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파시스트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Benito Mussolini, 1883 ~ 1945)는 그의 애첩인 ‘클라라 페타치(Clara Petacci)가 이탈리아 국민들에게 ‘교양있고 품위있는 여자’로 보여지기를 원했다. 고급 call girl 출신이라는 건 이탈리아 상류층에서는 다 알고 있었지만 쉬쉬했다. 본격적인 ‘신분 세탁’을 위해 무솔리니는 자신이 만든 당인 ‘국가 파시스트당’ 선전 홍보 전담 위원장에게 특별 지시를 한다.
이탈리아 최고 명문대 출신인 법학 전공 여성을 애첩의 비서로 붙이고 벼락치기로 문학사 예술사 교양부터 미용 화술 등 귀족 부인 입문학을 본격적으로 집중해서 교육시킨다. 최고 수준의 영화감독과 사진가를 동원해 맹렬하게 사진도 찍는다. 당시 이탈리아 매체들은 무솔리리의 애첩 클라라 페티치의 ‘우아하게 연출’된 사진들을 매일 바꿔가며 내보낸다.
로마 시내 거리에도 대형 포스터로 만들어 ‘이탈리아 국모’를 선전한다. 이탈리아 국민들은 그녀가 call girl 출신이고 사악한 이상한 여자라는 사실을 알고부터는 포스트를 찢고 가래침을 밷았다.
끔찍한 무솔리니 시대를 보내고 있던 이탈리아 국민들 상당수는 무솔리니와 그의 애첩이 매일 매일 떠드는 미친 소리와 거짓말에 정신병을 앓을 지경이 됐다.
1945년 8월 미군이 로마 가까이 진군했다. 무솔리니와 애첩은 밀라노로 급히 튄다. 그러나 이탈리아 의용군들에게 붙잡혀 총살 당하고 로레타 광장 주유소 대들보에 거꾸로 매달려 시체는 전시된다. 이탈리아 국민들은 좀 더 일찍 무솔리니를 처단시키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용기를 내어 일제히 궁전으로 쳐들어갔다면 더 일찍 잡아 죽일 수도 있었다.
클라라 페타치는 그냥 고급 call girl로 살았으면 주유소 대들보에 정육점 갈고리에 거꾸로 매달려 죽지는 않았을텐데 그만 권력 욕망에 일찍 죽었다. 무솔리니 보다는 29살이나 어렸고, 처형 당시 33세 였다.
1945년 4월 27일 약식재판을 거쳐 4월 28일 총살형에 처해졌고 시체는 밀라노의 로레타 광장에 거꾸로 매달려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전시됐다. 바로 다음 날에는 독일 나치 히틀러도 애인 에바 브라운과 함께 자살을 선택한다.
사진 - 이탈리아 부패 신문들은 무솔리니의 애첩인 클라라 페타치를 최대한 교양있고 기품있는 ‘여사’로 보이게 하기 위해 애를 썼지만 ‘미친 이상한 여자’임을 눈치 챈 이탈리아 국민들은 사진이 실린 신문에 침을 뱉고 찢어발기기 일수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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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토 무솔리니가 1945년 4월 28일 게릴라에게 사로잡히자 클라라 페타치도 마르첼로를 포함한 다른 측근들과 함께 잡혀서 즉시 총살당해 죽었다.[1] 그런데 총살 집행하기 전에 골치 아픈 일이 생겼는데 집행용으로 쓸 총들이 대부분 이탈리아에서 제조된 총기들이라서 총알이 나오지 않거나, 계속된 작동불량, 너무 약한 화력 때문에 총알들을 맞고도 거의 대부분 잘 죽지를 않아서(...), 다들 엄청나게 고통스러워 했고, 비명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고 한다. 그나마 성능 좋은 베레타 M1934 자동권총 2정과 베레타 M1938 기관단총 1정으로 겨우겨우 총살 집행이 끝났다.
총살당한 후 클라라 페타치의 시체는 애인이었던 베니토 무솔리니와 그의 측근들의 시체 3구 (니콜라 봄파치, 알레산드로 파볼리니, 아실레 스타라체)와 함께 밀라노로 인도된 뒤 썩어서 문드러질 때까지 피아잘레 로레토 광장에 있는 어떤 주유소 기둥에 거꾸로 매달려서 아주 예쁘게 장식됐다.[2] 그들의 시체에는 원한을 품던 시민의 침과 욕설 세례가 이어졌으며, 심지어 어떤 시민들은 몽둥이로 아주 신나게 두들겨 패거나 권총으로 쏘기도 했다. 원래 클라라 페타치의 치마는 뒤집혀서 하반신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는데 그 참상을 보다 못한 어느 노파가 치마를 여며서 가랑이 사이로 끼워넣어 줬다.[3] 이 때문에 이탈리아에선 '클라라의 치마를 여며주다'[4]는 말이 '자신의 소신을 위해 과감하게 행동하다'라는 관용어로 있다.
한편 이 소식을 들은 아돌프 히틀러도 큰 충격에 빠졌다. 베니토 무솔리니가 총살당하고 이틀 후에 히틀러는 자살할 때 내 시체를 불태워 달라는 유서를 남겼는데 자신도 베니토 무솔리니처럼 죽어서 시체가 저런 꼴을 당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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