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진로'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생각이 가장 먼저 드는지 궁금
하다. 아마도 다음과 같은 순서로 생각이 이어지지 않을까. '어떤 고등학
교를 갈까? 외국어 고등학교를 갈까, 과학 고등학교를 갈까? 예술 고등학
교는 또 어떨까? 그 다음에는 대학교에 가겠지. 참, 이때 또 어느 학과를
갈지를 알아봐야 하는구나. 요즘은 대학교를 나와도 취직도 잘 안 된다
고 하던데...... 아, 진로라는 건 뭐가 이렇게 복잡한 거야!'
도대체 진로라는 게 무엇이냐는 고민부터 시작해서,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하는지,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를 해야하는지에 이르기까지, 진로에
대한 고민은 아주 다양하다. 이야기를 풀어 가기 전에 여러분들이 꼭 기
억했으면 하는 것은 진로란 길고 긴 여행이라는 점이다. 즉 단숨에 생각
하고 끝내 버리는 '과자 따먹기'가 아니라,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인생
의 방향을 조금씩 찾아 나가는 '장기적인 보물찾기'라는 점을 잊지 말아
야 한다. 지나치게 서두르면 자기 다리에 걸려 넘어질 수도 있으니, 이제
부터는 좀 더 차분하게 진로에 대한 문제들을 생각해 보자.
01 제 적성을 모르겠어요
"학교 선생님이나 부모님들은 하루빨리 네 적성을 찾아서 그 길로 죽 나
가라고 말씀을 하세요. 그런데 제 고민은 저의 적성이 뭔지 확실하게 모
르겠다는 것이에요. 하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아서 딱 하나를 고르기가
힘이 들거든요. 과연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몇 년 전, 고등학교를 중퇴하고도 인기 가수로 우뚝 선 서태지의 성공담
이 전국을 휩쓸었다. 그 당시 주부들을 대상으로 하는 여성 잡지에서
는 '우리 아이 서태지로 키우려면?'과 같은 자극적인 기사들이 한동안 줄
을 이었고, 상담실에는 '유치원생도 진로·적성 검사를 받아 볼 수 있지
요?' 하는 문의가 빗발쳤다.
이런 현상은 무엇 때문에 발생하는 것일까? '적성이란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나온 것' 이라는 근거 없는 생각. 자신 안에 있는 보물을 발견하
기만 하면 진로 찾기 여행은 그 날로 '끝'이며, 그 보물이라는 것이 꼭 있
어야만 각자의 진로를 찾을 수 있다는 믿음. 이런 생각들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물론 여러분들은 각자의 마음속에 여러 가지 색깔과 모양의 보
석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보석들은 아직 모양을 제대로 갖추지 못
한 원석, 즉 아직 가공되지 않은 돌멩이에 가깝다. 그 돌멩이를 가치 있
는 보석으로 다듬기 위해서는 땀방울을 흘리며 열심히 갈고 닦아야 한
다. 진로 찾기란 자신이 원래부터 갖고 있는 것을 '찾아 헤맨다'라는 의미
이기도 하지만, 갖고 있는 것을 가꾸기 위해 '땀 흘리며 노력한다'라는 뜻
도 포함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진로 결정은 적성을 찾는 데서 끝나
는 것이 아니라, 적성이라는 원석을 갈고 닦아 보석으로 만드는 노력을
거쳐 완성된다.
자신의 적성을 알아보는 방법에는 다음의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스스로를 잘 관찰한다. 지금까지 주위 사람들로부터 잘한다는 칭찬
을 들었던 일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적으나마 스스로 흥미와 관심들을
가졌던 것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자. 그러다 보면 나조차도 미처
몰랐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다양한 경험을 한다. 남들보다 잘하는 일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면,
이제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상황에 뛰어들어 보자. 일상의 조그
만 체험은 물론이고, 학교에서 받는 다양한 수업, 동아리 활동, 여가 활동
들이 모두 새로운 상황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다양한 경험 속에서, 혼자
서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지, 여러 사람들과 같이 활동하는 것을 좋아하는
지,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는 것을 좋아하는지, 직접 발로 뛰며 몸
으로 부딪치는 것을 좋아하는지를 파악하고, 자신의 소질과 취향을 알아
보자.
셋째, 전문 기관에서 실시하는 검사를 이용한다. 진로·적성 검사는 진로
선택에 필요한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한다. 그러나 이런 검사가 진로를 선
택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라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한다. 마지막 순간에
결정을 내리는 것은 언제나 나 자신이어야 한다. 여러 가지 검사는 주체
인 내가 취사선택(쓸 것과 버릴 것을 가림)하는 대상일 뿐이다. 결국 참
고 자료일 뿐이다. 그러므로 검사를 받을 때에는 검사에 대한 전문가의
해석을 듣는 것이 바람직하다.
02 목표가 없어요.
"선생님, 저의 문제는 제게 목표가 없다는 것이에요. 다시 말해서 하고 싶
은 것이 없다는 거죠. 주위 친구들은 자기 꿈을 찾아가느라 바쁜 것 같은
데, 저는 무엇을 해야 할지 아무런 생각이 없습니다. 부모님은 저에게 '너
는 무슨 애가 욕심도 하나도 없고, 그렇게 흐리멍텅하냐' 라고 늘 핀잔을
주십니다. 저도 답답하고 짜증이 납니다. 저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일
까요?"
아직 나의 미래에 대해 확실한 결론을 내릴 준비가 되지도 않았는데, 주
위에서 자꾸만 독촉을 하게 되면 정말 많이 답답할 것이다. 부모님이 재
촉한다고 해서 성급하게 아무거나 선택하려고 하지말고, '나는 나의 길
을 찾아갈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있어.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나에게
꼭 맞는 항로를 발견할 수 있을 거야.'라는 믿음을 가지며 오히려 한 박
자 늦추면서 차근히 생각을 해보도록 하자. 내 미래에 대해 생각하는 것
은 부모님을 위해서도 아니고, 선생님을 위해서도 아니며, 오직 내 자신
을 위한 일이니까 아직까지는 충분히 여유를 가져도 좋다.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생각할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해서 특별한 목표가
없다고 생각될 수도 있고, 목표나 진로를 선택하는 것을 지나치게 심각하
게 생각하다 보니, 확실한 목표를 설정하는 것을 두려워하기도 한다. 그
러나 진로를 결정하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살아가는 삶
의 자연스런 일부분일 뿐이다. 날마다 무엇을 할 것인가를 결정하고, 앞
으로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하는 것, 이런 사소한 것들이 모여서 진로 결정
이라는 이름을 얻고, 나아가 자신만의 인생을 이루는 것이다.
03 부모님의 바램과 제가 하고 싶은 일이 달라요
"오늘도 부모님과 진로문제로 또 다투었어요. 우리 부모님은 저에게 실
용적인 학과를 가라고 늘 주장하십니다. 부모님 생각에 실용적인 학과란
경영학과나 경제학과, 무역학과 같은 것이지요. 물론 저희 부모님은 제
가 대기업에 들어가서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기를 바라시니까요. 그런데
저의 꿈은 달라요. 저는 고고 학과에 가고 싶거든요. 공부를 해 보고 제
게 맞다는 생각이 들면 대학원에 진학해서 계속 공부할 생각도 있고요.
그런데 저희 부모님은 항상 '그거 해서 뭐하냐?'라고만 하세요. 그래서
부모님이랑은 대화가 전혀 안 돼요."
젖먹이 시절이 아니라면 부모님과의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은 필연적
인 것인지도 모른다. 진로 문제라고 예외는 아니다. 그러한 갈등이 생겼
을 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뒤엉킨 실타래를 어떻게 풀어 나가느냐 하
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의 의견 충돌이 일어났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은, 그 사람의 생각을 이해해 보려고 애쓰는 것이다. 무조건 남의 말을 받
아들이라는 것이 아니라, 저 사람은 왜 내 의견에 반대하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여러분이 고생하지 않고
편안하고 안정된 삶을 살기를 원한다. 당신들이 생각하는 가장 안정적인
삶은 대기업에 취직해서 샐러리맨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조언을 하
는 것이다. 또 다른 경우에는 자녀의 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반대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부모님께 무조건 화를 내며 억지를 부릴 것
이 아니라, 자신의 의견을 좀 더 구체적으로 부모님께 말씀 드리는 자세
가 필요하다. 이렇게 부모님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꿈에 대한 확신
도 깊어질 것이고, 한 뼘 더 자란 내 모습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