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8월 6일
전날부터 일기예보에 귀를 기울이며 날씨에 신경을 쓰고, 출발시간에 대한 부담이 어깨를 눌러 잠을 무척 설쳤다. 아름다운 우리조국의 강산을 돌아본다는 설레임은 명산순례의 횟수가 거듭될수록 더 심해지는 것 같다.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서 감긴 눈을 비비며 배낭을 준비했다. 산행용 배낭 하나와 3박 4일용 여벌옷과 세면도구를 넣은 배낭을 함께 챙겨서 05시 50분에 집을 나섰다. 어느새 박선생님은 아침과 점심에 먹을 김밥을 사서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애마인 소나타를 타고, 신선생임과 6시에 만나기로 약속한 석대로 향했다. 배낭과 준비물을 챙겨들고 기다리는 모습이 멀리서 보이고 있었다. 약속 하나는 정확하게 지키는 것이 철칙인 우리 산악회의 핵심 요원들이 드디어 다 모이게 되었다. 서로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고 눈인사를 하며, 명산에 대한 기대감으로 마음들이 부풀어 있음을 눈짓으로 교환했다.
애마는 부산을 서서히 멀리하면서 경부고속도로 위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빠른 길을 선택하기 위해 남양산을 거쳐 대동분기점에서 신대구부산고속도로로 들어섰다. 밀양을 거치면서 우리의 발자취가 스며있는 영남알프스의 재약산, 가지산, 신불산, 운문산들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오대산, 설악산, 방태산의 자태를 그려보았다. 산들이 빨리 오라고 손짓하며 기다리는 것 같았다. 날씨는 짙은 구름에 가려지고, 비가 올 것 같은 하늘이었다. 우리는 날씨에 구애받지 않는다. 어떠한 날씨가 되더라도 계획은 변경할 수 없다. 우리의 가는 길은 태양이 비췰 것이다. 꽃피는 봄에도, 단풍이 드는 가을에도, 눈이 내리는 겨울에도 거침없이 나아갈 때, 오던 비나 눈도 그쳤었고 태양은 우릴 향해 비추는 것을 멈추지 않았으니, 이번 명산순례기간동안도 태양은 우리편이 되리라 확신을 하며 애마를 타는 즐거움에 빠져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열심히 달리던 애마는 계기판을 통해 배가 고프다는 신호를 보내오고 있었다. 그래서 청도휴게소에 들러 LPG gas를 충분하게 먹이고, 우리는 김밥에 우동국물로 맛있게 배를 채웠다. 힘을 얻어 산과 날씨이야기를 하면서 앞을 보니 대구 수성에 들어서고 있었다. 다시 경부고속도로 위를 질주하는 애마는 갈수록 빨라지는 느낌이다. 팔공산에서의 동봉, 중봉 오를 때의 모습을 머리로 그리며, 오른 쪽으로 빠져드는 팔공산으로 가는 차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애마는 빠르게 북대구를 지나가고 있었다. 금호분기점에서 중앙고속도로를 휘감아 오르는 애마는 우리 보다 더 신이 난 듯 달리고 있었다. 의성, 안동을 거쳐 그리운 고향 땅을 지나가고 있었다. 3차 명산순례 때, 소백산 비로봉을 오르며 먹던 달콤한 쌀밥의 냄새가 코를 자극하고, 하얗게 눈꽃으로 덮인 소백산의 눈밭을 거닐 던 모습은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고 고스란히 남아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안으로 흘러 들어오고 있었다. 약 4km의 죽령터털을 지나니, 충청북도 단양이 펼쳐지고 있었다. 단양8경의 하나인 도담삼봉의 모습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고 있다. 제천을 지나는 순간 하늘은 검은 색으로 도배를 하고, 사방을 검게 물들이더니 빗물을 양동이로 내리붓고 있었다. 비가 이렇게 오면 산행은 포기해야 되는 데, 하늘을 보니 성을 잔뜩 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개의치 않고 애마에 달린 비상등을 켜고 앞을 향해 무작정 달렸다. 하늘은 우리편인가! 비는 서서히 걷히고 있었다. '감사합니다'하는 소리가 마음을 타고 흘렀다. 그사이 원주를 지나 애마는 영동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2014년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표어들이 도로를 장식하고 있었다. 러시아 「소치」가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확정이 되어버린 날, 눈물을 보이던 강원도민의 안타까움이 도로에 새겨진 것 같다. 진부IC에서 빠져나와 월정삼거리를 지나니 오대산 국립공원의 표시판이 우릴 안내하고 있었다.
월정사 주차장에 11시 50분에 도착하여, 신선생님이 가져오신 쑥떡 한 덩이로 배를 채우니 속이 든든했다. 오대산 계곡에서 내려오는 물줄기의 우렁찬 소리를 들으며 발걸음을 옮기니 아름드리 전나무들이 도열해서 우리를 환영하고 있었다. 이제까지는 소나무들이 우리를 맞이했는데 특이하게 전나무들이 우릴 맞아주니 더욱 힘이 솟아났다. 전나무 생각을 하는 사이에 뒤를 돌아보니, 고색창연한 팔각구층석탑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깜짝 놀라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입을 벌리고 말았다. 석탑을 많이 보아왔지만, 이렇게 아름답고 정교하게 돌로 다듬어 쌓은 탑은 처음이었다. 과연 고려시대의 화려하고 귀족적인 불교문화를 대표할 만하다고 할 수 있겠다. 탑을 만들 때의 정성과 땀이 곳곳에 배여 벌린 입을 다물고 숙연해졌다. 20분 정도 비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가서 상원사 주차장에 애마를 세워놓고 산행 배낭을 꾸렸다.
이제 산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6시간 정도를 달려 왔으니 몸이 뻐근했다. 하지만 기분은 날아갈 것 같다. 딸기즙을 한 잔 나누어 마시고, 등산화 끈을 동여맨 후, 상원사 쪽을 향했다. 길옆에 서있는 관대걸이는 세조가 이곳까지 와서 목욕재계하기 위해 冠과 의복을 걸어놓은 곳으로 지나는 사람들의 발목을 잡았다. 어린 단종을 쫓아내고, 죽였으니 얼마나 정신적인 고통이 있었을까? 이 먼 곳까지 와서 잘못된 마음을 계곡의 맑은 물로 씻는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산을 오를수록 구름들이 산을 가리고 오대산의 진면목을 가리고 있었다. 오대산에서 제일 반가이 맞이해 주는 것은 다람쥐였다. 귀찮을 정도로 따라오며 재롱을 떨고 있었다. 부처의 진신사리를 비단함 속에 넣어 모시는 적멸보궁을 보고, 발걸음을 재촉하여 오대산 정상인 비로봉에 오르니 14시 10분이었다. 상왕봉을 향해 나아가는 길옆으로 온통 흙들이 파헤쳐져 있었다. 멧돼지들이 먹이를 찾기 위해 파헤쳐진 것 같다고 생각하니 머리카락이 쭈뼛해졌다. 저절로 발걸음이 빨라져 상왕봉에 오르니 15시였고, 하산하여 주차장에 이르니 16시 40분이었다. 상원사에 들러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동종을 보노라니 몸체에 새겨진 奏樂像에서 아름다운 선율이 울려나와 온 산을 뒤덮는 것 같았다.
五臺山
구름은 산을 뒤덮고 심통을 부리지만
꽃들은 좋아서 입을 벌리고
바람이 불어와 마음을 달래주니
산객은 발걸음 빨리도 디딘다.
청아한 소리내고 싶은
상원사 銅鐘은
기둥에 매달려
스님들의 눈치만 살피고 있고
주위의 산봉들은 비로봉에 기대어
편안히 쉬고 있는데,
천년을 자랑하는 주목은
바람과 구름에도 꿈쩍 않고
온산을 호위한다.
우람찬 참나무의 자잘한 이야기에
웃음꽃 피우는 사이
밝은 하늘
구름 헤치고 나와
배시시 웃음 지으니
마음은 벌써 설악산을 향한다.
평창의 휘닉스 파크에 도착하니 18시 10분이었다. 스키 타는 겨울이면 사람들이 많이 붐비겠지만, 지금은 한가한 편이었다. 체크인을 하고 객실에 들어오니 침대가 있는 방과 그냥 빈방이 있는데, 모두 깨끗했고 거실도 넓었다. 두 식구가 와서 쉬면 좋을 공간이었다. 진부면에서 사온 소고기를 실컷 구워먹고, 우리는 방 한 개에 한 명씩 자리를 차지하고 누워 설악산 생각으로 깊이 빠져들었다.
8월 7일
06시 30분에 기상하여 아침밥을 맛있게 지어먹고 08시 10분에 출발하여 10시 30분에 백담사 밑, 용대리 주차장에 도착했다. 애마를 세워두고 순환버스를 타고 20여분을 들어가니 백담사가 나타났다. 만해 한용운 선생님의 흔적이 곳곳에 배여 있었다.
11시 30분 설악산 정상인 대청봉을 향해 출발했다. 등산화를 단단히 조여 매고, 우산을 끄집어내어 쓰고, 혹시나 해서 중청대피소에 전화를 걸어 비가 올 때에 주의할 점을 들으려 했으나, 별 신통한 말은 듣지 못했다. 중청대피소에 미리 1박할 것을 예약했기 때문에 오늘 중으로 중청대피소까지 오르면 된다. 비가 부슬부슬 오지만, 대청봉이 기다리고 있으니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오대산을 오르느라 쌓인 피로도 덜 풀린 상태라 힘이 들어 발을 떼어 놓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수렴동계곡을 숨을 죽인 채 무조건 걸었다. 12시 50분 영시암에 도착하니 배가 고파왔다. 그래서 데어온 햇반, 김치와 밑반찬을 꺼내어 함께 먹으니 꿀맛이었다. 배를 채우고 힘을 내어 구곡담계곡으로 오르니, 계곡에서 내려오는 물이 바위와 부딪쳐 나는 소리와 주위의 아름다운 경치가 조화를 이뤄내니, 눈을 돌리고 귀를 기울이느라 정신이 없었다. 바위를 미끄럼틀로 하여 내려오는 폭포수의 날렵한 움직임과 떨어질 때의 하얀 포말들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올라가면서 산세들이 보통 산하고는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과연 명산은 명산다웠다. 쌓인 바위 사이로 솟아오른 소나무의 끈질긴 생명력은 사람의 인내하고는 비교할 수 없었다. 바위와 작고 큰 소나무들의 조화는 직접 보지 않고는 참 멋을 느낄 수 없다. 특히 몇 구비를 돌아 두 곳에서 흘러내려 물이 합쳐지는 쌍룡폭포는 두 마리의 용이 승천하는 것 같았다. 비가 오면 비를 맞고, 길옆으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경치를 마음에 새기며 쉼 없이 한 걸음씩 위로 향했다. 16시 30분 봉정암에 오르니 많은 사람들이 수양을 하고 있었다. 특히 봉정암 뒤로 펼쳐진 바위들은 예술가가 조각을 해서 세워놓은 것보다 더 아름다웠다. 봉정암 마루에서 쉬었다가 힘을 얻어 걸음을 옮기는 순간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옷을 입었지만 소용이 없을 정도였다. 빨리 가야겠다는 일념으로 걸으니 숨이 차고,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사나이가 이 정도쯤이야' 하고 마음을 다 잡으며 쉼 없이 오르니 17시 10분 소청대피소에 도착했다. 먼저 도착한 등산객들이 라면을 먹으며 비를 피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초쿄파이를 사서 나누어 먹으며, 하늘을 보는 순간 구름이 순간적으로 걷히고 있었다. 구름에 가려 보지 못하던 경치가 한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앞으로 펼쳐진 기묘한 바위와 소나무들의 조화로움에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오며 입을 닫지 못했다. 이제까지 명산을 두루 다녀봤지만 이렇게 아름답고 멋진 모습은 보지를 못했으니, 이 순간을 놓칠 수 없어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러자 구름이 서서히 산을 가려 덮기 시작했다. 힘들게 올라온 등산객을 위해 살짝 몸매를 구경시켜준 설악산에게 감사를 했다. 이런 아름다운 모습은 직접 보아야지, 사진으로 아무리 잘 찍어도 그 모습을 담아낼 수 없어 안타까웠다. 먹구름으로 덮인 산에 다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비옷을 챙겨 입고 중청대피소를 향해 앞으로 향했다. 아름다운 산의 몸매에 빠져버려 어떻게 걸음을 걷는지 알 수 없었다. 17시 40분 중청대피소는 먹구름에 갇힌 유령성 모양으로 앞에서 검게 모습을 나타내고 있었다.
8월 8일
설악산 부근의 일기예보에 따르면 오늘과 내일 사이에 100∼200mm의 비가 내린다고 하니 가장 빠른 길을 찾아 하산하라는 대피소의 방송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공룡능선을 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우리에게는 충격적이었다. 우리의 생각만을 고집할 수 없었다. 희운각 대피소에서 공룡능선을 타고 오세암을 거쳐 하산하려던 계획을 취소하고, 07시 40분 설악산 정산인 대청봉에서 비바람을 맞으며 사진촬영을 바친 후, 가장 빨리 하산할 수 있는 오색약수터 쪽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우리는 날다람쥐 같이 날아 오색약수에 도착하니 10시였다. 비는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었다. 우리의 애마가 있는 백담사 쪽 용대리 주차장까지는 거리가 멀어 버스로도 가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콜택시를 타고서 한계령을 넘어 주차장까지 오니 11시 40분이었다. 우리의 애마는 비를 맞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雪嶽山
산이 좋아 손짓하니
아무도 가지 못할 길을
빗소리 장단 삼아
계곡과 물
바위와 소나무
비와 바람과 우리는 하나가 되어
아름다움을 노래하며
그리움에 젖어
뒤척이던 수많은 나날들
나뭇잎에 물방울로 걸어두고
고개 숙이고
말없이 걸었다.
이곳,
소청 중청 대청,
설악의 자연이여!
좁은 머리에
아름다운 절경을
전부 담을 수 없어
발로 밟으며 뛰어보고
소리만 꽉 질러대고 내려왔다.
점심으로 먹은 강원도 명물 황태해장국은 국물 맛이 담백하고 속을 시원하게 해주었다. 방태산을 향해 애마를 몰고 한계삼거리를 지나는 순간, 온천이 있어 그 곳에 들러 고단에 지친 몸을 풀었다. 원통교차로를 지나 31번 국도를 타고 현리에 이르러, 강원도 옥수수와 천도 복숭아, 반찬거리랑 돼지 삼겹살을 사서 방태산 휴양림에 도착하니 16시 20분이었다. 조금 쉬다가 돼지삼겹살을 구워 배부르게 먹으니 밖에는 빗소리가 여전히 들리고 있었다. '내일은 비가 그쳐주어야 할텐데' 기도하는 마음으로 22시에 취침에 들어갔다.
8월 9일
새벽 3시 20분에 잠이 깨어 밖을 보니 계속 비가 오고 있었다. 잠을 조금 더 자려 했으나 잠이 잘 오지 않아 일어나서 4차 명산 순례의 일정들을 하나씩 적어 보았다. 06시 30분에 아침밥을 짓고 정리를 하고 식사 후, 비가 오더라도 산행을 강행하려고 배낭을 꾸려놓고 휴양림관리소로 전화를 돌렸다. "우리는 방태산 정상 주걱봉을 오르려고 합니다. 채크 아웃 해주세요" 하는 순간, 관리소장의 목소리는 경직된 상태로 등산로를 설명하기 시작하더니, "지금 비가 계속 내리고 내일까지 120mm의 비가 내린다는 기상예보가 있습니다. 여기 등산로에는 개울을 예닐곱 건너야 하는데, 현재 상태로 물이 불어나 건널 수 없는 형편입니다. 그래서 등산을 금지시키고 있습니다." 라고 하며 강력하게 등산을 할 수 없음을 알리고 있었다. 어찌할꼬? 서로 의논에 들어갔다. 어리석게 고집을 부렸다가는 사고가 날 것이 분명함을 깨닫게 되자, 속사를 지나 강릉을 거쳐 정동진을 구경하고 7번 국도를 타고 부산으로 가자고 합의를 보게 되었다. 09시 10분, 밖에 세워둔 애마를 깨워서 아쉬움을 남긴 채, 다음을 기약하고 휴양림을 떠나왔다. 휴양림에서 가까운 방동약수터에 들러 약수를 한 병씩 받아 차에 타고 오려는 순간, 애마의 뒤쪽 다리에 바람이 빠져 있었다. 현리에 들러 빵구를 때우고, 타이어 점검 후, 속사를 향해 거침없이 달리니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있었다. 구름도 쉬어 넘는 계방산 운두령(해발 1,089m)을 단숨에 넘어 속사로 들어서려니 이승복기념관이 있어서 들러 보았다. 이념이 무엇이기에, 같은 민족끼리, 그것도 초등학교 2학년 학생을 죽였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쓰려왔다. 속사에서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강릉분기점으로 내려와서 7번 국도를 타고 12시 29분에 정동진(서울 경복궁 광화문에서 정동쪽에 위치하여 이름지어짐)에 도착하여 구경하고 점심을 먹은 후, 내리 달려 경주에 있는 요석궁에 도착하니 17시 35분이었다. 요석궁이 있던 자리에, 그 유명한 최부자가 집을 짓고 살았고, 지금은 그 후대 사람이 한정식집을 차려서 운영하고 있었다. 옛날 최부자가 먹던 반찬과 현대의 반찬을 어울려, 한 상 그득하게 차려 놓고 먹으니, 귀족이 된 기분이었다. 가야금 소리를 들으며 기분 좋게 먹고 집에 도착하니 21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돌아보니 꿈같은 여행이었다. 다음 명산 순례를 머리 속으로 그리며 조용히 묵상에 잠겨 본다.
첫댓글 좋은글 감사합니다! 명산의 모습이 눈앞에 아련히 떠올라 기분이 상쾌해지고 원기가 솟는다. 다음은 어디로 가야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