41Wo4E
유튜브 묵상 동영상
어느 형제님께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좋은 아이템이었고, 분명히 성공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자기의 전 재산을 투자했습니다. 그런데 자기 확신과 달리 사업은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실패를 경험 삼아 방향을 바꿔서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성공한 그는 과거의 실패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지우고 싶은 과거라면서 그때의 일에 대해 후회하고 있을까요? 아닙니다. 그는 그 실패에 오히려 감사했습니다. 그 실패로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면서 말이지요.
종종 과거의 일 때문에 지금 힘들다는 분을 만납니다. 과거 있었던 부모의 학대가 떠올려서 괴롭다고 말하고, 친구의 배신으로 지금 자신이 이렇다면서 도저히 못 살겠다고 하십니다. 과거의 실패라고 할 수 있는 그 일이 지우고 싶은 시간처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쩌면 지금을 잘 살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을 잘 사는 사람은 과거 탓, 남 탓을 하지 않습니다. 과거의 일과 사람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줬다면서 감사해합니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 각자는 부정적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들 수도 있고 또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결정을 할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수렁에 빠졌어도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는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과거의 일과 사람에 집착합니까? 지금 부정적 감정 안에 빠져들겠다고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고, 부정적 감정 속에 빠져나가지 않겠다는 결정입니다.
자신의 힘을 믿어야 합니다. 불신이 생긴다면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서 함께하신다는 믿음에 온 힘을 쏟아부어야 합니다. 부정적 마음보다 긍정적인 마음을, 미움과 질투보다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갖게 되면서 하느님의 뜻에 함께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을 기념합니다. 요한 세례자의 아버지는 천사가 전해준 잉태 소식을 믿지 않았지요. 그 결과 말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요한 세례자의 명명식에서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면서, 하느님의 뜻을 따랐기에 혀가 풀려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분명 부정적인 감정이 가득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불평불만보다 하느님께서 최고의 것을 주신다는 믿음으로 그 뜻을 따랐기에 다시 입으로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요한 세례자은 광야에서 지내며 철저히 하느님의 뜻을 따랐습니다. 특히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 3,30)면서 겸손의 마음으로 주님의 길을 준비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불평불만을 하지 않습니다. 그 결과 위대한 예언자로 하느님 나라의 영광을 얻게 됩니다.
과거 탓, 남 탓하는 모습은 모두 버려야 합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느님의 뜻을 잘 따르고 있는가입니다.
내가 갈 길은 내가 찾아 얻어야 한다(나혜석).
요한 세례자의 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