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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에 원컨대 삼념에 들지 않고 수행의 본질로 돌아가게 하소서라고 남겨 더 많은 인연 있는 이들을 위해 새로운 등불 하나를 밝혀주시길 바랍니다. 양나라 무죄 시절 주머니에 불법은 그게 달에 이름난 스님들이 곳곳에 넘쳐났고 사찰의 향부는 꺼질 날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태평성대 속에서 불교는 이미 조급함과 공리를 좇는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습니다. 그 때 천축국에서 온 한 고승이 맨발로 지팡이 하나에 의지한 채 강을 건너왔습니다. 그는 계율을 설하지도 공덕을 논하지도 않았습니다. 오직 마음을 곧바로 가리켜 본성을 보고 부처를 이룬다는 즉시 인심 변성 성분 즉지 인심 견성 성불 한마디로 불교계 전체를 뒤흔들었습니다. 이분이 바로 선종의 초조 달마데사이십니다. 그는 큰 사찰에 머물지도 조정의 예우를 받지도 않고 숭산 소림의 한 동굴에서 9년 동안 몇몇 수행을 했습니다. 9년간 말없이 9년간 움직임 없이 오직 마음이라는 한 글자를 깨치기 위함이었습니다. 경덕천등록에 따르면 달마대사가 전한 것은 평범한 불법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엄격한 가르침이나 경전에 의지하지 않고 제자 스스로가 자신의 본마음을 비추어 보도록 했습니다. 그의 가르침 중 가장 중요했던 법문은 경전에 기록되지 않고 오직 한 사람에게 비밀리에 전해졌습니다. 이 비밀스러운 가르침은 훗날 전법 정종기의 일부 조각에서 발견되어 삼염경어 삼염경업 나 불리게 되었습니다. 달마대산은 말했습니다. 탐진치는 문박의 독과 같아 알아차리기 쉬우니 끊어내기 어렵지 않다. 허나 돌을 닦는 사람은 항상 3 가지 생각 삼념의 중란이 이는 살피기도 어렵고 벗어나기도 어렵다. 이후로 삼염의 가르침은 후대에 고승들 사이에서 비밀리에 전해졌으나 책에는 거의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그 내용이 너무나 날카로워. 자칫 평범한 사람들이 생각을 끌어내는 것에만 집착하는 잘못된 견해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더 깊은 이유는 2 3 가지 생각이 결코 악한 생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생각들은 오히려 수행이 가장 잘 되고 있을 때 나타나 정신과 겸손으로 위장합니다. 빛나는 가사를 걸쳤으나 실은 마음 가장 깊은 곳에 나에 대한 집착 즉 아직, 아직, 씨앗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달마대사가 거듭 강조했던 수행의 함정입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거친 번뇌는 사나운 호랑이와 같아 눈에 보이니 피하기 쉽다. 허나 미세한 생각은 풀숲에 숨은 뱀과 같아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만약 탐진치가 마음의 호수를 어지럽히는 거친 비바람이라면 2세 가지 생각은 수면 아래에서 조용히 그러나 끈질기게 배를 끌어당기는 거대한 물살과 같습니다. 소리도 없고 모습도 없지만 단숨에 배를 침몰시킬 수 있는 힘을 가졌습니다. 불교 심리학에는 육근 칠식, 팔식이라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그중 일곱 번째 마음인 말라식은 나라는 생각에 대한 집착이 가장 강하여 수행자의 신분 성취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규정에 끊임없이 매달립니다. 이 3 가지 생각은 바로 이 말라식이 키워내는 3개의 독성 강물과 같습니다. 그것들은 밖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자라나며 탐욕으로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수행자 스스로가 청정하다고 믿는 그 마음에서 자라납니다. 많은 수행자들이 어느 정도 경치에 이르러 욕심을 끊고 집착을 벌인 뒤에 오히려 더 깊은 법에 대한 집착 즉 법칙 법칙에 빠지게 됩니다. 2 3 가지 생각이야말로 법집에 가장 무서운 모습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탐진치를 세 가지 독이라 하여 수행길에서 가장 깨뜨리기 어려운 장애물로 합니다. 그러나 달마대사는 수행의 진짜 위기는 이 삼독처럼 대놓고 달려드는 적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소리 없이 스며드는 세 가지 생각의 자라남에 있다고 했습니다. 이 세 가지 생각은 산처럼 버티고 있지도 물처럼 흘러가지도 않으면서 당신이 깨달음의 가장 가까워졌다고 느끼는 바로 그 순간 단칼에 목을 베어버립니다. 그것들은 가장 밝은 곳에 숨어 있습니다. 당신의 가장 굳건한 믿음. 가장 경건한 노력 가장 장엄한 바른 생각 속에서 조용히 싹을 틔웁니다. 양나라 무제 시절 중원에 불법이 한창일 때 금능성박 정산사라는 절의 해성이라는 젊은 스님이 있었습니다. 혜성은 강남의 명문가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백권의 경전을 줄줄 외고 그 뜻을 맡김없이 풀었습니다. 본래 벼슬길에 나아가 높은 자리에 오를 수도 있었지만 그는 19의 나이에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었습니다. 몸뚱이는 헛깨비어 부귀영화는 꿈과 같거늘 어찌하여 스스로 짐을 지고 괴로워하는가? 이것이 그의 출가 이유이자 수년간 이어진 수행의 시작점이었습니다. 혜성은 절에 들어온 지 2년 만에 이미 여러 경전을 통달했고 선정해 드는 경지 또한 또래들을 훌쩍 뛰어넘었습니다. 저의 노스님들은 모두 이 아이는 금기가 남달라.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인체라고 칭찬했습니다. 그러나 재능이 뛰어날수록 마음속에는 깊은 그림자가 숨어 있는 법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은밀한 세 가지 생각의 길로 들어서고 있었습니다. 그가 구조계를 받기 바로 전날 밤 모든 것이 조용히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리 휘영청 밝은 밤 장경각 안에서 혜성은 등불 아래 홀로 앉아 금강경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응당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는 구절이 마음속에서 울려 퍼질 때였습니다. 그는 문득 장경각 밖에서 들려오는 나직한 을조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스님들이 평소에 외는 연불 가락도 아니었고 이국적인 리듬과 온유를 띠고 있었습니다. 그는 경전을 내려놓고 숨을 죽인 채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 소리는 먼 듯 가까운 듯 있는 듯 없는 듯 했으며 그 내용은 들어본 적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 안에는 고대 산스크리트와 중원에 말이 섞여 있어. 마치 바람 속에 피리 소리처럼 영혼을 꿰뚫는 듯했습니다. 그가 밖으로 나가보니 사방은 고요하고 아무도 없었습니다. 달빛만이 옥돌 계단 위로 물처럼 쏟아져 내릴 뿐 불탑 아래 어렴풋이 한 인형이 서 있었습니다. 그 인형은 키가 크고 마른 체구, 달빛을 등진 채 말없이 서 있어 마치 천지간에 한 조각상 같았습니다. 거기 누구십니까? 해성이 묻자. 그 인형이 천천히 몸을 돌렸습니다. 달빛 아래 드러난 얼굴은 늙고 깊었으며 수염과 머리카락은 눈처럼 희고. 두 눈은 밤하늘의 심연과도 같았습니다. 낡은 승복을 걸쳤으나 옷자락은 바람에 살짝 날릴 뿐 티끌 하나 없었습니다. 깊은 밤에 잠 못 이루고 젊은 스님은 무슨 일인가? 노승의 목소리는 낮고 묵직했으며 천축국의 억양이 섞여 있었지만 귀에 또렷하게 들렸습니다. 해성은 황급히 합장하고 예를 올렸습니다. 제자 해석입니다. 이상한 소리를 듣고 나왔사온대. 감히 대사의 본명을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노승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습니다. 늙은 나는 사이를 떠도는 구름 같은 존재다. 이름은 말할 것이 못되네. 오히려 잘해야말로 좋은 뿌리를 가졌으나 이미 그릇된 길에 들어섰구나. 혜성은 깜짝 놀라 자세히 물으려 했지만 노승은 몸을 돌려 떠나버렸고 몇 걸음 만에 밤안계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다음 날 아침 혜성은 밤에 노승을 만난 일을 스승인 원명선사에게 아래였습니다. 원명선사는 이야기를 듣고는 안색이 변하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정산사에 바람처럼 드나들며 모습을 감출 수 있는 분은 오직 한 분뿐이다. 달마데 사신이라 혜성은 놀라 말했습니다. 달마대사님이라니요. 이미 오래전에 열반에 드신 것으로 아옵니다. 생사를 초월하지 못한 자에게 어찌오고 감이 있겠느냐. 원명선사는 가볍게 탄식하며 말했습니다. 너에게 큰 인연이 닿았구나. 그날 혜성은 즉시 길을 떠나 3일 밤낮을 걸어 충전 소림에 이르렀습니다. 산문에서 하룻밤을 묵고 몇몇 동굴을 찾아갔습니다. 소림사 뒷산 면벽동굴 앞에는 서늘한 산바람이 불고 소나무는 파도처럼 울었습니다. 혜성이 동굴 입구에 서자 마음이 만감에 젖었습니다. 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동굴 안에서 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왔구나. 바로 그날 밤에 만났던 노승의 목소리였습니다. 해성은 급히 동굴로 들어가 무릎을 꿇고 공경에 절을 올렸습니다. 제자애성, 조사님께서 말씀하신 수행에 함정에 대해 가르침을 청하러 왔습니다. 달맞에 산은 눈을 뜨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듣고 싶다면 먼저 행하라. 그는 손을 들어 동굴 밖의 바위를 가리켰습니다. 저기서 하루 동안 조용히 앉아 있어라. 한 생각도 일으키지 말고 한 법도 구하지 말며 과거를 돌아보*도 미래를 바라지도 말라. 만약 내가 본래 마음을 지킬 수 있다면 그 함정의 모습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혜성은 말없이 바위 위에 가부절을 틀고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었습니다. 아침 햇살이 비추고 사는 고요했습니다. 처음에는 평온함을 지키며 마음이 고요한 물과 같았지만 시간이 머물처럼 서서히 번져가면서 정오가 지나자 그의 마음 호수에 파문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지금 달마대사께 직접 가르침을 받고 있구나. 예로부터 법을 전해 받은 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내게 이런 행운이 오다니? 이번에 깨달음을 얻으면 분명 총파의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후세에까지 전해질 것이다. 이런 생각들은 처음에는 미세한 먼지처럼 가벼웠지만 이내 알 수 없는 기쁨과 자만심으로 뭉쳐졌습니다. 그는 억지로 생각을 누르려 했지만 누를수록 마음의 불길은 더욱 거세졌습니다. 하모니 질 무렵 그는 이미 식은땀으로 옷이 젖었고 안색은 초조해졌습니다. 다음날 아침 달마대사가 동굴에서 나와 그의 곁에 섰습니다. 뭐 안되냐? 내 마음의 본모습을 혜성은 눈을 뜨고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였습니다. 제 마음은 어지러운 실타래와 같아. 온갖 생각이 날아다녔습니다. 고요해야 함을 알면서도 고요하려 할수록 더욱 어지러워졌습니다. 달마대산은 옅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내가 내게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움직이지 않음이란 육신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 아니며 생각이 없음이란 마음에 활동이 없는 것이 아니다. 생각이 어디에서 일어나는지 앎이 어디에서 오는지 내가 그것을 보았느냐 하는 것이다. 그는 자리에 앉아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수행하는 사람이 가장 쉽게 빠지는 첫 번째 생각은 명예를 구하고 밝아지기를 바라는 마음 즉 구명심, 구명심, 이다. 혜성은 놀라 되물었습니다. 명예를 구한다니요. 제자는 이미 세속을 버리고 도에 들어섰으니 명예와 이익은 이미 끊었습니다. 어찌 그런 마음이 있겠습니까? 달마대산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내가 버린 것은 세속의 명예일 뿐 수행의 명예는 버리지 못했다. 너는 고승이 되기를 갈망하고 후세의 모범으로 칭송받기를 바란다. 너의 수행은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함이 아니라 성취하기 위함이다. 너의 구도는 자비를 위함이 아니라 법등을 잊기 위함이다. 이런 종류의 명예는 부처의 옷을 입고 내가 성취한 모습에 대한 환상 속에 머문다. 그것은 너를 제물이나 여색에 탐닉하게 만들지는 않지만 곳곳에서 남과 우여를 비교하게 하고 때때로 보답을 바라게 한다. 내가 중생을 널리 구제하겠다는 원을 세울 때 중생들이 너를 구제한 자로 알아주기를 바라지는 않았느냐. 내가 법을 설할 때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고 은근히 기뻐하지는 않았느냐. 이것이 바로 명예를 구하는 마음의 가장 교활한 모습이다. 혜성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고 목이 맴든 말을 잊지 못했습니다. 그는 출가한 이래로 단 하루도 내가 이 수행을 성취하면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은 날이 없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마침내 자신이 세속의 명예와 이익을 구하는 마음은 끊었으나.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끊지 못했음을 알았습니다. 이 생각이 바로 수행길의 첫 번째 독서였습니다. 그 이름은 빛을 얻기를 원하여 때때로 그 영광을 탐하는 것입니다. 달마대산은 눈을 감고 말했습니다. 명예를 탐하는 자는 참된 나를 보* 못하고 명예에 집착하는 자는 부처를 염해도 막아댄다. 만약 이 마음을 꿰뚫어 보* 못한다면 니가 걷는 길은 보리의 길이 아니라 명예와 이익을 향한 길일 뿐이다. 산봉우리의 바람이 생각에 잠긴 해성의 뺨을 스쳤습니다. 달마대산은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목소리는 종소리처럼 낮게 울렸습니다. 명예를 구하는 마음을 끊었다고 해서 장애물에서 멀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그것보다 더 깊은 함정이 바로 두 번째 생각이다. 그 이름은 나라는 교만함. 아만심 아만심 이다. 혜성은 놀라 고개를 들었습니다. 교만이라니요? 제자에게 부끄러운 점은 있사오나. 단 한 번도 제가 남보다 높다고 여긴 적은 없습니다. 달마대산은 가볍게 웃으며 산아레길을 가리켰습니다. 내가 처음 이 산에 오를 때 어떤 마음으로 나를 찾아왔느냐. 제자는 조사님께서 나타나셨다는 말을 듣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법을 구하러 왔습니다. 해 성이 답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스스로가 조사에게 선택받은 것은 너의 금기가 남들보다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느냐. 해성의 안색이 변했습니다. 그는 달마대사를 만난 후 마음속에 피어올랐던 한 줄기 기쁨과 자부심을 떠올렸습니다. 나는 역시 평범하지 않아. 성스러운 스승의 눈에 들었으니 말이야. 사용들은 오랫동안 수행했지만 이런 기회를 얻지 못했지? 아무래도 내게는 정말 특별한 해근이 있는 모양이야. 이런 생각들은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어. 입 밖으로 내지도 않았고 그것이 교만이라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습니다. 달마대사의 목소리는 낮게 깔렸습니다. 아만이란 큰 소리로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으로 내가 너보다 낫다고 여기는 것이다. 내가 비록 말이 없고 다투지 않더라도 마음속으로 남을 내 아래에 두는 순간 너는 이미 교만해 떨어진 것이다. 너는 낡은 가사를 입고 00을 말하며 청정한 계율을 지키고 경전을 맡김 없이 설한다. 하지만 만약 내 마음속의 14호라도 우월감이 있다면 내가 행하는 모든 법은 나의 법이 된다. 불문에서는 교만은 높은 산과 같아 법에 물이 스며들지 못한다고 했다. 아무리 높은 도법도 교만한 마음에는 머물지 못한다. 그리고 가장 위험한 교만은 도에 대한 교만. 도만 도만 이다. 내가 남들보다 똑똑하거나, 부유하거나, 지위가 높다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남들보다 부처에 더 가깝다고 여기는 것 이것이 가장 교화라고 알아차리기 어려운 교만이다. 혜성은 마치 벼락을 맞은 듯했습니다. 그는 절에 있을 때 경전을 모르고 고된 수행을 하지 않는 초심자들을 보며 입으로는 비웃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항상 연민과 우월감을 가졌던 것을 떠올렸습니다. 그는 속으로 저들은 그저 겉핥기식 수행을 할 뿐이니 어찌 나처럼 깊이 들어갈 수 있겠는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절에서 계율이 가장 엄격한 노스님마저도 선의 이치를 모른다는 이유로 마음속으로 업신여겼습니다. 이것이 바로 교만이었습니다. 지혜 가사를 걸치고 깨달음의 빛 아래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먼지처럼 겸손하다고 생각했지만 오늘에야 비로소 그 모든 겸손이 실은 가장 정교하게 포장된 오만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달마대사가 그를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너는 입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내 마음은 이미 높은 자리에 앉아 있다. 너는 중생이 모두 붙여라 말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어리석은 자와 깨달은 자를 나눈다. 너는 모든 법이 평등하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어떤 법이 높고 어떤 법이 낮은지를 재고 있다. 이것은 무지한 자의 죄가 아니라 작은 깨달음을 얻은 자가 겪는 재앙이다. 달마대사의 눈빛은 번개와 같았습니다. 기억하여라. 진정으로 깨달음에 가까워진 사람은 말이 현명해지거나 자선을 오래 하는 사람이 아니다. 수행할수록 말이 없어지고 행할수록 고개를 숙이는 사람이다. 혜성은 이미 눈물을 흘리며 옻채투지를 했습니다. 이 순간 그는 마음속에 보이지 않는 높은 단상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스스로 깨달았다고 여겼던 그 눈이 어떻게 자신을 조용히 다른 사람들 위에 올려놓았는지를 보았습니다. 동굴하는 잠시 침묵에 잠겼습니다. 달맞이사는 땅에 엎드린 채 말이 없는 해성을 보며 빗방울이 돌을 때리든 말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마지막 생각이다. 가장 기쁜 생각이다. 그것은 모든 선언법 가운데 숨어 있으며 바른 생각이라는 옷을 입고 있다. 그 이름은 골발음을 취하려는 마음. 즉 취증심 취정심이다. 혜성은 고개를 들고 미간을 찌푸렸습니다. 조사님 올바름을 취하는 것이 어찌 수행의 근본이 아니겠습니까? 만약 바른 깨달음을 구하지 않는다면 어찌 유뇌에서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달마대산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습니다. 네가 틀렸다. 올바름을 취해서 올바르게 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올바름에 집착하기 때문에 올바름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그는 일어나 동굴 밖에 이끼 낀 바위로 걸어가 손가락으로 두 글자를 썼습니다. 결과 과학 너는 바른 결과를 구하며 얻었다는 느낌을 소유하고 싶어한다. 너는 참선을 하며 깨달았다는 증표를 얻고 싶어 한다. 너는 계율을 지키며 청정해진 결과를 보고 싶어한다. 내가 하는 모든 행위는 본래 마음을 위함이 아니라 결과를 위함이다. 이것이 바로 올바름을 취하려는 마음이다. 너는 바른 결과를 원하면서도 매일 결과를 얻으면 어떨까를 상상한다. 너는 돌을 깨치고 싶어하면서도 매일 깨달음이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너는 집착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면서도 곳곳에서 집착 없음에 집착한다. 달마대사의 눈빛은 횃불과 같았고 목소리는 낮게 깔렸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알아차리기 어려운 헛된 생각은 의욕도 성냄도 아니다. 바로 내가 이제 곧 깨달을 것 같다고 느끼는 바로 그 순간이다. 수행자가 매일 경전과 자신을 대조하며 수행하는 것은 마치 농부가 매일 흙을 파헤쳐 싹이 자랐는지를 확인하는 것과 같다. 꽃이 피기는 커녕 오히려 뿌리만 썩게 할 뿐이다. 너는 법을 닦는 것이 아니라 수행의 결과를 경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 마음 이 생각이 결국 너를 윤의 속으로 다시 끌고 들어갈 것이다. 혜성은 온몸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졌습니다. 그는 지난 몇 년간 매일 좌선하고 참선하고 진언을 외웠던 것이 실은 마음속으로 언젠가 내가 깨
달음을 얻어 눈뜬 사람이 되리라는 기대를 품고
있었기 때문임을 깨달았습니다. 그 생각은 소리내어 외친 적은 없었지만 마치 밀물처럼 매일 그의 모든 정신을 키워왔습니다.
믿음이 아니라 결과를 탐하는 집착이었습니다. 달마대사의. 어조가 부드러워졌습니다. 그는. 다시 자리에 앉으며 말했습니다.
내가 쫓아서 없는 것이 아니다. 참된. 마음이 편안히 머물 때 저절로 드러나는 것이다. 내가. 명예를 구하는 마음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탐하지 않게 된다. 내가. 교만한 마음을 내려놓을게. 마음은. 비로소 높아지지 않게 된다. 내가. 올바름을 취하려는 마음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집착하지 않게 된다. 만약. 이 세 가지 생각이 깨지지 않는다면 너는 수행할수록 부처에게서 더욱 멀어질 뿐이다. 혜성은. 그 순간
마치 만 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듯하면서도 동시에 마음의 바다 근원으로 돌아가는 듯한 느낌.
받았습니다. 그는. 진정한 장애물이 바깥에 막영, 마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올바르다고 여겼던 내면의 빛과 그림자에 있었음을 마침내 깨달았습니다.
깊이 전하며 오랫동안 엎드려 있었습니다. 제자가. 오늘 본 것은 만 권의 경전을 읽은 것보다 큽니다. 만약. 조사님께서 2세 가지 생각을 지적해 주지
걸어가거라. 삶은 아마 수행에 속아 넘어갔을 것입니다. 달맞에 산은 눈을. 감고 나직이 답했습니다. 너는 이미 근본을. 보았다. 앞으로의 길은 스스로. 걸어가거라. 기억하여라 수행이란 누군가가 되어. 가는 과정이 아니라 매일 누군가가 아님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2 3 가지. 생각을 깨뜨리는 것이야말로 본래의 참모습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2로부터 달마대사가 전한. 마음의 3 가지 독에 대한 가르침은 비록 경전
에는 실리지 않았으나 후데 고승들 사이에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수행 중 법에 대한 집착을 깨뜨리는 세 가지 거울로 여겨졌습니다
바에 따르면 해성은 후의 산림에 응거하며 다시는 법을 표지도 경전을 설하지도 않았으며 오직 삼벽의 한 구절만을 남겼다고 합니다. 하나의. 이름도 취하지 않고 하나의 자리에도 머물지 않으며 하나의 결과도 다투지 않는다. 불문에서는. 흔히 탐진치를 삼독이라 하여 중생을 유뇌
굴레에 묶는다고 말합니다. 그것들은. 타오르는 불길처럼 뜨겁고 눈에 잘 띄어. 범부들조차 알아보고 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달마대사가 경고한 이 세 가지 생각은 부처의 가죽을 뒤집어 쓰고 나의 마음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것들은 당신의 초심을 어지럽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당신의 초심 속에 깃들어 삽니다. 당신이 정진하면 할수록 그것들은 더욱 강해지고 당신이 깨달음을 얻으려 할수록 그것들은 더욱 깊이 숨어듭니다. 우리는 2 3 가지 생각을 하나씩 분석하여 그 마음을 밝혀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명예를 구하는 마음입니다. 수행 또한 명예를 좇는 불안을 낳을 수 있습니다. 세 속에서는 명예와 이익이 눈에 보이는 독이지만 불문 안에서 명예의 형태는 바뀝니다. 공명과 제물에서 청정한 명예를 얻고 보리의 명예를 증득하며 스승의 명예를 이루는 것으로 변합니다. 만약 어떤 이가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존경받고 성취하기 위해 출가했다면 그는 몸은 가사를 걸쳤을 지언적 마음은 여전히 나라는 아집의 성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명예를 구하는 마음이 가장 위험한 이유는 그것이 종종 정진으로 위장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매일 좌선하고 염불하고 법을 설하고 폐관하는 것이 싫은 수행이 깊은 나라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함이라면 그것은 불법이라는 도구로 나라는 신전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 당신은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더 위대한 나를 조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아만심입니다. 가장 부드러운 우월감이요. 가장 날카로운 집착입니다. 아마는 반드시 오만함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대부분 정교하게 포장된 우월감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당신이 조용히 내가 저 사람보다 조금 더 안다. 내가 좀 더 깨어 있다. 내가 수행을 더 오래 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당신은 이미 나만의 구덩이에 빠진 것입니다. 선종의 관점에서 아마는 나 없음 무아에 대한 가장 큰 모순입니다. 당신은 입으로는 000을 외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나는 깨달은 사람이라는 꼬리표를 소중히 지키고 있습니다. 경천에서 규마는 높은 산과 같아 법에 물이 스며들지 못한다고 한 것이 바로 이 때문입니다. 아만심이 무서운 이유는 그것이 당신을 성장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당신이 이미 저 언덕에 도달했다고 착각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셋째 올바름을 취하려는 마음입니다. 곡리적인 수행은 반드시 빗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법을 닦을 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라고 묻습니다. 하지만 불법의 대답은 역설적이게도 아무 소용없음에 있습니다. 당신이 바른 결과 깨달음 신통, 공덕을 구하는 것 자체가 결과 지향적인 함정입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이루실 때 깨달음을 계획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부처가 되겠다는 집착을 포함한 모든 것을 내려놓으셨을 뿐입니다. 그러자 도해 결과는 저절로 드러났습니다. 올바름을 취하려는 마음은 현대인들이 가장 쉽게 물드는 마음의 독입니다. 명상 후에 내가 발전했는가? 선행 후에 내가 복을 받을까? 수행 후에 내가 거의 다 되었는가라고 묻는 것에 그것이 드러납니다. 즉각적인 효과를 기대하는 모든 수행법은 올바름을 취하려는 마음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그러나 불법은 본래 구하는 바가 없을 때 그 바를 얻고 얻는 바가 없을 때 큰 덕을 얻는 길입니다. 돌이켜 보면 2 3 가지 생각은 모두 단 하나의 근원 바로 아직 아직을 가리킵니다. 수행하는 나 깨닫는 나 정진하는 나가 있다는 집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3 가지 생각은 탐진치보다 더 치명적입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당신을 불법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가장 올바른 길을 걷고 있다고 믿게 만들면서 더욱 빛나가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적이 아니다. 당신이 가장 신뢰하는 내부의 첩자와 같습니다. 모든 불법 수행의 핵심에는 나 나는 한 글자가 있습니다. 모든 법이 귀결되고 모든 장애가 깨져야 할 근원입니다. 이 날을 깨뜨리지 못하면 모든 정치는 나를 중심으로 맴도는 것에 불과합니다. 이 날을 보* 못하면 당신이 닦는 것은 부처의 도가 아니라 집착의 도입니다. 이것이 바로 달마대사가 밝힌 삼염의 근본입니다. 첫째 삼념은 나로부터 시작됩니다. 불교에서는 탐욕은 나를 위해 일어나고 성냄은 나를 위해 다투며 어리석음은 나를 위해 속인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3년인 구명신 아만심 취증심 모두 이 날을 떠나지 않습니다. 당신이 명예를 구하는 이유는 내가 수행을 잘한다는 생각에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교만한 마음을 내는 이유는 나는 깨달은 자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올바름을 취하려는 이유는 내가 결과를 얻을 것이다라고 환상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당신은 부초를 닦는 것이 아니라 나를 닦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으신 후 하신 첫 말씀은 기이하고 기이하도다. 모든 중생이 열애와 같은 지혜와 덕상을 갖추었건만 망상과 집착 때문에 증득하지 못하는구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망상과 집착이 바로 나에 대한 집착입니다. 달마대산은 바로 이 번맥을 이어받아 마음을 곧바로 가리켜 이 날을 깨뜨리라고 한 것입니다. 둘째 삼염은 제 7식 제 7식에 가장 깊은 위장입니다. 불교 유식학에서는 8 가지 마음 즉 팔식 팔식을 말합니다. 앞에 6 가지 마음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인지하는 눈 귀 그 형 넵 라는 뜻입니다. 일곱 번째 마음인 말라식은 나라고 여기는 마음으로 끊임없이 나를 헤아리고 생각합니다. 여덟 번째 마음인 아르야식은 모든 법의 씨앗을 저장하고 있으며 선두 앞도 아닙니다. 삼념은 바로 이 일곱 번째 말라식에 나를 헤아리는 작용 속에 숨어 있습니다. 특히 수행자는 만약 이 말라식의 습기를 간파하지 못하면 수행할수록 내가 수행한다. 내가 깨닫는다. 내가 증득한다는 생각을 더욱 장엄하게 꾸미게 되어 오히려 말라식의 단단히 사로잡히게 됩니다. 달마대사께서 왜 돌을 닦는 자가 마음의 본성을 알지 못하면 헛되이 세월만 보낼 뿐이다라고 강조했겠습니까? 당신은 누가 수행하고 있는지도 꿰뚫어 보* 못했기 때문에 당신이 하는 모든 것은 결국 자기만에 불과합니다. 셋째 삼염은 법집 법집에 가장 위험한 가짜 모습을 만듭니다. 불교에서는 나에 대한 집착인 아집과 모든 법이 실제하고 효능이 있다고 여기는 법칙을 깨뜨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삼염이 무서운 이유는 그것들이 세속적인 집착이 아니라 법집의 산물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명예를 구하는 자는 수행에는 이룰 수 있는 명예가 있다고 집착하고 교만한 자는 수행에는 비교할 수 있는 계급이 있다고 집착하며 올바름을 취하는 자는 수행에는 취할 수 있는 목표가 있다고 집착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미 금강경에서 만약 보살이 나라는 생각 남이라는 생각 중생이라는 생각 수명이라는 생각이 있으면 곳보살이 아니다. 법조차도 마땅히 버려야 하거나. 하물며 법 아닌 것이겠는가라고 지적하셨습니다. 진정한 수행은 나를 부처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것이 본래 얻을 수 없는 것임을 꿰뚫어 보고 부처 또한 얻을 수 없는 것임을 아는 것입니다. 달마대사의 돈은 바로 문자를 세우지 않고 경전 밖에서 따로 전하며 마음을 곧바로 가리켜 본성을 보고 부처를 이룬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본성을 본다는 것은 나 없음에 본성을 보는 것이요. 부처를 이룬다는 것은 무언가를 더하는 것이 아니라 부처가 되기 위해 수행하는 모든 동기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넷째 삼염은 왜 숨어있어 깨뜨리기 어려운가? 그것들이 번뇌의 모습이 아니라 지혜의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은 수행을 방해하는 반대 방향이 아니라 마치 당신의 정신을 돕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명예를 구하는 것이 동력이고 교만한 마음이 자신감이며 올바름을 취하는 것이 목표라고 착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빛이 아니라 부처의 빛을 뒤집어 쓴 그림자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것들은 탐진치보다 더 쉽게 청정한 마음에 스며들어 돌을 닦는 사람을 죽이는 독이 되는 것입니다. 능엄경에서 부처님께서는 아난에게 모든 수행하는 사람들이 만약 나의 경계를 알지 못하면 수행해도 이익이 없다고 경고하셨습니다. 이 3년 이하말로 가장 흔하게 나타나지만 가장 간파되지 않는 마음의 막연 막경 입니다. 그것을 깨뜨리는 것은 억지로 누르는 데 있지 않고 그것을 꿰뚫어 보는 데 있습니다. 그것을 없애는 데 있지 않고 그것을 비추어 보는 데 있습니다. 그것들이 나로부터 일어남을 비추어 보면 나 또한 자연이 그와 함께 사라질 것입니다. 불법이 만약 일상 생활에 녹아들지 못한다면 아무리 현미 하더라도 허궁의 꽃과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달마대사가 밝힌 세 가지 생각은 비록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지만, 결코 깨뜨리지 못할 것은 아닙니다. 핵심은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알아차리고 비추어 보는 것입니다. 첫 번째 단계는 그 그림자를 알아차리고 그 움직임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3 가지 생각은 다음과 같은 순간에 가장 자주 나타납니다.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당신의 수행 상태를 인정받고 싶어 할 때 명예를 구하는 마음이 움직인 것입니다. 당신이 마음속으로 다른 사람과 자신 중 누가 더 수행을 잘하는지 조용히 비교할 때 아만심이 일어난 것입니다. 당신이 수행 중에 내가 발전했는가? 나는 언제 깨달을까라고 자주 점검할 때 올바름을 취하려는 마음이 생긴 것입니다. 매일 잠자리에 들기 전 5분간 조용히 앉아 오늘 하루의 행적에 2 3 가지 생각의 그림자가 없었는지를 되돌아보십시오. 만약 있었다면 자책 할 필요 없이 그저 자신에게 조용히 말해 주십시오. 생각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