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드라마를 그리며 항상 언니와 기다려왔어요. 고등학생이라 잘보진 못해서 많이 아쉬웠어요. 많은 분들이 이런 드라마에 관심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멋진 드라마 많이 방송해주세요. 존경합니다. 이회영선생님!” (ID 사랑스런 아이)
“학생들에게 수업에서 많이 얘기했었지만 이회영씨에 대해 사회적으로 알려진 것이 많지않아 많이 아쉬웠었어요. 박정희나 이순신보다 모른다는게 말이 안되죠. 이번 기회에 좀 더 많은 국민들이 알게 되길 바랍니다.” (무한도적)
며칠 전에 종방한 KBS <자유인 이회영>이라는 드라마에 대한 시청자의 평이다. 우당 이회영은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을 제외하곤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인물이다(동생 이시영 대한민국 초대 부대통령). 그런데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은 인물을 공영방송에서 드라마로 제작한 점은 크게 돋보였다. 5부작 정도로 끝나 너무나 아쉬었지만 그래도 평상시 존경하는 이회영선생을 다루어 주어 고마웠다. 더구나 이회영선생은 북경에 사신 항일독립운동가가 아닌가? 이 가을에 특별히 조국을 생각나게 만드는 국경절에 <자유인 이회영> 보기를 강력 추천하다.
사실 이회영은 항일독립운동의 원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제강점기 때 우리나라가 독립운동의 거점을 국내에서 외국으로 돌린 것이 1919년 3·1운동 이후라고 하는데, 이회영 선생은 이미 1905년 을사조약이후 다음해 곧바로 이상설을 만주에 보내어 서전서숙을 세우게 하였고, 1910년 경술국치로 국권을 빼앗긴 이후에는 6형제가 온가족 40~60여 명을 이끌고 만주로 떠나 1912년 신흥무관학교 세워 독립운동의 기반을 세웠으니,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기틀은 우당 이회영 선생에 의해 세워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언급할 때 가장 첫 번째 그 이름을 떠올리는 가문이 바로 이회영 선생이다. 한양 땅에서 그분들 땅을 밟지 않고는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부자인 그들이 나라가 망하자 전 재산을 팔아 만주로 건너갔다. 명문가 출신으로 그냥 편하게 한세상 살다갈 수 있던 분들이 타국에서 독립투쟁을 하기 위해 현재 가치로 무려 1조원에 해당하는 액수를 몽땅 독립운동자금에 바친 것이다. 6형제는 일본의 통치 밑에서 비겁한 안위를 누리지 않기로 결정하고 조국의 해방을 위하여 재물은 물론 가족의 안녕과 자신의 목숨까지 아끼지 않고 만주로 떠난 것이다. 그런데 그분들 모두 해방도 못 보고 돌아가셨다. 여섯 형제 중 유일하게 이시영 선생만 돌아오고 행방불명된 형제, 감옥에서 옥사, 심지어 둘째 형 이석영 선생은 상해에서 ‘아사’(굶어죽음)하셨다.
우리가 왜 이 지경이 되었을까? 바로 역사를 잊었기 때문이다. 역사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했다. 과거를 잊어버리면 현재의 방향, 목표가 없어진다. 또한 과거를 모르면 미래가 없다.
개인적으로 드라마를 보면서 그들의 고결한 정신과 뜨거운 열정이 한없이 존경스러웠다. 더구나 이회영은 초기에 그리스도인이었다. 우리 시대의 교회는 어떠한가? 개인의 삶을 챙기느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 고결한 인생을 살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떠올랐다. 조국의 해방을 너무나 갈망하고 그리워했던 그들처럼 주님 나라 위하여 전적으로 아끼지 않고 헌신하는 그런 삶을 사는 자가 많아지기를, 우리 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기를 기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