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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둥근달
그림설명 / 복음서기자 마태 : 에복음서의 삽화 랑스의 주교 에보의 주문에 따라 오비리예 수도원을 위해 제작된 것이다. 위엄에찬 복음서기자와 달리 하가의 내적 감동이 매우 능숙하게 흐르는 듯한 선에 의해서 표출된 [화필에 의한 뎃상]이다. 835년 이전. 26*20.8cm.
재물에 대한 욕심이 특별히 많았던 그는 선민으로서의 긍지를 갖기 보다는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현실 주의자이기도 했다.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 창녀와 죄인들과 같이 가장 천대를 받는 부류였던 세리가 되어 부당한 방법으로 돈을 모으기에 급급했던 레위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 인생이 반전되는 상황을 맞는다.
야훼 신앙을 버리고 메시아에 대한 소망마저 등진 철저한 죄인으로 살던 세리의 신분에서 예수님의 부르심에 순종함으로써 영광스런 주님의 제자로 변화된 것이다. 로마 황제의 창고를 채우고 자신의 사리사욕을 만족시키기 위해 가버나움의 세관에 앉아 동족의 고혈을 짜내는데 조금의 가책도 느끼지 않던 [레의]가 이제는 회개한 죄인 [마태]로서의 새 인생을 시작하였다.
이전까지 그를 주장하던 육신의 안목과 가치관이 주 안에서 새롭게 변화되자 세상재물에 쏟았던 그의 열심은 주님께로 전이되었다. 불의하게 착복하여 쌓아 두었던 재물로 큰 잔치를 벌여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자들에게 자신이 받은 구원을 증거하며 주님께로 인도하는 이웃사랑을 실천하였다.
또한 예수님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며 생명의 말씀을 듣는 가운데 사도로서의 훈련을 쌓아갔다. 그러나 성령세례를 받기 이전의 인간의 열심은 주님이 받으시는 고난의 자리를 회피하는 한계를 드러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했던 마태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오순절날 성령 세례를 받은 후에야 비로소 사도직분을 감당할 수 있었다.
성령이 충만하여진 마태는 천국복음을 전하며 스스로를 낮추고 예수그리스도만을 높이는 충성된 청지기가 되었다. 또한 유대인들을 위해 [마태복음]을 기록하여 [왕]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사랑의 빛을 갚는 헌신된 삶을 살았다.
주안에서 참으로 진실하고 정직한 신앙으로 살아가는 마태는 스스로를 "세리 마태"라고 일컬음으로써 은혜받은자의 겸손을 보여주기도했다. 세상의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비천하게 사는 세리에서 목숨을 바 치기까지 복음전파에 힘을 기울이는 사도로 발돋음한 마태의 생애는오늘날 사회에서 버림받고 소외당한 사람들에게 인생의 새 재표를 제시해 주고 있다.
또한 영적으로 잠들어 있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진리의 말씀을들려 줌으로써 생명의 길로 돌아올 것을 촉구하고 있다. 세상의 썩은 재물을 포기하고 영원한 하늘나라의 상급을 바라본 마태의 이름은 믿는 자들만이 들어갈 새 예루살렘의 기초석에 새겨지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요한계시록 21: 14 참조) 진실로 하나님께서는 스스로를 주 앞에서 낮추는 자를 하늘 나라의 큰 자로 높이시는 것이다.
마태라는 말은 헬라어로 마타이오스라고 하는데 이 말은 누가복음 3장25,26절에 있는 마타티아스 라는 말에서 축소된 것인데, "여호와의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이 마태는 알페오의 아들로서 처음에는 사람들에게서 천대를 받는 세리였지만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일약 변하여 복음의 전도자, 주님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가 이렇게 그 사람됨이 그 나변에 있었는지? 그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몇가지 생각해 보고저 합니다.
당시 세리는 "가바이"라고 하여 세금을 받으러 다니는 자가 있었고 "모케소"라고 하여 세관에 앉아 관리하는 자도 있었습니다. 어떻든 둘 다 세금으로 사복을 채우는 자로서 무엇이 제일 나쁘냐?"고 할 때 "산에서는 곰과 사자요, 시가에서는 세리라"(Theocritus)고 할 만큼 백성에게서 냉대를 받았습니다.
이런 세리 중의 한 사람인 마태였지만 그리스도의 은헤를 확대키 위하여 그가 죄인인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고 그의 카다로구에서 나타내었습니다. 범인들은 자신의 신본 여하가 어떻다는 것을 나타내기를 그렇게 원하지 아니합니다. 더욱이 자신의 신분이 저열하고 낮으면 더욱 그렇습니다. 자기의 결점과 약점, 부끄러움을 나타내기 싫어하는 범인의 본성일진대 마태도 그랬어야 했지만, 그렇지 아니하고 세리 마태는 자신의 저열한 신분을 똑똑하게 나타내었습니다.
"나는 세리 마태"라고,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도 우리의 신분이 무엇이었다는 것을 부끄러움이 없이 나타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구요?그것은 하나님께서 듣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왜냐고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듣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상의 강도는 죽기전에 자기 신분 여하를 솔직하게 고백했고, 바울은 "나는 죄인 중의 괴수"라고 자신의 신분을 밝혔습니다. 여러분의 신분은 무엇이었습니까? 강도? 살인자?부랑자? 싸움꾼? 거짓말쟁이? 사기꾼? 우상숭배자? 바람둥이? 욕쟁이?....? 아 - 그 무슨 신분이었던지 간에 솔직하게 부끄러움 없이 고백해야 합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고백하는 여러분의 신분이 어떠하든지 다 이해하시고 용서하시고 불러 주실 것 입니다. 천주교 성당에서는 교인들이 신부에게 자기의 무서운 죄를 고백한다고 합니다. 고해성사라고 하는 것이지요! 신부 앞에서도 자신을 고백도 하거든 하나님께 자신을 감출 필요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솔직히 고백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읍시다.
예수님은 세관에서 마태를 불렀습니다. 세리 노릇하는 그 자리에서 불렀습니다. 그리고 마태는 그 부르심에 아무 이유나 조건없이, 변명 불평없이 곧 순종했습니다. 범인들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 법입니다.그래서 습관과 인습된 자리에서 벗어나기가 대다히 힘듭니다. 그러나 마태는 나를 좇으라, 나를 따르라고 하시는 주님의 말씀 한 마디에 일어나 좇았습니다. 곧 순종했습니다. 쉬운일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리 직장 이상의 직장을 약속한 것도 아니고, 장래를 보장하겠다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 예수님의 명령에 무조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따랐습니다. 여기에 마태의 마태다운 면모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말씀의 위력과 마태의 결단성 있는 신앙을 볼 수 있습니다. 가정, 직장, 체면, 장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주님을 좇아간 마태, 계속성 있게 좇아 갔던 것입니다. 십자가를 보고 주저 방황하는 자 누굽니까? 십자가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요! 무엇하려고요? 내가 죽었기 때문에 살려 주려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마치 에스겔 골짜기의 해골떼를 살려 주신 것과 같이.
자신이 천한 죄인인 것을 알면 알수록 주님의 부르심이 감사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배가 고파본 일이 있습니까? 배가 고플수록 밥 한 릇의 가치를 알게 됩니다. 죄를 인식하고, 죄인인 것을 알면 알수록 죄에서의 구원을 감격하게 느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죄인된 죄의식에서 메시야의 구원에 얼마나 감격하고 있습니까? 오늘도 얼마나 상한 심정으로 십자가를 대하고 있으며, 얼마나 예수의 공로에 감사하고 있습니까?
마태가 영광의 잔치를 베풀었다는 사실은 또한 그와 같이 있었던 사람을 주 앞으로 인도하는 기회를 갖게 했습니다. 누가빠고음 5장 29절은 이 일에 대해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았는지라"라고 했고, 마가복음 2장 15절은 "그의 집에 낮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앉았으니 이는 저희가 많 이 있어서 죄를 좇음이러라" 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많은 세리와 죄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기회를 가지게 하려는 노력이 이 집회를 성공리에 대성황을 이루게 한 것입니다. 받은 은혜의 가치를 느끼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주고저 하는 마태의 위대한 태도의 면을 엿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전하여 주고서야 처음 알 수 있는 주님의 참 사랑! 참 은혜! 이 잔치 석상에 마태 뿐이었다면.. 아닙니다. 보다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있어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 죄인을 부르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많은 음식보다도 세리의 죄인, 즉 병자가 있어야만 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감사를 통한 형제에의 사랑과 전도열은 무엇으로 나타나고 있습니까? 예수님과의 잔치 석상에 많은 사람을 뫼시는데 있는 것이 아닙니까?
이 마태는 그 때부터 일평생을 주와 같이 보내면서 주의 신실한 제자가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장 13절을 보면 "이르시되 저희 유하는 다락에 올라가서 베드러와 요한과 야고보와 안드레와 및 빌립과 도마와 바돌로매와 마태와..." 예수의 사후에도 그는 구를 따랐고, 마지막에는 유다에서 전도했고 또 에디오피아에 가서 전도하다가 목베임을 당했습니다(유세비우스 H.E.3:24).
세관에서 떠난 마태는 주님을 따르고,좇고, 또 순종하다가 골고다까지, 십자가까지 따랐던 것입니다. 한 평생 변함없이 순교의 제물로 바쳐질 때까지 따르고 또 따랐던 것입니다. 세리 마태! 그러나 주님의 사도 마태! 그리고 순교자 마태! 아 - 얼마나 영광그러운 제자 마태입니까! 이 마태의 생애를 오늘 우리 중에서 누가 배우겠습니까?누가 제이의 마태가 되겠습니까? 이름 그대로 "여호와의 선물" 마태! 누가 이 마태이겠습니까? 다같이 마태여야 하겠습니다. 20세기의 마태 말입니다.
< 12제자 연구 > 4. 세리장 / 마태 / 홍만조목사
진실한 교인인 한 청년과 그의 아내는 가까운 이웃과 친분관계를 가지면서 자기 아파트에 초대하여 기분전환도 하고 식사도 같이 하면서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이들은 복음을 전할 기회가 있기를 원하고 있었다. 한달에 한 번씩 구원받지 못한 친구와 이웃들을 식사에 초대하고 무디협회에서 제작한 영화를 보기도 했다. 항상 대화는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로 화제의 촛점이 맞추어졌고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 이것은 "식사전도"라는 증거 방법의 하나이다. 그러나 식사전도는 20세기에 들어서서 독특하게 생겨난 방법이 아니라 열 두 사도 중 하나인 마태가 그리스도를 믿게되자 즉시 사용했던 증거 방법이다.
마태도 다른 몇몇 사도들처럼 두 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마태복음에서는 '마태'로 불렸으나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는 처음에 '레위'로 부르다가 세관에서 일할 때는 마태라고 불렀다. (막2:14/3:18/눅 5:27/6:15). 그의 첫 이름은 레위였는데 그리스도를 믿은 후 예수께서 마태라는 새 이름을 지어 주셨다. 레위라는 이름은 고향 사람들이 불렀다.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 그는 사도들 가운데서 일곱 번째, 마태복음과 사도행전에서는 여덟번째에 자리잡고 있다(행1:13).
다른 복음서 기자들은 경멸받는 마태의 직업을 점잖게 표현하였으나 마태는 자신을 세리라고 했다.(마 10:3) 경멸받는 자신의 직업에 대하여 말하면서 마태는 "나는 더 이상 경멸받는 직업에 종사할 수 없다. 사도직분으로 일하고 싶다"고 고백하였다. 마태의 사회적 신분은 현대의 마피아단이나 또는 마약 판매자와 거의 비슷할 정도이다. 그는 스스로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1)세리의 일 탈무드에 의하면 +- 하나는 보통 세금을 징수하는데 술, 또는 과일이나 이와 비슷한 | 품목에 대한 세금을 거둔다. +- 하나의 세리는 마태가 속하여 있는 세관관리이다. 세관의 세리들은 사람들을 정지시켜 검색하거나, 짐을 시간을 끌며 조사하고, 날카로운 쇠꼬창이로 밀수품을 색출하기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많은 미움을 받았다.
가버나움의 교역하는데 참으로 좋은 위치였다. 다메섹으로부터 예루살렘으로 가는 간선도로로 짐을 가득 싣고 내려오는 대상들은 마태가 근무하는 세관에게 멈추어2-12%에 달하는 관세를 지불해야 한다. 또 갈릴리 바다 근처에서 어부로부터 세금을 받아 들였다.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 가끔 마태에게 세금을 바쳤다.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들의 눈으로부터 크게 시기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기들의 짐을 검색하는 세리들을 아무도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세리들이 미움을 받는 데는 더 많은 이유들이 있다.
대부분의 세리들은 정직하지 않았다. 이들은 자기의 직업을 유지하기 위하여 로마당국에 일정한 금액을 바친 후 그 이상으로 주머니를 채우고, 가능하면 더 많은 돈을 사람들로부터 긁어 모았다. 세리의 행동에는 탐욕과 부패와 착취와 협작이 뒤따랐다. 로마제국이라는 권력을 배경으로 하고 로마 군사의 힘을 빌어 강제징수하고 사람들을 협박하여 감언이설로 속여 빼앗았다. 높은 세금 수탈에 서민들이 고통을 당하는 동안 세리들은 점점 부자가 되었다. 로마제국에 봉사하는 직업 때문에도 미움을 받는 세리들은 동족인 유대인들에게 더러운 사람들로 보였고, 외국 정부와 야합하는 공모자로 간주되었다.
세금징수는 가장 추악한 직업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세리들은 이방인이나 창기와 한 통속으로 취급되었다.(마 18:17/21:31). "세리와 죄인"은 최하층 사람의 통칭이었다(마9:9). 더구나 이들은 재판정에서 증언할 자격도 없었으며, 일반 죄인을 조롱할 자격도 없었고, 회당에 들어가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세리의 돈은 연보로 받아주지도 않았다. 이들은 사회적인 문둥병자 의 지위로 버림을 받았다.
마태는 빛나는 황금에 유혹되어 그는 양심을 팔고 자신의 조국을 배신하였고 속이면 속인 만큼 재산이 불어났다. 그러나 그는 종교적인 특권도 박탈당하고 버림을 받았다. 그가 세리로 출발할 때는 정직하겠다고 결심을 했을 것이지만 점점 자신이 몹시 싫어하는 직업의 덫에 걸리고 말았다. 마음은 과부나 고아들의 울부짖음을 듣지 못할 만큼 강팍해졌다.
가버나움은 예수님의 활동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마태도 예수의 대한 이야기를 여러 차례 들었을 것이 분명하다. 가버나움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의 장모의 병을 고쳤는데 그 때문에 베드로의 문 앞에는 예수님에게서 병을 고치려는 가버나움 사람들로 몰려 들었다. 그러던 어느날 마태는 형제와 사촌들과 함께 시몬이 예수를 따르기 위하여 자신의 직업을 포기한 이야기와 지붕을 통하여 수족이 마비된 사람이 예수께로부터 고침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더구나 예수께서는 중풍환자에게 "소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막 2:3-5)라고 말씀하셨다. 마태도 내심으로는 자신의 죄를 용서 받을 수 있기를 바랬을 것이다.
마태가 "경멸받는 세리도 예수께서 받아 주실까?"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의 사무실에 나타나신 예수님을 보았다. 자세한 질문을 받은 마태는 전에는 결코 느껴보지 못했던 죄의식을 느끼기 시작했다. 마태는 마음 속으로 자신이 대단히 더러운 인간임을 느꼈다. 다른 사람들처럼 예수께서도 그를 "세리, 배신자, 죄인, 또는 사기군"이라고 하셨을까?
예수께서는 자비로운 말씀으로 "나를 좇으라"(마 9:9)고 하셨다. 예수님의 부름에 압도당하고 영접하심에 너무도 기뻤던 마태는 그 자리에서 성결을 느꼈다. 그의 마음은 평강으로 충만했다.
마비된 사람을 고친 것을 비난하는 사람에 대하여 예수께서 하신 말씀과 자기의 죄를 용서하면서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하노라"(마 9:6)하신 말씀을 상기 했다.
그는 즉시 순종하여 나와서 사무실의 문을 닫았다. 누가는 예수께서 "그후에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나를 좇으라 하시니 저가 묻는 것을 버리고 일어나 좇으니라"(눅 5:27-28)) 다른 제자들은 죽은 후 묻힐 곳을 이야기하기도 하며 가족과 작별 인사를 하거나 예수님을 따 르기 전에 어떤 지위에 대하여 토론도 했지만 마태의 반응은 즉각적이고 순간적이었다. 예수께서 마태를 택하실 때에는 서로 깊은 관계가 없었던 것같다.
1)마태의 등장은 그 때까지의 사도들의 조직에 급격한 변화를 일으켰을 것이다.
마태가 두 가지의 명단에서 일곱번째로 기록된 것을 보면 안드레, 베드로, 야고보, 요한, 빌립과 나다나엘은 마태보다 먼저 사도로 불리었다. 이들 여섯은 모두 애국자이거나 어부들이었다. 혐오를 받는 가버나움의 배신자 세리가 사도들의 틈에끼어들어 친숙한 동료들에게 긴장을 유발시켰을 것이다.
2)마태를 택하신 예수님의 정책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거리감을 주었을 것이다.
도덕적인 문둥병자를 부르신 것은 무분별한 정책처럼 보인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으며, 특히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이것을 비난하면서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눅15:2)고 불평했다. 제자들 가운데 중요한 제자로 마태가 등장하여 유대인의 편견을 막지 못하고 군중들의 불만을 해소시키지 못하였다.
그러나, 주님께서 마태를 택하신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가장 사악한 사람일지라도 용서해 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이다. 선한 사람만이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끝이 없으며 그 은혜는 모든 인간에게 고루 베풀어 진다. 모든 사람들이 마태를 질시하고 있을때 예수께서는 사랑의 은혜를 필요로 하는 한 사나이, 마태를 보신 것이다. 이와 똑같은 사랑의 은혜는 죄짓고 회개하는 모든 사람에게 문이 열려 있다. 베푸시는 예수님의 계획적인 정책이었다. 만일 교회에 여러층의 사람들이 있다면 어부들이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기가 훨씬 쉬울 것이다. 복음전파에는 다양성이 있는 것이 좋다.
예수님의 부름을 받은 직후 마태가 예수님을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베풀었을 때 세리와 다른 사람들도 함께 앉아 있었다(눅 5:29). 잔치의 내용이나 넓은집은 많은 손님들의 접대하는 데 충분했으며 모든 것은 마태의 재산정도를 잘 반영하고 있었다. 마태의 이 잔치는 훌륭하게 돈을 쓰는 것이었으며 또 여러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셈 슈메이커는 [그리스도인이 택하여야 할 가장 좋은 자리는 구원의 문 바로 안쪽]이라는 글을 썼다. 안쪽에서 너무 깊숙하게 떨어져 있으면 밖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기 어려우며 문으로 부터 너무 멀리 가서 있으면 입구를 더듬어 들어오는 소경을 맞이할 수가 없다.
칠레의 한 교회에서 시민들의 큰 환영을 받는 철야 집회가 있었다. 밤마다 도둑들이 기쁜 찬송가 소리를 들으면서 마음놓고 집집마다 털었다. 그러나 어떤 도둑은 예배석에 몰래 숨어 들어와 죄를 깨닫고 회개했다. 일 년이 지난 후 이 도시의 경찰은 복음전도 역사상 볼 수 없는 전대미문의 진기한 일을 하였다. 경찰은 24명의 범인들의 사진과 함께 목사 앞으로 연하장을 보냈다. 경찰은 목사님의 복음전도를 듣고서 범인들이 도둑질에서 손을 떼었기 때문에 이들의 사진을 교회의 기록에 함께 보관하는 것이 좋겠다는 제안을 하였다.
마태 시대의 사람들은 세리는 변화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예수께서는 마태의 잠재능력을 보셨다. 마태는 예리했고 훈련되어 있었으며 용모가 출중하고 헬라인과 라틴 사람과 아랍인에 대하여는 정통하였다. 미래가 인생의 목적에서 돈을 단념하려 한다는 걸 알아차리신 예수께서는 그가 신약의 첫째권을 쓸 수 있도록 변화시키고 감동을 주셨다.
마태복음은 유대인을 겨냥하여 쓴 것 같다. 마태는 구약 속의 선지자들에 의하여 약속된 참 메시야가 예수임을 증명하려는 결심을 하였다. 이를 위하여 마태는 복음서를 쓰면서 몇 군데에서 비슷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마 1:22)는 것과 마태복음서 2장15,17,23절 등은 그 형식과 내용이 비슷하다.
마태는 유대인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다윗왕의 혈통을 조사하여 그리스도 가계를 추적하였다. 조심스럽게 14대에 걸쳐 세 그룹을 만들어서 마태는 그리스도의 혈통을 밝혔다. 마태가 체계화 하기를 좋아한 것은 언제나 모든 것을 정리하는 성품에 기인하였다. 마태복음의 거의 절반 정도가 마가복음처럼 활동의 기록으로 되어 있지만 마태복음의 특징은 위대한 논술이란 점이다.
마태는 언어이든 상징적인 묘사이든 문서전도의 방법을 사용하는 시인이나 저술가, 신문기자 , 편집자, 서기, 장부 기록자와 회계원의 선구자였다. 마태는 복음을 쓰면서 일생을 살았다. 마태가 에디오피아와 바사에서 복을 전파했다는 전설도 있다. 그의 사도로소의 상징은 본래의 직업을 뜻하는 "세개의 지갑"이다. 그는 이 세상 끝까지 그리스도의 구원의 능력을 증거할 수 있었다. 아마 마태는 여리고의 세리장인 삭개오에게 예수께서 여리고를 방문하면 예수님을 만나라고 권하는 글을 보냈을 것이다.
구원 받은 우리도 마태처럼 식사전도를 하여 올해를 마무리하자.
마태복음은 이방인보다는 유대인들에게 주신 말씀이다. 제롬은 가이사랴의 밤빌로 도서관에서 이 복음의 아랍어 사본을 발견해서 헬라어와 라틴어로 번역했다고 주장했다. 마태복음의 기록은 대략 주후 85년에서 90년경으로 추산할 수 있다. 이 시기는 유대교의 신앙의 중심지요 초대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도 어느 정도 신앙의 본거지였던 예루살렘이 로마에 의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다 허물어진 뒤 유대교 안에서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던 때였다.
마태복음의 저자는 예수님의 12제자 가운데 하나인 마태(9:9-13)라는 것이 전통적 의견이다. 당시 사람들은 흔히 이름을 두개 가지는 일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을 히브리어로 레위라고 하였고 (누가5:27-32)알패오의 아들이었다. 그는 본래 세관에 앉아 사무를 보는 세관 관리로서 가버나움에서 일했다(누가5:27-28).
마태는 예수께서 저를 부르셨을 때에 모든 것을 버리고 따랐다고 하는 것은 마태가 얼마나 회개 하였고 진실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예수를 따르기로 결정하자 곧 잔치를 베풀고 당시 종교 인들이 경멸하던 자기의 옛 세리 친구들과 죄인들을 청해서 대접한 것은 마태가 자기 친구들에게 예수를 소개하고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예수를 따르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마태는 오순절에 성령을 받고 전설에 의하면 그는 제일 먼저 유대인들에게 전도한 사람이었으며 후에 아시아와 마게도냐에서 전도하였다고 한다.
마태복음의 주제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는(1:1)말씀이다. 창세기를 보면 대략이 이러하니라, 또는 계보가 이러하니라, 또는 후예는 이러하니라, 등(창2:4, 5:1, 6:9, 11:27 기타) 같은 말씨로 끝나고 있다. 이 말씨가 나올 때마다 그것은 메시야적 약속의 발전 단계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하나님의 백성의 역사 속에서 약속의 발전은 룻기 4:18에서 다윗에게서 그치고 있다. 마태는 이러한 계보를 끄집어내어 메시야의 약속이 예수에게서 성취된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마태는 이 책을 기록할 때에 일정한 5개의 주제를 중심 삼아 정리하고 전개시켰다. 즉
교훈의 주제로 나누어져 있으며 매 주제마다(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 시고(며)라는 말씨로 끝내고 있다(7:28, 11:1, 13:53, 19:1, 26:1). 마태복음에는 (이루려하심이라)는 말이 많이 나타나 있다.(참조 4번 인간 마태로 가서 보세요?). 바로 예언된 그대로 이루어졌음을 보여 줌으로써 예수께서 구약의 메시야 되심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 복음은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이 임기응변의 방책이 아니라 장구한 계획으로써 예수의 탄생과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써 성취된 것임을 알려 주고 있다.
각 복음서의 첫 구절은 복음서 성격을 잘 규정해 주는 중요한 단어가 기록되어 있다* 마가복음 1:1-복음, 누가복음 1:1-내력, 마태복음 1:1-책 마태복음은 "기독교인들을 위한 교회 교과서", "요리문답책"(catechism)으로 기독교인들의 신앙훈련을 위해, 혹은 신앙 교육을 위해 기록된 교과서 성격을 지니고 있다. 달리는 "교사의 복음서"(the teacher's Gospel) 혹은 "교육을 위한 복음서 "(the teaching Gospel)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1. 메시야의 예언 실현 1:1-4:11 2. 메시야의 원리 발표 4:12-7:29 3. 메시야의 권능 발현 8:1-11:1 4. 메시야의 프로그램 설명 11:2-13:53 5. 메시야의 목적 선언 13:54-19:2 6. 메시야의 문제 제시 19:3-26:2 7. 메시야의 수난 완성 26:3-28:10 8. 맺음말 28:11-20
4. 내용 분해(소분류)
○마1:1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 마1:1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마1:18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마2:1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마2:1 동방박사의 방문 마2:13 애굽의 피난 마2:19 나사렛 귀향 ○마3:1 세례요한의 역할 마3:1 광야의 세례요한 마3:13 세례 받으시는 예수님 ○마4:1 시험받으시는 예수님 마4:1 예수께서 시험받으심 마4:12 예수 사역의 시작 마4:18 제자들을 부르심 ○마5:1 산상에서 말씀하신 팔복 마5:1 팔복 마5:13 빛과 소금비유 마5:17 율법의 완성 마5:21 살인과 간음에 대한 규례 마5:33 맹세와 무저항에 대한 규례 ○마6:1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라 마6:1 구제와 기도 규례 마6:9 주기도문 마6:16 금식 규례 마6:19 재물 규례 ○마7:1 비판하지 말라 마7:1 판단 규례 마7:7 기도에 대한 약속 마7:13 하늘나라 생활의 증거 ○마8:1 예수그리스도의 병고침 마8:1 문둥병자를 고침 마8:5 백부장 종의 고침 마8:14 베드로 장모 고침 마8:18 예수를 따름 마8:23 바다를 잔잔케 하심 마8:28 귀신을 쫓아냄 ○마9:1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과 사랑 마9:1 중풍병자를 고침 마9:9 마태를 부르심 마9:14 금식에 대한 교훈 마9:18 야이로의 딸을 고치심 마9:27 두 소경을 고치심 마9:32 벙어리를 고치심 마9:35 사람들을 불쌍히 여김 ○마10:1 열두 제자의 파송 마10:1 열두 제자 선택과 파송 마10:18 박해를 각오하라 마10:24 두려워하지 말라 마10:34 복음에 따르는 인간적 고통 ○마11:1 세례요한의 질문 마11:1 예수의 답변 마11:7 세례 요한을 칭찬하심 마11:20 회개치 않는 자들에 대한 심판 마11:25 구원과 안식에 때한 교훈 ○마12:1 예수를 배척하는 바리새인 마12:1 안식일의 주인 예수 마12:9 안식의 참된 의미 마12:22 성령 훼방죄 마12:38 표적을 구하는 바리새인들 ○마13:1 씨 뿌리는 자와 가라지의 비유 마13:1 씨 뿌리는 자의 비유 마13:10 비유로 말씀하시는 비유 마13:18 씨 뿌리는 비유의 해석 마13:24 곡식과 가라지의 비유 마13:31 겨자씨 비유 마13:36 가라지의 비유 마13:44 감추인 보배와 진주 비유 마13:53 배척 당함 ○마14:1 세례요한의 죽음 마14:1 세례요한의 죽음 마14:22 물위를 걸으심 마14:34 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치심 ○마15:1 바리세인과 서기관들의 유전 마15:1. 유대 전통에 대한 논쟁 마15:21 가나안 여자의 딸을 고치심 마15:29 많은 병자들을 고치심 마15:32 칠병이어의 이적 ○마16:1 제자의 신앙고백 마16:1 표적을 구하는 그리스도인 마16:5 누룩을 주의하라 마16:13 베드로의 신앙고백 마16:21 수난, 죽음,부활에 대한 예언 ○마17:1 변화되신 예수님 마17:1 변화산 사건 마17:9 앞서 온 엘리야 마17:14 귀신들린 아이의 간질병을 고침 마17:24 납세의 문제 ○마18:1 용서에 관한 교훈 마18:1 천국에 큰자 마18:15 형제에 대한 교훈 마18:21 용서에 대하여 ○마19:1 결혼과 이혼 마19:1 결혼과 이혼에 대한 교훈 마19:13 어린이에게 축복 마19:16 부자청년 마19:23 소유에 관한 교훈 ○마20:1 천국과 포도원 품꾼 마20:1 포도원의 일꾼과 품삯 마20:17 수난에 대한 예언 마20:29 두 소경의 눈을 고침 ○마21:1 예루살렘의 입성 마21:1 예루살렘 입성 마21:12 성전을 청결케 하심 마21:18 무화과 나무 저주 마21:23 예수의 권위에 대해 질문 마21:28 두 아들의 비유 마21:33 악한 농부에 비유 마21:42 모퉁이돌 ○마22:1 혼인잔치의 비유 마22:1 혼인잔치의 비유 마22:15 세금 내는 문제와 부활에 대하여 마22:34 계명과 예수 출신에 대하여 ○마23:1 바리세인과 서기관을 책망하심 마23:1 외식하는 자를 본받지 말라 마23:13 그릇된 율법주의와 위선 마23:37 예루살렘을 향해 탄식 ○마24:1 종말의 징조들 마24:1 성전이 무너질 것 예언 마24:15 대환난 마24:29 그리스도의 재림과 징조 마24:32 재림의 시기 마24:45 충성된 종 악한 종의 비유 ○마25:1 열 처녀의 비유 마25:1 열 처녀 비유 마25:14 달란트 비유 마25:31 양과 염소에 관한 비유 ○마26:1 고난 예고 마26:1 유대인의 공회의 음모 마26:6 예수께 향유를 부은 여인 마26:14 유다가 예수를 팖 마26:17 최후의 성만찬 마26:30 베드로의 부인을 예언함 마26:36 겟세마네의 기도 마26:47 예수께서 잡히심 마26:57 가야바에게 심문 당함 마26:69 베드로 예수 부인 ○마27:1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마27:1 빌라도 앞에 서신 예수 마27:3 유다가 자결함 마27:11 빌라도의 심문과 사형 선고 마27:27 희롱과 수욕을 당하심 마27:32 십자가에 못 박히심 마27:45 십자가에 달리심 마27:57 무덤에 장사되심 마27:62 무덤을 지키는 로마병정 ○마28:1 예수의 부활 마28:1 예수의 부활을 천사가 전함 마28:8 부활의 주님을 만난 여인들 마28:11 매수된 파수꾼들 마28:16 마지막 명령
* 마태복음은 28장, 1,071절, 약 23,685 단어로 구성되어 있다.
예수께서는 옛 사람에게 말한바.....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5:21,22)라고 말씀하심으로써 그 자신이 율법보다 우월하심을 나타내셨다. 아직 예수의 인격과 역사가 나타나지 않고 있으나 그러나 그 자신이 모든 교훈과 그리고 모든 신앙의 중심이 되신다는 것을 여기서 말씀하고 있다.
1) 씨뿌리는 비유(13:1-23), 2) 알곡과 가라지(13:24-30,36-43), 3) 겨자씨(13:45,46), 4) 누룩(13:33), 5) 보화(13:44), 6) 진주(13:45,46). 7) 그물(13:47-50), 8) 집주인(13:51,52). 처음 넷은 무리를 위해서, 나중 넷은 제자들을 위해서 말씀하신 비유이다.
제자상(像)-Mt(마태):하늘 나라의 비밀을 볼 수 있는 눈과 귀를 가지고 있다-13:11,16:17 Mg(마가):이해하지 못하는 자, 심령이 완악한 자-4:13, 6:52,8:17,9:102.예수님에 대한 표현-Mt: 제자들, 믿는 자들이 "주님"으로 호칭함(8:2,6,8,21,9:28) 유다와 부자청년, 예수의 적대자들만이 "랍비","선생님"으로 호칭함(26:25, 49, 8:19, 12:38, 19:16, 22:16) Mg: 제자들, 믿는 자들, 유다(14:45),원수들 (12:14,19) 모두가 "랍비", "선생님"이라 호칭한다.
이같은 점에서 마태는 십자가 사건 이전의 예수시대를 관심하기 보다는 부활절 이후의 신앙이라는 관점에서 예수의 품격, 선교, 수난에 관해 말해 주려는 목적이 있다고 본다
감정적인 표현구들의 제거함-마가에 나오는 "노하였다"(막 3:5),"불쌍히 여겼다"(1:41), "이상하게 여겼다"(막 6:6), "탄식하셨다"(막 8:12)는 구절들이 마태복음에서는 사용되지 않았다.